〈 78화 〉78화
박은혜는 B급 헌터이다.
등급은 나와 같다고 하더라도 B급 헌터로 지낸 시간 자체가 달랐다.
클래스도 다른 만큼 일 대 일 싸움이 벌어지면 내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김소희가 있기는 하지만 그녀와 내가 합세한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김소희는 포텐셜 높은 헌터이지만 아직 그녀의 실력은 제대로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생각이냐?’
김소희를 위험한 일에 뛰어들도록 해 놓고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차라리 다른 파티원들을 호출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설명하기가 대단히 까다로운 데다가 일만 더 복잡해질 우려가 있었다.
‘정 상황이 안 좋으면 아바타들을 소환하면 되니까.’
그녀들을 소환하면 백 퍼센트 이쪽이 유리해진다.
단, 여전히 김소희에게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것과 박은혜에게 내 능력이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아무것도할 수 없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
나는 이전보다 내 청력이 크게 나아졌음을 느꼈다.
B급 헌터가 되었다는 실감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이야.
귀를 대고 듣자니 이런 소리들이 들렸다.
“누구야?”
“방 잘못 찾은 거 아니야?”
“아니에요, 언니들. 제가 룸 서비스 시켰어요.”
“오, 그래?”
“뭐 시켰는데? 나 샴페인 마시고 싶어.”
“나도 나도. 네 보지에 샴페인 넣고 들이켜고 싶어.”
“어머~ 변태.”
“호호호!”
“호호호호!”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분명히 들려온 목소리 중 하나는 김소희의 것이었다.
하지만 김소희 말고도 두 명의 목소리가 더 들렸다.
‘여기 세 명이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박은혜를 골목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웬 여자와 함께 바에 들어가는 걸 보았던 게 생각났다.
만약 그녀도 함께라면, 이 안에서는 여자 세 명의 3P 플레이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소희 너 괜찮은 거 맞니?’
나는 김소희의 충성심을 간과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양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대는 위험한 변태인데, 게다가 변태를 두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김소희가 하고 다니는 외양과 달리 꽤 순진한 애라는 점을 생각하니 내가 실수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지 안에 샴페인을 넣고 들이켜다니.’
이런 말을 쉽게 던지고 깔깔거리는 것을 보니 변태적 수위가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안에서 통통 대는 발소리가 나더니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들려온 목소리로 판단컨대 그것은 김소희의 것이 분명했다.
룸 서비스를 시켰다는 핑계를 대고 문을 열어주려는 것이었다.
달칵.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김소희를 확 잡아당겼다.
그녀를 내 등 뒤에 숨긴 채로 물었다.
“괜찮아?”
“네, 저는 괜찮아요~”
김소희가 뒤에서 내 등을 껴안았다.
“저 걱정해주신 거죠? 기뻐라.”
그런데 나를 안는 그녀의 느낌이 좀 이상했다.
다시 보니 그녀는 알몸이었다.
알몸인 여자애를 복도 쪽으로 밀어놓은 것도 이상한 일이라서 머뭇거렸더니 김소희가 커다란 가슴으로 나를 쭉쭉 밀었다.
“들어가요, 파티장님.”
“하지만......”
이 안에는 B급 헌터 박은혜가 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자 헌터가 있었다.
이대로 무방비로 들어갔다가는......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방 안의 풍경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김소희가 왜 이렇게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와......”
방 안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침대에 여자가 묶여있었다.
한 명은 정자로, 다른 한 명은 엎드린 채로.
모두가 알몸이다.
더 대단한 점은 둘 모두 안대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룸 서비스 왔어?”
“아항! 나 못 참겠어! 얼른 내 보지에 샴페인 쏟아부어줭!”
‘이 변태들.’
“어때요? 파티장님?”
나는 김소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잘했어!”
“아하하!”
하지만 여전히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둘은 꽤 강한 수갑으로 침대에 구속되어 있었지만, 그런 수갑 따위 헌터에게는 큰 제약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B급 헌터라면......
엎드려서 묶여 있던 박은혜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말했다.
“응? 너 혹시 남자 데리고 들어왔니? 헌터 같은데?”
“네~ 언니. 나쁜 사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하지만!”
박은혜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덜컥대며 수갑을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아아......”
나른한 신음소리를 내며 그녀가 침대에 축 늘어졌다.
“약효가 이제야 나타나네. 역시 B급 헌터가 튼튼한 것 같아요. 그렇죠?”
“오......”
나는 김소희의 수완에 새삼 감탄했다.
침대에 구속한 것뿐만이 아니라 기절하도록 약까지 사용했다니.
이런 약은 어디서 구한 것이고, 왜 몸에 지니고 다니는지 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지금 따질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약기운에 기절한 것은 박은혜뿐이었다.
반대편침대에 있던 여자는 여전히 팔팔하게 깨어 있었다.
“남자를 데려왔다고? 왜? 우리 셋이서충분하잖아! 나 남자 안 좋아한다고!”
꽤 강하게 펄떡대는 것치고는 힘이 그다지 센 것 같지 않았다.
그 증거로 그녀는 강하게 팔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수갑이 끊어질 것 같은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소희가 픽 웃으면서 말했다.
“얘는 D급 좆밥이에요. 보니까 여자헌터들 상대로 몸이나 파는 변태년이에요.”
“변태?! 야!!”
김소희의 말이 심히 거슬린 모양이지만 D급 헌터 여자는 침대 위에서 펄떡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음......”
이제 어쩐다?
김소희가 일처리를 기대 이상으로 잘해준 것은 좋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하면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김수연에게 최대한의 대미지를 줄 수 있을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김소희가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때요? 파티장님?”
그녀가 내 귀에 소곤소곤 속삭였다.
“오, 과연.”
그녀의 말대로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것 정도가 아니라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귀여운 것.
나는 김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헤헤.”
김소희는 커다란 가슴을 드러낸 채로 천진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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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가 낸 아이디어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나 상당히 과격한 것이기도 했다.
“이 여자 머릿속에는 섹스밖에 없어요. 분명히 걸려들 거예요.”
나는 그저 불법 조직의 남자가 보내 온 소스 자료로만 박은혜에 대한 것을 알았을 뿐, 김소희처럼 직접 겪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보다는 김소희 쪽이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소스 자료 속 박은혜에 대한 정보와 김소희가 말하는 내용은 일치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여자에 대한 특징이 ‘변태’라는 것밖에 없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이상의 정보가 필요 없기도 했다.
마냥 시간을 지체하는 것도 좀 그래서 나는 바로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알지? 그냥 일일 뿐이니까.”
아무래도 좀 겸연쩍은 느낌이 들어서 김소희에게 말했더니 그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알죠~ 파티장님 파티에 들어가면 이런 신나는 일이 많을 줄 알았어요!”
확실히 생각하는 개념이 나와 김소희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내 기준으로 그녀를 판단하면 뭔가 미스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시스템이 미친 영향도 있겠지만, 이런 것은 그녀의 본성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듯했다.
“저는 이쪽을 맡을 테니까 파티장님은 그쪽작업에 착수하세요.”
신이 난 김소희가 내게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 되었다.
‘작업’이라고 표현하려고 하니까 조금 그렇기는 하다.
왜냐면 내가 하려는 일은 침대에 묶여 있는 이 여자, 즉 박은혜의 파트너와 섹스하려는 거니까.
“야! 뭐 하는 거야! 너 남자지! 오지마! 나 남자 싫어!”
엄밀히 말하면 이 여자는 그다지 죄가 없다.
운 나쁘게 걸려들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김소희의 말에 따르면 여자 헌터들을 성적으로 등 처먹고 살아가는 여자라고 하니까.
다시 말해 이런 위험을 언제나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상태로 놓아준다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확실하게 입막음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소희의 말에 따르면 이 여자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입막음은 섹스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자의 자지가 그녀의 보지를 관통하는 것.
여자가 활동하는 바닥에서는 순수한 레즈비언과 양성애자의 가치가 다르다고 했다.
특히 헌터 같은 경우는 남자의 마나를 몸에 받아들인 쪽과 아닌 쪽의 평가가 다르다나?
뭔가 이해하기 어렵고 깊은 세계를 맞닥뜨린 기분이지만 김소희가 그렇다고 하니 틀린 정보가 아니겠지.
한 마디로 이 여자는 자기가 남자와 섹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레즈비언 세계에서 평가 절하 당한다는 것이었다.
이걸로 먹고 사는 여자 입장에서는 큰 타격인 셈.
내가 다가가자 눈이 갈려진 상태에서 이렇게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 김소희의 말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순수한 레즈비언이라는 건가......’
나는 수갑에 묶인 채로 발버둥치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