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430)

‘이건 먹힌다.’

총구는 정확히 준의 몸통을 정조준하고 있었고, 목표물인 준은 검을 휘두르기 직전이라 무방비상태였다.

두 말할 것 없는 회심의 일격이라고, 레베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쏴아악!

당장이라도 준의 몸을 찢어 갈길 것 같던 총알들이 우산 위로 떨어진 빗방울처럼 튕겨 나오기 전까지는.

‘!!!’

레베카의 눈이 절로 크게 떠졌다.

그녀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게, 자신이 쓰는 탄은 모두 자신이 손수 만든 수제.

폭탄만큼은 아니더라도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능과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탄을 신관의 방어막도 아닌 마법사의 방어막이 막다니.

이 싸움이 대련인 만큼 총기와 탄을 오러로 강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관의 것에 비해 방어력이 떨어지는 마법사의 방어막이 쉽게 막아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다못해 탄이 박히거나 방어막에 금이라도 가야했다.

하지만 준의 앞에 쳐진 방어막은 자그마한 흠집하나 나있지 않았다.

‘애초에 저게 방어막이 맞나?’

마치 렌즈너머를 보는 것처럼 공간이 왜곡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레베카지만 저런 공간을 이용한 방어막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뿌득! 뿌득!

‘놀랄 때가 아니지.’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레베카의 정신을 일깨웠다.

뒤이어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가 그녀의 귀로 들려왔다.

레베카는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로 준의 공격모션을 파악했다.

어떤 공격이 어느 경로로 올지까지 파악한 그녀는 곧바로 상체를 림보를 하듯 뒤로 눕혔다.

쌔액!

새까만 검이 상체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툭 튀어나온 거대한 젖가슴이 베일 뻔도 했지만, 다행이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레베카보다는 준이 그 사실에 속으로 굉장히 안심했다.

마인드컨트럴조자도 젖가슴을 향한 그의 사랑을 완전히 없애버릴 순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그가 안심한 틈을 타,

휘익!

레베카가 뒤로 이동해있는 무게중심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한쪽 발로 원을 크게 그리며 발차기를 날렸다.

자칫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동작이었지만, 다크엘프의 탄력적이고 유연한 근육은 그 동작을 무리 없이 견뎌냈다.

준은 발을 한 발짝 뒤로 물려 그 발차기를 피했다.

그 뒤, 바로 반격을 가하려고 했으나,

탕!

그보다 먼저 레베카의 겨드랑이 사이로 주둥이를 내민 더블배럴샷건이 약실에 남아있던 마지막 탄환을 토해냈다.

마법-디스토션

가속된 사고를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진 왜곡장이 다시 한 번 탄환의 비를 튕겨냈다.

공격은 무사히 막아낼 수 있었으나 그로인해 준의 반격이 반 호흡 지연되었다.

레베카는 그의 호흡을 좀 더 늦출 요량으로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 그에게 던졌다.

물론 레이더라는 치트기술이 있는 준에게는 별 효력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준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몸을 뒤로 물렸다. 뿐만 아니라 반격자체를 그만두었다.

그녀에게 질문하고픈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레베카씨,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꼭 지금 해야 되겠나? 한창 재밌어지고 있었는데.”

“너무 궁금해서요. 전투 내내 신경이 쓰일 정도로요.”

“...어서 해라.”

전투에 지장이 생길 것 같다고 돌려서 말하자 레베카는 탐탁치 않아하면서도 질문을 허락했다.

그에 준은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정확히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옷도 무기의 일종인가요?”

“이, 이게 어딜 봐서 무기라는 거냐! 딱 봐도 방어구지 않나!”

빽하고 소리를 지르며 준의 말을 부정하는 레베카.

허나 그녀는 말과는 다르게 부끄러운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조금이라도 시야가 닿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베베 꼬았다.

“아니, 아무리 봐도 매혹이나 뇌쇄용 장비 같은데요.”

광택이 도는 검은 전신가죽슈트.

몸에 어찌나 꽉 달라붙는지 레베카의 육감적인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하나만 해도 음란하기 그지없는데 슈트에 달린 지퍼의 위치마저 음란했다.

목젖에서부터 젖가슴, 배, 보지, 회음부를 지나 엉덩이골 위에까지 길게 이어져있어, 진짜 므훗한 용도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팔뚝과 허벅지, 허리, 가슴 등에 달린 크고 작은 수납백과 폭탄, 각종 무기들이 전투용이라는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수납백의 수가 좀 과하게 많고 그것들을 고정시키는 혁대로 인해 육덕진 살이 부각되어 그 느낌보다는 매니악한 느낌을 더 많이 주었다.

레이더를 통해 레베카의 몸에 상처가 없는지 살폈을 때,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 솔직히 코피를 흘릴 뻔했다.

“이 슈트는 내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다! 그런 으, 음란한 시선으로 보지마라!”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시끄럽고, 대결을 계속 하겠다!”

이견은 듣지 않겠다는 듯 레베카는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블랙독

“가랏!”

그림자에서 솟아난 검은 개 두 마리.

녀석들은 레베카가 건네주는 폭탄을 하나씩 물고는 곧장 준에게 달려들었다.

‘무시할까? 아니야, 먼저 처리하자.’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레베카를 공격하는 사이 등 뒤를 공격당할 수 있었다.

레베카에게 여유를 주더라도 먼저 처리하는게 나았다.

판단을 마친 준은 도원향에서 비도 두 개를 꺼내 녀석들, 정확히는 녀석들이 들고 있는 폭탄을 향해 날렸다.

숭숭

딱히 기대하고 날리지는 않았으나, 역시나 별 효력은 없었다.

녀석들이 머리를 틀어 폭탄을 지켜낸 것이다. 그 와중에 머리 일부를 파괴당했지만, 녀석들은 금세 회복했다.

‘까다로운 기술이네.’

없애려면 몸체 전부를 날려버리거나 산산조각 내야 할 것 같았다.

그 전에 녀석들이 물고 있는 폭탄이 터질 테니 폭탄이 터지기 전에 녀석들을 없애버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레베카가 가만히 그것을 내버려두지는 않겠지.

탕!

바로 지금처럼.

팅!

또 다시 펼쳐진 왜곡장.

하지만 아까완 달린 탄알이 곧바로 튕겨나가지 않고 박힌 자리에서 얼마간 회전을 하고 나서야 튕겨나갔다.

산탄총이 아닌 다른 총기를 사용한 것 같았다. 그것도 소총류의.

그런 길다란 총기를 들고 있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어디서 꺼낸 걸까?

‘그러고 보니.’

어둠과 빛속성의 초능력은 아공간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그 크기에는 한계가 있고 엄청난 노오오오력이 들어가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였다.

크왕!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검은 개들이 전면에 펼쳐진 왜곡장을 피해 등 뒤를 급습했다.

준은 따로 대응하지 않고 왜곡장을 전방위로 넓혀 녀석들의 급습을 막았다.

이미 펼쳐진 마법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공간친화력이 초능력에 다다른 준은 공간마법에 한해 그것이 가능했다.

왜곡장에 의해 중심을 잃은 검은 개들을 처리한 뒤, 준은 연무장 전체를 슥 훑어보았다.

연무장 위에는 준 이외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눈으로 봤을 때는 말이다.

준은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지만, 레이더가 있는 준은 그곳에 레베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까지 숨어있을 거예요?”

레베카

우웅!

준의 물음에 답하듯 허공이 일렁였다.

이내 그 안에서 어둠으로 된 코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인물이 걸어 나왔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어둠으로 된 코트를 없애버리며 레베카는 말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블랙코트를 꿰뚫어볼 줄이야. 레이더라고 했나? 정말 대단한 능력이군. 내 블랙코트는 주황급의 실력자도 꿰뚫어보기 힘든 것인데.”

훤히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그만큼 그녀는 진심으로 레이더의 성능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가 언급한 예시는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의 명령을 받고 그녀를 잡으러 왔던 주황급의 실력자는 블랙코트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녀를 번번이 놓쳤다.

그녀가 국경선을 넘기 전에는 다른 이들의 도움까지 받아 대규모 탐지마법을 펼쳤었는데도 블랙코트를, 정확히는 블랙코트를 이루는 어둠의 특성을 꿰뚫지는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인간의 탈을 쓴 용은 너무나 쉽게 블랙코트를 꿰뚫어보았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지가 높다고 해서 만능인 것은 아니잖아요. 제가 잘난게 아니라 특기의 차이일 뿐이에요.”

준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오만이나 겸양을 떠는게 아니라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그 주황급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력해서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도 아닌 걸 어떻게 자랑해.’

레베카를 찾을 수 있게 해준 레이더는 공간친화력에서 비롯되었고, 공간친화력은 운이나 노력이 아닌 신의 자비로 얻은 것이었다.

준은 포인트로 얻은 힘을 본인의 운과 노력으로 주황급에 오른 이와 비교해가며 자랑하고 싶지 않았다.

“겸손이 지나치군.”

“아니요, 지극히 사실이에요.”

“파티장, 충고하나 하지. 타고난 능력 또한 본인의 힘이다. 그대는 칭찬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글쎄요, 제 생각엔 그런 경우라고 해도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닌 레베카씨인 것 같은데요. 도대체 무슨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레베카가 어둠으로 된 코트를 이용해 몸을 숨길 당시 준은 레이더를 통해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코트가 그녀의 몸을 완전히 뒤덮는 순간 그는 그녀의 위치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정신이 그녀가 불러냈던 검은 개에게 좀 더 집중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통과와 비슷한 효력을 지닌 특성이지 않을까?’

개들을 처치한 뒤 곧바로 레베카를 찾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몸이 공간을 일정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특이하게도 그녀의 몸이 차지하는 공간은 실제 몸의 크기에 비해 반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반절 정도 되는 부위에는 공간이 마치 아무 것도 없다는 것처럼 그녀의 몸을 통과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유용한 특성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레온의 무효화초능력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초능력은 체외로 배출된 모든 이능을 무효화하는지라 아군에게도 영향을 끼치지만, 그녀의 특성은 아군에게 아무 피해도 없이 적의 이능을 관통할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관통과 폭발의 조합이라니. 진짜 끔찍한 혼종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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