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4
"근데 그새끼가 또 스터디 모임을 한다고 밤 늦게 들어오는거야..."
"결혼 했는데도? "
"어쩌다간 새벽 3시 어쩌다간 새벽 6시...."
"왠지 느낌이 안 좋네..."
"안 좋다 뿐이냐? 뻔하거 아니야? 여자애들하고 새벽까지 공부할 일 있어...? 당연히 떡치는 거지..."
흥분한 김대위가 테이블을 내려쳤다.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해 졌다.
우리를 쳐다 봤다.
나는 그들에게 죄송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다시 가게 안이 시끌시끌 해 졌다.
"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큰 소리는 만들지 말자.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알았어 술이나 좀 줘봐."
나는 새로 맥주병을 따서
그녀의 잔에 부었다.
그녀는 급하게 잔을 비웠다.
"내가 그래서 좋게 말했어...나는 용납 못한다. 스터디를 그만 하든...갈라서든 양단 간에 결단해라....그 새끼 바로 짐싸서 집 나갔어...뭐 잘 되었지 뭐 애기라도 있었으면 힘들뻔 했는데...그래서 어쩌다 보니 내가 신림동 주민이 되어 버렸고...지금까지 요 모양 요 꼴로 그 동네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단다."
"와우 얘기가 심플하네?"
"그래서 공부는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기는 그냥 관 두었지."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하는데?"
"군대에서 나올때 목돈좀 받았지...내가 어떻게든 버텨서 이십년을 채울려고 했는데 딱 19년차에 나왔다. 연금수령자 조건이 안되니까 나한테 목돈을 안겨주더라..그거 통장에 넣고 곶깜 빼먹듯이 빼먹고 있다. 좀 억울해 보이지 않냐?"
"어휴...한잔해라 듣고 보니 짠하다."
"근데 최은선 변호사는 너랑 어느정도 사이야? 둘이 잤어?"
"얘는 내가 꼭 지랑 똑같은 줄 알아...."
"야 내가 어때서?"
"아니 내가 너처럼 성격이 시원시원한게 아니라고..."
"내가 좀 시원하긴 하지."
"최변호사는 내가 고등학생때부터 알던 선배야....뭐 세상 멋있게 사는 거 같아."
"방송 보니까 그런거 같기는 하더라...입이 좀 괄괄한거 빼고.."
"아무렴 너만 할까?"
"내가 어때서...최변호사가 인상으로 보나 뭐로 보나 나보다 한 수 위인거 같더구만."
"잠깐 나 최변호사님께 전화좀 할게."
김대위는 양꼬치를 빼 내어 입에 물고
맥주를 따라 연거푸 마셨다.
"누나 지금 어디세요? 아아...저야 지금 선거운동 열심히 하고 있죠...혹시 사무실은 알아 보셨어요? 제 친구가 신림동에 건물이 있어서 거기에다 하면 어떨까 하는데...네 그렇게 할게요...그리고 제가 사람 몇명을 좀 섭외했어요...그 중에 신림동 사는 예비역 대위가 있는데 여군출신이에요. 확실해요...딱 군인 스타일이에요...네 알았어요. 그럼 수고 하세요."
누나는 밤새워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김대위를 품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야 맥주 맛있냐?"
"좋네... 니 덕분에 죽을때까지 마셔보자..."
"야 어느정도 먹고 우리 집에 가자."
"니네 집?"
"응 우리집."
"왜 오랜만에 나 보니까 고추가 발딱 서? 나 따먹게?"
"말은 바로해야지...니가 나보다 힘세잖아...내가 너를 감히 어떻게...강제로 해? 동의를 구해서 해야지..."
"푸핫...에휴 남자새끼들이란...어쩜 이렇게 레파토리가 똑같냐...그냥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말 하면 되지...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고 돌려말하고 눈치 살살 보고...어휴 맘에 안들어....야 술이나 따라...생각해보고 말해 줄게..."
"안 와도 상관없어...난 그냥 집구경 시켜주고 싶었던거 뿐이야. 오해 하지마..."
"지랄한다. 내가 그 검은 속내를 모를 거 같냐? 뭐 그런 멘트 하겠지...라면 먹고갈래?"
"하하하 너 정말 대단하다. 어쩜 그리 상상력이 헐리우드 작가보다 뛰어나냐?"
"시끄러~ 잔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먹어."
나는 다시 그녀의 컵에 맥주를 따랐다.
"나 실은 심각한 고민이 있어?"
"왜 고민 이야기로 동정심 얻어서 나 따먹게?"
"야아...장난 아니야 심각해."
나는 맥주잔을 크게 들이켰다.
나는 맥주병을 따서 다시 내 잔에 부었다.
그리고 김대위의 잔에도 부었다.
그새 맥주가 다 떨어졌다.
"여기요~~ 맥주 두병만 주세요."
"네~~"
종업원은 바로 맥주를 내려 놓고
주문지에 2라는 숮자를 써 넣었다.
그리고 빈병을 가져갔다.
나는 맥주 한병을 따서
그녀의 잔에 부었다.
"내가 장난으로 그런게 아니라...진짜로 심각하게 말 하는데....꿈에 자꾸 귀신이 보여."
"엥? 무슨 귀신?"
"검은 옷 입은 귀신. 꼭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저승사자 같이 생긴 귀신이...자꾸 내 꿈에 나타나."
"허이구야...너 죽을때가 되었나 보다."
"그러지 않아도 나한테 시한부로 유예를 해준데."
"뭘 유예해줘? 네 목숨을?"
"응."
"지랄하고 있네... 저승사자 주제에 뭘 목숨을 유예해주고 말고 지랄이야"
"그런데 심각한게 날 데려가려고 할때마다 내가 거부했거든."
"그거야 당연한거지 뭐가 심각해?"
"내가 거부할 때 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죽었어.."
"뭐? 레알?"
"응 진짜로...나 오늘 아침에 두명 화장하는 거 지켜봤어."
"누가 죽었는데?"
"친구 엄마랑...그 손녀."
"야! 너랑 상관 없는 사람들이잖아.."
"그게 이야기 하기는 좀 복잡한데...나랑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야."
"뭐? 너 친구엄마랑 떡쳤냐? 야설에 나온 이야기들이 네 이야기야?"
"여기서 자세히 말 해줄 순 없는데 하여튼 가까운 사이였어."
"그리고 또 누가 죽었는데?"
"내 변호사."
"변호사가 죽을 수도 있지. 원래 지병이 있었나보네....너 그 변호사도 여자냐?"
"응 여자긴 한데..."
"이 새끼 이거 그렇게 안 봤는데...그 변호사랑도 했구만..."
"난 그런 뜻이 아니야..."
"그니까 너랑 떡친 여자들은 죽는 다는게 공식이네....나 오늘 너랑 하면 안 되겠다. 오랜만에 몸좀 풀까 했는데...나 죽기 싫다."
"아 진짜 이야기하는 사람 생각하고 좀 진지하게 받아들여라 좀."
"알았어. 얘기 해봐. 그래서 그 귀신이 뭐래?"
"오늘 아침에 화장터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또 나타났어."
"어디에?"
"택시 안에.."
"야 무슨 영화 같아. 고스트 이름 들어가는 영화들. 너 그런 영화 너무 많이 본거 아니야?"
"나도 그게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택시에 딱하고 옆에 앉아서 뭐래?"
"자기랑 같이 가재?"
"그런데 같이 안갔어?"
"응, 한참 그 검은옷하고 말싸움을 하다가 최은선 후보 선거끝나고 나서 가기로 합의 봤어."
"푸하하하. 야 웃어서 미안한데...뭐 그런걸 합의 보고 그러냐? 그런게 합의가 돼?"
"나 심각해..."
"이 새끼 오랜만에 만나서 심각 빨고 지랄이야....병사의 고충은 이 상관이 다 해 준다. 잠깐만 있어봐."
김대위는 전화기를 꺼내들고
전화를 했다.
"언니....오랜만이에요? 지금 뭐하세요? 아아...요즘 바쁘죠?....아니 내가 군대에서 알던 병산데 아무래도 귀신이 들린거 같아요...네.네..맞아요...어떻게 알았어요? 언니 혹시 지금 데려가도 돼요?...알았어요...고마워요...그럼 이따가 봐요..."
나는 김대위를 쳐다 봤다.
"내가 아는 언닌데...아주 용해...가자 그 언니가 너 보제..."
"뭐? 무당?"
"왜? 싫어? 너 시한부라며....시한부가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냐?"
"알았어..."
"이거 니가 사는 거지? 난 거지다...."
나는 일어나 술값을 계산하고
김대위를 따라 건물 밑으로 내려갔다.
마침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가 있었다.
우리는 택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신림 사거리요."
"네."
나는 김대위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김대위는 내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병장이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김대위는 말 없이 창밖을 쳐다 보고 있었다.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빼내
그녀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김대위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한대 맞을 줄 알았다.
김대위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내 팔을 당겨
그녀의 무릎 위에 내 머리를
올려 놓았다.
김대위의 얼굴이 90도가
돌아간채 보였다.
김대위의 입술이
수직 낙하 했다.
내 입술을 덥쳤다.
김대위의 혀가
내 입술 사이를
파고 들었다.
나는 입술을 벌렸다.
김대위의 혀가
내 입안 가득히
퍼져 나갔다.
오랜 만에 맡은
김대위의 향기가
내 정신을 가물가물 하게 만들었다.
"신림 사거리 다 왔습니다, 손님"
"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택시문을 열었다.
김대위가 택시비 계산을 하고
나를 따라 내렸다.
김대위는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신림사거리를 걷고 있었다.
애증의 공간 신림 사거리.
그 옛날 시한폭탄에게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울며 불며
헤메던 그 신림 사거리에
내가 있었다.
김대위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보통 가정집이었다.
사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정집에선
향 냄새가 피어나고 있었다.
"언니~~"
김대위가 내 손을 놓고
무당을 불렀다.
"잠깐만."
잠깐만 대신 한참 뒤에
화장실에서 물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가 현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들어와."
우리는 그 여자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방 안으로 우리를 부르고
부처님이 그려진 그림 앞에 앉았다.
김대위와 내가 그 여자 앞에 앉자
그 여자는 눈을 감고 뭔가 주문을 외웠다.
그 여자가 눈을 떴다.
"아니 죽은 귀신이 여기에 어떻게 왔어?"
"네?"
"넌 이미 영혼이 저승에 있는데, 사람 껍데기를 쓰고 여기 앉아 있냐고?"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잘 이해가 안되는데요?"
"네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없어. 전혀 볼 수가 없어."
"뭐에요 제가 귀신이란 얘기에요?"
"그런건 모르겠고...넌 산사람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살 수 있어요?"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봐. 우리 동자신이 알려줄거야."
그여자는 한참동안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이마에선 땀이 흘러내려
그녀가 입은 파랗고 빨간 옷을 짙은 색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머리에 맨 띠에는
동자신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동자신의 얼굴이 점점 짙게 변했다.
그녀는 그렇게 삼십분동안 몸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