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430)

충격으로 신음하는 그녀를 엘프궁수와 여마법사가 몸으로 보호한다.

그런 그녀들을 어느새 요정처럼 인간크기로 변한 정령이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경멸이 가득 담겼음에도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외모와 작은 몸집에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거대함에 사냥꾼은 또 한 번 절망했다.

정령조차도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

“대장, 어떡할까?”

그때 무희와 야만전사가 핼쑥한 얼굴을 한 채 다가왔다.

초록급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그런지 녀석이 시전한 디버프마법을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겨운 것 같았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작전변경이다. 정령과 다크엘프 먼저 쓰러트린다.”

사냥꾼은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겉으로는 냉정한 척 지시를 내렸다.

자신은 사냥꾼이지 겁먹은 사냥감 따위가 아니었다. 얌전히 사냥당하는 건 죽어도 사양이었다.

“무희, 전사. 정령을 노려라. 어이! 언제까지 쓰러져 있을 거지!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저 괴물녀석이 네 년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줄 것 같아! 어!”

“큭! 닥쳐라! 감히 평민 따위가 나를 우롱해!”

자존심을 살살 건드려주자 베티가 그가 원하는 대로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방패를 앞세운 채 도화를 향해 돌진했다.

그 뒤를 무희와 전사가 바짝 뒤쫓았다.

“마법사, 큰 거 하나 준비해라! 엘프! 너는 나와 함께 까만년을 조진다!”

“히히히! 싹 다 불태워버리겠어!”

“원하던 바입니다.”

여마법사가 광소하며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사냥꾼과 엘프궁수는 눈에 바짝 힘을 주고서 레베카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샅샅이 살펴도 두 사람은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딜 간 거지?”

“조심하세요. 검은 것들은 겉만큼이나 속이 시커매서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뭐, 이번만은 부정하지 않으마.”

엘프궁수가 나지막이 경고를 읊조리는 순간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레베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재빨리 부무장인 숏소드를 뽑아들고 뒤를 향해 휘둘렀다.

“웁! 웁!”

아니 휘두르려고 했으나, 여마법사의 뒤에서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 한편 목덜미에 날카로운 단검을 들이밀고 있는 레베카를 보자 차마 끝까지 그리할 수 없었다.

“큭! 비겁한. 이래서 검은 것들이란.”

“...생각보다 행동이 과격하군. 그래도 되나? 네 남편이 경멸할 텐데.”

엘프궁수가 죽일 듯이 레베카를 노려본다.

사냥꾼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입을 털어보았다.

“그래, 우리 다크엘프는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다행이 내 부군은 그 점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셨다. 깨끗한 척 하다가 목표한 것을 놓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하더군.”

두 사람, 아니 여마법사까지 포함한 세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레베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엘프궁수를 도발하기까지 했다.

“너 같은 건. 너 같은 건 그분 곁에 있어선 안 돼!”

되려 도발에 넘어가버린 엘프궁수가 눈을 번뜩이며 레베카에게 달려들었다.

여마법사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웁!”

꿀꺽!

그에 기겁한 여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레베카가 뒤를 덮친 순간 입 안으로 들어온 조그만 물체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말았다.

예민한 청력으로 곧바로 그것을 눈치 챈 레베카는 그녀를 자신의 빈틈을 살피고 있는 사냥꾼에게로 밀쳤다.

그리곤 그녀의 목에 들이밀고 있던 단검으로 엘프궁수의 숏소드를 막아냈다.

맞부딪힌 단검과 숏소드 사이로 불똥이 튀는 것과 동시에,

“사, 살려!”

펑!

“!!!”

로즈의 뱃속으로 들어갔던 조그만 물체, 소형 폭탄이 폭발했다.

소형이다 보니 폭발력이 작아 배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즈의 뱃속이 엉망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웨엑!!!”

입을 뻐끔거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던 로즈가 분수처럼 새빨간 피와 위장조각을 토해냈다.

얼떨결에 로즈를 끌어안았던 사냥꾼은 불행히도 그 모두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온갖 더러운 꼴을 다봤던 사냥꾼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머리가 새하얘질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가 딱 원하던 반응이었다.

엘프궁수와 싸우는 와중에 바닥의 그림자에서 폭탄을 하나 꺼낸 레베카는 스탭을 옮기는 척 은근슬쩍 그것을 발로 차 사냥꾼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펑!

“끄아악!!!”

또 한 번의 폭발음. 잇따라 들리는 비명소리.

결과는 굳이 확인해볼 것도 없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기어코 결과를 확인해본 엘프궁수가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인 채 치를 떨었다.

레베카는 이번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도발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다, 너희들 하앵이들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비겁하다느니 잔인하다느니 같은 하찮은 소리나 내뱉다니. 쯧쯧.”

“흥! 그런 점을 따졌기에 우리 엘프는 연합의 대표가 될 수 있었고, 반대로 따지지 않았기에 당신들 다크엘프는 쫓겨난 거예요.”

“뭐, 부정하지는 않지. 사실은 나도 예전부터 다크엘프의 그런 면모가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칠까 고민도 했었지.”

부정하기는커녕 시원스레 수긍하는 레베카.

하지만 어째선지 엘프궁수는 그 반응이 날선 발을 주고받을 때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그 느낌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레베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아랫배를 쓰다듬는 순간 엘프궁수는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부군은 다크엘프의 그런 면모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다. 나는 혹시라도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고치려고 했으나...”

“그, 그만. 더 이상은 그만!”

엘프궁수는 더 이상은 듣기 싫다는 듯 양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허나, 레베카가 그 부탁을 들어줄리 만무했다.

그녀는 오늘 아침 가득 채운 무언가로 인해 살짝 튀어나온 아랫배를 한층 야릇하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부군은, 서방님은 필사적으로 막으셨다. 내 이곳에, 이젠 자신의 것이 된 아기방에 자신의 씨앗을 가득 들이부으면서.”

“싫어!!!”

엘프궁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숏소드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그림자에서 검은 가시가 솟아나 그녀의 복부를 꿰뚫었다.

“커헉! 컥!”

“말했지 않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그리 말한 후 레베카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검은 가시에 매달린 엘프궁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했을 무언가를 되찾으려는 듯이.

하지만 그녀의 손이 무언가에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블플레이

화륵!

“이런 것 따위!”

우웅∼

분홍새가 뿜어낸 화염에 맞서 귀족영애, 베티는 자신의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오러를 주입하자 방패에 각인된 마법이 발동되며 반투명한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꺄윽!”

“씨발! 우리도 좀 보호해 달라고!”

“알아서 해라!”

뒤에서 뒤따라오던 무희의 비명소리와 야만전사의 애원소리가 들려왔지만, 베티는 매몰차게 그들을 외면했다.

그녀의 정신은 오로지 정면에 있는 정령에게 쏠려 있었다.

“...”

정령은 부채로 입을 가려 눈만을 내보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득!

“감히 나를.”

그 시선에서 베티는 경멸과 분노, 한심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딱히 숨길 것도 없다는 듯 정령은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낱 정령 주제에 감히 나를 그 딴 식으로 쳐다봐!”

수치심과 분노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반반한 평민 따위에게 버려진 것도 모자라 녀석의 소환수에게까지 무시당한 것이다.

살면서 당해왔던 치욕들을 다 합쳐도 이보다 더 치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없애버릴 테다.”

타악!

“자, 잠깐!”

“어이!”

베티가 앞을 향해 뛰쳐나갔다.

무희와 야만전사가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그들의 요청을 무시했다.

자신이 없다면 방어마도구는커녕 속성저항마도구조차 없는 그들은 머지않아 분홍새들이 내뿜는 속성공격에 허무하게 죽어나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한낱 평민의 목숨보다 자신의 명예가 더 중요했다.

“참으로 역겹사옵니다.”

도화의 분홍빛 눈동자가 한층 차갑게 가라앉았다.

도를 넘은 추악함에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불쾌한 것을 넘어 흡사 더러운 것을 보듯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반 절 가리고 있던 부채를 휘둘렀다.

쿵! 쿵!

그녀의 주위를 날고 있던 분홍새들 중 일부가 바닥에 앉아 그대로 스며들더니 이내 돌로 된 동양풍의 병사가 되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병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방진을 형성한 뒤 창과 방패를 들어 추악한 짐승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한낱 소환수의 피조물 따위가 나의 앞을 가로막다니!

베티는 분개하며 돌진하던 그대로 실드차징을 시전했다.

두두두 우뚝!

“...어?”

그대로 밀고 나가 제 주제를 모르는 정령에게 칼침을 먹일 생각이었다.

죽이지는 않고 딱 반 만 작살 낸 뒤 제 주인의 앞으로 끌고 가 주인과 정령 양 쪽 모두에게 친히 주제를 가르쳐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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