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73 (73/105)



〈 73화 〉73

상가집을 찾은 손님들은


귀한 술을 마음껏 마시고

음식도 실컷 먹고

마음대로 소리도 지르고

할  있으면 노름도 하며


이벤트를 즐긴다.

배고프거나

할일 없어


심심한 사람에게는


상가집만큼 놀고 먹기 좋은 기회가 없다.



상주를 바쁘게 만들어

슬픔을 잊게 해 준다는 구실로

음식과 술을 줄기차게 요구해도

상가집에선  음식을 퍼 나른다.


귀찮아도


찡그리지 않는다.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네에서

인심이 야박하다는 소릴 들으면


부자집 지주일 지언정


살아가기 곤란하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장례식은 성대히 치르게 된다.


덕분에 동네 사람들이며

손님들은

거의 공짜로


먹고 즐겼다.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고도의 산업사회가 되었어도


 장례식의 풍속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먹고 살기 풍족한 요즘은


거렁뱅이 거지들이 꼬이지 않는다.


상가구도 없다.


밤새 먹고 마시며


떠드는 일도 없다.

상주와 친한 사이 아니고는

대부분 밥만 먹고 바로 일어난다.

게다가


현대인들은

우리는 인심 잃으면 살아가기 힘든


시골동네에 살지 않는다.

옆집 이웃에게도 장례식을 알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고장을 잘못 돌리면


욕먹는다.



어떤 경찰이 숙부를 친부라 속여 부고장을 돌렸다고


동료 공무원들이 난리가 났다.


관리자들은


사기 부고장이라며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시킨 죄를 물어


징계를 한다고 한다.


사기 부고장을 돌린 당사자는


조실한 친부대신


숙부가 친부 역할을 해왔기에


떳떳하다고 맞섰다.



이런 해프닝에서


요즘 현대인들이

장례식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배를 골치 않는 현대인들은

상가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지니스에 중요한 사람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상가집은


인기가 없다.


상가집의 초점은

고인의 명복으르 비는데 있지 않고

부조금의 대차대조표에 있다.



요즘 왠만큼 사회생활  한다는 사람들은

컴퓨터 하드에


부조금 대차 대죠표를 갖고 있다.



이벤트를 치루고 받은 부조금은


부채란에 기록하고


이벤트에 다녀온 뒤 전달한 부조금은

자산란에 기록해 둔다.


자산과 부채가


서로 상계  때 까지

수시로 대차 대조표를 열어 본다.


이젠 거창한 장례식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ㄷ.



누구를 위한 장례식인가


진정 망자를 위한 것인가


상조회사를 위한 것인가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병원을 위한 것인가



죄인 마냥 장례식장에 갇힌


하찬이와 동생분을 보고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특별히 올 손님도 없는데

동생분과 하찬이가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장례식을 생략하고


셋이서 고인들을 추모한 뒤


바로 화장터로 직행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전개해 가는데


누나가


어느새


내 앞에 앉았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컨설팅 하는데 들러 봤는데...이놈들이 아무리 봐도 수상해...말하는게 헛점 투성이라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어...뭐 그리 돈은 밝히는지...선거 출마 그거 아무나 하는게 아닌거 같아....좀 더 생각해 봐야 겠어."


"그래도 기왕 기회가 왔을때 또 열정이 있을  해야하지 않겠어요?"


"열정 좋지...원래  판이 돈 놓고 돈 먹기 판이라는  알았지만, 점점 내 성질하고는 안 맞는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아...네...누나 먼저 고인에게 인사하고 식사하시죠."


"그래...근데 어쩌다가 할머니하고 손녀가 저리 되었을까...마음이 안 좋네...나 그럼 저쪽에 다녀올게."



누나는 일어나 영정 사진 앞으로 갔다.

고인에게 절을 하고 향을 피웠다.


동생분와 맞절을 하고


잠시 애도의 인사를 했다.




누나는 금방 테이블로 건너왔다.

나는 쟁반에 반찬과 밥을 챙겨

테이블에 놓았다.

육개장 그릇을 누나 앞에 내려 놓았다.




누나는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상가집 육개장이  더 맛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경쟁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대상으로 장사하니 원가를 줄여 많이 남기고 싶겠죠..."


"어느 병원이나 장례식장 음식은 맛이 없어...네 말이 맞는  같아 독점에다가 소비자는 그런거 따질 겨를 도 없고. 장례식장이  괜찮은 장사네."


"출마 안 하시고...장례식 사업권 알아보실래요?"


"근데...앞으로의 사업전망은 안 좋을 거 같아...사람들이 점점 이모티콘으로 부고장 보내고 전자페이로 부조금 보내고 젊은 사람들은 점점 장례식장에 안 가잖아...결혼식장에도 점점  가고..."

"그런가요?"

"그럼. 이제 결혼 안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니까...남 결혼 하는데 가서 굳이 돌려받지도 못할 부조금 내고 싶겠어? 어떤 여자는 자기가 결혼 안하기로 마음 먹고 비혼식을 한다고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대. 그동안 자기가 낸 축의금 돌려 달라고."

"아...그것 쌈박하게 합리적이네요. 전  부조 문화도 이젠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누가  일을 당하면 서로 도와서 헤쳐 나가자는 좋은 의도는 사라지고...지금은 그 부조금 때문에 사람들이 갈등을 겪는 거 같아요. 누가 부조금 적게 하면 서운해 하고. 자기가  부조금이 다시 들어오는지 때문에 가슴 졸이고."


"넌 부조금 많이 냈냐?"

"그럼요 많이 냈죠...치과의사들은 부조금 인플레가 심해요...적게 내면 욕먹어요."


"그렇기도 하겠네..."




누나는 장례식장 밥이 맛이 없다고 푸념했지만


이것 저것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나는 떡에 또 손이 갔다.

깨물어 터지는 설탕물이


꽤 중독성이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 의뢰한다는게 뭐야?"


"응..누나 밥먹는데 너무 놀라지마."

"뭔데?"


살면서 워낙 놀라는 일이 많았던지

누나는 씩씩하게 밥을 먹으며

무심하게 내 말을 받아쳤다.




"누나  상복입은 남자 아이 봐봐"

누나는 손에 젓가락을 끼운채


고개를 돌려 하찬이을 바라봤다.



"봤는데?"

"누구 닮지 않았어?"

누나는 다시 하찬이를 바라봤다.


"글쎄...."


누나는 숟가락로 밥을 떠 입 안에 넣었다.


우물 우물 밥을 씹다가

나를 쳐다봤다.


다시 하찬이를 돌아봤다.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동생분과 하찬이가 누나를 쳐다 봤다.


누나는 고개를 돌려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너...내가 생각하는  맞아?"


"응 맞아..."

"어이쿠야....그럼 저분이..."

"아니야."

"그럼 애 엄마는?"

"죽었어. 얼마전에"


"왠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닐거 같은데? 저 여자분은 그럼 누구야?"


"이모할머니지...명목상."


"명목상?"

"지금 저 아이도 저 여자분도 내가 아빤지 몰라...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  모르겠어."

"야...별 문제 없으면 괜히 분란 만들지마...지내 보니까  피해자 없으면 분란없이 살아가는게 가장 좋더라...네가 아빤지 모르는데  나서서 일을 만들어 뒤에서 조용히 도움필요할때만 도와주면 되지."

"난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그런데 일이 단순하지가 않아."

"어떻게 복잡한데?"


"전체는 엄청 긴 이야긴데, 짧게 말해 볼게."

"여기 젓가락이 세개 있어..이건 저 아이의 엄마...그리고 이건..나...그리고 이건 장성용이라고 몀목상  아이의 아빠."

"그래서?"

"장성용하고 나는 초등학생때부터 친구야. 그런데 장성용이 대학에 가서 이 아이의 엄마를 만나."

"그래서 무슨 삼각관계라도 있었어?"


"둘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나. 그런데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아이의 엄마가 나를 찾아와. 나는 군대에 있었어. 그날 나는  아이의 엄마하고 외박을 해."

"아하."


"그리고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어.  둘은  아이를 낳고  딸을 낳고 미국에서 살았어. 그런데 십년이 넘어서 이 엄마가 한국으로 와서 나를 만나. 그리고 장성용도 따로 나를 만나"


"그때 장성용은  아이가 네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니. 아니야 모르겠어. 그가 알 고 있었는지....."





그때 나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아마 성용은 내가 아빠인지 알 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분노가 나를 향했고, 결국 그는 나를 희생물로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삼십년 넘는 우정을

배신했다는게


설명이  되었다.



"아마 알고 있었던거 같아. 그런데 둘은 한국에 오기 전에 이혼한 상태였어. 장성용은 재정적으로 어려웠고.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엄마는 내게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해서 거기서 유서를 쓰고 자살을 시도해. 우울증이 있었느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그런데 장성용이 우리를 몰래 따라와서 새벽에 자살하러 나가던 아이의 엄마를 납치해서 살해하고 내가 마치 아이의 엄마를 살해한 것처럼 일을 꾸며."


"와우 이야기 전개가 흥미진진한데?"


"그래서 나는 감옥에 갇히고, 그때 혜인이가 나를 도와줘서 혐의없음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돼."

"아아..그렇구나..근데 넌 혜인이를 원래 알았다고 했잖아."

"응 맞아. 초등학교6학년 같은 반이었어."

"계속 연락했던거야?"


"아니. 우연히 내가 아는 사람이 혜인이를 보내 줬어...대단한 우연이었어."

"그럼 장성용은 지금 교도소에 있나?"


"아니. 죽었어. 경찰에 잡히고 범죄 사실이 드러나자 자살했어...아이는 자기의 친아빠가 죽은 줄 알고 있어."


"저런 안 됐네."

"그런데...아이 엄마에게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아이 엄마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장성용과 내연관계였어."


"어이쿠야...뭐 자매간에 그런일은 흔히 있으니까...그럴 수 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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