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71
"실은 내가 한국 오는 비행기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이 검은 옷 입은 사람을 만났어...왜 전설의 고향에서 갓 쓰고 지팡이들고 그런 사람 있잖아...그때도 그 사람이 내게 물었어...자기랑 같이 가야 한다고 같이 갈거냐고...내가 안간다고 발악을 햇지...그랬더니 그 사람이 누군가 소중한 걸 잃을 거라고 나한테 경고 했거든 그게 바로 혜인이었어."
"뭐라고? 진짜?"
"진짜로 혜인이가 심장마비로 죽었어...나는 그 사실을 누구한테도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이번에 누나가 칼맞고 입원했을 때도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어...내가 자기랑 같이 가지 않으면 네명이 죽을 거라고 했어...우리 병실에서 네명이 죽었잖아."
"진짜? 야 나 무서워진다."
"나도 무서워."
"근데...네명에다가 그 방에서 탈북자 두명이 더 죽었잖아...샘이 틀리네..."
"그래서 방금 꿈에서 그 사람이 네명에다 두명이 더 죽었다라고 내가 더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고."
"뭐야...계산이 틀렸는데 책임이 더 있다는 식으로 짜 맞춘거잖아...거짓부롱 딱 걸렸네...내가 볼때는 잡신이야 잡신...신경쓰지마..."
"그런데 이번에 내가 안가면 또 두명이 죽을 거라고 협박하잖아."
"야 진짜 이상하네... 그사람은 왜 너한테 달라 붙어서 집착을 못 버리냐?"
"너 집안에 큰 원수 진 일 있냐?"
"몰라...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은데..."
"개꿈이야 잊어버려. 네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야. 네 안에 있는 무의식이 만들어 내는 현상일 수도 있어...잠이나 자자."
그때 전화가 울렸다.
새벽 4시에 울리는 전화는 불길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어떡하니...언니가 하은이하고 사고를 당했어."
"어떤 사고를 당했는데요?"
"언니가 운전하던 차가 교통사고가 났어..."
"거기 어딘데요?"
"ㅇㅇ병원이야."
"알았어요. 내가 지금 갈게요."
"......"
수화기 너머로 동생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무슨 일인데?"
"응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 해 줄게...나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내가 같이 가 줄까?"
"아니야 누나 다리도 불편한데 집에서 쉬고 있어."
"그래 그럼 조심히 다녀와. 전화기 들고 있으니까 연락하고."
"문단속 잘하고, 집에 찾아보면 쌀하고 먹을 거 있으니까 그걸로 해먹고 있어."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나는 집을 빠져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계속되는 극한의 상황들에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검은옷이 말한게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몇년 더 살아본들 변활 것이 없는데
나는 왜 삶에 집착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택시기사는 아무말 없이 조용히
운전하고 있었다.
한강물이 차갑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위의 차들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가쁜숨을 내 쉬며
바쁘게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달려 들어갔다.
동생분이 안에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제 언니가 하은이를 데리고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에 다 도착해서 그만...."
동생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하은이하고 사장님은 어디 계세요?"
"지금 둘다 수술 중이야...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계속..."
"교통사고가 어떻게 나 건지는 모르시고요?"
"난 몰라...경찰에서 연락받고 온거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고가 어떻게 난 것인지
시비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교통사고는 경찰이 알아서 판단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사장님과 하은이가 큰 탈 없이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의 부상만 입고
살아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머리에 검은옷이 떠올랐다.
혹시...
두명을 데려간다고 했는데...
가슴팍을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나는 동생분과 초조하게 의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창문 밖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엇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대기실을 걸었다.
속으로 제발 큰 손상 없이 살아나길 기도 하고 있엇다.
동생분은 두손을 모으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검은옷보다 동생분의 기도를 들어주는 하느님이
더 급이 높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낙관적인 기대를 했다.
수술실에서 의사가 나왔다.
표정이 안 좋았다.
가슴이 뜨끔했다.
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동생분에게 걸어갔다.
"07시32분 두분이 동시에 사망했습니다."
동생분이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나는 달려가 동생분을 잡았다.
"정신 차리세요..."
나는 동생분의 몸을 흔들었다.
동생분이 눈을 떴다.
"어떻게 하니...어떻게 해....우리 언니 어떻게 해 우리 하은이 어떻게 해...."
동생분은 바닥에 앉아
오열했다.
나는 옆에 서서
그 오열이 끝나길 기다렸다.
동생분이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 앉았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우선 집에 가서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봐요."
나는 동생분을 부측해서
병원 문을 나섰다.
병원 앞에 줄지어 선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기사는 우리의 침울한 표정을 살피고
절제된 톤으로
행선지를 물어 보았다.
그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천천히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동생분은 여러번
넘어질 뻔 했다.
나는 그때마다 부축을 하며
동생분을 안아 주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찬이는 어디 갔어요?"
"학교 수련회 갔어."
나는 동생분을 부축해서 안방 침대에 눕혔다.
동생분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상의를 벗겼다.
브레이지어가 하얀 속살 위에
얌전히 드러났다.
바지를 벗겼다.
나는 동생분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동생분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도록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했다.
"잠깐만..."
동생분이 나를 불렀다.
나는 뒤돌아 동생분의 머리맡으로 갔다.
동생분이 다시 울먹였다.
"나 인제 어떡하면 좋아..."
"걱정마세요."
나는 동생분을 안심시키기 위해
머리를 안았다.
눈을 감고 있는 동생분이 안쓰러웠다.
손으로 동생분의 볼을 감쌌다.
동생분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감은 눈 위로 입술을 가져갔다.
동생분은 내 목을 안았다.
나는 그녀의 눈꺼플 위에 머물던 내 입술을 코로 움직였다.
코에다 대고
쪽 소리를 만들었다.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는 내 입술을 갈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입술을 허락한 첫번째 남자였다.
첫번째 키스의 짜릿함을 그녀는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키스해줘."
그녀는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천천히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 위로 가져갔다.
한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른 한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너처럼 여자를 아껴주는 여자가 좋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 눈좀 붙여요. 있다가 하찬이 오면 병원에 가서 장례식장 준비해요."
나는 눈을 감았다.
동생분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몸을 안았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랐다.
"하은이랑 할머니는 어디 갔어요?"
언제 방에 들어 왔는지
하찬이가 침대 앞에 와서 물었다.
나는 침대에서 눈을 뜨고
하찬이와 눈이 마주쳤다.
옆을 돌아 봤다.
동생분이 없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둘이 알몸으로 있는 모습을
하찬이에게 보인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방문을 열고 동생분이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온 듯 머리에 수건을 묶고 들어왔다.
"하찬이 왔구나. 수련회는 재미있었어?"
"네 재미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랑 하은이는 어디 갔어요?"
동생분이 어떻게 말 해야 할 지 망설이고 있었다.
동생분은 용기를 내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하찬이가 이제 어른이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차분히 생각해 보자."
"네."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또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잖아."
"네 알아요. 엄마랑 이별했잖아요."
"맞아. 아빠랑도 이별했지."
"네 사람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어요."
"그래 사람은 언제 죽을 지 몰라...하찬이가 잘 아는구나."
"네. 그건 당연한 거에요. 죽으면 지저스 만나러 가잖아요."
"그래..맞아. 그런데 하찬이가 수련회 간 사이에 할머니하고 하은이가 지저스를 만나러 갔어."
"Really?"
"응. I am serious."
"Oh...my..Jesus. Can I see them?"
"I am not sure. Their bodies are broken too nmuch."
"Why?"
"Car accident."
"I see....They will be in Heaven with Jesus."
"그래...그럼 우리 지금 병원에 가 볼까? 마음의 준비 되었니?"
"Yes,I am ready."
동생분은 하찬이를 방으로 데려가서
얼마전에 입었던 상복을 입혔다.
나도 일어나 옷을 입었다.
동생분도 상복으로 갈아 입었다.
동생분과 나 그리고 하찬이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탔다.
동생분이 차를 운전하여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분은 원무과에 들려
사망 확인서를 발급받아
장례식장 사무실로 갔다.
장례식장을 배정 받았다.
3호실
복스러운 번호를 받았다.
사장님은 생전에 번호 3을 좋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사장님은 3 이 복스러운 숫자라고 했다.
내가 특별히 챙길 것은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많은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