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25 (25/105)



〈 25화 〉25

전화를 했다. 현관문에 귀를 댔다. 집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아이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티비에서 나는 소리인지 확실치 않았다.

현관문에 내 귀를 더 밀착했다. 신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티비나 비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실제 소린지는 헷갈렸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나쁜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다시 귀를 붙였다. 영은이 소리 같았다. 신음 소리였다.

나는 아파트를 내려와 화단 경계석에 걸터 앉았다.

아닐거라생각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상상을 막을 수 없었다.

전화를 다시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음을 알렸다.

심한 갈증이 밀려왔다. 단지 내에 있는 수퍼로 내려와 음료수를 마셨다.

갈증이 더 생겼다. 물을 마셨다. 여전히 갈증이 남았다.

다시 물병을 두개 사들고 영은이 집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내 자신이 추해보이고 미웠다. 포기하고 집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화단을 지날  생각이 바뀌었다.


오로지 내 상상이라고 믿고 싶었다.

다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교복입은 남학생이 나왔다. 187정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 했다. 꽃미남에 가까웠다.


토요일에 왜 교복을 입고 있나 싶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했다. 영은이 교복과 비슷한 패턴의 직물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뒤를 따라 갔다. 그 친구는 전화를 했다.

"날씨 좆나 좋다. 이런날은 진짜 뱃놀이를 해야하는데...깔따구 배위에서 뱃놀이를 했네. 무식한 새끼 유머도 모르냐.  진짜 행사가기 싫다. 나도 미술 쪽으로 전과 하까? 뭐, 지랄? 알았어. 끊어 씨발 놈아."


그 친구는 전화를 끊고 담배를 물었다.

나는영은이에게 뛰어올라갔다.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영은이가 나왔다.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희미하게 담배냄새가 났다.

선생님 미안해요. 급한일이 있어서...방금들어왔어요."


"괜찮아."

나는 조용히 영은이 방으로 갔다. 빨간넥타이가 침대 구석에 반쯤 보였다.  침대에서 했구나. 담배 냄새가 더 진하게 났다.

"내가 다음 약속이 있어서, 지금 가봐야 할  같아. 다음 수업은 전화로 알려줄게."

"네, 죄송해요."

나는 영은이 집에서 나온 후 삼일간 연락하지 않았다.


그 배신감을 머리에서 씻어내지 않고는 영은이와 수업할 수 없었다.


삼일  되는  영은이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나는 받지 않았다. 통화 거부 버튼을 눌렀다.

저녁 늦게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우리 영은이 때문에 너무 무리하신거 같아요. 푹 쉬시고 얼른 건강해 지셔서 우리 영은이 잘 좀 봐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게 귀찮아졌다. 침대에 누웠다.



어둠 속으로 몸이 내려앉았다. 점점 아래로 추락해 갔다. 나는 오른 손에 딘씨저를 들고 있었다. 영은이의 원피스를 오렸다. 심장부위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영은이는 떨고 있었다. 그 남자 아이는 알몸으로  팔이 묶였다. 무릎을 꿇고 내게 목숨을 구걸했다.



- 나는 내 심장을 주었는데, 너는 내게 무얼  수있지. 네 심장을 가져야겠어. 나만 위해 뛰는 너의 심장을 가져야 겠어. 걱정하지마. 저 더러운 새끼의 심장을 대신 넣어줄게. 나 믿지...그렇지... 걱정하지마.  경험이 많아. 난 존경받는 전문가야....

나는 딘씨저를 수술상에 내려놓고, 블레이드 홀더를 들었다. 10번 블레이드를 골라 홀더에 끼웠다. 영은이의 심장부위로 블레이드를 가져갔다. 그때, 수술하기 전에 능욕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레이드를 수술 상에 내려놨다.


나는 수술기구로  둘을 벌했다.



눈을 떴다. 새벽 다섯시였다. 나는 축축하게 더러워진 팬티를 벗고 샤워를 했다. 멍하게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잠이 오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걸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내가 영은이네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눈을 떴다. 새벽 다섯시였다.


나는 샤워를 했다. 멍하게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와 걸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내가 영은이네 아파트 단지에 와 있었다.

나는 영은이네 아파트 화단을 바라보며 멀찌기 앉았다.

주변에 덩굴이져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날이 밝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 영은이를 볼수 있을까 기대했다.

영은이가, 영은이가 내려왔다.

천천히  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가여웠다.


폭이 좁은 빨간색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여학생 교복에 남자 넥타이라니. 그동안 나는 영은이가 넥타이를  걸 본 기억이 없었다.


 때,  더러운 놈이 영은이 아파트 입구에서 나왔다.

머리가 띵 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데, 그 놈도 빨간 넥타이를 했다. 영은이것보다 폭이 넓은 것이었다.

그놈은 성큼성큼  걸음으로 영은이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다 두발자국 쯤 앞섰을 때, 그놈은 영은이에게 허리를 구십도 숙여 인사했다.

울리는 목소리로 인사하는 자세가 학군단 삼학년들을 떠올리게 했다. 선배 앞에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영은이는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 않았다. 귀찮은  손으로 꺼지라는 시늉을 했다.


그놈은 다시 쟨걸음을 걸어 영은이를 앞질렀다. 뛰어서 멀리 사라졌다.

그 때, 놀랍게도, 영은이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큰 한숨으로 담배 연기를 뿜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쳐다봤다. 참견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는 느낌이 들었다.

영은이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미웠다. 나를 벌하고 싶어졌다.

영은이 어머님께 전화했다.


"아침일찍 죄송합니다."


"아, 선생님이세요? 선생님 몸은 괜찮으세요?"

"네. 잠시 뵐  있을까요. 지금 아파트 아래에 있어요."

"네, 올라오세요."


어머님은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두른 앞치마에 커다란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무늬 앞치마.


상냥하게 인사하는 어머님을 보며, 나는 어이없게도 일본 비디오를 떠올렸다.

"아침은 드셨어요? 제가 차려드릴께요."

"......"


"아직 얼굴이 안 좋아 보이세요."


나는 말 없이 어머님을 쳐다봤다.


어머님은 영은이 언니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었다.


얼굴엔 연륜 대신 풋풋한 새댁 내음이 풍기는  했다.


눈가에 주름은 없었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앞치마의 봉긋한 가슴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럼 좀 주시겠어요."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머님은 반찬을 탁자에 올리고 국을 떴다.

된장 냄새가 퍼졌다.


밥을 담아주는 손이 하얗고 길었다. 손마디마저 매력적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밥을 입안에 넣었다. 국 위에 내 눈물이 떨어져 잔물결을 일으켰다.


서러움 같은 것이 밀려왔다. 인생을 편하게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머님이 티슈박스를 가져다 줬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아니에요. 고맙습니다."


"사는게 다 그래요. 평탄하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에요? 저번 토요일에 우리 영은이가 좀 늦어서 많이 화나셨어요? 죄송해요. 그날부터 우리 영은이하고  장례식장에 있었어요. 삼촌 장례식장에. 진짜 삼촌은 아니고, 애기 아빠의 의형제 삼촌. 아주 오랬동안 우리를 보살폈죠. 우리 영은이도 애기때부터 따른 삼촌이에요. 어쩌면 애기아빠보다  삼촌을  좋아했을 거에요."


그러고 보니, 나는 영은이 아빠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아빠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날 토요일날 아침에 갑자기 연락을 받았어요. 우리 영은이가 참 많이 울었죠. 저도 많이 울었고요. 영은이는 삼촌 옆에 있겠다고 학교도 하루 안 갔어요. 화장터에서 돌아온 후에야 밥을 조금 먹었어요. 나나 우리 영은이나 많이 힘들었어요. 사실은 아직도  그래요. 인생이  소용없는 거 같고. 그래도  와중에 선생님 하고 수업약속 있다고 집에 잠깐 왔는데, 수업을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께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다시 한번 죄송해요. 어머님이 고개를 숙였다.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일어나 식탁을 건너갔다.


앉아있는 어머님을 안았다.


여자란 울 때 묘하게 끄는 매력이 있다.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힘내세요."

어머님은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가여웠다.


나는 티슈박스에서 티슈 한장을 뽑아 눈물을 닦아줬다.

어머님의 손을 잡았다. 어머님도 내 손을 꼭쥐었다.


따뜻했다.


나는 우는 여자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말도 안되는 선을 넘었다.


설마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있을  싶었다.

.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것이


서로의 몸을 위로하게 되었고,


이내 서로 짐승처럼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절정이 지나간 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천천히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영은이가 선생님을 많이 존경해요. 그렇게 변한 모습 보면 내딸이 맞나 싶어요."


그녀가  옆에 누워 입을 열었다.


"내 딸이지만, 나도 어쩔 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어요. 그게 다 나때문이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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