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
"원장님...치과 문 닫았어요?"
"길게 여행을 다녀 왔어요."
"그럼 다시 여실 거죠?"
"네."
"언제 여는지 알려 주세요. 나 소개할 환자 지금 많아요."
"고맙습니다."
"그러지 말고, 원장님 전화번호 가르쳐 주세요."
"네."
나는 내 번호를 그녀의 폰에 찍어 주었다.
"근데 어디 사세요?"
"신림동 살아요."
"그렇군요."
"왜요...신림동에 아는 사람 있어요?"
"아니요...아는 사람이 이번에 관악구에 출마해서요."
"맞아 저번 당선된 사람이 대법원에서 벌금형 확정받고 당선 무효 되었다고 들었어요."
"정치에 관심이 있으세요?"
"정치는 아니고 선거요. 거기 알바가 짭짤 하잖아요..."
"아 그렇구나...누구 선거 운동 했어요?"
"당선된 그 분이요..."
"그래서 그렇게 잘 아시는구나...그땐 일당이 얼마나 했어요?"
"우리 일당 십만원씩 받았죠."
"그렇게 받으면 법정 선거비용 초과 하지 않나요?"
"그래서 일당은 현금으로만 받아요...그래야 기록에 안남잖아요."
"그렇구나..."
"아는 분이 누구에요? 혹시 알바자리 필요하나요?"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럼 원장님도 선거운동 하는거에요? 치과은 어떡하고?"
"아직 정해진 바는 없는데 후보님께 물어보고 연락드릴게요."
"누구에요? 그 후보가?"
"아실라나....최은선 변호사라고..."
"정말이요?"
하얀스타킹의 눈이 커졌다.
"왜요? 의외의 인물인가요?"
"그 분이면 당선 될 수도 있을 거에요. 워낙 인지도도 높고...관악구에서 인기가 좋아요...그분 좋은 일도 많이 하잖아요..."
"저도 자세한 것은 잘 몰라요...그냥 학교 선배라...도와달라고 하면 돕는거고 그래요..."
"제가 신림동에서 좀 마당발이거든요...일단 선거 시작하면...꼭 연락주세요...모르긴 몰라도 제가 한 만표는 몰아줄 수 있어요."
나는 물론 그녀의 말을 곧이 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선거에 대한 임프레션이 좋아졌다.
"오빠들 인제 저희들 갈게요. 잘 놀았어요..."
커피스타킹과 하얀 스타킹은 가방과 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자기 그 여자 번호 땄어? 어휴 재주도 좋아....부러워 죽겠어..."
"아니요...제 환자인데 뭐 번호따고 말고 할게 뭐 있겠어요...이번에 내가 아는 선배가 관악구 보선에 나오거든요."
"거긴 내 지역구잖아...내 허락도 없이 누가 나와? 내가 거기 몇년을 살았는데...나 거기 배드민턴 협회 회장, 탁구 협회 회장....게다가 거기 치과협회 회장이 나랑 제일 친한 선배잖아..."
"거기 선생들은 관악구에 사나요?"
"대부분 서초구에 살긴 하지....그래도 치과협회 무시못해... 관악구엔 특히 오래된 치과가 많아서 환자들한테 영향력이 커."
"그렇군요..."
"근데 자기 아는 선배가 누군데?"
"최은선 변호사라고..."
"증말? 어이쿠야...이거 빅뉴스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출마하는 사람들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인데....나는 어느편에 서야 하나 모르겠네...최은선 변호사야 전국구 스타지...아마 이번 출마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인지도롤 따지면 최고일걸."
맥주가 많이 남았다.
우리는 맥주 한병씩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그때 마담이 들어왔다.
"어떻게 재밌게 잘 노셨어요?"
"네 즐거웠습니다."
"여기 계산서 가져 왔어요."
"네"
나는 마담이 주는 계산서를 받아 보았다.
뭐?
나는 계산서를 보고
기절할 뻔 했다.
사오십만원도 아니고
백만원도 아니고
자그마치 삼백만원.
나는 계산서 내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장님..계산서가 뭔가 잘못된거 같은데요..."
"호호 그래요? 글쎄요...뭐가 잘못 되었을까?"
마담은 인터폰을 들었다.
"김군아 여기 계산서가 잘못되었다는데 니가 좀 가르쳐 줘야 할 거 같다."
생글 생글 웃던 마담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담은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마담이 부르는 김군은
타짜 2에서
곽도원이 연기한 똥식이가
김군을 부르는 느낌과 비슷했다.
똥식이가
김군아~~
한번 부르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신체포기 각서든
상대방의 보디가드든
한방에 해결되는
그 김군이
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똥식이의 김군은
시각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마담의 김군은
얼굴을 보려면
한참을 올려봐야 했다.
얼굴에는 칼빵 자국도 있고
이마엔 깊은 주름이 지렁이처럼
횡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눈주변은 퉁퉁부어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김군의 주먹은 내 주먹의 두배쯤 되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130킬로 이상은 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만두귀였다.
딱 푸틴의 남자 카렐린의 형상을 지닌
김군
그가 천천히 우리에게 왔다.
"형님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목소리가 하루에 담배 3갑은 필 듯한
가래 끓는 소리였다.
"아니 그게 우린 이렇게 돈이 많이 나올지 몰랐지요."
"우리 저번에 한사람당 20만원도 안 냈는데...뭐가 잘못 된거 같아요."
옆 치과 원장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거의 울먹이는 소리였다.
김군이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노려봤다.
"그래서 못내겠다는 겁니까?"
나는 오줌을 지릴뻔 했다.
"그게 아니고...좀 너무 과하다는 말이지요.."
김군이 계산서를 들여다봤다.
"형님들 그러면 3백 2십 5만원중에서 오만원 빼드릴게, 깔끔하게 3백 2십 결제 해 주세요."
김군의 배려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만원 깍아주니 이제 시마이.
더이상의 에누리는 없다.
최종 숫자다.
그런 선언이었다.
내가 완력으로 그를 제낄 가능성은
0.1퍼센트도 안되고
내 말주변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가능성은
0.01퍼센트도 안된다.
아마 옆 치과 원장은
시장에서 물건값 흥정도 못할 것 같은
나보다 더 불쌍한 타입의
선비였다.
"저기 제가 마음이 불안 하니까, 우리 여기서 대화좀 하게 잠깐 시간좀 주시겠어요? 워낙 큰 돈이라 돈 구할때도 찾아야 하고 하니까."
김군과 마담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5분줄게요."
김군과 마담이 나갔다.
나는 이 문제를 상의할 사람이
한명밖에 안 떠올랐다.
전국구 미친년
관악구 보궐선거 후보
변호사 최은선
나는 바로 전화 했다.
"여보세요 누나.."
"응...어디야? 잠은 좀 잤어?"
"응 근데 정말 미안한데...내가 지금 누나 도움이 필요해..."
"왜 인신매매라도 당했어...?
"응 좀 비슷해..."
"거기 어딘데?"
"강남역이야...강남역 9번출구로 나와서 메가박스 골목에..어떤 간판도 없는 단란주점인데..."
"거긴 뭐하러 갔어?"
"내 치과 바로 옆에 있는 치과 원장님을 여기서 만났어...그분이 내가 궁금해서 전화를 했고.
"근데 무슨일이야...누가 너 협박해?"
"응 맞아. 한 덩치 하는 놈이 3백만원 내 놓으라는데?"
"으이구 병신...그런 일을 당하고 그래..."
"거기 무허가지? 간판도 없고...?"
"응 그런거 같아..."
"알았어...내가 택시타고 갈게."
내가 전화를 끊자 마자
방문이 열리고
김군이 들어왔다.
마담은 수금 업무를 아예
김군에게 맡긴것 같았다.
"돈 구할때 찾았어?"
"네 아는 분이 지금 돈 가지고 온답니다. 현금으로."
"얼마나 걸리냐?"
"잘 모르겠는데 아마 한 십오분 이내로 올 겁니다."
"내가 아저씨들 같이 착하게 생긴 분들한테 이렇게 까지 해서 미안해요... 오늘 돈 내고 다시는 이런 데 오지 마요. 꼭 우리 큰 형님같아서 하는 소리에요."
김군은 방금 전까지 당장 내 팔목아지를 부러뜨릴것 같이 협박하더니,
돈을 준다니까 금세 인정머리 인는 놈이 되었다.
형님들한테 훈계까지 하며
이상한 상화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네...저희도 어쩌다가 한번 온건에요...원래 아가씽 있는 술집 안다녀요."
"에이 형님 그건 거짓말이다. 내가 형님말이 진짜면 내 이 귀를 자릅니다."
김군이 귀를 자른다고 덤비니
나는 더 겁이 났다.
"개가 똥을 끊지, 어떻게 남자가 오입을 끊어요...."
그건 맞는 말이다.
물론 사먹느냐
그냥 공짜로 먹느냐
그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자는 오입을 끊을 수 없다.
나같은 사람이든
옆 치과 원장처럼
선비같이 생긴 사람이든
여자가 빨아주고 넣어주면
헬레레 하며
정신줄을 놓는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남자니까
신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신이 불알에서 만들어지는
마법의 호르몬으로
남자의 두뇌를 지배하니까
"그럼 아저씬 여기 전속 보디가드에요?"
"뭐 마담누나랑 친분이 있어서 가게좀 봐주는거에요."
"원래 다른 조직에서는 일 안하고요?"
"에이 난 평화주의자에요..이래뵈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에요."
"네? 정말요? "
김군의 얼굴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는 거 같았다.
맞다 레슬링 자유형 선수...이름은 생각이 안나지만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 같았다.
사실 아시안 게임정도 되면
우리나라가 하도 금메달을 많이 따서
누가 금메달리스트인지 기억하기 힘들다.
하지만 통상 레슬링은 첫째날과 두째날
모두 금메달이 나오니
뉴스에서 하는 클시셰 멘트
"국민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아시안 게임 첫 금메달이 나왔습니다."
그 멘트의 주인공이 레슬링 선수가 된다.
김군의 얼굴에서
예전에 본 금메달리스트의 얼굴이 있었지만
몸이 지금처럼 거구는 아니었던것 같았다.
"체중이 많이 느셨네요"
"네 한 오십키로 늘었어요."
"불편하지 않으세요?"
"뭐 우리같은 운동했던 사람은 운동 쉬면 바로 불어요. 뭐 살살 운동 다시하면 금방 빠지니까 걱정은 없어요"
"태능에서 많이 힘드셨죠?"
"어휴 그럴 말이라고 해요. 꿈에 나올까 겁이 날 정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