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34. 이계소환자의 첫 번째 대위기 (1)
- 1 -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겨울날.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실력 있는 방패 전사이자, 노련한 중급 용병인 칼바도스가 엉뚱한 정보를 물어왔다.
믿음직한 궁수이자, 뛰어난 길잡이인 마르텔은 잘못된 길을 안내했다.
"씨팔."
칼바도스가 구해온 정보에 따라, 그들은 몬스터가 많이 출몰한다는 지역에 당도했다.
그곳은 몬스터 토벌이 영구적으로 완료된 안전지역만큼이나 조용한 허허벌판일 뿐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공 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투표를 통해 속행을 결의했다.
"좆같네, 진심."
늘 하던 대로, 이번에는 마르텔이 길잡이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들은 완벽히 길을 잃어버렸다.
"하아, 왜 하필 오늘……."
거기까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실수였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더라도, 그들이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모노혼이 우르마마를 만난 이래, 그녀가 처음으로 크게 앓은 날이었다.
"하아. 하아. 죄, 죄송해요, 용사님. 괜히 저 때문에……."
"아니, 마망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하필 나쁜 일이 겹쳐서 조금 예민해졌을 뿐이야. 괜찮으니까 얼른 이리 기대."
그리고 겨우내 잔잔한 싸락눈만 날리던 북쪽 변방의 평원에, 처음으로 폭설이 내리고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길을 잘못 든 내 탓이다. 머물 곳을 찾을 때까지만 조금 참아다오."
마르텔이 자신의 실수를 사과한다.
눈치만 쭈뼛쭈뼛 보던 칼바도스도 덩달아 사과했다.
"나도 사과할게. 괜히 엉뚱한 정보를 물어와서 고생시키고, 마망이 상태가 안 좋은데도 속행하자고 고집 피워서 미안해."
모노혼은 고개를 젓는다.
"누구 잘못이랄 것도 없잖아요. 실수가 겹쳤고, 이런 선택을 한 것에 우리 책임도 있으니까요."
적어도 그들 모두에게 공동 책임이 있다는 자각 정도는, 모노혼에게도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그가 우르마마를 아낄지언정, 언제든 감정이 상하면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이들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노혼도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쿠엘보 부부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래도 모노혼은 자신의 정신적 성숙이 기껍지만도 않았다.
'하아, 인간 모노혼 18세, 아다 떼고 존나게 한 방에 훅 갔네. 상장 폐지가 머지않았다, 시발.'
그만큼 지속해서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탓에, 자신이 조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씨부랄. 그리고 저 새끼들이 존나게 의심스러운 판국에 투정 부린다고 헛지랄해댈 순 없는 노릇 아니겠어? 이쪽은 목이 달린 문제라고.'
그렇다.
모노혼은 명백하게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여신의 축복으로 참가자는 자연 발생한 질병에 고통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르마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열에 시달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과 목 등, 드러난 피부에 열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옷 안쪽의 속살에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졌을 것이다.
자연 발생한 질병일 수 없기에, 모노혼은 이것이 명백한 중독증상이라고 판단했다.
'의심해야 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만 해.'
으드득.
모노혼이 이를 갈며 우르마마를 부축한 채, 눈이 쌓이기 시작한 미끄러운 벌판에서 힘겨운 걸음을 재촉한다.
휘청.
"마, 마망!"
"……. 아……!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우르마마의 의식이 불안하게 깜빡거린다.
그들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마르텔, 우선 동굴부터 찾자. 이런 폭설을 헤치면서 길을 찾는 게, 너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
마르텔이 침중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동의한다. 마망의 상태가 계속 안 좋아지니, 일단 휴식이 시급하다."
중급 용병 둘은 가끔 모노혼과 우르마마를 뒤돌아보며, 서둘러 동굴을 찾아 나섰다.
힘없이 늘어진 우르마마는 발걸음이 질질 끌려, 그들의 뒤로 긴 흔적이 남는다.
이내 눈이 소복하니 쌓여 그 흔적마저 사라진다.
- 2 -
"여기가 제격이겠네. 진, 입구 주변의 나무를 키워서 위장을 해줘. 땔감으로 쓰게 좀 넉넉하게 키우면 더 좋고."
그들은 입구에서도 끝이 보이는 얕은 동굴 안에 자리 잡는다.
이런 악천후에서 그저 눈 섞인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감지덕지했다.
칼바도스의 부탁에 따라 모노혼이 별다른 대꾸 없이 주문을 외운다.
그가 입구 부근에 자리한 앙상한 관목에 힘을 집중한다.
쑤우우욱.
엉성하지만, 적어도 차디찬 눈바람을 그대로 맞지 않을 수 있는 은신처가 완성되었다.
아마도 바깥에서는 들짐승도, 몬스터도 그들이 있는 곳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노혼이 헐떡댄다.
"헉. 헉……."
지친 기색을 내비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실제로도 그는 완전히 지쳤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우르마마를 부축해서 끌고 오는 것만으로도 탈진할 지경이었다.
그는 달콤한 음식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렸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단내에 헬조선에서 흔하게 사 먹던 달콤한 군것질거리의 추억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을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털썩.
"마망……!"
우르마마는 안도감에 혼절했다.
모노혼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동굴 안에 들어서자마자 입구 부근에서 쓰러졌다.
그녀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소리만이 동굴 안에 가득했다.
"일단 불부터 피우자고."
칼바도스가 행낭에서 벌목용 손도끼를 꺼낸다.
흠칫.
미세하게 모노혼이 몸을 떤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칼바도스가 씨익 웃는다.
"진 너도 춥냐? 나도 몸에 달고 있는 쇳덩어리가 시려서 죽을 맛이야. 조금만 기다려."
칼바도스가 입구로 몸을 돌려 비교적 굵은 관목 줄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손도끼를 거칠게 내리친다.
툭탁, 툭탁, 툭탁, 툭탁!
비교적 굵은 관목 줄기에 적당한 깊이로 도끼 자국이 새겨진다.
칼바도스가 줄기 다발을 발로 걷어찬다.
쩌억.
이내 한 아름 장작더미가 완성되었다.
"이런 혹한에서 장작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역시나 대단하군."
칼바도스가 베어온 장작과 모노혼을 번갈아 보며 마르텔이 감탄한다.
칼바도스가 어깨를 으쓱한다.
"복 받았지, 뭐. 덕분에 살았다, 진."
착착착.
티딕, 타다닥.
칼바도스는 능숙하게 휴대용 점화기(點火器)를 이용하여 모닥불을 땐다.
"후우! 후우!"
입김을 불어 넣어 불씨를 키운다.
화르르르.
"다 됐다. 잠시만 쉬자고."
칼바도스가 입구 가까운 쪽에서 불을 등지고 주저앉았다.
누군가 접근하면 바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마르텔도 불을 등지고, 칼바도스보다 조금 뒤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혹시나 불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암순응을 하지 못해, 접근한 적들을 시야에서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노혼은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서 그들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 용사님. 용사님……! 아파, 아파……."
한 손으로는 우르마마의 손을 꼭 붙잡아 준다.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체온으로 눈을 녹여 만든 물을 수건에 적신다.
물기를 적당히 짜내고 그녀의 이마에 올려준다.
"마망. 괜찮아, 마망."
입으로는 끊임없이 우르마마에 괜찮다고 속삭여 준다.
그녀가 듣든, 듣지 못하든, 그녀를 응원한다.
하지만 두 눈은 끊임없이 다른 일행의 뒷모습을 살핀다.
'둘 다 동기를 유추하는 것은 제외하자.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발생한 사건과 현상에만 집중해야 해.'
마르텔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하루 이틀 만에 그칠 눈이 아니군."
그녀의 말에 칼바도스만 고개를 끄덕인다.
'마르텔이 오늘치 식량을 사 왔다.'
모노혼이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칼바도스가 중얼거린다.
"장작은 걱정이 없는데 식량이 걱정이야. 이런 날씨에 식량을 어디서 구해? 남은 걸 아껴먹어도 사흘 정도가 고작인데 말이야."
아무도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어깨만 으쓱인다.
그러나 입술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한숨을 막기는 어려웠다.
'칼바도스가 식량을 소분하고 분배했다.'
모노혼이 그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둘 다 혐의점이 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독을 탔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둘 다 우르마마의 식량에 독을 탈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아직 한 명으로 용의자를 확정할 필요는 없다.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둘 다 의심한다.'
칼바도스가 뒤를 돌아본다.
그가 미처 다 돌기 전에, 모노혼이 날카로운 눈빛을 감춘다.
고개를 숙여 우르마마를 바라본다.
"아 참, 밥이나 먹자. 아무리 식량이 얼마 없더라도 밥은 먹어야지."
칼바도스가 행낭에서 반합을 꺼낸다.
'최악의 경우, 둘 모두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한 배신자일 가능성도 열어둬야 해.'
반합에 눈을 쓸어 넣고, 육포 조각을 찢어 넣는다.
말린 곡물가루와 말린 채소를 넣는다.
모닥불 위에 걸어 올린다.
'지금부터라도 음식을 조심해야만 한다. 둘 다 의심스럽다. 하지만 우르마마만 중독됐으니까 소분할 때 칼바도스가 독을 탔을 가능성이 더 크다.'
모노혼의 의식의 흐름이 점점 빨라진다.
보글보글.
어느새 수프가 끓어오른다.
곡물이 수분과 만나 불어나면서 액체에 점성이 생긴다.
끈적해진다.
모노혼은 마치 끈끈한 거미줄에 걸린 기분을 느끼며, 식욕이 사라진다.
탁탁.
칼바도스가 간을 한다.
후루룹!
"음, 다 됐다."
작은 그릇 두 개에 나눠 담는다.
타박타박.
그가 일어나 양손에 하나씩 그릇을 쥐고 모노혼에게 다가온다.
"하아, 하아."
우르마마의 가쁜 숨결이 들려온다.
애써 숨기려 해도, 모노혼의 숨결도 덩달아 미세하게 가빠진다.
"이봐, 진. 좀 먹고,"
탁!
탱그랑.
모노혼이 손등으로 그가 내민 그릇을 쳐낸다.
"알아서 먹을 테니까 저리 꺼져!"
칼바도스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본다.
"어, 그, 으음……."
지나치게 예민한 그의 반응에 칼바도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미안하다. 그래도 나중에라도 꼭 챙겨 먹어라."
모노혼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는 땅에 떨어진 그릇을 주워 조용히 물러난다.
지나치게 겁을 먹었다.
의심을 걷어내려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입술을 깨물고, 심호흡한다.
"……."
진정됐다.
"……. 저도 미안해요. 마망이 갑자기 아파서 좀 예민해졌나 봐요……."
칼바도스가 고개를 살포시 끄덕이고 웃어주며, 흔쾌히 그의 사과를 받아준다.
마르텔이 그들이 하는 모양을 힐끗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 모닥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반사되어 빛난다.
그녀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다시 입구 쪽으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자. 너라도 먹어."
"고맙다."
후루룩.
후루룹.
어색한 침묵 속에서 칼바도스와 마르텔이 수프를 먹는 소리만이 울린다.
- 3 -
후드의 머리와 어깨에 소복하니 내려앉은 눈을 털며 마르텔이 동굴로 들어선다.
"다들 모여라."
세 번의 정찰을 홀로 다녀온 마르텔이 혼절한 우르마마를 제외한 둘을 불러모은다.
모노혼이 우르마마의 이마에 놓인 수건을 바꿔서 얹고는, 이내 그녀에게 향한다.
"밖은 좀 어때?"
"눈보라가 더 심해졌다. 길도 전혀 모르겠더군. 지도와 대조해봐도, 눈 때문에 알아보기 힘들다."
그녀의 대답에 칼바도스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마르텔이 물 탄 포도주가 든 가죽 물주머니를 칼바도스에게 내민다.
꿀꺽.
그가 한 모금 받아마신다.
"풋. 꼴에 위로냐?"
"리더의 좌절은 필요도, 이득도 없다. 귀환하는 시점까지 중심을 잡아라."
"하핫! 이거 놀라 자빠지겠네. 이거, 마르텔 누님이 위로도 할 줄 알았어?"
마르텔의 어설픈 위로가 통했는지 칼바도스의 안색이 다소 풀린다.
"너도 한 모금 마셔. 오늘 온종일 굶었잖아. 그러다 쓰러지면 마망은 누가 돌보냐?"
흠칫.
모노혼은 칼바도스가 내민 물주머니를 바라보며 한동안 망설인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오는 내내 몇 모금 마셨어도 저건 이상이 없었어.'
속으로 결론을 내리자 조심스레 받아든다.
꿀꺽.
한 모금 마시고 뚜껑을 닫아 마르텔에게 돌려준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보내자. 어차피 어두워서 이제 길을 찾기도 힘들잖아?"
마르텔이 칼바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마망의 상태는 좀 어떤가?"
마르텔이 조심스럽게 모노혼에게 질문한다.
"아까보단 좀 나아졌어요. 지금은 열도 내리는 것 같고요. 여전히 의식은 못 차리고 있지만……."
그 덕에 모노혼은 다소간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둘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군. 그래도 마망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무한정 여기에 있을 수는 없다. 내일 행군할 수 있겠나?"
모노혼이 잠시 우르마마를 뒤돌아서 바라본다.
자신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신의 배우자다.
"예. 여기서 굶어 죽을 수는 없지요. 해볼게요."
칼바도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혹시 힘들면,"
"아니, 괜찮아요. 내 아내예요. 무조건 내가 책임집니다."
"알았어."
모노혼의 단호한 말에 칼바도스는 재빨리 단념한다.
"다만 행군 중에 힘들면 반드시 말해. 무조건 휴식시간을 가질 테니까. 무리해서 둘 다 쓰러지면, 우리 모두 죽는 거야. 알겠지?"
"예."
모노혼이 눈으로 거친 빛을 뿌렸다.
칼바도스는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만 쉬자. 불침번은 나랑 마르텔이 돌아가면서 서고, 진, 너는 마망을 챙겨. 괜찮지, 마르텔?"
"문제없다. 먼저 불침번을 서겠는가?"
"그럼 나야 고맙지. 먼저 자. 적당히 깨워줄게."
각자 있을 곳으로 흩어진다.
입구와 모닥불 가의 침낭, 그리고 우르마마의 옆.
타닥, 타닥.
모닥불 속 불붙은 장작의 수액이 이따금 끓어오르며, 나무의 섬유질이 터지는 소리만이 외로이 동굴 안을 울렸다.
- 4 -
마르텔이 등으로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며, 동이 트기 전 새벽 무렵의 불침번을 선다.
입구를 바라보거나, 불이 꺼질 것 같으면 쌓아둔 장작을 모닥불에 밀어 넣는다.
기척을 읽는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드르렁, 드르렁.
칼바도스가 코를 골며 고른 숨소리를 낸다.
그녀가 시선을 동굴 안쪽으로 돌린다.
탈진해서 잠들었는지, 앓는 소리마저 사라진 우르마마가 보인다.
그녀의 곁에는 밤새 그녀를 간호하다가, 앉은 채로 잠든 모노혼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르텔."
흠칫.
모노혼이 앉은 그대로 고개도 들지 않고 그녀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모노혼의 고개가 서서히 들린다.
기름칠이 필요한 기관장치가 삐걱대듯, 모노혼이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린다.
"마르텔은 어디 아프거나 하지 않나요?"
마르텔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군. 걱정한 건가?"
"예. 혼자서 몇 번이나 정찰하고 오느라, 우리보다 배는 더 움직였잖아요."
"멀쩡하다. 그러는 너는 어떤가? 목소리가 피곤한 것처럼 들린다."
마르텔의 말대로, 모노혼은 짙은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 아직은 버틸 만해요."
그 말을 끝으로 모노혼은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가 옅게 코를 고는 소리가 울린다.
마르텔도 고개를 입구로 돌린다.
입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