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4
하영이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내 손을 꼭 잡고 씩씩하게 걷는 하영이가 안쓰러웠다.
좋은 아빠가 있었으면 더 행복할 텐데...
내가 부릴 수 있는 오지랖이 아니었다.
학교에 도착해, 하영이의 교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어...네가 여기에...?"
"어...선생님이 어떻게..?
내가 군에서 제대한지 이 주정도 흘렀을 때,
나는 자기 딸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다.
딸이 머리가 좋아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게 말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두 부류였다.
아주 우수하거나 아주 뒤처지거나.
우수한 학생들은 특별히 케어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했다.
이들에겐 주로 수학을 가르쳤다.
보통 연필 한자루 들고 방문해 질문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문제풀이를 해 주고, 질문과 관련된 묘수나 큰 그림을 알려주었다.
우수한 학생들은 유레카를 외치며 내 지식을 잘 흡수했고, 최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수한 학생들의 총명한 사고에 내가 오히려 감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과의 수업은 즐거웠다.
아주 뒤처진 그룹은 부담이 없었다.
워낙 기대가 낮아 이름없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학부모들은 내게 감사를 표했다.
페이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들에겐 전과목을 가르쳤다.
보통은 수포, 영포 그룹이기때문에 주로 암기과목과 언어 영역을 공략했다.
수리는 문제지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제와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만 뽑아 반복 연습시켰다.
영어는 기출 단어만 외우게 했다.
아는 단어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답을 고르게 했다.
감이 안오는 문제는 무조건 3번을 찍게 했다.
이런 전략은 의외로 자주 대박을 터트렸다.
영은이는 미대를 준비하는 고삼 예고생이었다.
부동의 전교 꼴지였다.
시험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찍기 일수였다.
수학은 중학교 과정도 이해하지 못했고, 영어지문은 두줄 이상 읽은 적이 없었다.
어머님은 사실 거의 포기상태였다. 대학에 못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수소문 해 나를 찾았다.
나는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페이를 높게 불렀다.
어머님은 내가 부른 페이의 두배도 괜찮다고 했다.
대학에 가면 성공 보너스를 섭섭치 않게 주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영은이와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잘 해보자. 영은이가 꼭 ㅇㅇ대학에 가면 좋겠다."
"헐. 말이 되요?"
"성공한 케이스 많아. 나만 믿고 따라와."
" 넹.넹.넹."
초면에도 말장난을 하는 영은이는 늘 쾌활했다.
하지만 예쁜 외모에 말장난은 금세 용서 되었다.
영은이는 지금의 블랙핑크 지수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어머니 역시 내가 두근 거릴 만큼 미인이었다.
첫날부터 바로 수업을 하고싶어졌다.
영은이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는 입시 요강을 함께 분석했다.
수리의 비중이 적고 언어, 영어, 암기 과목의 비중이 높았다.
그 자리에서 영은이에게 공부할 전략을 세워 보라고 했다.
의외로 영은이는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은이와의 공부는 그당시 내 삶의 최우선순위가 되었다.
원래 약속은 주 삼회 수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빠른 성과를 내고 싶었다.
점점 주 사일, 주 오일로 늘어났다.
다른 과외수업이 없을 때는 항상 영은이에게로 향했다.
영은이는 성실했다. 가르치는 재미가 생겼다.
미술전공을 살려 영어단어 숙제를 냈다. 영은이는 하루 20개씩 단어를 이용해 그림 스토리북을 만들었다.
매번 수업전에 받아쓰기를 했다. 20개씩 완벽하게 맞췄다.
그렇게 영은이는 두달 만에 기출단어 1200개를 완벽히 외웠다.
그 후로는 모의고사 영어 문제를 풀었다.
아는 단어만 찾아 내용을 상상하고 답을 찍게 했다.
처음엔 반 정도 정답을 맞췄다.
두달이 지나자 70퍼센트 정답이 나왔다.
영은이 스스로 놀랐다. 계속 처음 본 단어는 스스로 정리해서 그림책을 만들었다.
두달이 더 지났을 땐 정답률이 90퍼센트에 가까워졌다.
듣기평가도 거의 다 맞기 시작했다.
나는 영은이가 언어감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독해와 문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언어영역은 특별히 가르칠게 없었다.
문법, 맞춤법, 언어학적 지식만 추려서 정리해 주었다. 일주일에 1회분 모의고사만 풀게 했다.
암기과목을 위해서는 많은 힘을 쏟아 부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 이름 전부와 중요한 삼국시대의 왕 이름을 우선 외우게 했다.
왕 이름은 역사의 종적 흐름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고 정치 문화 경제 사회적 사건의 횡적 비교를 쉽게 해준다.
영은이는 정말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다만 자율적으로 공부하기 힘들어했다.
노래를 만들어 왕이름을 같이 외웠다.
태혜정광 경성목현 덕정문순 선헌숙예 열선숙혜목정 공우창양 따라해봐.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연숙경영 정순헌철고순 따라해봐. 영은이는 이십분만에 왕 이름을 외웠다.
나는 영은이와 공부하는게 행복했다.
열번으로 나누어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정치 경제 사회 문화사 별로 역사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간 중간 왕 이름외우기를 되새김했다.
기억에 남기기 위해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영은이가 그림으로 정리하게 했다.
영은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나는 사랑 비슷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은이가 기특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교과서 이미지 스캐닝을 시켰다.
반복해서 읽은후 몇 페이지 무슨 단어 무슨 그림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기억하게 했다.
사월이 되어 국사준비는 완벽해졌다.
영은이는 언어감각이 뛰어나서, 윤리과목을 특별히 가르칠게 없었다.
시중에 나온 정리본 두페이지를 외우게 하고 문제를 풀게 했다.
이것 역시 사월이 되어 준비가 완벽해졌다.
영은이가 중간 고사를 볼때 나는 함께 밤을 세웠다.
옆에서 내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아침에 영은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수학이나 과학 과목 선생님들은 문제를 대놓고 찍어주었다고 했다.
나는 그 문제들의 정답을 교과서와 문제집을 찾아 확인하고 영은이에게 완벽히 암기 시켰다.
영은이는 중간 고사에서 믿지못할 결과를 내고 내게 전화했다.
반 일등이었다. 대부분 과목이 97점이었다.
영은이는 틀린 한두문제들 마저 억울해 했다.
영은이는 변해있었다.
나는 눈물나게 기뻤다.
어머님은 내게 특별 보너스를 주시며 몇번이나 나를 안아주셨다.
어머님의 가슴팍 향기가 좋았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지나갔다.
나는 영은이가 한번 오른 궤도를 그대로 유지하게 노력했다.
한번 성취감을 맛봤으므로 좀더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은이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그당시 내 모든 신경은 영은이에게 집중되었다.
영은이는 매일 화실에서 수업이 있었다. 어떤 날은 일곱시, 어떤날은 열시에 집에 왔다.
피곤을 두르고 교복을 입은채로 나와 수업을 했다. 안쓰러웠다.
영은이는 눈을 뜨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점점 내품에서 조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꼭 십분씩 영은이를 안고 물끄러미 하얀 양말과 매끈한 다리를 바라봤다.
영은이의 입술을 쳐다봤다.
하지만 미성년자였다.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하루는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해 영은이를 기다렸다.
영은이는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큰일 났다고 했다.
자기 수업 못할 거 같다며, 독서 감상문을 내일까지 내야한다고 했다.
내신에 들어간다고 했다. 내신까지 챙기는 영은이가 기특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열두시까지 수업 했다.
이후 영은이는 내 옆에서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나는 그 감상문 쓸 책을 속독으로 읽었다.
나는 고등학생 수준에 맞는 단어들만으로 감상문을 썼다.
뻔하게 나올만한 감상평을 두줄로 요약하고, 독특한 관점을 개발해 설득력 있게 서술했다.
영은이에게 건넸다.
"오오...글좀 쓰시네요. 선생님 짱! 고마워요."
나는 영은이가 내 글솜씨를 인정해 주어 행복했다.
영은이가 편히 잠을 잘 수 있어 더 행복했다.
오월엔 영은이의 생일이 있었다.
필요한거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내가 행복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럼....아그리빠 하나 사주세요. 연습하게."
영은이 생일엔 폭우가 내렸다.
석고상과 꽃다발을 보호하기위해 애썼다.
나는 완전히 생쥐 몰골로 영은이에게 선물을 줬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영은이가 크게 웃었다.
"선생님 나 좋아해요?"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이상스레 눈물이 나왔다.
몸이 안 좋다는 핑게를 댔다.
그날 수업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안했다.
그간 내가 영은이를 위해 애쓰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영은이가 예쁜게 웃는 얼굴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나는 영은이를 좋아해도 될까 고민했다.
두려웠다. 안 될거 같았다.
영은이가 날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다음 수업부턴 내 마음을 들키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센척하기로 했다.
다음 수업은 토요일 한시로 잡혔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