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5 (35/105)



〈 35화 〉35

"알았어."

시한폭탄이 전화기를 뺐었다.


"이건 만약인데...혹시 안 좋은 일 생기면, 넌 나도 모르는 거고 예진이도 모르는 거다. 알았어?"

"으...응"


"끊는다.  살아. 또 보자."

간첩활동을 하다 들킨거 마냥 그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혜인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 시간이 생길 거 같아. 할 일이 있으면 그때 그때 해버려야지. 더 이상 미루기도 그렇고, 또, 그 뒤로는 본격적으로 하찬이 하은이 친권 문제 해결해야해."
"그래. 그럼 미국에 다녀올까?"

"응 그래서 전화한거야. 한 5일 잡고 다녀오면 어때?"

"그래. 그럼 내일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어?"

"응, 표만 있으면. 네가 비행기 표좀 알아보고 사 놓을래?"


"알았어. 검색해 보고 연락줄게. 너 여권번호 문자로 찍어줘."


"알았어 수고."


나는 전화를 끊고 내일 출발하는 엘에이행 비행기를 찾았다.

생각 보다 빈 자리가 많았다.

큰폭 할인 티켓을 찾아 구입했다.


[우리 호텔은 어떡하지? 방 1 아님 방2?]


[돈 아껴]

나는 호텔 프로모션과 연계하는 최저가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

[티켓 구입 완료. 내일 오전 9시 출발]


[알았어]



나는 짐을 간단히 쌌다.


작은 가방하나로 충분했다.

새벽 다섯시에 혜인이는 아파트에 와서 나를 픽업했다.

공항으로 가는 새벽길은 뻥 뚤려 있었다.


우리는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한지 삼십분 쯤 되었을까.


나는 비행기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젊은이 이제 가야돼. 내손 잡아."




어두웠다.


한 쪽 구석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왔다.


검은 갓에 검은  검은 지팡이까지,

온통 검은 그가 손을 내밀었다.


뒤로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가다니요...어딜 가요?"


나는 손에 땀이 났다.

"어디긴...이제 시간이 다 됐어. 놀 만큼 놀았잖아."

"시간이 다 되다니요?"

"몰라서 물어?...이승에서의 시간이  됐다는 소리야."


"아니에요. 뭔가 잘못됐어요."

나는 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젊은 것들은 늘 너처럼 받아들이질 못해..."

"전 죽을 이유가 없어요."

"원래 이유는 없어...정해진 대로 놀다가 올라오는 거야...잘 놀았으니까 인제 가야지."

검은 사람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도  마음 잘 알아. 그래도 어쩔수 없는  어쩔수 없어. 힘 빼지마. 하찮은 인간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 순리대로 가는거지."

"시간을 좀 주세요..."


"똑 같아. 나중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미련하긴..."


"시간을 주세요..."

"할일이 남아 있나?"


"아니 특별히 그런건 아니지만, 너무 아쉬워요. 진짜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참나. 고작 그런이유로...젊은 것들은 다들 그런 소릴 하지...나도 이젠 익숙해...그래 이해해...하지만 명심해. 진짜 사랑은 없어...착각일 뿐이야..."

"......"


"......"



"Really?...oh my god...so cute....so romantic...you are a liar...hahaha..."

"No...its true...no lying..."


희미하게 혜인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뒤따라 남자도 웃었다.


"그래 내가 조금 더 시간을 주지...나중에 너도 알게 될거야...시간을 준다고 변하는  없어.  그대로, 이 모습 그대로 변한 거 없이 날 만날거고..."

어둠이 걷혀가고 있었다.


밝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Are you OK?"

"......"


파란 눈이 나를 가까이 들여다 봤다.

"Are you OK?"

"괜찮아?"


혜인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된거야?"


혜인이를 쳐다봤다.



"Oh...yes...we got it."


덩치큰 백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Hello. I am Bill."

나는 눈만 꿈벅였다.




"Did you have a good time with Jesus?"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내가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었다.


그의 농담이 역겨웠다.


그놈의 역겨운 말투는 계속되었다.


단어 단어 끊어지게 말했다.

"You are a very very lucky guy."


"......"

"First. you have an amazingly beautiful wife."



그놈은 로맨틱한척 그윽한 눈으로 혜인일 쳐다봤다.

나도 혜인일 쳐다봤다.


혜인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Second. you were with me on the same flight.


"......"

"I am a cardiologist. Without me, you would still stay at HEAVEN with Jesus."



죽다가 살아난 사람을 두고,

잘난척과 수준 떨어지는 농담을 하는


그가 혐오스러웠다.




"Thanks, Bill."


'날 살렸다는데, 고맙다는 인사 한번쯤은 괜찮잖아...'


라고,


나는 대견한 생각을 했다.

"You are welcome. Take a good rest here...and, later visit my clinic at LA. I think you need to be checked. Remember, it was a lucky magic, I helped you survive the cardiac arrest only with EpiPen. But no more magic. Your heart beat gives me bad impression. 100% arrhythmia and more."



그놈은 죽다 살아난 환자를 눕혀놓고 겁을 주고 있었다.



그래 기지를 발휘해 에피펜으로 날 살린건 인정한다만,

심장박동수니 부정맥이니를 들먹이는게 딱,

돈벌려는 수작으로 보였다.


그는 혜인이를 등지고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And, trust me. I am a doctor. my lips will be sealed."


그놈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Are you doing any drugs?

미친놈이었다.

마약복용 사실이 적발 되면,

미국 입국장에서 바로 추방된다.

나를 엿먹이고,

혜인이에게 껄떡대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놈 머릿속에 있는 더러운 계획이 뻔히 보였다.

그것도 모르는 혜인이는


버터 가득한 목소리의 사기꾼 놈에게


하트 뿅뿅을 발사하고 있었다.

천불이 났다.

"What the fuck are you talking about?....I've never. never. never..."

나는 일부러 목소릴 높였다.


"Calm down...wo wo wo...I just wondered the medical history of yours as a doctor."

그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썩었다.


그놈은 혜인이에게 인사하고,

내게 엄지 척을 한번 하더니


사라졌다.

"......"

"......"


"왜 그렇게 소릴 질러?"

"미안, 갑자기 이상한 걸 물어봐서...?"


"뭐..."

"아니야..."




"아 궁금하잖아 뭐?"

"아...그 새끼가 너랑 잘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보잖아. 미친새끼."


"진짜?...그렇지 않았는데...젠틀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는데..."


"그니까 남자들은 겉만 보곤 몰라...특히 저 뻐터 발라 미끄덩 거리는 백인새끼들은 더더욱...혜인이 너도 그런 음흉한 새끼들 조심해.."


"......"

"......"


"근데, 어떻게 된거야...여긴 비지니스석이잖아..."

비지니스석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응, 자세히 말하자면 긴데..."

혜인이는 내가 의식을 잃은 후 일들을 천천히 들려주었다.

"너 심장이 멎었어. 그래서, 승무원들이 기계를 가져와서 심폐소생술 시도하고, 기장은 의사 찾는 방송을 했지. 하마터면, 비행기 돌릴뻔 했다. 방송 듣고  Bill이 와서 널 살렸어. 에피네프린을 찾다가 없어서 에피프린이라는 걸로 임시 처치하니까 네 심장이 살아났대. 그리고  있다가 우릴 비지니스 석으로 옮겨줬어. 남자 승무원이랑 빌이 널 업어서 옮겼고. 그리고 Bill이 아까까지 옆에 있어줬어. 혹시 다시 응급상황이 생길 지 모른다고."

소리 지른 내가 부끄러워졌다.



만일 Bill을 다시 본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혜인일 향한 그 음흉한 눈빛은 여전히 기분나빴다.

"고객님 좀 괜찮으세요?"


그때. 미소가 아름다운 승무원이 다가왔다.


치마 아래로 다리가 곧고 예뻤다.



"네... 괜찮아요. 번거롭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고객님. 큰일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혹시 불편한 점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승무원은 혜인이에게 물병을 몇개 건네주고,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혜인아 우리 얼마나 됐어?"

"뭐? 비행시간?"


"응"


"지금 한 8시간 되었나?"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11시간 비행이니까 세시간 정도 남았네...너 좀 더자...시차 적응 어려울 거야.'



나는 원래 야간에 깨어있는 습성이 있어 시차엔 큰 걱정이 없었다.


다만, 내 몸이 큰일을 겪어서인지 힘이 없었다.


배고프지도 않았다.


"그래. 혜인이도 좀 자둬...거기 지금 밤이지...?"

"우리 도착하면 세벽 서너시 될  같은데...나 좀 잘게...또 다시  놀래키지 마라..."

혜인이는 모포를 덮고 잠을 청했다.


나는 정신이 멍했다.

그 와중에도 내 몸은 예진이와 시한폭탄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키   미녀들과의 조각 영상들이 떠올랐다.


그 짜릿한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한 숨이 나왔다.


손을 뻗어 물병을 잡았다.

한병을  마셨다.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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