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95
김군은 인상을 한번 쓰고 말을 이어갔다.
"다시 가라면 어휴....아저씨 군대 갔다 왔죠?"
"네."
"천만원 준다고 하면서 군대 다시가라고 하면 갈거에요?"
"글쎄요. 안갈거 같은데..."
"저는 1억준다고 하면서 태능가서 훈련하라고 하면 안 할 거에요."
"아...그정도로 힘들구나..."
"어이구...특히 유도 레슬링 복싱은 전통적으로 사람 잡아요..."
"나는 금메달 따는거 쉽게 봤는데...그게 아니군요..."
"그럼요...만약 내 아들이 딴데는 소질없고 운동에만 소질있으면 어쩔수 없이 운동시키는데, 나는 아들이 공부해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싶어요. 운동하는거 너무 힘들어요."
"아아 그렇구나. 그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었네요. 운동하는게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고."
"뭐 다른 일 하시는 분드도 다 각자 어려운 걸 이겨내고 힘들게 사시는 걸 압니다만, 제가 겪은건 운동하는 것 밖에 없어서..."
대화를 하다보니 김군이
나쁜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김군같은 사람이
국회의원 보디가드를 하면
삶의 보람도 느끼고
일을 열심히 할 거 같았다.
"여기 일 봐주는거 힘들지 않으세요?"
"어휴...뭐 몸이 힘든건 아닌데...이게 사람이 할일이겠어요. 불쌍한 사람들 겁줘서 돈 받는일이.....아휴 금메달리스트가 이런 추잡스런 일을 한다는게 좀 많이 쪽파릴죠..."
"그럼 다른 일은 없나요? 금메달 리스트면 경찰에 특채 된다고 들었는데"
"그런 케이스가 있긴 한데....전 심사에서 탈락 되었어요."
"왜요?"
"그건 집안 사정이라 말 할 수는 없고...하여튼 운동선수가 사회에서 할 일이 별로 없어요. 깡패 아니면 용역 아니면 나처럼 이런거 하거나 나이트 기도를 보거나...운동선수로서 쪽팔린 일 밖에 없죠..."
"그렇군요."
"옛날에는 레슬링 인기가 좋았죠. 꽤 많은 학교에 레슬링 팀이 있어서 코치자리도 많았는데...지금은 레슬링 팀이 없어요... 실업팀도 없고...그렇게 선수가 없는데 이정도 성적 내는 거 보면...정말 대단한거에요...태능에서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어내는거죠. 그래서 요샌 다시 운동좀 해서 MMA쪽으로 가볼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사람 때리는 일은 잘 못해서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그는 외모와 달리 여린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그의 여린 마음이 드러났다.
그때 문 밖이 소란했다.
"여기 허가 받은 사업장 맞냐고요?"
누나의 목소리였다.
"아 증말 짜증나게....내가 다시 말해요...여기 구청에서 허가 받고 1종 영업 하는 거 맞아요? "
"누구신데 이렇게 영업하는 가게에 와서 그러세요?"
"불법으로 술장사하니까 그러는거 아니에요?"
"어디서 나오셧는데요?"
"그게 중요해요? 여기 옆에 경찰 있잖아요...."
"아니 갑자기 경찰하고 이렇게 와서 가게 장사하는 거 방해하면 어쩌자는 거에요?"
"그럼 간단하게 얘기 할게요. 여기에 내 동생이 있어요. 내 동생한테 삼백만원 차지 하신거 맞죠?"
"동생이 여기 있어요?"
"이거 말하기 쪽팔리지만, 구청장이랑 여기 강남경찰서장이랑 다 나랑 친한 선배들이에요. 근데 이런 일로 그 바쁜 분들한테 전화하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여기 구청에서 허가도 안 받고 아가씨들 불러다가 술 파는 거 같은데...그러면 안 되잖아요...뭐 내 동생이 여기서 술 먹은 건 술 먹은 거고 그걸 띠어먹자는 말은 아니에요. 강남 룸빵에서 먹어도 두며이면 맥시멈 일인당 50이에요. 이정도 일종에서 먹으면 많이 줘 봐야 일인당 20이고...어떻게 할래요...그냥 40받고 시마이 하실래요...아니면 공권력이 제대로 일하는 거 보실래요..."
마담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누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김군도 자리에서 일어 났다.
하지만 김군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내 얼굴과 누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만 봤다.
누나가 나에게 걸어와
내 귀를 잡았다.
"이리 나와 새끼야..."
나는 누나에게 귀를 잡힌채
카운터로 끌려갔다.
"여기 사장님한테 사십만원 드려"
"알았어요 누나...귀좀 놓고...아파요..."
누나는 내 귀를 놓아주었다.
나는 마담에게 오만원짜리 여덟장을 주었다.
마담은 돈을 다시 셌다.
방에서 옆 치과 원장이 쭈뼛 쭈뼛하며
걸어 나왔다.
누나가 힐끔 그를 쳐다보고
다시 나에게 다그쳤다.
"어쩌자고 이런 쪽팔린 짓을 하냐, 증말 정신 못차려?"
보다 못한 마담이 내 편을 들었다.
"어이구 남자가 그럴 수도 이죠.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나같은 사람도 그래야 먹고 살고 호호."
"가자 얼른."
누나는 나를 밀었다.
"수고하세요."
나는 마담에게 인사하고 나가려다
김군에게 돌아갔다.
"제가 일자릴 드릴수 있을거 같은데....전화번호좀 주세요."
김군이 전화기를 내밀었다.
나는 내 번호를 찍어
그에게 주었다
"금방 연락 드릴게요. 전화기 꼭 붙들고 있어요."
"네."
김군이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나는 다시 마담에게 수고하시란 말을 건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옆 치과 원장도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이거 자기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지...오늘 큰 봉변 당할 뻔 했네...미안해..."
"괜챃아요...뭐 살다보면 이런 액땜도 해야 더 큰일 안 당하고 살죠."
"그런데...저기는 최은선 변호사님 아닌가..."
"네 맞아요.."
누나는 경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새벽에 전화를 해도 달려오는 사이야?"
"뭐 제가 후원회 회장쯤 되니까요. 원장님도 후원회 가입하셔야죠."
"어어 알았어.."
경찰차를 보내고 누나가
우리에게 다가 왔다.
"안녕하세요. 최은선 변호사님...아니 국회의원 후보님...방금 후원회 가입 했습니다. 제가 관악구에서 만표정도는 책임지겠습니다."
옆 치과 원장은 누나게게 다가가 넙죽 악수를 청했다.
누나는 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면 큰 힘이 될겁니다."
"빈말이 아니라 제가 관악구 배드민턴 협회 회장이고, 탁구협회 회장에다가, 생활 체육인 협회 총무이사에다가, 관악구 치과협회 왠만한 이사들을 다 알고 있고 회장은 저하고 피를 나눈 형제 같은 선배입니다. 제가 한번 마실이라도 나가면, 한시간에 열발자국 전진을 못해요....인사받느라 어딜 가질 못해요. 그래서 다시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이번엔 아주 제대로 매일 매일 마실 다니겠습니다."
옆 치과원장은 금세 누나의 팬이 되었다.
시간이 벌써 여섯시를 향해갔다.
"어쩌죠? 원장님은 집에 못가고 다시 치과에 가셔야겠네요."
"그러네...우리 어디 가서 해장국이라도 먹을까?"
"그런데 제가 지금 장례식자에 가야 해요...괜찮으시면, 원장님도 같이 가서 아침 드실래요? 7시 발인이니까 거기서 저하고 변호사님하고 같이 아침드시고, 치과로 출근 하세요."
"선생님 그렇게 하세요. 저희하고 같이 가세요."
"그럴까요..."
남에게 거절 한번 못하는
천상 선비
옆 치과원장의 눈이 반짝였다.
왠지 누나를 남다른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았다.
누나가 택시를 잡아 조수석에 탔다.
나와 옆 치과 원장도 뒷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하룻밤을 꼬박 세웠더니
온 몸이 뻐근해 왔다.
택시가 움직이는 사이에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왜 인생을 그렇게 힘들게 살지?...이제 그만 포기하고 나하고 같이 가는게 어때?"
검은 옷을 입은 그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안 힘들어요."
"너는 지금 잠도 못자고 좁은 택시 안에 앉아 있잖아."
택시 창밖으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었다.
차들도 사람들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거에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네요?"
"시간은 유한 하면서도 무한하고, 시간은 멈춘듯 하면서도 쏜살같이 빨리 달려가지."
그는 알 수 없는 선문답을 늘어 놓았다.
"이제 그 유한한 시간에서 벋어나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살자고, 이제 같이 가지."
"안돼요. 전 여기서 할 일이 많아요."
"네가 생각하는 그 일들은 너 없이도 잘 돌아가.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남은 사람들이 맡아서 너보다 더 잘 할 수 있어."
"아니에요. 여기 있는 이 둘은 제가 필요해요."
"아니..네 생각은 틀렸어. 너는 둘에게 피해만 주고 있어."
"아니에요..난 저 원장님이 전화를 했을때 몸이 피곤한데도 친구가 되어주었어요. 원장님이 괴로운 일이 있어서 계속 술을 사주면서 위로 했어요. 내 돈을 많이 썼어요."
"네가 돈을 쓰면 그를 도와 주는 건가?"
"꼭 그런건 아니지만, 원장님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 즐거워 하고 괴로운 일을 잊었어요."
"그건 네 생각이고, 간암 말기 환자에게 술을 사주면 그게 친구가 되는 일인가?"
"간암이에요? 설마..."
"너는 세상일을 한치앞도 알 수 없어. 바로 네 옆에 있는 사람의 2센티미터 피부속으로 들어가면, 거기에 암세포가 모든걸 점령해 버렸는데...넌 아무것도 모르고 그에게 술을 들이키게 했어...너는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암세포 같은 존재야. 너는 지금 네가 사는 세상에서 살 이유가 없어...지금까지도 충분히 세상에 똥냄새를 풍겼어. 이제 그만 나와 함께 가지 그래.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려고 그래?'
"왜 나를 그렇게 데려가고 싶어하세요?"
"내가 너를 데려가고 싶은게 아니야. 착각하지마. 나는 그저 내 일을 할 뿐이야."
"제발 여기섬 좀 더 살게 해 주세요."
"이미 넌 네 삶을 연장하고 또 연장했어. 내가 봐 줄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네가 지금 나와 같이 안 가면, 이 택시에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데려갈 거야...잘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