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38
"선미야, 집에 가자. 나 연극 안할래."
"왜?"
"그 새끼들이 연기를 너무 못해서 하기 싫어졌어."
나는 선미를 집에 바래다 주었다.
집 앞에서,
선미 입술에 키스를 했다.
선미는 키스를 받아주었다.
선미는 옥탑방으로 올라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분했다.
내 여자가 강간당한 느낌이었다.
그 후로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선미 집 앞에 서서 기다렸다.
우리는 옥탑방에 올라가 공부를 했다.
공부를 오래 하지는 못했다.
철없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밀폐된 작은 방에 있는데,
공부가 될리 없었다.
나는 선미에게 싸인을 보냈다.
선미는 내 싸인을 받아주었다.
의외로 선미는 처음이었다.
내것은 빨갛게 물들었다.
선미는 아픔을 참으며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선미는 나를 꼭 끌어 안았다.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응 사랑해."
"그럼 연극 하자. 나 끝까지 하고 싶어."
"......"
연극을 다시 하려 해도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아수라장을 만들고 나왔는데,
무릎 꿇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주일 예배도 빠졌다.
월요일에 빼빼로가 편지봉투 하나를 주었다.
"이거 연극 연출형이 너한테 전해달래."
편지에는 세명의 글이 있었다.
요점은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월요일에 다시 연습실에 갔다.
선미도 나와 있었다.
내게 맞은 고등학생 두명과 연출 형이 밖에서 나를 보자고 했다.
나는 따라 나갔다.
"너 선미 좋아하냐?"
연출 형이 물었다.
"네, 사랑해요."
"알았다. 지난 번엔 미안했다. 앞으로 열심히 하자."
고등학생 두명도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
"형들 죄송해요. 지난번 일은 제가 정말 잘못 했어요. 그런데, 선미한테 못 된 짓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부끄럽다. 다신 안 그럴게. 열심히 하자."
그렇게 나의 만행은 가까스로 덮혔다.
그 뒤론 연극 연습에 혼을 실었다.
출연자 전원이 작은 동작까지 정성껏 다듬었다.
나는 캐릭터와 일체가 되었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도 선미였다.
선미 역시 캐릭터와 일체가 되었다.
결전의 날이 왔다.
연출형은 무대에 오르기전 배우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보니까, 우리팀은 지금 퍼포먼스 120퍼센트야. 남아돌아. 20프로쯤 실수 해도 100퍼센트야. 아무것도 신경쓰지 마. 몸이 기억하는 대로 해. 이때까지 충분히 연습했어. 무대 위에서 마음껏 놀아. 대사 실수해도 돼. 그냥 개판치고 놀다와....화이팅!!!"
"화이팅."
나는 선미 손을 잡고 다짐했다.
무대 위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리라.
선미를 꼭 끌어 안았다.
무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미 현실에서 선미와 연인이었다.
그대로를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무대가 현실인지, 현실이 무대인지 헷갈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연스러웠다.
그러는 동안 연극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난 옥상 위를 배경으로 마지막 대사를 했다.
"선미야 왜 먼저 갔어?...그렇게 힘들었어? 잠깐만 기다려. 나 지금 너 보러갈게... 나도 너처럼 자유를 찾아갈게..."
덜커덕 떨어지는 소리.
암전.
엠블런스 소리.
엠블런스 소리 페이드 아웃.
큰 박수 소리가 터졌다.
우리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해 5월은
내게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내 옆에는 선미가 있었다.
연극팀은 신자들을 위해 세번 교회공연을 했다.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은 선미와 나를 안아주고 칭찬했다.
큰 배우가 될 것이라고 엄지척을 보내주었다.
꽤 많은 금일봉도 받았다.
발 넓은 목사님은 이웃 교회들의 공연요청을 받아 왔다.
우리 팀은 그 교회들을 돌며 6회 공연을 추가했다.
공연이 끝나면 항상 근사한 저녁식사가 이어졌다.
나는 급기야 뭐라도 된 듯한 기분에 취했다.
내 진짜 적성이 연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막이 내린 뒤 쏟아지는 박수소리에,
전율을 느꼈다.
나도 선미도 눈물을 흘렸다.
서로 얼싸안고 벅찬 흥분을 느꼈다.
행복했다.
하지만, 인생을 돌아 보건데
내가 행복을 잠시나마 즐길 만 하면,
신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항상 나를 흔들었다.
이번엔 내게 전부같은 존재,
선미를
내게서 떼어 놓았다.
선미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알았어. 그만 울어. 나중에 어른이 되서 만나면 되지."
"....진짜 그럴 수 있을까?...나 너 ....정말로...사랑하는데..."
"나도 알아...편지해...나도 답장할게..."
"그래...꼭 답장 해야돼."
선미는 여름이 되기 전 나를 떠나갔다.
부모님이 캐나다 이주를 결정했다.
듣기론, 영주권인가를 위해 험한 일을 할 거라고 했다.
어린 내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긴 힘들었다.
내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실은
오직
내 곁에서 선미가 없어질 것이란 거였다.
마음에 구멍이 생겼다.
"이선미..."
"너 맞지? 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너... 너 맞지?
우리는 서로 끌어 안고 이십년전 그 시절로 돌아갔다.
"아참...미안...여기는 내 변호사님 김혜인..."
혜인이가 선미에게 눈인사를 했다.
선미도 눈인사를 했다.
둘의 눈빛이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여기는 이선미 내가 20년 전에 무척 사랑했던 여자."
선미가 내 어깨를 때렸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혜인이도 웃었다.
입술로만 웃었다.
"나 여기 총 매니져야...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야 그렇지 않아도 걱정했는데...우리가 일찍 도착해서...혜인아 우리 변호사 약속이 언제지?"
"오후 두시야. 월셔가에 사무실이 있어."
"아..걱정하지마...내가 잘 처리해줄게...짐은?"
"없어 이게 다야..."
"알았어 그럼 나 따라와...이쪽으로 오세요 변호사님.."
우리는 선미를 따라갔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엘에이 전경이 보였다.
엘에이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다.
한참 꼭대기 층에서 우리는 내렸다.
선미가 카드를 이용해 고급스러운 문을 열었다.
맙소사.
영화에서나 보던 고급스러운 스위트 룸이었다.
바닥과 벽이 모두 대리석이었다.
샹들리에 불빛을 받아 번들 거렸다.
한쪽 구석엔
스파 욕조가 있고, 수영장도 있었다.
통유리로 된 창 너머 엘에이의 불빛들이 깜박였다.
입이 벌어졌다.
혜인이도 놀라는 눈치였다.
"변호사님, 오시느라 피곤하실텐데...제가 마사지사 불러드릴게요. 우리호텔 마사지사 엘에이에서 정말 유명해요. 짐 내려 놓으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비용은 없어요. 제 성의니까 받아주세요...그럼 편히 쉬고 계세요."
선미는 내 손을 잡고,
대리석 바닥에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스위트룸을 가로질렀다.
"어디가는거야?"
"네 방 보여주러."
"아니...난..."
나는 뒤 돌아 혜인이를 쳐다 봤다.
혜인이는 내게 두 주먹으로,
커다랗게 엿먹어라를 날리고 있었다.
입모양으로 욕울 하고 있었다.
선미와 나는 스위트룸의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선미가 나를 안고 키스했다.
"너무 보고 싶었어. 내 앞에 나타나줘서 고마워."
"나도..."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선미가 앞장섰다.
선미의 엉덩이가 리듬감 있게 흔들렸다.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방 앞에 멈췄다.
선미가 문을 열었다.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전에 본 스위트룸과는
비교체험 극과 극이었다.
창문조차 없었다.
"......"
"우리 호텔에서 가장 외진 방이야...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
선미는 문 손잡이에
'No Disturbance'
사인을 걸었다.
갑작스러웠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선미가 세련된 유니폼을 차분히 벗었다.
레이스 아래로 풍만한 가슴은 이십년 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선미는 뒤로 돌아 내게 후크를 풀어 달라고 했다.
비너스에게서 볼 수 있는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선미는 하이 힐에서 내려섰다.
스타킹 아래로 발가락이 보였다.
치마를 내렸다.
검은 스타킹이 매끈한 허벅지를 감싸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살이 터질 듯 했다.
스타킹 재봉선 밑으로 레이스 달린 검은 팬티가 보였다.
선미는 스타킹을 천천히 내렸다.
나는 아무말 없이 그 동작들을 하나하나 감상했다.
선미는 돌처럼 서있는 나를 침대 위로 불렀다.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나 정말 빨리 하고 싶어."
내 귀에 속삭였다.
"나 급해..."
나는 일초만에 위아래 옷을 세트로 벗었다.
선미 위로 점프했다.
"애기 생기면 낳자. 나 너 닮은 애기 갖고 싶어..."
나는 정신이 뻔쩍 했다.
당장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
우린 그렇게 사랑을 했다.
"너 피곤할 텐데 좀 쉬어. 내가 또 올게... 이건 내 번호야 24시간 널 위해 대기중."
선미가 메모지에 번호를 쓰고
빠르게 옷을 입었다.
내게 다가와 키스하고,
방을 나갔다.
나는 여전히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혜인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너 어디야. 왜 안와."
"응 매니저가 나 따로 방 잡아줬어. 여기가 몇호실인지 잘 모르겠네."
"너, 이상해. 그 여자랑 방금 무슨 일 있었지. 너...내 육감은 못 속여"
"아니야. 근데 너 마사지 받았어?"
나는 빨리 말을 돌렸다.
"응. 진짜 잘 하더라...지금 몸이며 얼굴이며 뽀송뽀송해...나 이거 내일도 받음 안될까?"
"내가 매니저한테 물어볼게."
"야. 너 이리로 안올꺼야?"
"내방 따로 있다니까."
"이 넓은 데를 나 혼자 쓰기 그런데..."
"우선 각자 쉬자...나중에 올라갈게..."
"너 지금 그 여자랑 같이 있지...이상한데"
"아니야."
"뭐 알았어. 니가 님을 보고 뽕을 따든 말든. 근데...여기 수영장도 되게 좋아... 여기서 놀자."
혜인이가 물놀이간 소녀마냥 말했다.
"응 알았어."
"그래. 그럼 우선 좀 자자. 자고....늦어도 한시에는 일어나야 돼...알았지?"
혜인이의 말투가 다소곳 해졌다.
"응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