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93 (93/105)



〈 93화 〉93

하얀스타킹은 제법 노래를   알았다.

풍부한 감정을 잘 조절하며

노래를 이끌어 갔다.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하얀스타킹은 마치 자기가 겪은

실연 스토리처럼

가사 하나하나를

애절하게 표현했다.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난 가슴이
어느새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




하얀스타킹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여자들의 이런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격한 감정도

잔잔하게 돌아오게 된다.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구멍난 듯 아파하는 


결국은 이불킥 할 만한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

남녀 사이에 서로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허탈한 것은

어는 한쪽이 제비이거나 꽃뱀일때

상대방이 울고 불고 매달리는 사태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직업적 제비나 꽃뱀이 아니더라도


그런 비슷한 마인드로


상대를 이용하는 케이스에


울고 불고 매달리는 일은

코메디이다.



적당히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당하지 말고 살아야지

짧은 인생

어처구니 없는 일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현명한 길이 아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이


가슴에 총맞은 것처럼

격한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매달린다.




한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매달리고

매우 비효율적인 에너지 배분이다.


하얀 스타킹은

마이크를 먹을 것 같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노래를 이어갔다.


이러기 싫은데, 정말 싫은데
정말 싫은데, 정말
일어서는 널 따라
무작정 쫓아 갔어
도망치듯 걷는 너의 뒤에서
너의 뒤에서, 소리쳤어



하얀 스타킹의 독백하는 듯한 노래를 들으며

나는 화가 났다.



왜 사람을 스토킹까지 하는가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다.

한번 마음이 틀어지면

다시 돌아온 상대는

이전의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둘의 관계는 더 이상 균형을 갖는 관계가 아니고


기울어진 관계가 된다.



나는 제발 여자들이 이런 점을 알았으면 좋겠



한번 떠난 놈은 잡지 마시라.


그놈은 마음속에, 대뇌피질에


다른 여자의 보지가 벌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발 기억하시라.


하얀 스타킹은


열정을 다해

한음 한음 토해내기 시작했다.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총맞은 것처럼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아픈데
살 수가 있다는 게 이상해

감정적으로 아프면

진통제를 복용하는게 낫다.


가슴 답답해 하며


울고붉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 것은

전혀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한잠 자는게 낫다.

이렇게 내가 여자들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여자들은 그렇게 걱정할 만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영리하고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



노래가사는 노래 가사일뿐

현실의 여자들은 어리숙한 남자들을


이용해서 편안한 삶을 여위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스테레오 타입에 갖혀서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사랑에 슬퍼하는 연기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여자들이라면 노래방에서

하얀 스타킹이 하는 것처럼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듯


총맞은 것 처럼을

열창했을 것이다.



하얀 스타킹은


노래의 마지막 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 너를 잊어 내가?
그런  나는 몰라, 몰라
가슴이 뻥뚫려 채울 수 없어서
죽을 만큼 아프기만해 총맞은 것처럼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때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그 와중에

옆 치과 원장은


커피스타킹과 진지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도


노래를 마친

하얀스타킹과 키스를 했다.


내 혀끝에

내가 만들어준 임플란트가 느껴졌다.



디자인을 좀더 세련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치과를 다시 열면


하얀스타킹의 보철물을 바꾸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키스하는 동안


 안에는

남은 반주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빰빠라밤 빰빰빰 빰빠밤...


어디서 좀 노셨군요~~~


노래방 스크린에는 세자리수의 점수가 큼지막하게 찍혀 있엇다.

약속은 약속

나는 오만원짜리를

집갑에서 꺼내


스크린에 붙였다.


"야호....자기야 잘 했어."



커피스타킹이 치마를 펄럭이며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나는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여자들에게 양보했다.

커피스타킹은 동료 도우미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바로 노래 번호를 찍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내가 아는 노래였다.

분홍립스틱


강애리자 버전이 아닌

송윤아 버전



나는 커피스타킹을 위해 랩을 했다.


너무 너무 우리 멀리 이미 떨어진 건 아닌지 그런생각이


분홍빛 물든 네 눈부신 네 모습이

기나긴 지나버린 시간들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눈감고 보는  마치

혼자 취해 너를 불러 보듯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네 긴머리


옅은 핑크빛의 립스틱



꽝따라 꽝따라

커피스타킹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의 치마가 팔락 팔락 거렸다.



앞 뒤 앞 


앞 뒤 앞 옆


그녀는 발로 스텝을 밟으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대를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남모르게 그려온 분홍 립스틱

떨리던 마음같이 사랑스럽던 그 빛깔


말없이 바라보던 다정했던 모습

우리 사랑은 눈부시게 눈부시게 시작됐지만


이제는 지워진 분홍 립스틱

지금은 떠나야 할 사랑했었던 그 사람

이별은 슬프지만 보내야할 사람

이제 클라이막스..

앉아 있던

 치과 원장이 황급히 뛰어 나왔다.



그는 여분의 마이크를 뽑아 들고

오열창법으로 클라이 막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박자와 음정은 좀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가 즐거운게 내게 더 중요했다.

나는 그 옆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커피스타킹은

마음을 잡고 클라이막스를 부르려 하다

옆 치과 원장에게 기회를 빼앗기고

입이 댓자는 나왔다.





오늘 밤만은 그댈 위해서 분홍의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그대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분홍의 입술 자욱 새기겠어요


내일이 오면 떠나야 하는 그대의 슬픈 눈을 들여다보면

눈물 방울이 얼굴을 적시고 분홍의 립스틱을 지워요




나는 옆 치과 원장과 어깨동무를 하고


흐드러지게 분홍립스틱을 불렀다.


마지막 부분을 부르고

우리는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그리고 옆 치과 원장은

소파에 앉아


새 맥주병을 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랩을 준비했다.



추억 추억 너와의 기억속에 깊이 패여가는 입술자욱

자욱한 연기 내뿜으며 더욱 그리워 어느샌가

눈물 가득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나의 입술 두줄 방울 방울 피어나는

가슴 아픈 끄적이는 지난 얘기들


흙으로 덮어버린 사랑얘기들



옆 치과 원장과 맥주를 마시고


키스를 하던


커피스타킹이


내가 랩을 하는 동안


소파에서 일어나


슰금 슬금


모니터 앞으로 걸어나왔다.


 랩이 끝나기를 기다려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 사랑은 눈부시게 눈부시게 시작됐지만

이제는 지워진 분홍 립스틱

지금은 떠나야 할 사랑했었던  사람

이별은 슬프지만 보내야 할 사람



옆 치과 원장과 하얀스타킹이 일어나

모두 마이크를 들고

모니터 앞에 모였다.

우리는 일제히

클라이막스를 불렀다.





오늘 밤만은 그댈 위해서 분홍의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그대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분홍의 입술자욱 새기겠어요

내일이 오면 떠나야 하는 그대의 슬픈 눈을 들여다보면


눈물방울이 얼굴을 적시고 분홍의 립스틱을 지워요



나는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한번 더 클라이막스가 이어졌다.




우리는 목이 터져라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커피스타킹의 애교 섞인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춤을 추려고 시도 했지만,


분위기를 보고 포기했다.

아마도 점수마저 포기한 것 같았다.

시간이 벌써 네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는 노래가 끝나고


소파에 들어와 앉았다.



맥주를 한병을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예상대로 점수는 썰렁했다.

74점.






하얀스타킹이  옆에 앉아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

"원장님 언니 차비좀 줘요...그래도 열심히 불렀잖아요. 원장님 언니 차비 주실거죠?"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원장이란 단어를 썼다.




옆 치과 원장도 그 단어를 듣고 눈이 커졌다.

원장님이란 말까지 했는데...나는 야박하게 원칙을 고수할 순 없었다.


나는 커피스타킹에게 이만원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감사합니다."


그녀는 기쁜것도 아니고 슬픈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옆 치과 원장님 옆에 앉았다.


옆치과 원장이 지갑에서


이만원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제서야

커피스타킹의 입에

미소가 생겼다.


그틈을 노려

옆 치과 원장님은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나도

하얀 스타킹의 입안에


 혀를 들이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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