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55
수색팀과 나는
소장의 컴퓨터와 백업하드 1개만 들고,
철수 할 수 밖에 없었다.
교도소장에게 뇌물을 받은 정치인들이
하나 둘씩 체포되었다.
티비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검찰, 경찰의 비리에 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탔다.
현직 경찰과 검찰들이 체포되었다.
또, 그들과 검은 거래를 한 민간인들도 체포되었다.
그 체포되는 민간인 중에
호텔 지배인
선미의 얼굴도 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급하게 경찰서로 들어갔다.
나는
정신이 아득했다.
어떻게
선미가
나에게 그럴 수가.
다음 뉴스에도 체포에 대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나는 거기서 부르스를 봤다.
부르스도 그 어두운 카르텔 안에 있었다.
부르스는 기자들 앞에서
모든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자기는 음모에 걸려들었고,
자기는 끝까지 싸울 것이며,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마치 대통령이 대 국민 성명을 발표하듯이
말 했다.
그때,
어떤 여자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You raped me at 13!!! Shame on you!!!"
그 백인 여자는 부르스에게 계란을 던졌다.
기자와 카메라들이 그 여자에게 모여들었다.
"He raped me...raped only 13 year old girl."
줄리아였다.
기자들은 줄리아의 사연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었다.
줄리아가 사연을 이야기 하는동안
기자 회견하듯
기자들은 줄리아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줄리아는 치고 들어오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져도,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답변해 주었다.
모든 기자들이 줄리아 옆으로 모여들었을 때,
홀로 남은 부르스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고
경찰서 안으로 사라졌다.
여전히
엘에이는 혼돈 속이었다.
데모는 지속되고
많은 정치인들이 사임하고,
체포되었다.
데모행렬은
주지사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뇌물 사건의 핵심 인물인
교도소장의 행방은
아직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단 한번,
교도소장에서
해임되었다는
짧은 뉴스만 있을 뿐이었다.
"혜인이 뭐 좀 먹을래?"
혜인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커피 내려 줄까?"
혜인이는 종이에 글씨를 썼다.
[안아줘]
나는 침대로 가 혜인이를 안았다.
혜인이는 나를 더 세게 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한참동안 나를 안고 있다가
손을 놓았다.
혜인이가 종이에 무언가 썼다.
[고마워]
"너 왜 그래... 고맙긴."
혜인이는 선반을 손으로 가리켰다.
선반에는 넓은 봉투가 있었다.
나는 그 봉투를 집어 혜인이에게 건넸다.
봉투는 풀로 붙여져 있었다.
[한국에 갈 때까지 뜯어보지마]
혜인이가 메모지에 꼼꼼하게 눌러 썼다.
"뭔데?"
혜인이는 힘없이 내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얼굴 근육을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다.
"알았어...피곤해 보이는 데 쉬어."
혜인이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혜인이는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미셸과 로버트, 유빈이 다시 집에 모였다.
로버트는 몇가지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선 내 은행계좌의 거래정지가 풀렸다고 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정부에서 보상금이 나왔다고 했다.
혜인과 내가 감옥에서 억울하게 고생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다.
원하면 재판을 통해 돈으로 더 보상받을 수 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법무부에서는 이번에 밝혀진 억울한 케이스들에 대해
재판 전 미리 특별 보상해 주기로 했다고 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재판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다시 덧 붙였다.
로버트는 혜인이와 내 이름이 쓰여진 수표를 주었다.
각각 $100,000이었다.
나는 그 금액이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일단 받아두었다.
또, 로버트는 압수되었던 물품이라며 박스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휴대폰 지갑 여권 등이 있었다.
여권을 열어보니 비자 만기가 가까웠다.
로버트는 그 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비행기 티켓을 주었다.
탑승 날짜는 그 다음 날이었다.
로버트는 나를 안아 주었다.
미셸도 나를 안아 주었다.
유빈도 나를 안아 주었다.
로버트는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와서 공항까지 데려다 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침에 은행에 들러 돈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로버트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공항 가기 전에 월셔가에 있는 아무 은행이나 들러 수표를 디파짓 하라고 했다.
이제 캘리포니아의 영웅 세명과 이별할 시간이었다.
그때,
티비에서 속보가 나왔다.
전 교도소장이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목을 매 자살했다는 뉴스와 함께
파스텔로 그린 참고 장면이 나왔다.
미셸과 로버트, 유빈은 놀랍게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셋은
티비에 눈길 한번 주고는
차례로 내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집을 나갔다.
다음날 아침,
로버트가 말한 대로,
한 정장 입은 백인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혜인이와 나는 그가 안내 하는 대로 차에 탔다.
검은색 밴이었다.
방탄이 되는 특수 차량 같았다.
차안에서 기다리던 요원 두명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밴은 금방 월셔가에 도착했다.
나는 이전에 부르스와 함께 방문했던 은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혜인과 나는 리셉션 데스크에 갔다.
나는 수표를 디파짓하고 한국으로 송금하고 싶다고 했다.
직원은 우리를 전에 들어갔던 방으로 안내 했다.
이전에 내 상속금을 처리해 주었던
그 코끼리 매니져가 몸을 좌우로 돌리며 힘겹게 들어왔다.
숨을 헐떡 거렸다.
혜인이가 메모지에 뭔가를 썼다.
[내것도 네 계좌로 송금해]
"알았어."
은행 업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은행을 나와 다시 밴을 탔다.
밴은 공항에 멈췄다.
요원 두명이
우리의 짐을 들고 동행했다.
우리는 특별한 통로를 통해
비행기에 우선 탑승했다.
좌석은 퍼스트 클래스였다.
요원들은 우리에게 행운을 빌고 비행기를 내려갔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캘리포니아가 비행기 아래로 보였다.
나는 잠이 들었다.
"일어나. 아 어서 일어나..."
나는 눈을 떴다.
전에 만났던 검은 갓, 검은 도포, 검은 지팡이였다.
"이번엔 정말로 데려간다."
"무슨 말이세요?"
"저번에 한번 기회를 줬잖아."
"전 가기 싫어요."
"멍청하긴. 기회를 줬는데...그래 바뀐게 있던가?"
"......"
"네가 이전과 달라진 게 있어? 없을 걸."
"돈이 많아 졌어요"
"미련한 것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넌 나랑 같이 가야 하는데...돈이 무슨 소용이야. 쯔쯔"
"전 안가요. 아직 제대로 행복해본 적이 없어요."
"원래 그런거야. 너만 특별히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마."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배우고 믿었어요."
"잘못 배운거야...인생의 목적은 없어 그냥 살다 가는거야...시간 끌지 말고 가자."
"싫어요...제발 절 놔주세요...전 더 살아야 되요..."
"고집 참 세네...똑같다니까...내가 한번 기횔 줬잖아...널 봐봐 똑같잖아."
"다시 기횔 주세요. 내가 전과 다르다는 걸 보여줄게요."
"안 바뀌어...사람은 안바뀌어..."
"제발요. 전 더 살아야 해요..."
"너 후회하지 마...난 너에게 충분히 기횔 줬어..."
"후회 안해요...제발..."
검은색은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먼 비행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희 비행기는 곧 인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혜인이가 보였다.
"혜인아 인제 한국이다...고생 많았어..."
혜인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싸한 기분이 들었다.
"혜인아 이제 우리 한국에 내린다..."
"......"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혜인이에게 다가 갔다.
손이 찼다.
입술이 파랬다.
"여기요!!! 심정지에요. 여기 도와주세요!!!"
승무원들이 달려왔다.
혜인이를 바닥에 눕히고
제세동기를 혜인이의 가슴에 부착했다.
파워버튼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다시 충전되길 기다려,
파워 버튼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는 미끄러져 공항 건물쪽으로 움직였다.
엠블런스 불빛이 보였다.
비행기가 멈췄다.
구급 요원들이 비행기로 뛰어들어 왔다.
혜인이를 구급차로 옮겼다.
나도 구급차에 같이 탔다.
구급차는 공항을 나와 영종대교를 건넜다.
인천의 한 종합병원으로 들어갔다.
응급실 수련의가 달려나왔다.
베드에 혜인이를 옮겼다,
내 손에 스치는 혜인이의 몸은
단단한 나무 덩어리 같았다.
난
더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천천히 짐을 챙겨,
응급실로 들어갔다.
아까 본 수련의가
나를 보자 마자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사망하셨습니다."
"......"
나는 머리 속이 차분해졌다.
혜인이 가족을 찾아야 했다.
나는 응급실을 나와
택시를 탔다.
"제일 가까운 파출소요."
택시기사가 룸미러로 나를 훔쳐봤다.
"설마...무슨 자수 하러 가시는건 아니죠?"
기사가 농담을 던지고 나를 다시 룸미러로 봤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파출소에 도착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방금 입국했는데, 동행자가 사망했습니다. 가족을 수소문 하고 싶은데, 도와주실수 있나요?"
나는 혜인이의 여권과 내 여권을 경찰에게 내밀었다.
"지금 ㅇㅇ병원 응급실에 있습니다."
경찰은 컴퓨터를 들여다 봤다.
"전산상에는 가족이 없는 걸로 나옵니다."
23년전 혜인이는 내게 가족 이야길 한 적이 없었다.
다시 만난 혜인이도 내게 가족 이야길 한 적이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여권을 받아 파출소를 나왔다.
인천의 한 복판에서
나는 목 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