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
티비에서 미국 국가가 흘러나왔다.
영상이 감동적이었다.
자긍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고 퀄리티 영상.
역시 영상제작은 미국이 맛집이었다.
특히 마지막 가사에서는
미국인이 아닌
내 두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자유의 땅....용감한 자의 고향 위에 성조기는 휘날린다."
자유와 용기.
수백년전
오늘의 나를 위해
쓰여진 가사였다.
알고보니
그날은 한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티비에는
한해를 돌아보며
미국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미국뽕이 철철 흐르는 행복 영상들이
연달아 흘러 나왔다.
미국 국가가 자주 연주되고,
사람들은 합창을 했다.
시간이 어느덧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새해를 기념하러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낮은 광장엔 낮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점점 모여들었다.
높은 광장엔 높은 사람들이 의전을 위해
속속 도착했다.
주지사, 시장, 상원의원, 하원의원, 검찰총장 등등이 좋은 차에서 내려 서로 악수하고 포옹을 하고 있었다.
그때, 흑인 여자 가수가 마이크 앞에서 Auld Lang Syne을 부르기 시작했다.
광장의 사람들도
높은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도
일제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전광판에는 흑인 여자 가수와 각 정치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광장엔
지난해를 보내는 작별의 노래가 가득했다.
노래가 잦아들었을때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광장의 사람들도 카운트 다운을 따라했다.
일제히 외치는 숫자 소리만 들렸다.
10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
폭죽이 터지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얼싸 안고 새해를 축하했다.
폭죽은 계속 하늘을 수 놓았다.
전광판에선 전자음의 빠른 비트에 맞춘 익살스런 영상들이 나왔다.
새해를 축하하는 그래픽 아트가 어지럽게 티비 영상을 채웠다..
티비는 다시 광장의 사람들을 비쳤다.
사람들은 폭죽과 음악소리를 배경으로
새해를 즐기고 있었다.
간간히 키스하고 있는 청춘 남녀를 비추었다.
카메라가 그들을 찍는지 눈치챈 연인들은 두손을 입에 모으고 카메라에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평화로운 새해 맞이였다.
새해를 향한 희망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때,
방송사고가 났다.
티비에 화면 조정 영상이 떴다.
선진국 미국도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다.
화면 조정이 1분간 지속되었다.
속보라는 자막이 떴다.
화면에 변호사 미셸이 나왔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단독샷을 받고 있었다.
"No more corruption. We have to change the history of united states of America..."
미셸의 표정은 단호했다.
미셸은 종이에 프린트된 명단을 카메라에 비추었다.
미셸은 교도소장에게 뇌물을 받았던 사람들의 명단을
차례차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보조 화면엔 그들이 금괴를 받는 사진이 이름과 함께 떠올랐다.
높은 광장에 있던 모든 정치인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체널을 바꾸었다.
광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NO CORRUPTION!!!"
광장의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높은 광장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점점 불어났다.
높은 광장에 있던 정치인들의 보자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정치인들의 귀에 대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느새 군중들은 그들을 둘러쌌다.
"NO CORRUPTION!!"
"RESIGN RIGHT NOW!!"
"GO TO JAIL!!"
군중들은 어느새 구호를 만들어 외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박스를 찢어 구호를 쓰고 있었다.
헬기가 비추는 광장은
작은 점점들이
자석을 향해 질주하는 철가루처럼
높은 광장을 향해 모여가고 있었다.
채널을 돌렸다.
모든 채널이 정규방송과, 새해 축하쇼를 멈추고
뇌물 사건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미셸의 얼굴만 보였다.
ABC뉴스엔 유빈의 얼굴이 보였다.
각종 도표를 정리하며 뇌물 유착관계, 비리, 검찰 경찰의 사건 조작등을 설명했다.
당당한 표정과 논리적인 언변이
정말 기자 같았다.
유빈이 한참 설명하고 있을 때,
또 속보가 떴다.
미셸이 일차 발표를 마쳤다.
발표장엔
미셀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은 곧
"Our Sanator Michelle~~"
이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미셸은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어
로버트를 소개 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로버트는
잠시 입을 다물고 눈빛을 반짝였다.
이내
검찰의 내부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이 끝날 때 마다,
사람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마이클은
파일과 사진들을 카메라에 보여주었다.
티비에는
한박자 늦게
그 사진들이 확대되어 비쳤다.
로버트는 막힘 없이 또박또박
검찰의 비리들을 폭로했다.
경찰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변호사 선임을 방해하고,
인권을 유린한 경찰, 검찰, 교도소의
연결고리를
단호한 어조로
폭로했다.
나는 채널을 계속 돌려보았다.
전국채널, 캘리포니아 채널, 엘에이 채널 할 것 없이
모든 채널에 미셸, 로버트, 유빈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미국 역사의 한 가운데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왜 흐르는지는 몰랐다.
뿌듯함인지.
내가 인생을 힘들게 사는 것에 대한
슬픔인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티비의 소음을 배경으로,
한동안 머릿속이 완전히 블랙 아웃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티비에서는 여전히
속보가 흘러나왔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쪽을 돌아 봤다.
키 큰 남자가 수트를 입고,
혜인이와 함께 서있었다.
혜인이는
울기 시작했다.
그 예쁜 얼굴이
못생겨 졌다.
혜인이는 내게 달려왔다.
나도 달려갔다.
서로 끌어안았다.
혜인이의 체취를 맡으며
나는 혜인이를 놓지 않았다.
그대로 껴안고
죽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꿈이라도 절대 안 놓을 거라 다짐했다.
사실 나는,
무엇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혜인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기만 했다.
혜인이의 얼굴엔
폭포수처럼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밥은 먹었어? 배 안고파?"
"......"
혜인이는 대답없이 울기만 했다.
나도 같이 울었다.
혜인이를 데려온 키큰 남자는 돌아갔다.
나는 혜인이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줬다.
내가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
혜인이는 나를 붙잡았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같이 있어달라는 표시 같았다.
나는 혜인이의 손을 잡고 누웠다.
혜인이는 안심을 한듯
눈을 감았다.
혜인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마음에 걸렸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으면,
말을 못할까 생각했다.
미안하고 슬펐다.
나는 한참을 찡그린 얼굴로
누워있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는 혜인이의 손을 놓지 않고
잠이 들었다.
티비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데모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경찰들은
출동 했으나
손을 놓고 있었다.
화면에 미셸의 모습이 나왔다.
미셸이 쉰 목소리로
연설하고 있었다.
"Change the history...No corruption..."
데모대는 미셸의 연설에 환호했다.
미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 기세라면, 상원의원이 아니라 대통령까지 할 것 같았다.
각 방송사마다,
예상되는 상원의원과 검찰총장의 후보군을 발표했다.
미셸과 로버트가 독보적이었다.
둘다 지지도 80 퍼센트가 넘었다.
그대로 11개월만 탈 없이 유지하면
당선이 확실했다.
아침에도 모든 방송에서
스캔들을 다루고 있었다.
ABC 뉴스에선 초췌한 유빈의 모습이 계속 나왔다.
다른 뉴스들은
유빈의보도룰 자료영상으로 쓰고 있었다.
유빈의 영상 뒤로 각 방송사의 후속보도를 덧붙였다.
몇몇 주의원은 이미 사임을 발표했다.
거물인 하원의원 두명이 정치은퇴를 선언했다.
"죄송합니다. 법의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인터뷰가
각 방송사 별로 반복되어 나왔다.
검찰총장에 대한 recall 요구도 시작되었다.
뉴스 프로그램에 턱수염을 길게 기른 대학교수가 해설자로 나왔다.
법무장관을 겸직하는 현 검찰총장에 대한 recall petition 현황을 설명했다.
지난 선거 유권자의 12퍼센트가 청원에 동의하면,
recall 투표가 성립되고,
찬반 투표를 통해 과반이 넘으면,
검찰총장을 탄핵 할 수 있다고 했다.
20퍼센트의 주의회 의원이 찬성해도
recall 투표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턱수염 교수는 자기가 갖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각 카운티별로 하루만에 5퍼센트가 넘는 동의서가 모였고,
전체적으로 2백만장 이상의 동의서가 모인 걸로 안다고 했다.
아마도, 주의회가 발빠르게 검찰총장 탄핵을 의결할 것이라고 했다.
바로 뉴스에 속보가 나왔다.
주의회가 소집되었고,
의원들은
주 법무부장관 겸 검찰총장의 Recall Ballot을 통과 시켰다고 했다.
표결 전 의원들은 사전 인터뷰에서
미국이 썩어가는걸 그냥 둘 수 없다며,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