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64
"내가 패션쪽에서 일하잖아. 그래서 모델들을 많이 아는데...실제로 약하는 애들이 많거든....그 애들이 경찰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어떻게 되는데..."
"공짜로 돌림빵 당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어린 모델 애들이 돈이 있겠어? 스폰이 있는 애들은 다르겠지만. 독고 다이로 뛰는 애들은 변호사 살 돈이 없어...그러면 능구렁이 같은 경찰들이 살살 구슬리지...없었던 걸로 해 줄테니까 자기가 원하는 걸 해 달라고..."
"성상납?"
"경찰은 혼자만 하는게 아니라...만만하다 싶은애 찍으면 아주 돌림빵을 놓는다. 그러다 누가 찔러서 조사 받으면 뭐 연인사이였다 뭐 상호 협의하에 한거다 그러지. 마약 얘기는 지들도 찔리는게 있어서 못하고."
"아 그런 일이 있구나...그런게 왜 신문 방송에 안 나왔을까?"
"어이쿠야...임마 그런게 전부 뉴스에 나왔으면, 한국은 뒤집혀서 나라가 망해도 몇번을 망했어...뉴스 내 보네는 애들은 뇌가 없냐...괜히 그런거 내 보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지...물론 가끔 내 보낼때가 있어 경찰이나 권력기관한테 한바탕 곤욕을 치루거나 망신을 당했을 때 화풀이로 내 보내는 데...그것도 오래 안가 한 두번 방송하고 끝이야. 저널리즘이 무슨 자선사업을 위한 이념인줄 아니? 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돈에 따라 움직이는 게 저널리즘의 실체야...알 만큼 아는 애가 그런거도 모르냐?"
"아 그렇구나...내가 사실 세상물정을 몰라서....사실 헛 똑똑이야."
"넌 그런거 같아. 너한텐 미안하지만...그 옛날 여관에서 있었던 일만 해도 그래...바보같이 화장실에 숨어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바로 나와서 짐 싸들고 나와 가든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따지든지 그래야지. 아마 그걸로 미루어 보건데 넌 평생 그렇게 도망치며 살았을 거야. 누구랑 대항해서 싸운적 없이."
"맞아. 사실 그래. 내 인생을 돌아보면 답답하다."
내가 찌질이 모드로 변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이
시한폭탄은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너 약 좀 사보고 싶다고? 사람 소개 시켜줘?"
"응. 찔끔 찔끔 하기 귀찮아서..한번에 많이 사려고."
"너 정말 경찰 만난적 없어? 나 걔네들한테 돌림빵 당하기 싫어..."
"......"
"아깐 거짓말 해서 미안한데...너 마신 콜라에 히로뽕 들어있어. 메스암페타민. 그래도 그거 비싼거야...순도 높은 에이급으로 샀어."
"네가 물건 받는 사람이 있어?"
"요즘 받는 물건이 북한에서 오는데...내가 탈북한 언니를 알거든."
"그 언니를 어떻게 만나?"
"내가 연락처 줄게. 그 언니도 연락처를 자주 바꿔서 그때 그때 마다 확인 해야돼. 너 얼마나 산다고 그랬지?"
"한 열번할 정도?"
"그러면 차라리 1그램짜리 봉지를 사. 쓰는 돈은 똑같은데 세배 많이 살 수 있어. 이게 보통 1회용으로 0.03그램씩 팔거든 그게 10만원에서 15만원 해. 근데 1그램 사면 100만원에서 120만원 하거든."
"그래 그럼 1그램 사는게 낫겠다. 지금 연락해 줄 수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시한폭탄은 가방에서 종이쪽지들을 여러개 들추어 보고 있었다.
"이거다."
시한폭탄은 쪽지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다.
전화 연결이 안 되었다.
"언니가 바쁜가 보다. 조금 있다 다시 걸어보자."
시한 폭탄은 전화기를 가방에 넣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너 나랑 하고 싶었냐?"
나는 대답하지 않앗다.
그때 예진이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예진이의 눈은 늑대의 눈처럼 풀려 있었다.
예진이는 옷을 벗었다.
이전보다 더 말랐다.
큰 키에 갈비뼈가 추워 보였다.
예진이도 침대에 드러누웠다.
나는 갈증이 몰려왔다.
시한폭탄이 준 콜라를 더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벌써부터 뇌에 이상 신호가 오고 있엇다.
중독이 되면
헤어날 자신이 없었다.
예진이가 죽은 시체처럼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시한폭탄이 몸을 굴려
가방속 전화기를 꺼냈다.
"예 언니 전화 했어요.'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말 소리가 들렸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북한 사투리인지 연변 사투리인지
억센 억양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애가 그램 단위로 산다는대 물건 있어요?"
"내 확실해요 내가 보증할게요"
"몇시요? 아홉시요?"
"그럼 언니 번호 알려줘도 돼요?"
"언니 내가 소개 해 주는데 뭐 없어요?"
"그래요? 고마워요...언니는 천사야. 그래 알았어요."
시한폭탄은 전화를 끊었다.
"이 언니가 의심이 엄청 많은데. 내가 보증한다니까 널 만나겠대."
"어디에서?"
"언니가 홍대 근처에 사는데 그리로 오래. 아홉시에"
"연락을 어떻게 하지?"
"네 번호 주었으니까 언니가 너한테 전화 할 거야."
"지금이 여섯시네. 여기서 여덟시쯤 나가면 되겠다."
"여기서 홍대 얼마 안 멀어. 택시타면 10분 밖에 안 걸려."
"그럼 여덟시 반에 나가면 되겠네."
"그래 우리 시간 많다.. 심심한데 우리 오랜만에 사랑한번 해볼까?"
"사랑?"
시한폭탄이 나를 침대 위로 밀쳤다.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나 물좀 마시고 하면 안 될까?"
"우리 물 없는데...저 콜라 마셔..."
나는 시한폭탄이 주는 콜라를 마시다가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사실 내 몸은 콜라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건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자살 행위였다.
나는 신선한 물을 마셔야 된다고
되세기고 되세겼다.
"나 밖에 나가서 물 사올게."
"너 이곳 지리 알아? 물 사려면 한 참 가야돼. 그냥 콜라 마시지..."
"아니야 나 약 먹을 것도 있고..."
"그럼 여기 나가서 큰길따라 한 오분 걸으면 제일 가까운 편의점 있어. 편의점에서 담배좀 사다 줄래?"
"어떤거?"
"말보루 한 보루~"
"알았어."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몰라서 오른쪽으로 걸었다.
"반대쪽으로 가야됩니다."
귓속에서 말이 들렸다.
나는 발걸음을 반대로 돌렸다.
시한폭탄의 말대로 오분쯤 걸으니 편의점이 보였다.
삼다수 2리터 병을 세개 샀다.
말보루 한보루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와 쵸콜렛을 샀다.
혹시 필요할 지 몰라
콘돔도 한 박스 샀다.
물병과 봉지를 들고
건물로 돌아왔다.
철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바닥에 앉아 물병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바닥에 앉아 먹을 것을 고르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문 뒤에서
시한폭탄이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시한폭탄은 비실거리며
침대로 가서 쓰러졌다.
"여기 담배 사왔어..."
"응 고마워 거기 놔둬."
"군것질 거리 좀 사왔는데 먹을래?"
"아니...그냥 거기 둬..."
나는 테이블 위에 편의점 봉지를 놓고
물을 다시 마셨다.
테이블에 있던 콜라는 없어지고 빈잔만 남았다.
아마 시한폭탄이 마신 것 같았다.
시한폭탄이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빠 이리 오세요...저희랑 놀아요...나 왜 이렇게 몸이 뜨거운지 모르겠네"
예진이 내 마음을 아는지
눈을 감고 나를 유혹했다.
잠꼬대일 수 도 있었다.
나는 침대로 가 예진의 다리를 만졌다.
예진의 움직임이 없었다.
약에 너무 취해서인지
예진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일어났다.
"나 그만 갈게."
나는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누워있던 시한폭탄이 나를 봤다.
초점이 풀려있어
쳐다보기 민망했다.
"야 예진이 작은 가방이라도 하나 사주고 가..."
"어 다음에 사줄게. 오늘은 내가 준비가 안 돼서."
"야, 너 카드 있잖아."
"그게 한도가 얼마 안 남았어...다음에 내가 꼭 사줄게."
"야 치사하게...예진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오늘 나 약도 사야되고...미안하다...다음에 꼭 살게...예진아 미안."
"오빠 미워요...다음에 안 볼거야..."
"예진아 미안...다음에 꼭 사줄게..."
나는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한폭탄과 예진이가 불쌍해 보였다.
내가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7시정도 되었다.
나는 미리 홍대쪽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나는 인도 경계석에 앉았다.
"홍대쪽으로 가서 먼저 저녁 먹을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택시탑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택시를 잡아 홍대입구로 갔다.
홍대 입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역 앞에는 한껏 차려입고
머리에 힘을 준 남자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갔다.
돈부리집이 눈에 띄었다.
혼자먹기에도 괜찮은 장소같았다.
들어가 규돈 돈부리를 주문하고 계산했다.
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식당 안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워낙 바쁜 식당이라 그런지
다른 젊은 커플이
내 테이블에 아무렇지도 않게
합석을 했다.
그들은 내게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모르는 척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시한폭탄이었다.
나는 입을 막고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어디야?"
"나 홍대에 왔어."
"그래. 언니가 너 일곱시 반에 전화한대."
"잘 됐네?"
"홍대 어디 있는데...?"
"여기 역에서 가까운 돈부리집에 있어."
"지금 밥 먹고 있어?"
"아니 주문만 했어."
"알았어. 언니 전화 오면 받아."
"응 알았어."
전화하는 사이에 규돈 돈부리가 나왔다.
처음엔 활기차다고 느꼈던
음악들이 좀 시끄럽게 느껴졌다.
밥을 먹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 여자도 합석이겠거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는다기 보다는
밥을 밀어 넣었다.
그때 다시 전화가 왔다.
시한 폭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