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88화 (88/92)



〈 88화 〉88화

남자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내가 한 제안이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5,000만 원을 줄 수 있다면 7,000만 원도 줄 수 있는 거니까.

던전이 되살아났을 경우 지급 금액을 10억에서 100억까지 올린 것은 그리 의미가 없다.
왜냐면 그것은 말 그대로 거의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
로또 1등을 상금을 열 배로 올려달라는 것과 같았다.

웬만큼 균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조건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터였다.
오히려 배짱 있게 응하고 상대의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의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헌터님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다른 헌터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헌터님도 지금은 돈이 많이 필요하실 테니 손해가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좋은 일은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성과가 안정적이면 나중에 더 큰 일을 의뢰할 수도 있겠죠.
“네.”

나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은일이었지만, 그게 불법 집단과의 거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내 안에는 이런 불법적인 일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이 남아있었다.

피곤하시는 것 같으니 이만 통화를 줄이겠습니다. 관련 자료는 전화를 끊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자기가 말한 대로 전화를 끊자 곧바로 내게 조사가 필요한 쓰레기 게이트 정보를 보내주었다.
위치와 등급, 그리고 버려지기 전에 어떤 몬스터들이 나왔었는지 하는 정보들이었다.
 정보를 보니 더 안심이 되었다.
뭔가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게 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과 거래하는 거라면 나중에 잘못될 확률이  줄어들 테니까.

“으음......”

나는 손에 있는 종이컵을 들고 일어났다.

남자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더니  여기 있기 싫어졌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샤워를 한 뒤 오늘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보았다.

내 스케줄은  개였다.
최슬비, 김현아와 만나 그녀들을 영입하는 것과 쓰레기 게이트에 가서 그것을 조사하는 일.

‘쓰레기 던전에 먼저 가는  좋겠지.’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파티원 영입은 당일 섹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면접 이후에  스케줄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같았다.

나는 최슬비에게 먼저 전화했다.

신호가 세  울린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온리갓 파티장 조태웅이라고 합니다.”
- 아아~ 네. 안녕하세요.
“면접 건으로 연락드렸는데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시쯤 찾아봬면 될까요?
“오후 다섯  어떠세요? 제가  전에는 할 일이 좀 있어서요.”
- 네~ 괜찮아요.
“그러면 그때 저희 사무실로 나와주시겠어요? 주소는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목소리는 나이가 있으니 꽤 젊었다.
다만 침착하고 성숙한 느낌은 있었다.

어제 이계로 가서 그녀와 동화된 제시를 만나고 와서 그런지 바로 그녀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아마 외모적인 느낌도 웬만큼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었다.

‘약속은 잡았으니까......’

김현아는 내일 만나기로 했다.
이유는 최슬비 면접 뒤에 게이트 조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과 동일했다.
만일 당일 섹스가 가능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면 그 뒤에는 일정이 없는 편이 좋으니까.

나는 어제 남자가 보내주었던 게이트 자료를 보았다.

모두 서울에 있는 게이트이고 버려지기 전의 등급은 C급이 두 개, B급이 하나였다.

내 능력으로 소화 가능한 일감을 맡겼다는 느낌이다.
아마 더 등급이 높은 게이트가 있다면 나보다 등급이 높은 헌터에게 일을 맡겼을 것이다.

나는 오늘은 C급 게이트 한 곳에, 가능하다면 두 곳을 들르기로 했다.

‘하루에 1억 4천만 원을 버는 거네.’

소환 카드로 이계 여자들을 불러내더라도 그녀들과 돈을 나누지는 않으니 모조리 내 돈이었다.

어제는 별로 실감이 안 났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꽤  돈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라면 누구든 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남자가 굳이 나를 지목한 것은 말 그대로 내게 호감이 있고, 내 능력을 믿기 때문이리라.
그는 내가 독자적인 몬스터 사냥 전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게이트 이상 반응이라고 하는 것은 그곳의 대기를 이루고 있는 마나가 불균형 반응을 보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일반 게이트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 잡힌 예약을 취소하고 조사부터 하곤 했다.

드물지만 그런 불균형 반응을 통해 게이트의 등급이 바뀌거나 소멸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끔은 강력한 몬스터가 출현하기도 하고.

나는 남자가 조사를 부탁한 게이트에서 차라리 그런 일이 발생했으면 했다.
그 쪽이  흥미로울 것 같았으니까.

몬스터가 나오면 사냥하면 되니까 수입이 더 늘어난다.
돈을 벌기 위해 집중적으로 사냥할 때를 제외하고 최근에는 게이트에 들어간 적이 없어서 기대가 되었다.

나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

나는 C급 버려진 게이트에 도착하여 그곳 컨테이너 박스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비밀번호는 남자가 보내준 정보에 적혀 있었다.

조사할 세 곳 모두 비밀번호를 다시 설정하여 나만 들어갈 수 있게 해두었으리라.

게이트 세 곳을 당장 이용할 수 없다면 수입이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내게 빨리 일을 해달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끝내지 않으면 돈을 적게 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게이트 세 곳을 이용하지 못 하더라도 타격을 받지 않을 만큼 자금 사정이 좋은 조직이라는 뜻이겠지.
대개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  돈을 잘 벌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헌터, 게이트와 관련된 나쁜 일이라면 다른 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돈이 된다.

나도 따지고 보면 그 나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로 힘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  7천만 원이라는 엄청나게 높은 보수를 받게 되었다.

컨테이너 박스 안은 기본적으로 내가 갔던 버려진 게이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파, 커피머신 등 간단한 편의시설이 있다.

안쪽에 입장 가능한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바깥에서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수 없었다.
들어가서 안을 조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으음!”

먼저 인상적인 것은 머리 위로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이었다.
 그대로 그것은 붉은 태양이었다.

뻘건 색의 태양이 이글대며 아래를 내리비추고 있었다.

모래밭이 넓게 펼쳐진 이곳은 전형적인 사막 스타일의 게이트였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정보에서 숙지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버려지기 전에 등장한 몬스터는 ‘모래게’였다고 한다.
모래 밑에서 이동해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성가신 몬스터다.

나는 독자적으로 놈의 움직임을 연구했던 적이 있다.
내가 알아낸 놈들의 움직임 패턴은 총 세 가지였다.

좌우로 크게 우회해서 움직이길 좋아하는 놈들과 직선 움직임을 좋아하는 놈들, 그리고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놈들.

셋 중 어떤 타입이냐 하는 것은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수 있다.

10분쯤 상대하면 패턴이 보이는 것이다.

그 다음 공략은 쉽다.
놈들의 이동경로로 예상되는 지점에 폭탄을 설치하면 됐다.

폭탄을 터뜨리면 상처를 입은 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그때 둘러싸고 두들기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

‘모래게’보다 비슷한 종으로 더 성가신 몬스터는 ‘모래전갈’이었다.

놈들은 낮은 확률로 ‘모래게’가 집중 서식하는 게이트에 나타나곤 했다.
‘모래게’처럼 여러 마리가 함께 서식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나타나는 빈도가 적었다.
대신 ‘모래게’보다 10배는 더 강한 몬스터였다.

말하자면 ‘모래게’ 서식 게이트에서 보스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놈들이었다.

10배 더 강하지만 10배  비싼 결정석을 토해냈다.
그래서 나는 ‘모래게’보가 ‘모래전갈’을 더 좋아했다.

놈들은 움직임 패턴이 단순했다.
물론 단순하다는 의미는 상대적인 것으로 나와 달리 몬스터의 움직임 패턴 같은 것을 연구하지 않은 헌터들에게 이놈들은 무작위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놈들이 딱 한 가지 패턴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곡선이나 직선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패턴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암기하고 있었으므로 ‘모래전갈’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알고 있었다.

다만  이전 등급이 C였던 만큼 내가 직접 어그로를 끌거나 딜을 넣기는 어려웠다.
파티원들에게 지령을 내려 놈을 사냥하도록 했는데, 아쉽게도 지금까지 내 명령을 제대로 성실하게 이행한 헌터는 거의 보지 못 했다.

더 쉽게 사냥할  있는데도 그냥 잡기만 하면 되지 뭘, 하는 마인드였던 것이다.

나는 제자리에 선 채로 스킬을 발동했다.

‘전장을 아우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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