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
"어릴때 부터 내 자신감을 키워주고, 나를 보호해줘서 고마워."
"뭐. 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어른이 되가지고 내 욕정만 채우고. 미안해. 상처로 남았었다면 사과할게."
"아니야. 상처 아니야. 누가 그런 경험을 해보겠어. 난 좋았어. 지금 자기 옆에 있는 것도 좋고."
"나도..."
그녀는 내게 키스 했다.
나도 눈을 감고 그녀의 혀를 감싸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탐닉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근데 자기야...자기 핸드폰 애플폰 쓰지."
"응."
"애플폰 하면 누가 떠올라?"
"스티브 잡스?"
"그래...스티브 잡스...자기 그거 알아? 잡스가 입양되어 양부모한테 컸다는 거?"
"들어본거 같아."
"원래 생부하고 생모가 대학생인가 대학원생인가 그랬대."
"그랬구나."
"도저히 학업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서 입양시켰대."
"많이 울었겠네."
"양부모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헌신적으로 잡스를 키웠대. 입양할 때 딱 한가지 조건이 잡스를 대학에 보낸다는 약속이었다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친부모가 대학원생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나중에 잡스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된 다음에 친부모를 만났게 안 만났게?"
"글쎄 만나지 않았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친모는 몇번 만났는데, 친부는 한번도 안 만났대."
"그래? 슬프다."
"그렇지. 친부는 사실 나중에 꽤 부자가 되었어...카지노 관련 사업을 해서. 그래도 잡스에게 연락을 하면 혹시 돈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참고 참았대."
"그렇구나. 그래도 아버지로서의 어떤 끌림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몇번을 망설이다 잡스에게 메일을 보냈대."
"그래서 잡스가 답장을 했어?"
"아니...자기 아버지는 양아버지 한분뿐이라고 하며 답장을 죽을 때 까지 안 했대."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건. 잡스가 췌장암으로 일찍 죽었잖아."
"응 들었어."
"그 친부는 살아있고."
"부모가 자식보다 오래 사는 건 비극이야."
"그렇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마음은 어땠을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생부와 단절한 잡스가 참 독하긴해."
"왜 그랬을까?"
"잡스만 알겠지. 나름 부자가 된 아버지가 금전적 요구를 할 것도 아닌데. 그냥 또다른 아버질 받아들인 다는 게 불편했을 수도 있고. 잡스 성격이 한번 아닌건 죽어도 아니었잖아. 그래도 엄마한텐 끌리는 게 있었나봐..."
"그래 엄마와 아빠는 다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성용이도 아빠는 안 찾아. 나만 찾지. 불편한가봐 서로."
"음. 그래서 하는 말인데...정말 놀라지 말고 들어"
"뭐?"
"실은 하찬이 내 아들이야."
"뭐라고?"
"내가 생부야."
"장난하지 말고...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말해봐. 네가 생부라니. 우리 성용인?"
"설명하자면 긴대...미정이가 미국 가기 바로 직전에 부대로 나를 찾아왔어."
"그래서?"
"그때 애기가 생긴거 같아."
그녀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돼."
"미정이가 내게 편지를 남겼어."
"저번에 하찬이를 봤는데, 나하고 많이 닮았다고 느꼈어."
그녀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맞네..."
"......"
"그럼 우리 성용인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스티브 잡스 얘기 했잖아. 나도 스티브잡스 생부랑 같아. 그냥 내 자리 지키고 아무런 말 도 안할거야. 하찬이가 혼란스러워 하는 거 싫어. 하찬이가 받는 유산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고."
"......"
"그게 내가 할 일인거 같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방법이고."
"......"
"하찬이가 벌써 11살인데 스스로 알아서 잘 살길 바래. 물론 후원자가 될 순 있어. 같이 놀자면 놀 수도 있고."
"......"
"근데 하찬이에겐 나보다 먼저 성용이가 있고, 자기도 있잖아."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인생을 더 오래 산 그녀는 지혜롭게 대처했다.
하찬이의 정신적 안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럼 뭐야. 내 손자의 아빠가 너고 , 너는 내 연인이고...내 팔자 참...막장드라마네...하하하"
"우리는 막장 드라마 주인공이고..."
그녀는 나를 안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모닝 키스를 하고,
룸서비스로 아침을 먹었다.
그녀는 다시 사장님이 되어 티파니로 출근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지 않았다.
하찬이에 대한 결단을 내려,
마음이 가벼웠다.
아침에 혜인이에게 전화가 왔다.
"그 미국변호사하고 통화했는데, 우리가 미국에 한번 갔다 와야겠다."
"직접 봐야 한데?"
"응. 그게 관행인가봐. 미국애들 관행 정말 좋아하거든."
"그래. 그럼 스케줄 잡아봐. 나는 당분간 정리될 때까지 치과 휴업하려고."
"그리고, 형사보상금은 내가 신청했으니까 기다리면 네 은행계좌로 들어갈 거야."
"고마워. 수고했어."
"그리고, 그 5년전 화재보험건은 일단 조용히 있는게 나을거 같아...벌써 보험금이 지급되었는데...만약 수익자인 언니가 불을 지른 거라면 보험사기잖아. 시효가 10년이니까 조용히 기다리는 게 나을 거 같아."
"나는 그쪽은 잘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잘 해결해줘."
"아...하찬인 어떡할거야. 알아보니까 그 언니하고 김미정씨 앞으로 건물이 있어. 그 화재난 교회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었는데 아마 못해도 60억원은 된다고 그러던데...그게 그 언니 50 하찬이 25 하은이 25의 지분으로 될거야..."
"하찬인...억지로 친권을 갖고싶진 않아. 현재 보호자가 후견인을 해도 나는 반대 안할래."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그럼 그 후견인 정하는 거 내가 맡아서 할게. 그 할머니 소개시켜줘"
나는 혜인이 입에서 나오는 할머니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들렸다.
57세밖에 되지 않은 그녀였다.
"알았어."
"그리고, 아마 일주일 안으로 51억원 생명보험금이 네 계좌로 들어갈거야. 세금 제하면 좀 적어지겠지만. 내가 일한 거는 나중에 정산한다."
"알았어 고마워."
"내가 무슨일 있으면 또 연락할게."
"알았어."
나는 혼자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치과에 나갔다.
어두운 치과에 불을 켰다.
내 손길을 기다리는 기구들에 먼지가 쌓였다.
나는 원장실에 들어가,
눈을 감고 지난 한달 동안 벌어진 일들을 회상했다.
그때 혜인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야...큰일 났어."
"장성용이 검찰청사에서 뛰어내렸어."
"뭐?"
"살아 있어?"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모르겠어."
"미친놈. 왜 뛰어내려."
"아마, 너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할거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옷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찾았다.
그때, 또 혜인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일이 복잡해진다."
"왜?"
"그 언니도 자살했어. 교도소에서 동맥을 그었대."
"주변에 사람 있었을 거 아냐."
"자세한 건 모르겠어. 지금 병원으로 옮겼는데... 살기 어려울거 같대."
큰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그 파도를 맞으며 휩쓸려 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저녁에 다시 혜인이의 전화가 왔다.
"둘다 사망 확정이야."
"저런."
"장례식장에 갈꺼지?"
"그래야겠지."
나는 티파니 사장님께 연락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티파니에 연락했다.
여동생이 받았다.
"사장님 연락이 안되서 전화했습니다. ㅇㅇ치과입니다."
사장님의 여동생은 초등학생때의 나를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 아는 지는 확실치 않았다.
내가 사장님의 머리를 붙잡고 절정에 이르는 순간,
동생에게 몇번 들킨 적이 있었다.
그때 동생분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사장님이 쓰러지셨어. 성용이가 잘 못 되었다고."
"어디에 계세요?"
"잠실 ㅇㅇ병원 502호"
"네. 고맙습니다."
나는 바로 택시를 타고 잠실로 갔다.
502호 앞에 섰다.
명찰에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링거를 꼽은 채 잠든 그녀가 보였다.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왔어?"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의 얼굴이 많이 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잡았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울음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조용해 졌을 때 내가 입을 열었다.
"나도 많이 슬퍼. 하지만 자기가 아프면 난 더 슬플거야."
"......"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손을 잡고 기다렸다.
다시 잠잠해졌다.
"장례식은?"
"성용 아빠랑 삼촌이 이 밑에 장례식장에..."
"그렇구나..."
"내가 남자 복이 없어..."
"너무 그런 소리 하지마...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나 있잖아."
"알았어...나...힘들다...혼자 좀 쉴게."
그녀는 돌아 누웠다.
"나 장례식장에 가 있을게. 꼭 밥 챙겨 먹어. 이따가 와서 확인 할거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엔 성용의 사진이 있었다.
두번 절하고 향을 피웠다.
성용이 아버지와 삼촌에게 절을 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아니야. 나도 그간 못난 성용이 얘기 들었어. 네가 고생 했다면서...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 가서 식사해..."
나는 삼촌에게도 손을 잡고 인사했다.
테이블 가장 구석으로 갔다.
일 하시는 분이 음식을 차려주셨다.
네줄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다.
밥과 국이 입으로 들어갔는 지 코로 들어갔는 지 몰랐다.
멍하게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Would you like some coke?"
나는 고개를 돌렸다.
상복을 입은 하찬이가 내 앞에 있었다.
왼쪽 팔에는 두줄 완장이 있었다.
오른 손엔 콜라병이 있었다.
"Sure...sure. thanks."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하찬이는 콜라병을 내려 놓고.
삼촌 뒤로 뛰어갔다.
거긴엔 하은이도 있었다.
삼촌이 내게 손 인사 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