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7
크리스마스 새벽에 동네를 돌며 찬송가를 부르는,
이른바 새벽송 때문이었다.
육인방 골칫덩어리도 교회에 왔다.
어떤 여자아이 한 명도 같이 왔다.
나는 회장으로서 게임을 진행하고
분위기를 띄우는데 정신이 없었다.
육인방은 무척 협조적이었다.
게임에 성실했고,
벌칙도 열심히 받았다.
엉덩이로 이름쓰기는 수줌음 없이 바로바로.
빼빼로 먹기 벌칙에서는 바로 상대방에게 뽀뽀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교육관은 후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땀을 흘리며, 남녀가 서로 엉켜 게임을 즐겼다.
그렇게 내가 준비한 게임들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었다.
여기 저기 소그룹으로 나뉘어 기타치며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박자에 맞춰 김밥 몇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때 육인방과 그 여자 아이가 슬며시 교육관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내가 있던 소그룹에서 나와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교회에서 멀지 않은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발소리를 조심하며 그놈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담벼락 밑에 모여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는 슬금 슬금 다가가 굵은 목소리로,
"너희들 여기서 뭐해~"
소리쳤다.
머리 일곱개가 일제히 내쪽으로 움직였다.
"에잇, 쫄았잖아 씨발놈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나는 그들을 골려주어 득의 양양했다.
"오늘 재미 있었냐?"
"오~~짱. 나 니네 교회 다닐까봐."
빼빼로게임에서 뽀뽀해버린 놈이 충격선언을 했다.
"이 새끼 사회 잘보지? 야 너 얘랑 사귈래? 얘 전교일등이야"
육인방중 키가 제일 작은 놈이 그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병신 지랄한다...칵...퇘"
그 여자아이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가래침을 뱉었다.
피던 담배를 멀리 던졌다.
나는 뻘쭘해졌다.
"야 니네 교회 예쁜 여자애들 많더라. 나 담주 부터 나간다."
빼빼로맨이 확인 사살을 했다.
사고뭉치가 달갑지 않았다.
"야 근데. 선미가 오늘 한명 해 주기로 했잖아."
"맞아."
"우리 회장님도 끼워주자."
"좋아."
"야...가위바위보로 해"
엉겹결에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가위바위보를 했다.
"안 내면 술래~가위바위보~"
그런데, 가위바위보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모두 주먹.
"오~"
두번째는 모두 보.
"아~쫌!"
세번째는 모두 가위.
"아아...쫌..."
"야...니들 우정에 내가 눈물이 난다."
급기야 지켜보던 그 여자 아이가 한마디 하고, 또 가래침을 뱉었다.
이쯤되니, 이놈들이 뭔가 나 몰래 수작을 부리고 있음을 알았다.
네번째, 나 혼자 가위를 내고 나머지는 모두 보를 냈다.
"오예~~"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놈들은 내 팔다리를 붙잡아 공중부양을 시켰다.
나를 담벼락 바로 밑으로 데려갔다.
나는 어떤 촉이 왔다.
내가 맞을 일을 한거 같지는 않고,
혹시나 하는 긍정적 기대를 했다.
그놈들은 내 팔을 담벼락 위에 올리게 하고
내 바지를 내렸다.
팬티까지 내렸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그놈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망을 봤다.
그 여자 아이가 내게 다가 왔다.
내가 예상하던 것 중 작은 거였다.
그 여자 아이는 바로 내 씨앗들을 땅바닥에 뱉었다.
육인방이 침뱉는 소리를 듣고,
내게 다가왔다.
"좋았냐?"
나는 갑작스런 경험에 그저 웃기만 했다.
"새벽송 돌 시간이야. 지금 안돌아가면, 목사님이랑 장로님이랑 사람들이 찾아나설거야."
우리는 서둘러 교회로 돌아갔다.
그 여자아이는 새벽 내내 내 옆에 붙어 새벽송을 돌았다.
잘 모르는 찬송가를 따라부르는
그 아이의 얼굴이 귀여웠다.
양 미간의 주름 마저 사랑스러웠다.
선미는 그 다음주부터 교회에 나왔다.
나는 기뻤다.
물론 빼빼로 그놈도 동시에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석이 언제 사고를 칠지 몰라 마음이 불안했다.
선미가 교회에 나오고 난후,
나는 주일마다
옷을 고르는데 시간을 꽤 쏟아부었다.
방바닥에는 수많은 옷들이 흩어졌다.
교회에 도착하면 교육관 신발장을 먼저 살폈다.
선미의 프로스펙스 신발을 보면 내 기분이 하늘을 날았다.
우리가 어느정도 농담을 주고 받을 사이가 되었을때,
선미가 내게 부탁을 했다.
"너 공부 잘 한다며..."
"내가 좀 하지.."
나는 거만한 대답을 하고 바로 후회했다.
선미의 부정적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좀 데리고 다니면서 공부하면 안 돼?"
'안 돼긴 왜 안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는 교회 교육관에서 매일 같이 공부 했다.
선미는 물어보는데 부끄러움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쉽게,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선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설명을 들었다.
나는 그 초롱초롱한 눈을 사랑했다.
하지만, 교육관에서의 공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도사님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진 않았다.
"요즘 집사님들이 너랑 선미 얘기 많이 한다. 교육관에서 남자 여자가 밤늦게까지 있다고."
나는 구설수에 오르는게 싫었다.
우리는 공부할 곳을 시립도서관으로 바꾸었다.
일반실에 가면 우리 둘이 붙어 있을 수 있었다.
학생실에 자리가 남아도,
대기실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다, 일반실로 들어갔다.
선미는 결석하지 않았다.
나도 결석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턴 선미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특히 선미의 야생마 기질이 좋았다.
물론 그 반항아적인 성품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졸음이 찾아왔다.
나는 휴게실에서 음료수 마시자고 선미 옆구리를 찔렀다.
선미는 음료수를 원샷하고 화장실에 갔다.
나는 휴게실에 혼자 남았다.
음료수 캔을 들고 선미를 기다렸다.
한 오분이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난리가 났다.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나이 많다고 함부로 주둥일 놀려?"
"너 어느학교 다녀..."
"학교 알아서 뭐하게 이 썅년아."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너 학생이 담배를 피면 돼 안돼. 잘못했다고 하고 다음부터 안그러겠습니다 해야지. 어디서 어린게...."
"지랄한다.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꺼져라...좋은말 할때. 면상 확 긋기 전에"
상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 화장실을 떠났다.
선미의 터프함에 나는 이상한 흥분감을 느꼈다.
껌붙은 면도날 정도는 두렵지 않았다.
겨울방학 내내 선미와 나는 도서관에서 살았다.
새벽에 나와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중3 두명이 고시생 부부처럼 공부했다.
선미가 질문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졌다.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개학을 했다.
교회에서, 선미가 내게 보여줄 게 있다고 했다.
선미는 가방에서 필통을 꺼냈다.
그리고, 그 필통안에서 돌돌 말아놓은 성적표를 꺼냈다.
내게 건넸다.
반 1등이었다.
"서울대 합격 가능"이라는 문장이 비고란에 있었다.
할렐루야~
나는 감사기도 드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건 선미가 교회에 나올 때부터 있던 문제였다.
내가 눈이 멀어 몰랐을 뿐.
선미 주변엔 벽이 있었다.
특히 여자 애들은 선미를 멀리했다.
뒤에서 수근거렸다.
그런 일에 기 죽을 선미는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선미보다 오히려 수근거리는 애들에게 문제가 많았다.
그 아이들은 주로 유치원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장로님 혹은 권사님 밑에서 곱게 자란 딸들이었다.
들풀처럼 자란 선미가 그들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나는 모르는 척 했다.
5월에는 청소년 연극제가 있었다.
청년부 대학생 형님이 연출을 맡았다.
대본은 유명한 기존의 것을 각색했다.
청소년 주인공 두 남녀가 사랑을 하는데,
주변의 어른들과 생기는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자,
이를 이기지 못해 주인공 둘이 동반 자살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선미와 참가신청을 했다.
우리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되었다.
배우는 모두 여섯명이었다.
주변 스탭은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도와주기로 했다.
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한달 정도 연습을 했을 때,
전체적인 연극의 틀이 잡혔다.
그때부터 연출 형님은 디테일을 다듬기 시작했다.
점점 연출형님은 연극에 미쳐갔다.
배우들도 함께 연극 속에 몰입했다.
점점 그 이상, 그 이상을 외치며 동선을 여러번 바꾸었다.
선미는 학교에서 바로 오늘 날이 많아졌다.
교복을 입고 연습했다.
연극 중반부에 내가 선미를 밀치는 장면이 있었다.
선미는 리얼하게 넘어져야 했다.
선미는 리얼하게 넘어졌다.
연출 형님은 그 장면을 반복했다.
이상했다.
내 느낌상, 그 이상은 없을 정도로 연기가 완벽했다.
그 둘은 고등학생이었다.
연출 형님도 웃고 있었다.
선미는 반복해서 넘어졌다.
또 NG가 나왔다.
한놈이 나를 보고 선미 치마 안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나는 눈이 뒤집혔다.
"야. 이 개새끼야~!"
바로 달려가 그놈을 패기 시작했다.
코피가 났다.
다른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박치기를 했다.
그놈이 쓰러졌을 때
나는 그놈을 사정없이 밟았다.
나의 살기를 느꼈는지,
연출 형님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야~이 개새끼들아~ 다 디져버려~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나는 참지 못하고 선을 넘었다.
그대로 선미 손을 잡고
연습장을 뛰쳐 나왔다.
한참을 달렸다.
"야...손좀 놔..."
"......"
"멈춰봐...왜?"
"아니...그 새끼들이 연기를 너무 못해서 답답했어...놀래켜서 미안."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오락실 앞에 있는 펀치 기계에 동전을 넣었다.
때렸다.
점수가 올라갔다.
또 때렸다.
큰 소리와 함께 신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