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9 (39/105)



〈 39화 〉39

나는 창문도 없는 호텔방에서


선미와의 옛날 일을 회상하다


잠이 들었다.




오후 한시 눈이 떠 졌다.

나는 혜인이에게 전화했다.

"일어났어?"


"응 진작에 일어났지. 난 준비 끝."


"그래 로비에서 봐."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혜인이가 먼저 내려와 있었다.


혹시나 선미가 있는지 둘러봤다.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호텔 입구에 있는 택시를 탔다.


택시 밖 엘에이의 풍경이 익숙지 않았다.

티비로 보던 것과 달랐다.


코끼리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커다란 비만인들이 힘겹게 지나다녔다.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거리에 늘어선 텐트는 더러웠다.


노숙자들은 비틀거렸다.

서로 때리며 싸웠다.


커다란 가드 범퍼를 한 경찰차들이 곳곳에 보였다.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에 대한 첫인상은


편안하지 않았다.



어느덧 한글 간판들이 보였다.


거리에는 아시아 사람들이 더 자주 보였다.

택시가 새로 지은 듯한 빌딩 앞에 섰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복을 입은 커다란 흑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혜인이가 천천히 말했다.

"We have an appointment with Bruce."

"OK. one moment."

그 흑인 경비원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잠깐 기다리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흑인은 누군가와 한참 통화했다.




잠시후, 키가 작은 백인이 두꺼운 안경을 끼고 나타났다.


"Hello Mr. Muller."

"Oh...Welcome welcome. How was your trip? you are Hein Kim and you are..."


그는 차근차근 천천히 꼭꼭 씹는 발음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비서가 들어와

커피를 원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물을 달라고 했고,

혜인이는 커피를 달라고 했다.

사실 별다른 상담이나 긴 설명이 필요없는 과정으로 보였다.


본인확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백인 변호사는 시간을 끌었다.

혜인이가 준비한 서류들을 꺼내 하나를 다른 파일에 옮기고, 리스트에 체크 표시를 했다.

또다른 서류를 옮기고,  리스트에 체크 표시를 했다.

수많은 서류를 아주 느린 손으로 애무하며 느끼고 있었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멍청하고 비효율적이고 느린 손놀림이었다.


페이지른 넘기며, 연속으로 체크하면 될 일을

그 백인은 한시간  자기 방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중간중간 농담을 시도 했다.


나는 참기 힘들었지만,

혜인이는  견디고 있었다.

재미없는 농담을 박장대소로 받아주고,

 늙은 백인이 서류를 바닥에 수차례 떨어뜨려도


화내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5분 안에 끝날 일이

한시간 넘어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지루했다.

혜인이는 그 변호사 기분을 맞추어 주느라


힘들어 했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Done."

이라는 말이 나왔다.


혜인이가 유치원 선생님처럼 웃으며 박수를 쳤다.

 노인은 칭찬받는 아이처럼 웃었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을 나와 옆 건물에 있는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는 만나는 은행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짧은 농담을 시도 했다.


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익숙지 않았다.



우리는 은행 안쪽에 마련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를 매니저라고 소개한 은행원,

몸도 가누기 힘들 만큼 뚱뚱한 여성 은행원이 서류를 들고 왔다.

그녀의 다리 하나가 내 허리보다 굵었다.

그녀는 한마디를 말 할때마다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누가 옆방에서 들으면,

남자의 물건이 그녀의 몸속에 들락날락 하는 것으로,


착각 할  한 헐떡임이었다.


백인 변호사가 옆에서 내게 싸인  곳을 알려주었다.

혜인이가 그 옆에서 같이 검토 해주었다.


나는 열번 넘게 싸인 했다.


싸인을  받은 은행 매니저는

자판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두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했다.


모니터를 한참 쳐다봤다.


드디어.


연필을 들어

종이에 숫자를 썼다.



$4,700,500.00




혜인이가 깜짝 놀랐다.

현실적인 숫자가 아니었다.



백인 변호사는 주식이 몇년새 많이 올라 펀드 수익률이 좋다고 했다.


돈은 바로  계좌로 들어갈 것인데,

세금에 대해 조언 해줄 회계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혜인이가 소개 해 달라고 했다.

백인 변호사는 명함을 하나 꺼내 혜인이에게 주었다.

혜인이가 명함을 읽었다.

"Accountant Bruce Muller....?


자기 명함이었다.

혜인이가 웃었다.


그 백인은 자기가 성공적으로

혜인일 웃겼다고

즐거워 했다.

그 백인은

그런식으로 혜인일 웃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나는 불현듯 선미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그 은행에 계좌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 스모선수같은 아줌마는 헐떡이며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 은행은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으로 믿을 만 했다.


나는  은행에  계좌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나스낙 지수 펀드에 연결 해 달라고 했다.



한국에 그 돈을 가져가도  데가 없었다.

한국엔 이미 50억원 이상의 돈이 있었고,


혹시 나중에 여기서 선미와 함께 지낸다면 그 돈이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은행 매니저가 물었다.

"What is the name of beneficiary?"

상속받을 사람이라...


떠오르지 않았다.

"Could you holding the process, I 'll let you know the beneficiary."

나는 수혜자 이름이 안떠올라,


계좌 만들기를 중지했다.

생각나는게 하찬이 정도 있었다.


은행 매지저는 선택사항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수혜자를 선택하기 어려웠다.

고민끝에

모든 돈을 한국 계좌에 이체하기로 했다.






그렇게 엘에이에서의 볼일이 끝났다.



혜인이는 변호사로서,


그 은행 매니저, 백인 변호사와 함께

서류들을 다시 점검했다.



나는

대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헬로.."

"나야 선미..."


"응...나 볼일 다 끝났어. 어디야?"


"지금 근무중이야.  많이 보고싶어. 너는?"

"나도 많이 보고싶지."

"고마워."

"고맙긴. 진심이야."

"알아."

"나 여기서 너랑 같이 살고 싶다."

"정말?"

"응. 정말"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돼."

선미는 진지했다.


곧이어, 자기가 전화 건 목적을 밝혔다.

"오늘 저녁 내가 준비했는데...어디서 하는게 좋을까? 아래층에서 할래...아니면 스위트룸에서 할래?"

"글쎄...잠깐만..."

나는 혜인이에게 물어봤다.

"응. 스위트룸이 좋겠어... 나  그 수영장에도 들어가보고 싶고,"


"알았어 그럼 그렇게 준비할게.  변호사한테도 전해줘. 식사는 6시부터 할게."

"그래. 고마워."

시계가 네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부자된거 축하해. 이제 100억대 자산가네..그것도 현금으로"


혜인이가 일을 마치고 나에게 왔다.


"나도 그렇게 많을 지 몰랐어."

"많으면 좋지 뭐."


"......"


"많아도 문제야?"


"아니...미정이 생각이 나서."

"그래. 미정씨가 너한테 좋은 일 한다."


"......"


"호텔에서 근사하게 파티 열어준다는데..."


"그래. 나도 기대되네..."


"......"

"우리 파티하고 수영장에서 놀자."

혜인이는 수영장을 두번째 언급했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혹시 혜인이가 나를 수영장에 빠뜨리고,

내 돈을 가로챌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한 일분쯤 되었을때,

혜인이는 뜬금 없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오늘 백억 부자랑 한번 하고 싶어..."










나는 내 간사함에 놀랐다.

혜인이의 도발적인 속삭임에


내 물건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불과 얼마전만 하더라도,

나는 틈만나면 혜인이와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공유닮은 검사에게는 복수하고싶은 질투를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무 감흥이 없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혜인이가 여자라기보다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선미는 내게 신선했다.


팔딱팔딱 뛰는 활어였다.

혜인이는 냉장고에 냉동 보관된 오래된 생선.

언제라도


내가 먹고싶을 때


해동시키면 그만.





마음의 변화는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가.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혜인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로서 얼마나 망설인 끝에

수치스러움을 참아내며 한 말일까.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음으로


한 여자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침묵의 시간이 지속되자

미안했다.

내가 불편했다.





혜인이는 돈이라는 주제에 곧장 반응한다.

화제를 돈으로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다.


"내가 한 십억쯤 떼어줄까?"

"진짜?"


"나는 돈이 많아도 어디다 쓸지 모르겠어."


"정말? 잘 아는 펀드매니져 있는데. 내가 그돈 불려줄까?"

"아니야 됐어. 혹시 너 오늘  때문에 아까?"


"얘가 뭐래...아이고 아깐 농담이었네요.  조크를 못해...이런 진지충."

"......"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택시는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는 고급스러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에이 전경이 보였다.

공항위로 비행기들이 장난감처럼 이륙했다.

멀리 파란 바다가 보였다.




스위트룸에 들어갔을 때,


선미가 반갑게 맞이 했다.


"일은 잘 봤어?"


"응..."

선미는 혜인이를 돌아보았다.

"변호사님이 수고가 많으세요."

"아니에요."


"오늘 제가 준비한다고 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한쪽 테이블에 은빛나는 식기들이 높이 쌓여 있었다.

요리들이 뚜껑으로 덮혀있고,


일부는 버너 위에서 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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