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102
그날 우리는 모텔을 나와
돈까스집에 들어갔다.
나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돈까스를 먹었다.
그녀도 내 얼굴만한 돈까스를
남김 없이 먹었다.
그렇게 원주에서 출발한 우리는
오후 세시쯤 되어
용산상가에 도착했고
여러 가게들 둘러보지 않고
내가 잘 가는 컴팔이에게 갔다.
"어 형 어디 갔었는데 이렇게 오랜만이야? 근데 옷은...머리는....아 형 군대 갔구나...근데 형 지금 설마 부대에서 오는 거야?
"응 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강원도 산골에서 여기까지 찾아 왔겠냐?"
"어...진짜 거기 마크네?"
"니가 어떻게 알아 이 마크를..."
"아 진짜...날 뭘로 보고 나 전 부대 마크 알아..."
"정말이야?"
"나 실은 저 밑에 용사의 집에서 알바 한 적 있거든."
"아 말 되네...오바로크집...."
"근데 오늘 어떻게 뭐 사게?"
"야 여기 목록 적어왔는데..."
컴팔이가 내 목록을 받으려고 손가락을 뻗었을때
나는 목록적은 종이를 뒤로 뺐다.
"너 내가 시세 다 아는거 알지...나 너 밑고 왔다...이거 제법 왕건이 덩어리다. 알지?"
"알지."
"적당히 마진 남기고...."
"그럼 당연하지...형이랑 나랑 서로 알고 지낸게 몇년이야..."
사실 나는 그와 거래한 적이 없었다.
나는 삼인방 놈들을 따라와 옆에서 구경만 했을뿐이었다.
삼인방은 워낙 규모있는 고객이었기에
컴팔이 그놈은 삼인방에겐 껌뻑 죽었다.
삼인방은 한번 믿음을 준 컴팔이에게
거래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놈은 내가 무엇을 구입했는지 그냥 친구로 따라왔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습관적으로 서비스 멘트를 날릴 뿐이었다.
"그리고 나 가라 영수증 필요하니까 만들어줘."
"오케이....알았으니까 목록한번 보고."
그놈에게 목록을 넘겼다.
"음 이거 요새 가격대가 안 좋은데..."
"헛소리 하지 말고 마진 적당히만 챙겨라. 나 다 알아보고 왔다."
그놈 통밥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놈의 눈알이 돌아가고 있었다.
"형 정말 나 요새 힘들어 나도 좀 먹을게 있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너 먹을 건 먹으라고 눈탱이 씌우지만 말고....너 나 피곤하게 하며 내 친구들도 싹 데리고 딴데 간다."
"아 증말...말 참 이쁘게 한다. 형이 돼 가지고, 동생한테..."
"아 씨발 목록 줘. 딴데 갈게."
"아 알았어...잠깐만 기다려봐...나 전화좀 하고...물건 몇개는 빌려와야 돼."
사실 삼인방이 없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인방의 구매력을 믿고
기선제압할 힘을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 앞이지 않은가.
내가 만만한 놈이 아니란 걸
김대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컴팔이는 한참동안 여기 저기 전화 하더니
견적서를 만들어 왔다.
"형 이거 견적서"
"좋아."
"와 형 역시 화끈해."
"이거대로 영수증 만들고 10프로 현금 리베이트 오케이?"
"형 나 힘들어...이거도 힘들게 뽑은 거야."
"나한테 잘 해주고, 내 친구들한테 남겨먹어."
"아 증말 형 나한테 이럴거야? 나 짜증날라 그래..."
"뭐? 짜증? 너 방금 짜장이라고 그랬냐?
"아니 그게 짜장면을 저녁으로 먹을까 한다 그 얘기지..."
"형 좀만 더 써라...영수증은 만들어 줄게...제발 나좀 살려줘라..."
"야 보다시피 나 군발이야 돈이 없어....그리고 영수증 가라는 고참이 시킨거야...리베이트가 얼마냐에 따라 남은 군생활이 달려 있다고."
"아 씨발 형! 구라를 쳐도 좀. 병장이 무슨 그런 소릴해...그새 군대가 그렇게 바뀌었어?"
"응 그렇게 바뀌었어."
"아 증말 쫌만 봐줘라."
"야 나 이 가격에서 10프로. 더이상 물러날 수 없어. 나 딴 가게 간다."
"형 딴 가게 가도 그렇게 못 사. 진짜야...뭐 걸까? 나 진짜 여기 생활만 십년이야"
"이새끼 구라를 쳐도....니가 몇살인데 십년이야...아 됐어 그런거 중요한 거 아니고...아 씨발 나 내친구들한테 전화해야겠다. 용산 컴팔이한테 능욕당했다고...야 그 종이 줘 딴데 가게...여기 오다 보니까 인상 좋아 보이는 애 있더라...."
"아 알았어...아 증말 이번엔 이렇게 해 주는데...다음부턴 그러지 마 제발."
"알았어 임마.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물건 줘 영수증도 주고. 여기 현금으로 돈 있어."
컴팔이는 여기 저기 전화해서 물건을 배달 받았다.
박스가 많았다.
"야 여기 구루마 없냐?"
"배달해주는 아저씨들 있는데..."
"야 이새끼야 군바리가 무슨 배달하는 아저씨 찾아...잠깐 구루마좀 빌리자니까 저기 주차장까지만 쓰고 돌려줄게. 안 훔쳐가. 아 이새끼 왜 이리 의심이 많냐. 군발이가 군복입고 물건 훔치는 거 봤냐?"
"응 많이 봤어."
"허 이새끼 봐라..."
"너 그말에 책임질 수 있어?"
"본걸 봤다고 말하지 무슨 책임을 져요."
"이새끼 또박또박 말 대답이네....야 나 이거 구입 취소....아 씨발 이새끼가 날 갖고 노네..."
"아 정말 형 왜 그래요?"
"뭘 왜 그래...니가 나랑 거래하기 싫어하니까. 거래 취소 하려는 거지..."
"아 증말 형...그러지 마세요...내가 고생해서 물건 맞춰 줬는데 왜 그래요,,,"
"야 새끼야.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어? 구르마 잠깐 빌리자니까 그걸 그렇게 야박하게 굴어? 저 많은 박스를 어떻게 손으로 다 들고 가 새끼야?"
"아 형 그럼 그렇게 좋게 말하지...뭐 군발이가 어쩌고 저쩌고 말 하면서 왜 절 자극해요?"
"자극? 이 씨발놈이 이젠 막 아무 단어나 갔다 붙이네."
"그럼 그게 자극 아니에요? 내가 어리다고 형이 먼저 막말 하고 그랬잖아요."
"내가 이 새끼야 무슨 막말을 해?"
"전 그렇게 느꼈다고요."
"아아....구르마는 빌려줄 수 있는데...내가 너무 티껍게 굴어서 나한테는 못 빌려주겠다 그거냐?"
"......"
"야...이 새끼야...."
"......"
"형이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나 시간없어 강원도 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
"진작 그렇게 나오지..."
"그래 고마워."
나는 박스를 구르마에 올리고 끈으로 묶었다.
구르마에 올리지 못한 박스는 김대위가 들었다.
나는 구르마를 밀어 주차장까지 힘들게 갔다.
차 앞에 박스를 내리고, 김대위에게 정리를 부탁했다.
구르마를 가지고 다시 가게로 가서
"야 형이 무례해서 미안해 우리 또 보자~~"
"다신 오지 마요."
"에이 왜 그래 화풀어..."
"몰라요."
그놈을 달랜다고 했는데
마음이 풀렸는지 확인은 못하고
주차장으로 뛰었다.
"우리 시간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가봐야 알겠는데...시간이 좀 촉박한거 같긴 하네."
"늦을 수 있다고, 미리 전화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 그게 낫겠다."
김대위는 공중전화로 가서 부대에 전화 했다.
물건을 사러 용산 상가를 다 뒤지는 바람에
많이 늦었다고 복귀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했다.
김대위와 내가 탈영할 일은 없으니
부대에서는 복귀시간을 다음 날로 연장해 주었다.
그래도 어디 가서 한가롭게 놀 수는 없었다.
김대위는 초조한 듯한 표정으로
액센트를 운전했다,
"왜? 왜 그렇게 서두르는데? 복귀 연장 허락 했다며?"
"그래도 오늘 내로 들어가는게 좋을 거 같아?"
"왜 무슨 일 있었어?"
"전화 받는 톤이 느낌이 안 좋았어."
"누가?"
"대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김대위가 소리를 질렀다.
내게 왜 소릴 질렀는지
그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김대위와 교대를 해 주고 싶었다.
김대위는 아무말 하지 않고
묵묵히 앞만보고 운전했다.
나는 오줌이 마려워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김대위가 알아서
차를 세워 주지 않는 이상
나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김대위는
고속도로를 나와
산허리를 꼬불꼬불 돌아
부대로 복귀했다.
김대위는 나를
우리 대대 막사 앞에 내려주고
아무말 없이
떠나갔다.
나는 멍하게
액센트가 어둠속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만
본건 아니고
대대 화장실로
뛰었다.
폭포수가 쏟아졌다.
한 2분동안 변기 앞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왜 김대위가 나를 차갑게 대했을까
대대장과 무슨 말을 한 걸까
나는 혼자 상상만 할뿐
2대대 사정을 알아볼 순 없었다.
그 뒤로 2대대에선
나를 부르지 않았다.
소문에는
컴퓨터 공학과 출신인지
용산 컴팔이 출신인지가
신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김대위가 대대 행정반에 찾아 왔을때도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볼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제대하고 나름 바쁜 생활을 이어갔다.
김대위와 나의 영상이 퍼졌을때
김대위를 다시 한번 생각했을뿐
그 뒤로 나는 그녀를 잊어버렸다.
그 김대위가 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내 앞에 앉아
내게 감정이 않좋다고 이야기 했다.
"야 감정은 내가 안 좋지...너 그날 용산 갖다가 왜 갑자기 사람이 돌변했냐?"
"그건 대대장이 나한테 경고를 날려서 그랬지."
"무슨 경고?"
"병하고 흘레붙었다고."
"아무리 군발이라도 그렇지 대대장 입에서 흘레 붙었다가 뭐냐?"
"그래도 대대장님이 인정많고 좋은 분이었어."
"그래서 너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이 났냐?"
"그런 소문이 났어?"
"내가 듣고 싶어서 들은게 아니고, 얼마나 소문이 났으면 나한테 까지 들렸겠냐? 너랑 그렇게 갈라지고 난 내무반에 누워서 책만 읽고 있었는데...상병 쫄따구가 와서 나한테 그러더라....김현미 대위라고 아십니까? 지금 사단 내에서 난리 났습니다. 2대대 대대장님 사모가 김현미 대위 뺨따구 날렸다고...."
"아 진짜 쪽팔리게 그런 소문이 다 나고 그러냐?"
"너 원래 대대장하고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며."
"뭐가 그렇고 그런 관계야?"
"나만 몰랐지. 상병 심지어 일병 쫄따구도 알 고 있더라....너 지나가면 뒤에서 수근거리고."
"너 진짜 몰랐어?"
"갈라지고 나중에 알았지....제대할 때 다 되서."
"그랬구나...난 니가 다 알고 나 만난줄 알았지."
"내가 미쳤냐...대대장 여자를 건드리게."
"그점은 내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