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
"애기아빠에게 강제로 당한 후에 열 입곱살에 애기를 낳았어요. 애가 애를 나았으니 어련했겠어요."
"열일곱이면...고등학생 때..."
"내 맞아요...애기 아빤 사실 지금 감옥에 있어요. 사람을 많이 죽였어요. 애기 아빠랑 살며 평생을 불안에 떨었어요. 애기 아빤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생활했어요."
"그럼 어떻게 먹고 사셨어요...?"
"동생들이라는 분들이 대신 와서 도와줬어요. 눈치 채셨겠지만, 애기 아빤 떳떳한 일을 한게 아니에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 내게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 도 없어요. 일년에 한번 얼굴을 볼까 말까 했죠. 기대를 안하는게 나았어요. 그러다 동생들한테 들었죠. 애기 아빠가 감옥에 갔다고.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면회를 못 오게 했어요. 언제 나올지도 기약이 없죠. 지금도 동생분들이 가끔 와서 생활비를 주고 가세요. 넉넉한 만큼 주니 생활엔 지장이 없어요."
"아...혹시...조직에서...?"
"맞아요..돌아가신 삼촌도 그 중 한분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당하셨어요."
나는 식은 땀이 흘렀다.
내가 오늘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이나 애기 아빠나 그런 인생을 사는 거죠. 어느날 갑자기 죽을 수 있는 인생. 옆에서 그런 인생을 지켜보는 것도 질렸어요."
나는 내가 잘못하면 목숨을 잃겠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어머님은 큰 한숨을 쉬고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내 가슴을 더듬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선생님 우리 영은이 좋아해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봤다.
그녀가 내 가슴을 손톱으로 간지럽혔다.
하지만 내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뻐해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영은이가 좀 아프기도 했고, 사고도 있고 해서 학교를 두번 쉬었어요."
"......"
"고삼이라고 하지만 스물하나에요. 그래도 제가 보기엔 너무 철이 없어요."
"그런줄 몰랐습니다. 제가 보기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영은인 속이 깊어요."
"그렇게 말씀 하시니 고마워요. 선생님 오시고 나서, 나도 그렇고 우리 영은이도 그렇고 선생님을 많이 의지했어요. 선생님은 참 맑은 분이에요."
나는 맑다는 말에 불편함을 느꼈다.
"우리 영은이가 웃기 시작했고, 선생님이 싫어하신다고 담배도 끊었어요. 그러다가 요 삼사일 동안 다시 줄담배네요. 뭐 성인인데 제가 뭐라 말 할 수도 없어요."
조폭 두목의 아내를 범했다는 두려움이 점점 사라졌다.
오히려 탄력 넘치는 삼십대의 여체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이 꼭 10분씩 안아준다고 자랑했어요. 언젠간 키스도 할거라고. 우리 영은이와 난 서로 비밀이 없어요. 근데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기분이 어땠는지 아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몸을 돌렸다.
내 귀에 속삭였다.
"약간 질투가 났어요. 나도 선생님께 안기고 싶었어요."
그녀는 내게 키스를 시작했다.
우리는 또다른 비밀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잖아요."
나는 흥분감이 몰려왔다.
높은 파도를 넘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한다고 했다.
"영은이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비밀로 할게요."
그날 이후 나는 영은이를 가르쳤다.
열정을 되찾았다.
영은이도 열심히 따라주었다.
중간에 몇번의 사건과 사고가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며 슬기롭게 넘겼다.
결국 영은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미술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영은이와 사랑을 시작할 줄 알았다.
영은이가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봄,
나는 그날밤 친구들과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지금 빨리 우리 집에 와주세요. 빨리요."
나는 생일축하 자리를 마무리하고 바로 택시를 탔다.
다급한 영은이 목소리가 걱정됐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갔다.
현관문에 귀를 대 보았다.
고요했다.
벨을 눌렀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컴컴한 곳에서 영은이가 나를 맞이 했다.
영은이가 울면서 나를 안았다.
"무슨 일이야 영은아..."
"선생님..."
"왜...?"
"서프라이즈~~~"
어머니가 방에서 촛불 붙인 케익을 들고 나오셨다.
"생일 축하 합니다~~사랑하는 선생님 생일 축하합니다.~~"
영은이와 어머니는 폭죽을 터뜨렸다.
나는 케익 위의 촛불을 한숨에 껐다.
"소원 빌었어요? 영은이랑 꽁양꽁양 하라고?"
영은이는 나와 연인이 되는 것을 기정 사실화 했다.
"응...빌었어"
방안에 불이 켜졌다.
식탁에는 음식이 잘 차려져 있었다.
나는 식탁에 영은이와 나란히 앉았다.
어머니도 맞은편에 앉아 미역국을 떠 주셨다.
행복했다.
미역국에 눈물이 떨어졌다.
"선생님 이 좋은 날 왜 눈물을 떨구실까..."
나는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식사했다.
"와인도 한잔 하세요."
어머니가 와인잔과 와인을 가져왔다.
"짠...선생님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는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와인이 비싼거 같네요...단맛이 적고 쌉싸름한 것이...프랑스 보졸레 누보 아닌가요...?"
"보졸레 누보 아니죠..지금은 시즌이 아니죠...5000원짜리 와인 맞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면 다 그럴싸하게 들려서 깜박 속겠어요..."
어머니는 5000원짜리 와인을 한병 더 가져왔다,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게 취해갔다.
"요새 영은이가 자주 술에 취해서 늦게 오고 그래요"
"아무래도 신입생 신학기니까...모임이 많겠죠..."
"그래서 남자친구는 생겼어...?
"나 선생님하고 사귄다니까요..."
"하하하"
"선생님 아직 여자친구 없으시죠?
"네...아마...영은이가 되지 않을까..."
"봐...맞잖아...엄마 선생님이 나 좋아한다고 했어..."
"나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그때 내 생일에 비에 젖은 생쥐꼴로 꽃이랑 아그리빠 들고 와서 그랬잖아요..."
"내가 그랬나...?"
"치...자기가 말해 놓고 기억도 못해..."
"선생님 맥주 좀 더 하실래요?"
"괜찮습니다..."
"제가 수퍼에 내려가서 사올게요..."
"아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이구...손님인데...앉아계세요..."
어머니는 옷과 지갑을 챙겨 바로 현관문을 나갔다.
"......"
"......"
"선생님 눈 감아 봐요..."
"왜...?"
"글쎄 눈 감아봐요..."
나는 눈을 감았다.
내게 다가오는 영은이의 기운이 느껴졌다.
내 입술에 영은이의 입술이 부딪쳤다.
"선생님 이리와 봐요..."
영은이는 자기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를 밀어 침대위로 쓰러지게 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침대에서 튕겨져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갔다.
"다녀 오셨어요?
어머니는 두손에 맥주팩 두개를 들고 있었다.
"많이 사오셨네요..."
"네...세일을 하더라구요..."
어머니는 영은이 방쪽을 바라봤다.
집안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영은이가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나는 맥주 캔을 받아들고 냉장고 옆에 내려 놓았다.
어머니는 맥주 잔 세개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냉장고 제빙기에서 얼음을 받아 식탁에 올렸다.
"언더락으로 드셔보세요...생각보다 괜찮아요.."
어머니는 내 잔에 얼음을 떨어뜨렸다.
나는 맥주 캔 세개를 식탁에 올리고 나머지를 냉장고 안에 넣었다.
식탁으로 돌아와 얼음이 담긴 맥주를 마셨다.
"정말 시원하고 좋네요...이걸 몰랐네..."
어머니도 언더락으로 맥주를 마셨다.
영은이는 미지근한 맥주를 마셧다.
"학교 생활 어때?"
"뭐 생각했던 거보다 딱히 재밌진 않아요?"
"친구들은..."
"개 싸이코 같은 애들이 많아서...아직 관망중."
"난 돌아보면, 재수를 해서 그런지...신학기에 맨날 술마시고 출석도 잘 안하고 그랬어...재수 분풀이로..."
"진짜요...? 안 믿겨져..."
"뭐 오래 그런건 아니고 잠깐 한달...."
"그 다음엔 안그랬어요?"
"응...뭐 노는 것도 별로 재미없고...그래도 엠티는 잘 따라 다녔네..."
"난...벌써 노는 것도 그렇고...선생님 나 교직과목 듣고 선생님 될까봐요..."
"교직이라...그거 괜찮겠다."
"과에서 두명정도 할 수 있대요..."
"경쟁이 치열하네..."
"그러긴 한데...어떻게 생각해요...?나 할 수 있겠죠...?"
"그럼 난 영은일 믿어...선생님이 될 영은일 위하여...한잔 합시다~"
그렇게 우리는 어머니가 사온 맥주를 다 마셨다.
"이제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생일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걷다가 미끄러졌다.
얼음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녹은 것을 미쳐 몰랐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네...발목이 좀 아프긴 한데...괜찮습니다."
어머니는 내 발목을 어루만졌다.
"괜찮으세요...? 병원에 안 가봐도 되시겠어요? 얼음이 떨어진 줄 도 모르고...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병원갈 정도는 아닌거 같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조금 있다가 가세요...아님 주무시고 가시든가...저기 침대방 빈방 있어요..."
어머니는 얼음을 비닐에 받아 아이스 팩을 만들었다.
수건으로 내 발목에 묶어주었다.
"고맙습니다...좀 괜찮은 거 같아요..."
나는 걸어보려 했지만 발목의 통증이 심했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빈방으로 옮겼다.
"고집부리지 마시고, 주무시고 가세요..."
"네...그럼"
나는 영은이를 바라봤다.
"그러세요 선생님...급한 일 없으시면..."
"그럼...그렇게 하겠습니다...죄송합니다."
"여기 칫솔 이거 쓰세요."
어머니가 새 칫솔을 건넸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 나왔다.
어머니 혼자 식탁을 치우고 계셨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방에 들어가 쉬세요..."
"네..."
나는 방에 들어와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 갔다.
피곤이 몰려왔다.
금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