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14
"가족관계 서류도 법원가서 정리했어. 이젠 법적으로도 싱글이야. 가족중에 전과자가 있으면 영주권 신청하는데 안 좋대서..."
"그랬구나."
"비행기 표는?"
"오후 두시로 예약했어."
"어이구야. 시간 들으니까 실감난다..."
"나 보고싶으면 캐나다로 넘어와..."
"나도 그러고 싶어...근데 여기서 빚도 갚아야 되고...내 인생이 간단하지가 않네..."
"그 빚. 갚아줄 수 있다면, 내가 갚아주고싶다."
"됐네요...말만이라도 고마워."
나는 지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나는 기지개를 폈다가 몸을 돌려 지은을 안았다.
지은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보였다.
지은이가 눈을 감았다.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은이의 촉촉한 입술을
맛봤다.
지은이는 나를 받아주었다.
늘 그랬던 것 처럼.
지은이는 나즈막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 손 끝 지휘에 맞춰 소리의 연주는 아주 오래 이어졌다.
멈추는가 싶다가도 바람이 일면 소리는 되살아 났다.
밀림 숲을 헤치고 그 사잇길을 지날 적 마다, 소리는 석양의 노을 빛 사이로 급하게 퍼져나갔다.
구름이 모습을 바꿀 때 마다 소리는 다른 색깔로 변했다.
이내, 소리는 말발굽보다 더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가쁜 호흡에 얹혔다.
폐포가 터질 듯 부풀어오르길 반복했다.
결승점을 통과하며
지독한 쾌락이 몰려왔다.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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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텐데 미안. 아무때나 전화해줘. 기다릴게]
아침부터 미정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나는 바로 전화했다.
"어제 잘 들어갔어? 데려다 주고 싶었는데..."
"에이...김지은씨한테나 잘해주셔...어제 분위기가...한바탕 할 거 같던데...좋았냐...힘도 좋아...나랑 두번하고 또..."
"아니야...그런거!"
"농담이야...왜 정색을 하고 그래...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네...그나저나...토요일에 시간좀 내라..."
"토요일 저녁?"
"응...누나가 너하고 추억에 잠기고 싶다...강릉 현대호텔 제일 좋은 방 예약했다...갈 수 있지...아니 가야돼...알았어?
"응..알았어..."
"좋아 그럼 그때까지는 이 예쁜 누나 보고싶어도 참아...토요일 너 두시에 끝나지? 내가 픽업할게..."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일요일 두시에 지은이를 배웅해야하는 걸 깨달았다.
또....청첩장...
프레지던트 호텔 6시...
일요일 오전에 돌아오면 가능한 스케줄이다.
하루에 세가지 약속을 한다는 건 내게 아주 드문 일이었다.
서둘러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생겼다.
한주가 흘렀다.
토요일 1 시 50분,
미정은 치과 앞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이상 환자가 없었다.
"나 먼저 갈게요. 주말 잘들 보내세요."
나는 짐을 챙겨 치과를 나왔다.
짧게 경적이 울렸다.
코란도에 앉은 미정이 손을 흔들었다.
썬글라스가 잘 어울렸다.
"아직 이 차 가지고 있었어?"
"아니...렌트했어."
"아...그래 좀 디자인이 바뀐 거 같다."
미정은 십 오년전의 그날처럼 담배를 피우며 운전을 했고,
나는 조수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른게 있다면,
나는 더이상 여자 드라이버에게 흥분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졸고 있었다.
"이쁜 누나가 이렇게 운전하는 데 잠이와! 이젠 설레지도 안나보지...잠을 깨시오...!!"
"미안해...어디 쯤 왔어?"
"문막...우리 휴게소 들어갈까...?"
"그래..."
우리는 휴게소 어묵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넌 운전 안해?"
"했었는데...사고한 번 나고...더이상 못하겠더라...점쟁이가 내가 사십되면 죽을 수 있다고 했어...인제 사년 오년 남았잖아..."
"그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라..."
"이거 맛있네...더 먹을래?"
"그래 하나씩 사와봐...야...근데 너 내 생일이 언젠지 알아?"
나는 미정의 생일을 몰랐다.
"와...날 사랑한다 어쩐다 하면서...생일도 몰라...이 사기꾼..."
"그렇네. 내가 잘못했다...언젠데?"
"바로 오늘이야 임마. 11월 10일. 빼빼로 데이에서 하나 모자란 날. 기억하기도 좋네. 앞으로 잊지마라...야...저기 빵집 있네...케익이랑 뭐좀 사와봐...너 돈 벌어서 김지은 그여자만 챙기지 말고... 나도 좀 챙겨"
"알았어..."
나는 베이커리에 들어가 작고 비싸보이는 케익을 들었다.
고심끝에 미니 샴페인과 쵸콜렛도 골랐다.
미정은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오호...엎드려서 절 받아볼까...불도 붙이고...축하 노래도 불러봐..."
미정은 박수치며 소녀마냥 좋아했다.
나는 케익에 초를 꼽아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미정은 한 숨에 불을 껐다.
나는 케익에 붙은 폭죽을 터뜨렸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우리는 케익을 나눠먹고 작은 샴페인을 나눠 마셨다.
"달달하니 좋네...근데 좀 느끼하지 않냐...여기 떡볶이 파나...저기 있네...오늘의 도우미님 움직이시죠?"
나는 떡볶이를 사 와 테이블에 올렸다.
" 얼마만에 떡볶이냐. 오...맛있어..."
나도 떡볶이를 하나 들어 질겅질겅 씹었다.
미정은 떡볶이 양념국물까지 깨끗이 먹고 초콜렛 박스를 열었다.
" 아오 매워...후...후...물...이거 하나 까봐."
나는 비닐을 벗기고 상자를 열었다.
미정은 초콜렛 하나를 들어 급하게 넣았다.
나는 초콜렛이 있던 빈자리를 바라봤다.
"너도 하나 먹어."
미정은 빠른 손놀림으로 내 입에 초콜렛을 밀어 넣었다.
입안에서 초콜렛이 녹았다.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깨어 있었다.
하지만 말을 하진 않았다.
내일 지은이를 배웅하고 성용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교통편을 바꿔가며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있었다.
미정 역시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끊임없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경포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미정은 심 오년 전 처럼 소리 질렀다.
"야...이 씨발놈들아..."
"야...이 개새끼들아..."
나도 그때처럼 소리를 질렀다.
다행이 가을 바다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갔던 횟집을 찾아 들어갔다.
"오늘은 네가 사는 거다..."
"알았어..."
미정은 그날로 회귀한 듯 내앞의 접시들을 챙기는데 정성을 쏟았다.
틈틈이 소주를 넘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정은 내게 쌈을 싸 먹이고 여러번 볼에 뽀뽀 했다.
내 볼에 쌈장이 남았지만,
나는 닦지 않았다.
결국 미정이 웃으며 닦아주었다.
미정은 매운탕을 정성스럽게 담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 정성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시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따라나오던 미정이 비틀거렸다.
나는 미정을 업어 코란도 조수석에 태웠다.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너 운전 안 한다며...음주운전 할라고?...하하...나 죽기 싫어 이놈아...아 근데...생각하니까 그 점쟁이 괘씸하네...이렇게 멋 진 놈이 왜 죽어...죽기는...그래 운전해라..."
미정은 키를 내 다리 사이에 던졌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호텔 정문을 넘었다.
급한 오르막 길이 이어졌다.
시동이 멈췄다.
"그냥...요기다 주차해."
나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조금 움직인 후 화단 옆에 주차했다.
"인제 나 업고 가..."
나는 미정을 업고 언덕을 올랐다.
힘에 부쳤다.
입구가 보였다.
팔에 경련이 생겼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미정을 내려 놓았다.
숨을 골랐다.
"탱탱하기만 하지 근육이 쓸모가 없구만..."
미정은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고요했다.
"오늘은 내 청바지 벗기고 그리곤 어떡 할 거야?"
"야...쑥스럽게..."
우리는 전망 좋은 방으로 들어갔다.
커튼을 열었을때, 멀리 바다 위에 늘어선 불빛들이 별처럼 보였다.
미정은 침대에 누워 손가락을 까딱까딱 했다.
"나 땀흘렸는데, 좀 씻으면 안될까..."
"안돼...이리와."
나는 미정의 양말을 벗기고, 자켓과 청바지를 벗겼다.
"인제 어떻게 할건데...?"
나는 브레이지어 후크를 풀고, 바로 사랑을 시작했다.
까만 팬티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미정은 과도하리만큼 큰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슬프게 느껴졌다.
슬픈 소리가 잠잠해졌다.
"이제 씻자."
미정은 내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내 몸 구석구석을 씻겨주었다.
누나가 어린 막내동생을 돌보듯.
나는 부끄러워 미정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야 너 포즈 한번 잡아봐."
"무슨 포즈....?"
"보디빌더들 잡는 포즈 있잖아. 근육 갈라지게..."
나는 간단한 몇개 포즈를 보여주았다.
"너 대회 나가도 되겠다...실해...음..좋아..."
미정은 내 엉덩이를 두드리고, 이어 장난과 진지함을 썪어 내 몸에 비눗칠을 했다.
미정은 손 놀림이 빨랐다.
내 몸이 반응했다.
욕실 안에서 미정은 뜨거운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나는 미정의 리드미컬하게 포효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욕실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운을 입고 침실로 돌아와,
미정 옆에서 막내 동생처럼 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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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울렸다.
"고객님. 코란도 차주 맞으시죠? 차를 옮기셔야 하는데, 지금 제가 올라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주차를 엉뚱한 곳에 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고객님 저희가 옮겨드리겠습니다."
"네..."
미정이 안보였다.
욕실은 비어있었다.
미정이 신고 온 신발도 그대로 있었다.
빨간색 에르메스 가방도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