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1
나는 아들이 준 콜라를 따라 마셨다.
트림이 올라 왔다.
식사를 마무리 하고 나는 복도로 나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옆 칸에 미정이와 그 언니의 사진이 함께 있었다.
나는 사진 앞으로 다가갔다.
옆칸에서 삼촌이 뛰어와 상주 역할을 했다.
나는 사진에 절을 두번하고 향을 피웠다.
다시 삼촌에게 절을 했다.
"남은 친척이 없어...하찬이 친모이고 하찬이 이모인데...상의 끝에 우리가 모시기로 했다."
"네..."
"그래. 나 인제 가봐야 겠다, 욕봐라..."
삼촌은 건너가 문상객들을 맞이 했다.
나는 미정이와 그 언니 사진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았다.
혜인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내게 다가 왔다.
"할머니는?"
"위에 병실에 누워있어..."
"그렇겠지. 아들이 먼저 갔으니."
"이제 사건 모두 종결이야. 언니랑 장성용은 고인이 되었으니 공소권 없음 불기소. 김미정씨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덮이게 되었어. 그 담당검사 오빠 말이 5년전 방화도 둘이 저지른 거래. 그리고 둘이 짜고 너 엿 먹일려고 조작했대."
"......"
"그 날 새벽에 장성용이 강릉 현대 호텔 주차장에서 코란도 타고 대기하다가 김미정씨를 납치했대. 그리고 폭행하고 바다에 던졌대. 사인은 질식사 또는 과다 출혈이었어. 몸에 부러진 뼈가 너무 많아서, 부검의도 놀랐다고 하더라고. 뭐 이제 사건이 덮이겠지만, 검사 오빠가 장성용이 김미정 폭행하는 영상도 보여줬어. 나도 한 깡 하는데 끔찍하더라."
나는 혜인이의 오빠 오빠하는 소리가 거슬렸다.
나는 미정의 사진을 봤다.
'얼마나 아팠을까..."
눈물이 흘렀다.
"저 언니가 김미정씨 이동 동선을 장성용한테 계속 알려주고 뒤에서 도왔대."
혜인은 영정 사진을 가리켰다.
"왜 그랬을까?"
"내가 전에 말했지만, 언니하고 장성용하고 불륜이었거든...거기에 빌딩이며 보험금이며 재산이 얽혀 있어서 그게 탐 났겠지. 놀라지 마라. 김미정씨 생명보험 수익자도 원래는 언니였어...감이 오지? 나중에 김미정씨가 너로 바꾼거야. 둘은 수익자가 바뀐지도 모르고 김미정씨를 살해했고. 자살이면 안되니까. 그리고, 그 살해범으로 너를 끌어들인거지."
"무섭다."
"그 장성용 결혼식도 알리바이 만들려고 거짓으로 한거였어... 애초에 신부도 없고 실체 없는 결혼식. 그 청접장에 있는 이름들은 다 가짜였어"
나는 성용이가 능력있는 재미교포를 자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혹시나, 네가 다칠 일이 없는지 더 조사해볼게."
"그래 고마워."
"그런데, 나 오늘 하찬이 할머니 만나봐야 하는데...상속문제나 친권문제가 쉽지 않아.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어. 그래서 미리 전략을 짜야 하거든."
"내가 여기 있다가 분위기 봐서 연락줄게."
"너 여기 계속 있을거야?"
"응..."
"삼일동안?"
"응..."
"너도 대단하다. 널 죽이려 했던 사람들과 널 부자로 만들어준 사람의 장례식...아이러니의 주인공은 너."
"......"
"그럼 무리하지 말고...쉬엄 쉬엄 해. 그럼 난 조문하고 갈게."
혜인이는 성용이 사진 앞에 서서 기도를 하고 상주들과 인사했다.
그리고 내게 눈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떠났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가족도 상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기로 했다.
아들 가까이에 있고 싶었다.
나는 커피 한잔을 뽑아 장례식장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걸었다.
키 큰 여자 한명이 멀리서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 왔다.
검은 색이지만. 특이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한채영을 닮은 그녀였다.
"어...너...오랜만이다."
"응."
"짜식 요새는 잘 돼?"
나는 수줍게 머리를 끄덕였다.
"나 성용이한테 인사 먼저 할게."
한채영 처럼 시원시원한 그녀는,
치마를 입었는데도 성용이 사진앞에 큰 절을 두번 했다.
치맛속 검은 스타킹 음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상주들과 맞절을 했다.
그리고,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내게 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녀 맞은 편에 앉았다.
그녀의 큰 샤넬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하찬이가 따라와 음식을 테이블에 올렸다.
"Anything else?"
"어머 너 영어 하는구나...'
그녀가 영어로 대답했다.
"Its OK. Thanks."
그녀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하찬이는 다시 삼촌 뒤로 도망갔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너...너 좀 좋아졌다..잘생겨 졌네...몸도 좋아지고..."
"너도 많이 예뻐졌네."
"뭐?...나 원래 이뻤어."
키크고 아름다운 그녀는 패션 MD라고 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큰 회사에서 높은 직급으로 있다고 했다.
내게 명함을 줬다.
나는 정확히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는 없었다.
많은 연봉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밥알을 튀어가며,
자기의 성공 스트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 감탄을 해 주었다.
원래 그녀는 내가 처음 봤을 때도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의 별명은
시한폭탄 이었다.
***
"이 빡빡인 뭐냐?"
그녀가 나를 가리키며 미정과 성용에게 물었다.
"조심해 얘 시한폭탄이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상상 이상!"
성용이 그녀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삼일전.
나는 성용과 미정을 신림동에서 만나고 있었다.
일차로 소주를 꽤 많이 마셨다.
이차로 맥주를 마시고 있을때,
그 한채영을 닮은 아이가 불쑥 내 옆에 앉았다.
"어서와 시한 폭탄~"
성용이 그녀에게 조롱 섞인 인사를 했다.
시한폭탄은 정작 자기 별명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키가 크고 예뻤다.
하지만, 그녀의 패션 센스가 그 미모를 가렸다.
옷의 색깔은 정확히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삼원색이었다.
그 옷들은 모두 찢어져 있었다.
브레이지어와 팬티가 헬로키티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낡은 벨트는 늘어져 무릎까지 내려왔다.
머리에는 밀짚모자같은 것을 썼다.
그것 엮시 제대로가 아니었다.
여기 저기 구멍이 있었다.
밀집모자 아래 머리카락은 불규칙 컷.
머리카락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옷에 흙이 묻어 있었으면, 딱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미정이는 그녀를 내게 정식으로 소개했다.
"반가워 빡빡"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손을 잡았다.
손이 아팠다.
괴력의 미녀.
시한폭탄.
그날 나는 그 시한폭탄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경험했다.
한참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느새 미정과 성용이 사라졌다.
나는 이미 술에 취했다.
정신을 못차리고 눈만 꿈뻑꿈뻑 했다.
"야. 걔네들 지금 떡치러 갔어!"
"응?"
"나가자 씨발. 기분 드럽네."
나는 그녀를 따라 나갔다.
우린 카운터를 지나쳤다.
카운터에선 우릴 잡지 않았다.
"미정이랑 어디로 갔어...?"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몰라..내가 어떻게 알아 씨발...분명히 떡치러 갔다니까. 기분 더러운데 나이트나 가자."
나는 그녀를 따라 나이트에 갔다.
그 시간대의 기억은 중간 중간 끊겨있다.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이 없다.
나는 웨이터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그녀가 한참동안 안보이다,
내 옆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내 손을 잡고,
그 나이트를 나왔다.
한참을 그녀의 손에 이끌려 신림동 길을 헤멨다.
결국 어느 모텔로 들어갔다.
모텔비는 내가 계산했다.
"아 기분 드럽네 오늘. 너 이리 와봐."
방에 들어오자 마자,
그녀는 침대에 앉아 나를 불렀다.
나는 그당시 왜 그녀 기분이 더러운지 몰랐다.
나중에 미정이에게 설명을 들었다.
그녀가 성용을 좋아했는데,
둘이 없어지자 눈이 뒤집힌 것이었다.
나는 그녀 옆에 누웠다.
그녀는 화풀이 하듯.
나를 몰아 붙였다.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화장실 밖에서 그녀가 소리쳤다.
"지금 살려서 안 나오면 나 옆방 남자 부른다."
진짜 부르러 갔다.
화장실 밖에서 방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을까요?"
"걔 쪼다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나는 화장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밖에서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장실 문에 귀를 대고 들었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장실의 거울을 바라봤다.
머리를 빡빡 깍은 쪼다가 거기에 있었다.
눈이 빨개졌다.
울었다.
변기에 걸터 앉아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
"쾅쾅쾅쾅...."
화장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안에서 죽었냐?"
"쾅쾅쾅쾅쾅..."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남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근육이 운동선수 같았다.
그 남자는 자기 바지에서 지갑을 꺼냈다.
오만원을 내게 주었다.
"군대 간다며...건강히 잘 갔다와."
나는 방바닥에 떨어진 내 옷을 들었다.
옷을 입고 그 방을 뛰쳐 나왔다.
신림동 거리를 울며 뛰었다.
"야 너 그래서 요즘엔 잘 돼?"
"응."
"진짜 자신 있어?"
"응"
"오늘 기분도 좀 꾸리꾸리 한데 함 할까?"
"......"
"너 설욕전 해야지?"
"......"
"미정이 빈소도 옆에 있어..."
"그래?"
그녀는 일어나 미정이와 그 언니 사진 앞으로 갔다.
삼촌이 그녀를 따라가 상주 역할을 했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큰절을 두번을 했다.
멀리서 그녀의 엉덩이가 하늘로 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커다란 엉덩이에 대고 내것을 꼽아 설욕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테이블로 다시 건너왔다.
"뭔 일이래. 친구 둘이 한꺼번에...뭐 좀 아는 거 있어?"
나는 침묵했다.
"그나저나 너 뭐해 먹고 살아?"
"작은 치과 하고 있어."
"오...나 미백좀 해줘. 그리고 여기 요 앞니 이거 맘에 안드는데 어쩌면 좋을까? 교정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