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2
증명사진 두장으로
사진 영정 액자를 만들었다.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났다.
나는 상복을 입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 되었다.
남자가 없는 상가에 남자가 있어야 할 것 같기는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상복도 입고 완장도 하는 것으로 했다.
생전에 친구의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다고 하면
미담도 되니
설명하기 수월할 듯 했다.
나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집에 걸어놓은 검은 정장 가지고 여기 병원에 올 수 있어? 이야기가 긴데 내가 여기에서 상주 노릇을 해야 할 것 같아."
"야 이제 누나 심부름도 시키냐?"
"법률적 자문 아니 내 의뢰를 받은 변호인이 되야 할 것 같아,"
"왜? 무슨 사고 쳤냐?"
"아니...이야기가 복잡해서....오면 자세히 설명해 줄게."
"알았어...근데 나 시간 좀 걸릴 수 있다. 컨설팅 하는 업체좀 들렀다 갈게...너 분명히 컨설팅비 대 주는 거다...맞지?"
"그래 알았어....그럼 조심히 들렀다와..."
"거기 무슨 병원이라고 했지?"
"ㅇㅇ병원...장례식장 3호실로 오면 돼."
"알았다."
누나는 전화를 끊었다.
사장님이 죽고 나서
내게는 하찬이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하찬이에 대한 친권문제로
사장님과 사장님의 전 남편은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 판결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장님이 사망하게 되었으므로
하찬이의 친권이
자동적으로 사장님의 전 남편에게 갈 수 있다.
그는 내가 하찬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인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가 하찬이의 할아버지로서
당연히 친권을 가져가고
하찬이의 막대한 상속 재산을 관리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영정 사진 밑으로가
동생분 옆에 앉았다.
"하찬이 할아버지께는 연락했나요?"
"아직 안 했는데...해야겠지?"
"글쎄요... 사장님이야 감정이 안 좋았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하은이는 그래도 손녀인데...연락하는게 맞겠죠?"
"그래. 그런거 같네. 그럼 연락할게."
"근데 너무 서두르지 말고요... 오늘 밤이나 내일 연락하도록 하죠."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
누나의 확실한 법률 자문을 받고 싶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생물학적 아버지인 내가 친권을 가져 가는게 맞고
그렇다면
무효화 될 그와 사장님의 소송을 대신해
내가 소송을 벌이는게 수순인 듯 했다.
사장님이 보살핀다면
굳이 내가 친권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용석의 아버지에게
내 아들을 맡길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까지 어디 어디 연락했나요?"
"거의 연락 안했어...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서..."
"그래도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아니야 괜찮아. 언니는 좋은 대 갔을 것야...그냥 너만 옆에 있으면 괜찮아 이제."
나는 동생분의 말에
어깨가 무거워 졌다.
아직까지 특별히 연락한 곳이 없어
손님들은 오지 않았다.
"하찬이 밥 먹어야 겠다."
"어차피 손님들도 없을텐데 같이 밥 먹도록 하시죠."
"그래 그렇게 하자..하찬아 우리 저쪽으로 가자."
하찬이가 일어나
테이블쪽으로 걸어갔다.
하찬이의 얼굴이
나와 많이 닮았다.
몇달만에 본 하찬이는
한국말 실력이 몰라보게 늘었다.
그리고
더욱더
내 얼굴과 닮아가고 있었다.
하찬이가 이것 저것
음식을 날랐다.
도우미들이 있어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지만
장례식을 치른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아주
익숙한 몸짓으로
움직이는게
내 코끝을 찡하게 했다.
나는 코를 국그릇에 박고
수저를 연신 퍼 올렸다.
나는 상 위에 놓인 밥을 한 그릇 비우고
밥을 한 그릇 더 가져와
먹었다.
요즘들어 허기지면
머리가 어지럽고
피부가 가렵고
알수 없는 짜증이 몰려왔다.
"Can I go?"
"Sure."
동생분과 하찬이가 일어나
영정사진 밑에 앉았다.
나는 혼자 밥을 먹으며
그쪽을 쳐다 봤다.
동생분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흔들어 천천히 먹으라는 사인을 주었다.
하찬이는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만약 하찬이의 보호자가 된다면
나는 하찬이와 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간난아기가 아니므로
손 갈 일은 많지 않겠으나
감정적으로 하찬이를 어떻게 돌볼지는 자신이 없었다.
나 자신부터 이 세상을 올바르게 행복하게 살고 있지 못한데
하찬이에게 줄 가르침이 없었다.
만약 같이 살게 된다면,
특별이 구속하고 싶은 건 없었다.
공부를 하라고 한다든지
운동을 하라고 한다든지
절대로 재촉하는 일도
설득하는 일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좋은 보호자의 덕목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하찬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났다.
만약 내가 보호자로서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빈틈을 보이면
친권은 내 손에 들어 오지 않는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친권을 양보할 수 없다.
왜 이런 상황이 왔을까
혹시 내가 하찬이의 행복한 인생보다
그 아이가 가진 재산에 관심 있는게 아닌가
냉정하게 나를 돌아 봤다.
결론은
재산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찬이의 소중한 재산이 잘 못 관리되는 것은 묵인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이 확고해졌다.
밥을 한 그릇 비웠는데
계속 허기가 졌다.
반찬도 남았고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공기를 하나 더 가져와
남은 반찬들을 싹싹 비웠다.
꼬막을 모두 발라 먹었다.
육개장국을 싹싹 긁어서 바닥에 남은
고사리나물까지 전부 집어 먹었다.
남은 떡을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쫄깃한 떡에서 설탕물이 커져 나왔다.
흑설탕 씹히는 맛이 달았다.
책상정리를 한 듯
밀린 집안 청소를 한 듯
테이블 위에 있는 모든 음식을 깨끗이 먹고
빈 접시와 빈 그릇만 남겼다.
뱃속이 푸근하고
마음이 개운해졌다.
영정사진쪽을 봤다.
하찬이와 동생분이 허공을 응시하면 앉아 있었다.
어린 하찬이에게 할일 없는 고문이었다.
동생분도 덩달아 고문을 받고 있다.
할 수 있다면
장례식을 생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이 장례식 문화도
농경사회에 살던 우리 조상들이
잘 먹자고 만든 이벤트 아닌가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그때
배고픈 사람들이 배를 채우는데
장례식 같이 좋은 게 있었을까
바쁜 농사에 허리가 아파도 쉬지 못하는데
허리를 풀고 먹고 마시는데
장례식같이 좋은 핑게가 있었을까
망자는 장례식에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
장례식에 누가 왔는지 알 턱이 없다.
남아있는 자들이
망자를 핑게 삼아
한번 배부르게 먹고 마실 뿐이다.
지금은 망자의 뜻대로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기도 하고
부조금을 안 받는다고 선언하기도 하고
변형된 장례식의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불과 삼십년전만 해도
병원 장례식장이 아닌
집마당에 텐트를 치고
손님을 맞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밤새 불을 밝히는
시골 동네의 장례는
마을의 잔치이므로
대부분 마을에서
상례용품을 공동으로 관리하기까지 했다.
장례식이란
마을에서 돌아가며
손님을 대접해 먹고 마시는 이벤트였다.
노인들은 때가 되면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죽기 마련이다.
좀 잘 사는 집
노인이 죽기라도 할라치면,
장례식은
동네사람들은 물론
타지에 사는 사람들까지 불러 모으는
큰 이벤트가 된다.
잘사는 집 장례식은
좋은 음식 얻어먹을 기회도 되지만
비지니스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람들은 왠만하면
그 좋은 이벤트를 놓치지 않는다.
뭐하러 힘들게 오셨냐며
상주가 판에 박은 겸양의 인사를 하면
그들은 힘든일에는 꼭 찾아와야지 하며
역시 판에 박은 인사를 한다.
장례식장에는
심지어 안 와도 될 사람이나
짐승까지 찾아온다.
거렁뱅이 거지들에게는
장례식만큼
빈 배를 채우기 위한
좋은 기회가 없다.
그들이 단체로 몰려가 밥을 달라고
상주을 겁박한다.
그들이 상가집에서 실제 난동 부릴 일은 없지만,
상주들이 바빠 자신들을 돌보지 않으면
대문을 두드리고 밥을 내 놓으라고
이벤트장을 시끄럽게 한다.
마치 주총장에 모여 돈 몇만원 뜯어내는
주총꾼들과
비슷하다.
주총꾼들이 주주총회장에서
강짜를 부리지 않는 댓가로
돈에 몇만원을 쥐고
얼른
퇴장해야
주총장이 편안해 진다.
그들이 안 왔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감이
주총장을 불편하게 만든다.
거렁뱅이들도 똑같다.
얼른 그들이 지나가야
마음 놓고
다른 손님 대접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상주는 그들을 홀대 하지 않았다.
뜨거운 밥을 놓아
얼른 먹고 가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심을 잃지 않는 길이고
망자 체면이 깍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가집에 사람들이 북적이면
동네 개들 마저 번갈아 가며 상가집을 얼씬 거렸다.
냄새 잘 맞는 이 동물들은
바닥에 떨어지는 음식물을 찾아
포식을 했다.
상가구
상갓집의 개
역사에 유명한 상가구가 있다.
이하응
바로 흥선대원군의 별명이 상가구였다.
권문세가의 등쌀에
왕족들의 생명마저 위태로웠던 시절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그가 일부러 상가집 개 인척 연극한 것이라 하긴 하는데,
그만큼
상갓집의 개란
술이나 밥을 얻어 먹는
비루한 존재요,
상가집에선 늘 있어야 하는
구성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