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9
그 순간,
몸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나는 얼른 파낸 흙으로 그 주변을 덮었다.
오전 중엔 실내 작업을 주로 했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올려
금괴 15개를 만들어 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소장이 햄버거 봉지 두개를 들고 왔다.
나는 햄버거를
눈깜짝 할 사이에 먹어버렸다.
소장이 눈을 꿈벅 꿈벅했다.
"Do you want more?"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괴15개가든 박스를 가져와 소장 앞에 보여 주었다.
아침에 너무 열심히 해서
배가 고팠다고 했다.
소장은 기뻐했다.
나는 맥도날드 오리지날 빅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정도는 자기가 바로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건 필요 없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구하기 힘든 물품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소장에게 이화학 시험기구를 파는 상점이 있는지 물어봤다.
시내에 하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비중시험을 위해
특수한 플라스크가 당장 필요하다고 했다.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 플라스크가 있으면 오늘 금괴 30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장은 입이 찢어졌다.
당장 구해다 준다고 했다.
나는 혹시 가능하면 KFC에서
드럼스틱 12개정도 사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소장을 걱정하지 말라며,
당장 출발 한다고 했다.
소장은 금괴 박스를 들고 바로 뛰어나갔다.
나는 소장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내 인생 최대의 도박을 걸기로 했다.
삽으로 덮어 놓은 구덩이를 파냈다.
삼십초.
용접기에 불을 붙였다.
검은색 플라스틱 관에
지름 50센티정도
구멍을 냈다.
삼분.
목재 건물로 뛰어 들어가
가방 안에 필요한 물건을 손에 닿는대로 담았다.
가스 토치 3개, 약품가루, 조명. 펜치, 니퍼, 스페너, 랜턴, 금괴, 금부치. 소장이 손도 안된 햄버거 봉지, 물병.
2분.
나는 목재건물을 뛰어나와
구멍으로 들어갔다.
관은 꽤 컸다.
목을 굽히고 뛸 수 있을 정도였다.
물이 바닥에 흘렀다.
자세를 낮춰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뛰었다.
물이 발에 걸려 뛰는게 쉽지는 않았다.
소장에게 잡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계속 발을 움직였다.
쉴 수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쉬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인 목도 아팠다.
목디스크에 걸린다 해도
잡혀서 죽는 것 보다 났다.
어느지점부터 바닥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물 흐름도 빨라졌다.
미끄럼을 타면 더 빠르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속에 앉았다.
손과 발로 벽을 밀었다.
워터파크의 슬라이드처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갑자기 장애물에 부딪히는 것에 대비해
가방으로 얼굴을 가렸다.
슬라이딩에 몸을 맡겼다.
빛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슬라이딩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갑자기 밝은 빛이 들어왔다.
쿵.
어딘가에 심하게 부딪혔다.
철근으로 만든 창살 같은 문이었다.
작은 출입문에는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가스 토치 2개를 꺼내
자물쇠의 고리부분을 가열했다.
금세 빨갛게 달아 올랐다.
펜치와 니퍼로 고리를 잡고 늘렸다.
고리가 가늘어 지며 끊어졌다.
문을 열었다.
절벽이었다.
아랫쪽은 강이었다.
관 옆으로 발을 딛고 이동할 곳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장은 곧 나를 잡으러 올것이었다.
잡혀 죽든지/물속에서 질식해 죽든지
똑같은 결과였다.
결심이 서자마자,
뛰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참으면
몸이 뜬다는 사실을 믿었다.
가방을 안고 눈을 감았다.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떴다.
눈을 뜨기 쉽지 않았다.
살려면 눈을 떠야했다.
억지로 떴다.
공기방울이 위로 떠오르고 있엇다.
빛이 위쪽에서 내려왔다.
내 몸이 서서히 떠 올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머리가 올라왔다.
숨을 쉬었다.
다시 가라앉았다.
몸이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다.
차분하게 생각했다.
숨만 쉬면 살 수 있다.
몸의 힘을 빼자.
몸이 떠 올랐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호흡을 멈췄다.
강물을 따라 점점 빨리 떠 내려갔다.
계속 떠내려갈 지
숲속으로 들어가 걸을 지를 결정해야 했다.
급류에 휘말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강은 헬리콥터 수색을 통해 발각이 쉬울 것 같았다.
강가쪽으로 손을 저었다.
몸이 강 기슭쪽으로 움직였다.
나무가지를 잡았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흙 위로 올라왔다.
흙을 밟았으나
길이 없었다.
우선은 나무가지를 헤치며 무작정 걸었다.
느낌상 서쪽으로 가면 될 것 같았다.
탈출한지 1시간 정도 지났다.
점심시간에서 1시간 지났다면 몇신지 생각해봤다.
정신이 멍했다.
순간, 가방속 금부치에 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를 꺼냈다.
두시 삼십분.
해를 따라가면, 대충 남서쪽일 것 같았다.
해를 따라 이동했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두시간을 걸었다.
계속 똑같은 나무들만 보였다.
이젠, 내가 탈출한 것을 알고
수색작업이 시작 되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헬기는 아직 없었다.
걷다가
결국 지쳤다.
나무에 기대고 앉았다.
대입 재수에 성공하고
나는 교회 청년회에 참석했다.
청년회에서는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나를 비롯한 신입생 네명이 신청했다.
등반팀은 기존 청년 여덟명, 신입 네명
총 열 두명이었다.
열두명 가운데 여자는 단 두명.
그 중 한명이 한때 내가 마음에 두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라고 해 봐야 나와 두살 차이 나는 누나였다.
그 누나는 늘 쾌활했다.
거의 남자에 가까웠다.
전공도 사회체육이었다.
교회에서 미래의 며느리감 1순위였다.
고등학생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싹싹하게 사람대하는 법을 익혔고,
상대방의 마음을 금방 읽었다.
내가 고등부 학생회장을 하며,
힘들어 할때마다
어깨를 토닥여 주던 소중한 누나였다.
연예인으로 보면,
런닝맨의 송지효 같은 이미지였다.
분위기 메이커였다.
누나는 내가 고 3때,
고등부 담당 선생님을 하여
나와 더욱 가까워 졌다.
재수가 끝나고 선생님과 누나중
어떤 호칭을 써야할 지 헷갈렸다.
청년부 등산팀은
세개조로 나누어졌다.
공격조 : 텐트를 짊어지고 본조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숙영지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기다린다. 나와 누나를 포함한 네명이 자원했다. 나머지는 체대 입시를 끝낸 남자 둘이었다. 결국 공격조는 나와 체대생 3명으로 이루어졌다.
본조 : 다른 여자회원 한명. 비실비실한 청년 두명. 가이드 한명으로 이루어졌다. 본조는 가이드 이외에 베낭을 매지 않았다. 동네 마실 다녀오는 복장으로 등반 했다.
후방지원조 : 예비역 형님들로 이루어졌다. 본조가 뒤처지지 않도록 압박을 했다. 본조의 짐을 운반했다. 비상시 먼거리를 왕복하며 보급을 맡았다.
밤새 달린 기차가 구례역에 멈춰섰다.
청년부 등산팀은 졸린 눈을 비비고 버스를 탔다.
화엄사에 내렸다.
이제 시작이었다.
공격조 네명은 키보다도 높은 텐트를 짊어지고
손바닥을 모아 화이팅 했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올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뛰기시작했다.
할만 했다.
누나는 페이스 조절 잘 하라는 말을 남기고 앞서나갔다.
나는 누나에게 지기 싫었다.
나이도 내가 두살이나 어리고, 나는 남자 아닌가.
달렸다.
노고단에서 기념사진도 안 찍었다.
달렸다.
달렸다.
그런데, 쓰러졌다.
한번 쓰러지고 나니 일어설 수 없었다.
정말 그러기 싫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어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체대입시본 동생이 돌아와 내 텐트를 짊어졌다.
나는 조금 걷다가
또 주저 앉았다.
지나가던 어르신이
딱해 보였는지,
내게 막걸리를 따라주셨다.
조금 힘이 났다.
그 동생은 내 텐트를 짊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걸어 올라가다
다시 또 한참을 앉아있다.
누나가 위에서 내려왔다.
나는 누나를 보고 벌떡 일어섰다.
"괜찮아...누구나 처음엔 다 그래...페이스 조절 잘하면 곧 나아질 거야, 힘내자."
결국, 나 때문에 공격조의 첫날 공격목표 세석은 포기하기로 했다.
누나가 빠른 판단을 내려 뱀사골에 첫 숙영지를 만들었다.
내가 뱀사골에 갔을땐, 이미 텐트까지 다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미웠다.
절둑거리는 다리가 미웠다.
누나에게 창피했다.
한참 뒤에 본조와 후방지원조가 올라왔다.
모두 식사 준비를 해서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다들 왜 더 안가고,
일찍 텐트를 쳤는 지 한마디씩 했다.
나는 아무말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텐트로 들어와
혼자 누워 있었다.
청년부들은 밥을 먹고 한참을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나 혼자 있는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텐트를 잠갔다.
"왜 혼자 있어?"
"죄송해요. 나때문에"
"괜찮대도...처음엔 다 그래...산에선 예상 못한 일이 생기거든."
"그래도 미안해요."
"근데...너 왜 그렇게 무리해서 뛰었어?"
"글쎄요..."
"나한테 잘보일려고?"
"......"
"너 나 좋아하니?"
"그런거 같아요."
"으이구, 귀여운 녀석."
누나는 내 볼을 감쌌다.
손이 차가웠다.
"산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고...했지..."
누나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누나의 입술이 내게 닿았다.
볼은 차가웠지만, 입술은 뜨거웠다.
"키스 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