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16 (16/105)



〈 16화 〉16

나는 가을 바다가 가져다 주는 감상적 망상이 원인이라 생각했다.


"한국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포대에 와 보잖아요.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가 삶이 힘들어질  그 기억을 찾아 여기에 오는 거죠. 힐링 받고 가면 좋은데, 우울감을 극복 못하고 몸을 던지는 경우들이 있어요...고인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지금 죽겠다라는 시잖아요."


"지금 시신은 어디 있나요?"

"원주로 옮겨졌을 겁니다."


"또  수 있나요?

"뭐...어려운 건 아닌데...유족이 오면 같이 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사실 특별히 더 조사할 것도 없고, 언니 되시는 분이 부검 허락 했으니 부검하고 사건 종결 될겁니다. 잠시 호텔에 가서 쉬고 계세요.."

"네...감사합니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성용에겐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다.

여섯살이었다.

삼발이 경운기 위에 앉아 있었다.

사촌형들은 경운기 짐칸에 올라가 쌀가마니를 옮기고 있었다.


내가 손으로 무언가 눌렀을 때,

경운기는 비탈길 아래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운기 위에 있던 사촌형들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운기는 빠르게 미끄러지다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멈췄다.

나는 도망갔다.


아궁이에 묻어두었던  익은 고구마들을 챙겨,


들판에 있는 짚더미 안으로 몸을 숨겼다.


짚더미의 보호를 받으며, 떨리던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밤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찾느라 횃불을 켰다.


내 이름이 마을 곳곳에, 산 깊은 곳까지 울렸다.


나는 눈 감고 귀를 막았다.

갑자기 큰아버지의 억센 손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나는 큰아버지의 시뻘건 눈이 무서웠다.

그날밤 큰아버지는 나를 들쳐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말 없이 나를 재우셨다.


그 뒤로도 특별한 언급이 없으셨다.


사촌 형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은 그런식으로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후배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 몸에서 정액 반응이 나왔습니다. 혹시 아시는게 있습니까?"

"실은... 전날 저와 잠자리를 했습니다."

"김미정씨 계좌에서 큰 돈이 인출되었는데, 혹시 아시는게 있나요?"


후배경찰 목소리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가 일종의 게임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

"압수수색 영장 곧 발부됩니다...거짓말 해서 힘 빠지게 마시고...사실 대로 말 해 주십시오."


"네, 전날밤 미정은 제게 5000만원을 현금으로 줬습니다.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사망하기 전날이라고 했습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알았습니다. 쪽지와 함께 써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


"시체에 고인이 폭행 당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폭행 하셨죠?

"그런 일 없습니다. 저는 그런사람 아닙니다...혹시 전날밤 잠자리가 좀 과도해서 생긴 흔적일 순 있습니다."


"폭력적인 섹스를 하셨다..."


"폭력적이진 않았습니다. 그저 거칠게...그날 따라 미정인 거칠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부검 결과를 이기기는 어려울 겁니다.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섹스를 하셨다..."


"그정도는 아니었고 보통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것보다 조금  거친 정도였습니다."


"그렇군요...그건 판사가 판단할 일이고, 지금부터 참고인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전환되셨습니다. 바로 체포되어 유치장에 구금될 것입니다."

"......"


그가 전화를 끊자 마자, 방문 너머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경찰 두명이 들어와 내게 수갑을 채웠다.

그  한명은 내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김미정씨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권리가 있고...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경찰차는 나를 강릉경찰서로 데려갔다.

나는 그 후배 경찰 앞에 앉았다.


그는 내게 커피를 주었다.


수갑을 풀어주었다.

"드세요..."


"......"


"바다에서 밀려온 시체는 보통 불어터져서 부검을 해도 얻을게 별로 없어요. 근데 김미정씨 시신은 바다에 오래있지 않아서 그런지  여러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서로 진빠지게 시간 끌지 마시고...사실대로 말씀하시죠..."


"자백할 게 없습니다.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표시가 익숙지 않게 길었다.


지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 경찰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했다.

"네, 받으세요."

"여보세요..."


"자기야...나 잘 도착했어...별일 없지...펜 있어...?"


"잠깐만...형사님 펜좀 빌려주실  있나요..."

후배경찰은 모나미 볼펜을 건넸다.


"지금 펜 있어..."


"1 캐나다 국가번호 찍고...204...219...5673...내 새 번호야..당분간 한국 전화도 같이 쓰긴 할건데...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여기로 전화해..."

"응 알았어..."


"자기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많이  좋네..."


나는 앞으로 지은이와 통화가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지은아...앞으로 당분간 내가 전화  받을거야..."

"왜 무슨 일 있어? 말해봐...얼른..."

"실은...그 때 우리집에서 만난 김미정이라고 친구가...죽었어..."

"정말...왜...?"


"근데, 지금 내가 살인용의자가 돼서...아마 수사랑 재판이 길어질 거 같아..."


"설마...자긴 잘못 없잖아...그치...어쩌다 그렇게 됐어..."


"......"

"...거기 지금 어디야...?"

"강릉 경찰서..."

"...내가 사람...어...전화 끊긴다..."

전화가 끊겼다.


"두번째 애인인가봐요...? 첫번짼가?"


"......"


"그럼 다시 시작해 봅시다..."

모니터를 쳐다보는 그의 눈이 희번덕 거렸다.

"그날 몇시에 잠들었다고 그랬죠?"

"잘 기억은 안나는데...11시쯤이었을 겁니다."


"그 이후로 아침까지 주욱 잤고, 프론트 전화를 받고 깼다..."

"네. 맞습니다."

"근데...그렇게 잠을  사람이 어떻게 운전을 하셨을까?

"네...?"


"김미정씨가 호텔을 나서자 마자...코란도를 타고 따라갔습니다...그러다 김미정씨를 차에 태우고...차는 호텔을 빠져나가고...김미정씨는 죽고...새벽에 돌아와 차를 화단에 주차하고..아침에 일어나 다시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카메라에 다 찍혔습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영상이 다 있는데. 오리발을 내미시겠다...그러시죠. 그럼 본 게임은 차차 하고...우선 도로교통범 위반으로 구속합니다. 토요일 밤 횟집에서 김미정씨와 소주 6병을 마시고, 김미정씨를 업고 차에 태운후...운전하셨죠?"

"네..."

"현행범이 아니어도...증거가 있으면...사후에도 음주운전 처벌 받는거 아시죠? 그날 횟집 카메라에 술 마시는 모습이 고스란히 있어요. 거기 사장님도 증언했고. 여자를 업고 조수석에 태운후, 남자가 직접 운전해서 현대호텔로 들어갔다."


"맞습니다."

"소주 여섯병이라...세병 마셨다 치면...한 80키로 몸무게 잡고..대충 봐도 0.2퍼센트 이상이네..당연히 면허 취소에다...5년이하 징역...2000만원 벌금..."


"자...그럼 음주운전하고...살인...두 사건 묶어서 갑니다."

"전 살인한적 없습니다."

"알아요...어련하시겠어요...흑곰이랑  판박이로 재수가 없으시네...당신 말한 그대로 적었으니까...읽고 서명해요..."

그는 서류 뭉치를 내 앞에 던졌다.

"증거가 명백해서...당신 진술은 필요도 없어...뭘 알고나...잘난척을 하든지...지네 형이나 똑같아 아주...재수 없는 새끼"


나는 차분히 진술서를 읽어봤다.


틀린 내용은 없었다.


싸인했다.

그리고 나는 유치장에 갇혔다.

새벽 4시쯤 구속영장이 떨어졌고,


나는 강릉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체검사과정이 수치스러웠다.


교도관들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나같아도 억울하겠어요. 참고 이겨냅시다. 재판 이기고 여길 나가시면 치과도 잘 될 겁니다. "

교도관 면담이 끝나고,


나는 사동(재소자들이 머무는 건물)으로 이동했다.


묘한 냄새가 났다.

습기가 느껴졌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구슬픈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임시방에 배정되어 일주일을 지냈다.


그 방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서로를 배려하며

일촉즉발의 순간을 만들지 않았다.


이틀째 되던 날,


"1434 면회"


나는 다른 수감자들 사이에 줄을 서서 접견실로 향했다

"원장님..."

"면목 없습니다...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수치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면회를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실장은 침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지은씨가 치과로 전활 하셨어요.지금 원장님이 강릉 경찰서나 교도소에 있을 거라고. 좋은 변호사께 부탁 했는데  갈거라고, 도움 받으라고 하셨어요."


"네...고맙네요."

"또...치과 통장으로 지난 주말에 오천만원이 입금되었는데...그 예금주가 김미정씨였어요..."

"그전에 김미정씨가 치과에 오셨나요?"

"원장님이 한식당에서 저녁 약속 있다고  날...그 다음날 아마 그분 아닐까 싶어요...썬글라스에 좀 노출 있는 의상으로 어떤 분이 왔다가 치과 명함만 받아가셨어요...."

"네..."

"안에 많이 불편하시죠...?"

"괜찮습니다...실장님이 수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단 치과는 휴업해야겠어요. 재판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다른 직원들은 일단 유급휴가를 드리죠. 실장님도 쉬시고...보건소에 휴업 서류 제출해 주세요"

"네...가는 길에 영치금 좀 넣고 갈게요. 그럼 몸 조심하세요...또 올게요."

"고마워요. 거리도 먼데...일부러 오시진 마세요...고마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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