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2
"그 동영상 본게 그 맥주집이었어."
"그래서 폰을 가방에 던졌구나..."
"말하자면 그렇지. 동영상 보낸 놈도 틈만 나면 나 간보고 껄덕대던 애야. 아마 나 어떻게 해보려고 동영상 보낸거 같아. 성용이랑 노는 애들이 다 그래. 진절머리 나는 애들이었어."
"그날 그럼...나랑은 분노의 잠자리...?"
"뭐 꼭 그런건 아니었는데...그런 애들 보다가 널 보니까 얼마나 순수해 보이는지. 부끄럼 많고 행여나 무릎이라도 부딪히면 놀라고...버스에서 줄곳 내 다리 훔쳐보는게 귀여웠어."
"어이쿠야...다 알고 있었구나..."
"너랑 하고 나니까 마음의 정화가 되더라...이런 남자도 있구나...했어."
"난 그날 한숨도 못잤어."
"그랬구나. 나는 잠 잘자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전화해서 욕을 하니까 정신이 없더라. 동영상 보낸 놈이 불었는지 들켰는지 했나봐. 쪽팔리니까 선수 친거지. 근데 왜 지 착한 친구는 물고 늘어지냐고..."
"착한건 아냐..."
"그 뒤로 안봤어. 방학이라 부딪힐 일 없었고. 그러다 네 문자를 봤지. 기억나지...나한테 푹 빠졌다고...죽기전에 한번만 보자고...귀여워 죽겠어...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오그라든다."
"난 좋았어...순수한 네가...그래서 바로 강릉에 간거고...거기서도 좋았고..."
"나도 좋았어...근데 그날 너랑 아무일도 없었다..."
"알아...사실 난 깨어 있었어... 네가 청바지 내리고 바로 할 줄 알았지...그냥 하면 될걸...바보같이...구석에서 쭈구리고 혼자 해결 하더라... 충격이기도 했고...여잘 아끼는 구나...널 더 좋게 생각했지. 성용인 지가 필요하면 내가 아프든 말든 그냥 했어. 내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지. 궁극적으로는 날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은거야.
"성용이가 그렇게 까지...?"
"그날 너 잠든 사이에 연락이 왔어. 자기가 잘못 했다고...사실 나도 그때는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었지. 그래서 너한테 메모 남기고 서울로 갔어."
"그때 삼만원 고마워 내가 지금 갚을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지갑을 갖고 왔다.
"풋...그래 네가 준다면 받을게 이자까지 한 십만원 줘라. 거기 가방에다 넣어."
나는 오만원짜리 두장을 빨간색 에르메스 가방에 넣었다.
물을 컵에 따라 미정에게 건넸다.
"고마워...그래 이런게 정상적인 남자의 매너야..."
미정은 일어나 물을 마셨다.
"나 담배 한대만 펴도 돼?"
"응 그렇게 해..."
"내 가방좀 갔다줄래?"
나는 담배연기가 싫었지만, 미정에겐 내 건강을 양보할 수 있었다.
재털이를 만들어 그 위에 티슈를 깔고 물을 따랐다.
빨간 에르메스를 침대에 내려놨다.
"오...진짜 십만원 넣었네...고마워...감사히 쓸게..."
미정은 말보로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이 한모금 빨았다.
긴 한숨을 내뱉었다.
구수한 연기가 천정으로 퍼졌다.
"너도 필래?"
"그래 하나 줘봐."
미정은 피던 담배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번 깊게 빨자 새 담배에 불이 살아났다.
내게 새 담배를 넘겼다.
내 입술에 새담배를 물었던 미정의 침이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한모금을 크게 들이마셨다.
"콜록콜록...우웩..."
여지 없이 기침을 하며 눈물 콧물을 흘렸다.
미정이 새 담배를 낚아챘다. 티슈 박스에서 티슈를 뽑아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담배 두개를 한꺼번에 문 미정의 입술 주름이 고혹적으로 느껴졌다.
"여전 하네...담배도 못피면서 왜 핀다고 했어..."
담배 두개를 양 손에 들고,
미정은 천정을 향해 연기를 뱉었다.
"너한테 세 보이고 싶어서..."
"넌 담배 없이도 충분히 세. 나 오늘 완전히 저세상 갔다왔어...이 근육봐...너 혹시 약하는 거 아니지? 자연산 아닌거 같은데..."
"보충제는 먹었는데...한번도 약물은 안 써봤어."
"보충제에 있던거 아냐?...이런 모양 나오기 힘든데..."
"성분 표시에는 없었는데..."
"내 피티 트레이너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보충제에 약 섞어넣는 경우 있다고..."
"미국에선 그런가...?"
"그건 모르겠고...하여튼 내 앞에서 세 보이려고 안 해도 돼. 눈물 콧물...뭐냐. 미련하게..."
미정은 두 개비 담배를 살뜰이 다 피웠다.
"이리 와봐. 여기 업드려봐."
나는 미정이 시키는 대로 침대에 업드렸다.
미정은 내 등위에 올라와 앉았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등에 느껴졌다.
미정은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근육이 시원하게 풀렸다.
미정은 척추를 따라 손가락으로 때론 손바닥으로 근육을 문질렀다.
신세계였다.
몸이 부드러워지는게 느껴졌다.
"배웠어...?"
"나 카이로프래틱 석사야. 박사도 할 까 생각 중이야..."
미정은 내 다리 위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까끌한 부분이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미정은 내 요추부위를 손바닥으로 왕복하며 마찰을 일으켰다.
허리가 뜨거워졌다.
미정은 아래로 더 내려가 내게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었다.
내 몸은 완전히 리셋 되었다.
나는 몸을 돌려 내가 새로 태어났음을 미정에게 보여주었다.
미정은 나와 함께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서늘한 골짜기를 지나 언덕을 넘고 푸른 바다 위를 날았다.
우리는 한참의 비행을 마치고,
서로 한발자국 가까이 , 다시 한발 멀리를 반복했다.
더 오래 그 순간을 지속시키고 싶었다.
이윽고 어쩔 수 없이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을때,
나는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미정의 근육도 박자를 맞춰 반응했다.
결승점을 향해 근육들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리드미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주체할 수 없이 빨라졌다.
잠시후 나는 내 몸의 경련을 느끼며 미정위에 쓰러졌다.
땀을 닦을 새도 없었다.
숨을 헐떡거렸다.
미정은 내 등을 토닥여 줬다.
"......"
"......"
나는 내려와 미정의 옆에 누웠다.
우리는 십분동안 말이 없었다.
미정이 내 손을 잡았다.
"그날 화해하러 성용일 찾아 갔는데..."
"성용인 나를 보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때리기 시작했어. 손으로... 발로...내가 쓰러져도 아랑곳 않고 계속 때렸어...이러다 죽겠구나 싶더라. 나는 잘못했다고 빌었지...눈물 콧물 흘리며 처절하게 빌었지...살기 위해서...그리고 그 자리에서, 지저분한 바닥에서 성용인 자기 욕구를 채웠어...자기를 화나게 하지 말라며...나를 지켜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며 소리를 질렀어...나는 성용이의 움직임이 무서웠어. 마침내, 성용인 자기 볼 일을 다보고 그 자리를 떠났어."
"설마...그게 사실이야?"
"성용인 두개...아니 여러개 얼굴을 갖고 있어. 아마 네게 가장 젠틀한 모습을 보여줬을 거야. 나도 너에게 하는 모습을 볼땐 똑같은 성용이 맞나 의심스러웠어."
"무서워진다."
"그게 집안 내력인거 같아. 시아버지도 한번 폭발하면 아무도 못 말렸어. 부서지고 터지고. 최선책은 숨죽이고 그자리에 가만히 있는거야. 시어머니가 내 앞에서 맞는 모습도 여러번 봤어."
나는 모델같이 예쁜 성용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결국 시어머니도 못참고 이혼 하셨어. 지금 여동생하고 같이 사셔..."
"정말...전혀 몰랐네..."
"사실 시어머니의 이혼이 내게 용기를 주었어. 그렇게 끌려다니며 결혼하고 미국가서 애 낳고 힘든 날들을 보냈지.성용은 툭하면 나혼자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했어. 애들 앞에서..."
"왜 그랬을까..."
"자기는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 혼자 편하게 논다는 거야. 아이들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지 성용인 이해 못했어. 새벽에 잠을 한시간 이상 길게 자 본적이 없었어. 연연생을 키우는게, 남편은 손하나 까딱 안하고 티비만 보고, 엄마 혼자 키우는게 얼마난 힘든지 모를거야. 성용에겐 내가 늘 게으른 년이었고, 멍청한 년이었어."
"저런...좀 도와주지..."
"그래도 열심히 일해선지 연봉도 오르고 승진도 하더라...그렇게 여유가 생기니까 또 다른 성용이 나타났어..."
"어떤 모습으로...?
"하루는 애들 데리고 쇼핑센터에 간다고 하다가 차를 집으로 돌린 적이 있어. 반품하기로 한 제습기를 놔두고 왔거든. 근데, 집앞에 못 보던 차가 세워져 있고...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 차 안엔 여자 신발이 있어서 아차 싶었지. 집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이 자식이 안방 침대에서 한창 그 짓을 하고 있는거야. 백인이랑..."
"진짜...많이 놀랐겠구나."
"나는 그 여자를 쳐다 보고 뭐하는 거냐고 외쳤지. 여자가 미안한 표정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욕을 하더라고. 그리곤 자기 옷을 챙겨서 나가 버렸어. 그 새낀 날 또 때리기 시작했어. 애들 보는 앞에서...맞으면서 결심했지...그녀석 은행잔고가 어느정도 쌓이면 이혼하리라고. 나중에 알고보니까 어이 없게도 그 백인여잔 콜걸이었어...하다하다 별짓을 다한다 생각했지. 사실 그게 끝이 아니야...나중엔 흑인도 부르고 한국애도 부르고, 두명씩 부르기도 하고...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지 않나 했어...물론 나랑은 둘째 생긴 이후로 각방을 썼지."
나는 미정의 얘기에 숨이 막혔다.
성용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성용에게 사실 확인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 그렇게 성용이 삼년동안 백만불씩 연봉을 받고나서, 나는 이혼 전문 변호사를 샀어. 나는 미리 사진도 찍어놓고, 다이어리도 기록 하고, 녹음도 해놔서 나와 아이들에 대한 폭력과 학대 증거가 차고 넘쳤지. 심지어 그 자식이 마약한 증거까지 있었거든. 나는 유리한 조건으로 이혼할 수 있었어.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방향을 조금만 틀면 그 녀석은 감옥에서 몇백년을 보낼 수도 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