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
나는 그렇게 면회를 마쳤다.
사방(교도소안 재소자가 거주하는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청소 문제로 시작된 사소한 말다툼이 두 재소자간 주먹 다짐으로 번졌다.
어느 누구도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두사람의 결투는 오분이상 이어졌고, 결국 둘 다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 나갔다.
그들은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글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급소를 공격하면 나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잠들었다.
다음날 또 내 수형번호가 불리었다.
"1434 변호인 접견."
나는 변호인 접견장에 도착해 앉았다.
긴장됐다.
"어이..똥그리..."
누군가 내 어릴적 별명을 불렀다.
여자였다.
신민아를 닮은 그 여자는 버버리 코트를 흩날리며,
자신감 있는 구둣소리를 냈다.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상상 못할 일이 벌어졌다.
여왕님이었다. 김혜인
내 손금을 봐 주었던 그 성숙한 여왕님이,
변호사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어떻게 여길..."
"거참 세상 좁네...설마설마 했는데...똥그리 맞네..."
"나도 많이 놀랐어. 어떻게 된거야..."
여왕님은 코트를 벗어 옆 의자에 걸쳤다.
까만 바지 위로 하얀 블라우스가 성숙하게 봉긋했다.
"김지은주사라고 내가 자원봉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이 국제전활 해서 도와 달라고 눈물로 읍소하더라...내가 또 불쌍한 사람을 못 지나치잖냐..."
"아...그렇구나.."
"세상에나...김지은씨한테 네 이름 듣고 ...또...전에 너 치과의사 되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어서...설마설마 했는데...그 설마의 확률을 뚫고 ...네가 그 주인공이 될줄이야..."
"부끄럽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나는 안 죽였어."
나는 미정과 지난 이야기를 여왕님에게 들려주었다.
여왕님은 22년전 맑은 눈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나는 여왕님의 매력적인 입술과 눈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왕님은 간간히 노트에 기록했다.
"아주 명작소설이구만...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네...알겠어...대충 감이 온다...그래 여기에 싸인해...착수금은 1000만원인데...특별히 너한테는 500만 받을게...돈 있어?"
"응...우리 치과 실장님 전화 번호야... 이 분께 받어..."
"그래...그럼 여기 수임계에 싸인하고..."
나는 싸인했다.
"뭐...너도 알겠지만...변호사는 의뢰인이 잘못을 했더라도 한번 수임받은 이상 같은편이야"
"응...알아..."
"내겐 숨김없이 말해도 돼...나는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고..."
"알았어..."
"으이그, 이 똥그리...내가 그렇게 여자 조심하라고 말 해 줬는데..."
"아직 삼십대잖아..."
"그러시네요...잘났네요...이런 식으로 기가 슬금슬금 빠져 나가는 거야. 결국 사십대에 일이 터지는 거고. 너 손좀 줘봐."
여왕님은 내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었다.
책상 간격이 길어, 여왕님은 허리를 굽혔다.
여왕님의 손은 보드라웠다.
나는 22년 전 처럼,
여왕님의 봉긋한 부분을 쳐다보고 있었다.
블라우스에 가려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22년전 어른 스러운 부위를 상상했다.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런 변태같은 새끼. 뭘 그렇게 쳐다보냐... 22년 전이나 똑같네...그 때도 침 흘리면서 훔쳐보더니...지금도 변한게 없어...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너 지금 여자때문에 여기 앉아 있잖아...헤벌레 정신 못차리다가...너 정말 죽어...그 변태기운이 쌓이고 쌓여서 죽어...이것 봐..손금 하나도 안 변했네..."
"미안..."
"하여튼 오늘은 이만 간다. 우선 구속부터 풀어보자..."
여왕님과의 재회는 그렇게 끝났다.
사방에 돌아왔을때,
나는 새로 들어온 신입 재소자 둘을 만났다.
나는 교도소라는 험한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약육강식.
말로만 듣던 살육이 시작됐다.
새로 들어온 신입 둘은 사방 내 권력을 장악했다.
나머지 여섯을 그들의 노예로 만들었다.
권력은 그들의 물리력과 자금력에서 나왔다.
그 둘은 연합을 형성하고, 반항세력이 생기면 밤마다 진압했다.
반항한 자는 모포속에 갇혀 그 고통을 견뎌야 했다.
소리가 들렸을 것이나, 교도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세번에 걸친 본보기로 질서가 잡혔다.
나는 아무 저항 없이 그 질서 속에 노예로 편입했다.
질서가 잡히자, 그들은 영치금을 풀어 하사품을 내렸다.
이틀간 닭다리, 오징어, 빵 쏘세지 등이 넘쳐났다.
사소한 편지지나 볼펜마저 희사품목에 들어 있었다.
그렇게 질서가 잡혔을 때,
나는 다른 방으로 전방을 가게 되었다.
"어이 신입. 신고 한번 해봐라..."
나는 모포와 내 짐을 든채 소리쳤다.
"네. 안녕하십니까....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어...똥그리..."
"..."
"동작그만...너 똥그리 맞지?"
한국이 작은 나라긴 하지만, 강릉에서 이런 우연을 두번 겪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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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중학교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산의 동쪽에는 부촌 아파트 단지가 늘어섰고,
산의 서쪽에는 판자촌이 알록달록 자리를 잡았다.
우리집은 서쪽 소속이었다.
빈부차이는 아이들의 성향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열명 정도는 쉬는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다음 시간 준비를 하며 시간을 아꼈다.
다른 열명 정도는 종만 땡 치면 욕과 싸움질이었다.
책상과 의자가 날아 다녔다. 몇몇 아이들은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녔다.
서열 정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스포츠처럼 매일 업치락 뒤치락 했다.
실내화를 사용했지만 시멘트 바닥이었던 교실엔 늘 먼지가 자욱했고, 씻지 않는 남자들의 땀내, 꼬린내가 없어지지 않았다.
싸움 좋아하는 친구들은 문맹일 경우가 많았다.
국어시간에 책을 읽게 하면 책을 읽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여자 선생님 수업시간에 쌍욕을 대놓고 하며 수업을 방해했다.
여자 선생님들은 그들을 포기했다.
더욱 적극적인 무리들은 거울을 신발에 붙여 치마 입은 선생님들을 희롱하고 팬티품평을 했다.
하지만 남자 선생님 앞에선 얌전한 새끼강아지 모드로 돌변했다.
물리적인 힘 앞에 태새전환이 빨랐다.
한편, 정말 잘나가는 그룹은 쉬는 시간마다 춤을 췄다.
그들은 대체로 키가 크고 잘생겼다.
많은 소문이 그들을 따라다녔다.
어떤 놈은 대학생 누나와 섹파라 했고,
어떤 놈은 옆 동네 여자 고등학생들과 밤마다 떡을 친다고 했다.
그 진위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특이 종자였다.
서쪽에 살지만, 동쪽 성향이었다.
반편성 고사에서 전교 4등을 했고, 첫 월례고사에서는 전교 1등을 해 운동장 조회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다.
그 후로도 조회시간에 계속 상을 받았다.
서쪽 친구들은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168에 75키로. 중1 치곤 덩치가 컸다.
게다가 반장이었다.
당시엔 공부 잘하는 애들을 건들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선생님들의 편애를 받기때문에, 사건이 터지면 자신들이 공평한 판결을 받지 못하리란 계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체육시간에 줄 안서고 말 안듣는 애들에게 아구창을 날리고 옆차기로 응징하곤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식으로 나와 싸움을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게임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봐준 것일 뿐, 뼈속까지 잔인한 그들은 개싸움에 이골이 난 프로들이었다.
나는 서쪽 그룹애들보다 춤추는 아이들이 편했다.
그래서 그 무리 속으로 점점 들어갔다.
나는 춤을 못 췄다.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춤선생들은 나를 칭찬으로 격려했다.
나는 분위기를 봐서, 춤선생 그룹의 리더에게 진짜 여자랑 해봤냐고 물어봤다.
리더는 웃기만 할 뿐 대화 주제를 급 전환 하곤 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학교는 남자반과 여자반이 분반되었고, 교실도 각각 다른 건물에 있었다.
여자반 옆을 지나갈 때면, 여자 아이들이 창문 밖으로 똥그리 똥그리 외치며 놀리곤 했다.
당시 내 얼굴은 보름달 같이 동그랬다.
내 동그란 얼굴은 급 빨개졌다.
숨도 안 쉬고 뛰어서 그 지역을 벗어 나곤 했다.
어느 학교나 있겠지만, 우리 학교에도 퀸카가 있었다.
김완선이라고, 당시에는 애 어른 할 거 없이 모든 남자를 침흘리게 만드는 섹시 가수중 탑이었다.
바로 그 젊은 시절의 김완선과 붕어빵인 아이가 퀸카였다.
그 아이의 발육상태 또한 김완선을 빼닮아,
그 아이가 지나갈 때면 눈동자 수십개가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학년 상관 없이, 전교생 남자들이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한 목숨 바칠 거 같았다.
하지만, 퀸카답게 소문이 무성했다.
대학생과 사귄다. 그 아이 친오빠가 깡패다. 술집에 나간다.
근거는 없지만 새로운 소문이 매일 업데이트 되었다.
나는 춤선생 아이들과 함께 다녔다.
매점에도 같이 갔다.
점심시간에는 뒷뜰에 모여 춤을 추었다.
사실 나는 춤에 대한 감각이 일도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춤선생, 특히 리더는 나를 살뜰이 챙겼다.
나는 고마웠다.
하루는 춤선생들과 롤러장에 갔다.
당연히 춤선생들은 날아다녔고.
나는 난간이나 땅을 짚고 다녔다.
거기에서 나는 퀸카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