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430)

    평소에는 그렇게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이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이리 힘을 합치다니.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나서서 두 세력을 대통합시킨 다음 이리 행동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사실, 고민해볼 것도 없었다.

    준은 날카로운 눈을 하고서 식당의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구의 문틈 사이로 즐겁다는 듯 곱게 휘어진 눈동자가 보였다.

   “케이트수녀님, 그만 지켜보시고 어서 들어와서 애들 좀 말리시죠.”

    눈동자가 움찔하고 떨렸다.

    계속 노려보자 눈동자는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고, 곧 식당 문이 힘차게 열리며 그 사이로 작고 왜소한 수녀 한명이 들어왔다.

   “자, 자. 애들아 조용히 하자. 아무리 식당이라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못써요.”

    수녀, 케이트의 다그침에 아이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두 세력이 협력할 때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 웃고 떠드는 건 하나의 사명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이것도 계획의 일부일까?

    문틈에서 케이트가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보면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이 케이트를 믿고 따르기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준은 새삼 이 작고 왜소한 수녀가 대단해보였다.

    그녀가 이곳 프리무니의 교회에 온지 불과 4년.

    10년 넘게 아이들을 보살핀 수녀들도 얻기 힘들 정도의 믿음을 그녀는 그 반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얻어냈다.

    놀라운 일이었다.

    허나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납득되었다.

    그녀는 밝고 명랑하고 그래서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이따금씩 밖에 교회를 찾아오지 않는 준조차도 그것을 느낄 정도로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흐흥∼. 시선이 뜨거운데. 준, 혹시 이 누님에게 반했니?”

    뭐, 가끔씩은 그 명람함이 도가 지나쳐서 짜증날 때도 있지만.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이 누님은 신께 순결을 받친 몸이라 준의 사랑에 보답해 줄 수가 없는데.”

    그리 말하고는 잔뜩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서 준에게 다가오는 케이트.

    어른스러움을 부각시키려는지 모델처럼 걸음을 내딛었으나 몸매가 너무 빈약해서 느낌이 전혀 살지 않았다.

    준은 자신이 느끼는 안타까움을 그대로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케이트수녀님은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풋! 푸프. 맞아, 케이트는 우리 주니의 취향이 전혀 아니니 안심해. 풋!”

    여자아이들이 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통방어하고 있던 포르투나가 웃으며 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보잉보잉. 말과 젖가슴을 사용해서.

    의기양양하던 케이트의 미소에 균열이 갔다.

    그녀도 사람인만큼 항상 밝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가슴에 관해서는 굉장히 네거티브적으로 변했다.

   “호, 호호. 우리 주니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네. 이 누님의 말을 잘 들으렴. 여자의 가슴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 커야 한단다.”

   “으음. 저는 쓸데없이 내면이 큰 것 보다는 내면에 든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보면 포르는 정말 좋아요. 내면이 전부 저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꽉 차 있는걸요.”

   “헤응♡ 포르는 우리 주니 없으면 못 살아.”

   “...큭!”

    반격할 말이 없는지 뒷걸음질 치는 케이트.

    그러자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남자아이들이 ‘준의 정론공격. 케이트는 50의 데미지를 받았다.’, ‘너무 큰 데미지. 케이트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케이트의 특수스킬, 절벽의 비애 발동!’, ‘상태이상을 즉시회복하고 반격.’이라고 지껄이기 시작했다.

    뭔데, 쓸데없이 그럴듯한 상황해설은.

    너희 평소에 그러고 노냐?...재밌긴 하겠네!

   “으윽. 나, 나중에 나이가 들면 흉하게 축 처질걸.”

    케이트가 반격이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어울려 주지 말라고. 그보다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 데 당신도 이러고 같이 논거야? 설마 당신이 퍼트린 건 아니지? 응?

   “응, 나는 인간이 아니라서 나이 안 먹고 안 쳐져. 영원히 탱탱해.”

   “부, 부러워!”

    포르투나가 종족 특성, ‘나 천사야!’를 발동시켰다. 피해 전무! 반격에 반격! 케이트는 50의 데미지를 받았다.

   ‘앗! 나도 모르게 그만.’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따라하고만 준은 머리를 흔들어 상황해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 사이 ‘노쳐녀의 불굴’을 발동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케이트가 마지막 반격을 가했다.

   “가슴이 머리보다 큰 젖가슴괴물!”

   “가슴이 애들보다 작은 절벽노처녀!”

    지지 않고 반격하는 포르투나.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뒤로 다람쥐와 젖소의 형상이 보이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두 사람 다 그만해요.”

    굉장히 흥미진진한 대결이었지만,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아 보여 준은 그쯤에서 그녀들을 말렸다.

    그녀들은 동시에 흥!하고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서 케이트수녀님. 여긴 왜 오셨어요? 수녀님이 노래를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준, 그건 아니야.”

   “케이트수녀님은 어∼엄청 음치인걸.”

   “오죽하면 수녀님의 노래를 우연히 들은 자경대원아저씨가 고블린의 포효가 더 들을만하겠다고 했다니까.”

   “캬아! 너희들! 진짜 이럴래!”

   “사, 사람 살려!”

   “꺄하! 아팟!”

   “하하하! 뷁!”

    아이들의 팩트폭격에 케이트는 작고 왜소한 몸짓과 어울리지 않게 화가 난 괴수마냥 쿵쾅거리며 아이들을 쫒아가 응징했다.

    잠시 후, 응징을 끝내고 숨을 몰아쉰 그녀는 웃으며 준에게 말했다.

   “준, 성인식 때 입을 옷 맞추러 가자.”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여자 옷은 아니죠?”

   “...헤헤헤.”

   “안녕히 계세요. 저는 성인식 때 불참하도록 할게요.”

    준은 조금도 미련 없다는 듯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생의 추억을 위해 참가하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흑역사로 남을 추억을 쌓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 장난, 장난이라니까!”

   “정말로요? 신께 맹세코?”

   “그, 그건.”

   “안녕히 계세요.”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 신께 맹세코!”

    원하던 대로 맹세를 받아낸 준은 만족스레 웃었다.

    이것으로 혹시 모를 장난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자꾸 저를 여장시키려는 거예요. 이번에 성인식을 맞이하는 여자애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작업실로 향하는 길, 아이들의 시선이 없어지자 준은 케이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케이트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성인식 때 부르는 노래의 중간에 남녀 한 쌍이 대표로 듀엣을 부르는 부분이 있잖아.”

   “그렇죠.”

   “여자애들 중에서 대표로 나서겠다는 아이가 한 명도 없어.”

   “예? 어째서요.”

    준은 의아했다.

    남자대표는 몰라도 여자대표선정은 매년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성인식을 맞이하고 나서 구직활동에 나서는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여자아이들은 구혼활동에 나선다.

    이때, 성인식에서 대표로 듀엣을 불렀다는 명함은 여자아이들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남녀대표는 웬만하면 외모로 뽑기 때문이다.

    즉, 여자대표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 아이가 같이 성인식을 맞이한 여자아이들 중 가장 예쁘다고 마을에서 공식으로 인정했다는 소리다.

    시골 촌구석에서 자신의 기치를 높이는데 이만한 방법은 없었다.

    그런 기회를 걷어찼으니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 남자대표가 혹시...”

   “물어보나마나 아니겠니?”

    케이트의 대답으로 미루어보아 남자대표는 레온이 확실했다.

    솔직히 외모는 준이 그보다 앞서겠지만, 대표선정을 마을의 어르신들이 하다 보니 평소의 행실이나 대인관계도 무시 못했다.

    아무튼, 남자대표가 레온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준은 그제야 여자아이들이 왜 아무도 대표로 나서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준차이도 적당히 나야지.’

    요 4년 동안, 준에게는 조금 못 미칠 수 있겠으나 레온 또한 아주 출중한 미남으로 거듭났다.

    미(美)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운 포르투나도 인정할 정도로.

    황가와 성녀의 핏줄을 동시에 타고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쩌면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외모를 지녔을지 모를 레온과 평범한 시골처녀가 함께 나란히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 다 한들 못생긴 오징어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혼활동에 굉장한 악영향을 끼치겠지.

   “누가 될 진 몰라도 레온과 함께 설 여자아이는 최악의 성인식을 맞이하겠네요.”

    준은 쯧쯧 혀를 차며 그 불쌍한 중생을 위해 성호를 그렸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읽어낸 케이트가 이때다 하고 얼른 그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말인데 준 네가 여장해서 여자대표를 해주면 안 될까.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흠...”

    준이 멈춰 서서 고민을 시작했다.

    근심이 가득하던 케이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씨익

    준이 해맑게 미소 지은 채 양 손을 둥글게 올리며 동그라미를 그려가자 그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준!”

    그의 결정에 감동한 케이트가 그를 꼭 안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홱!

   “...에?”

    동그라미를 완성하기 직전이던 그의 팔이 순식간에 가슴 앞에서 교차되며 X자를 그렸다.

   “히히, 속았죠? 애들을 선동한 벌이에요.”

    골탕을 먹여준 후 준은 그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멍해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케이트는 황급히 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으며 물었다.

   “여, 여장은!”

   “당연한 걸 뭘 물어요.”

    대답은 NO!

   

  “하아∼. 하아∼. 미쳤다 진짜. 이 세상 외모가 아니야.”

    골탕과 거절, 2연타에 케이트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허나 그것도 잠깐, 작업실에 도착한 후 신체사이즈를 재기 위해 준이 겉옷을 벗어던지자 곧바로 기운을 되찾았다.

    아니, 되찾다 못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코피를 터트렸다.

   “흐흐흐. 준, 가만히 있으렴. 이 누나가 아프지 않게 해줄게.”

    줄자를 무슨 사람 묶는 밧줄처럼 붙잡고서 천천히 다가오는 케이트.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턱 선에 방울진 코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말투, 행동, 모습 모두에서 범죄자스멜이 확 풍겼다.

    경계심이 안 들 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저리가! 우리 주니한테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기만 해봐! 가만히 안 있을 거야!”

    그것은 준뿐만이 아니었는지 포르투나가 황급히 케이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요정날개가 빳빳하게 세워진 것을 보니 그녀가 어지간히도 위험해보였나 보다.

   “왜에∼.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들 경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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