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430)

“...그거로 뭐 하려고.”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데이빗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제물로 바쳐서 힘을 얻을 생각이다. 너는 저들이 합류하면 상황이 불리해질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만, 나는 합류한다고 해도 딱히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저 놈들에게는 그래도 돼. 그래서 어떡할 거지?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 놈들에게 너희들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릴 거다.”

“당연한 걸 뭘 물어.”

준은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데이빗이 그들을 믿지 못해 자신이 직접 결판을 내려 하듯이 그 또한 그들을 믿지 못해 자신이 직접 결판을 내려는 것이다.

그나저나 귀족들도 참 대단하다.

아군한테도 적군한테도 이렇게나 믿음을 받지 못하다니. 도대체 얼마나 무능한 거야?

참으로 대단한 아군을 두었다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 데이빗의 손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양팔저울이 수평을 이루었다.

쏴아아∼

그와 동시에 새까만 마기가 데이빗과 베히모스를 비롯한 세 마인의 사체를 휘감았다.

-주니, 지금 공격하면 안 돼? 변신을 기다려주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나도 알고 있는데 몸이 안 움직여.’

몸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아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빚을 모두 변제해 주겠다더니 속은 건가? 아닌데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자 마기의 폭풍 속에서 웃음기가 어린 데이빗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말했지 않나. ‘졌던’이라고. 당연히 방금 생겨난 빚은 거기서 제외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왜 구구절절 내 목적을 설명했겠나.”

-우우! 치사해!

“이래서 장사치들은.”

“어이가 없군.”

“그렇게 살지 말아요.”

“염소새꺄! 얼른 나와!”

-그러게 계약사항을 꼼꼼히 살펴봤어야지.

쏴악!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소름이 돋게 하는 불길한 음성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마기의 소용돌이가 주위를 휩쓸며 소멸했다.

그렇게 드러난 데이빗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염소의 머리와 다리.

징그럽게 축 늘어진 여성의 상반신.

타락한 천사의 그것과도 같은 검은 날개.

바포메트.

복수를 노래하던 상인은 결국 추악한 악마가 되어 복수를 이어가길 택했다.

끼히힝!

아악!

시끄러!

주황빛과 붉은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포효하는 바포메트.

곧이어 상대적으로 경지가 낮은 모험가들과 귀족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악마의 포효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저주나 다름이 없었다.

이를 해주하기 위해선 아주 강력한 신관이 필요했다. 다행이 여기에는 그런 신관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자리해 있었다.

“아이리스, 모험가들을 돕도록 해. 엘리시아, 너는 저 답답이(귀족)들을 어떻게 잘 활용해봐.”

“알았어. 자기.”

“조심해요, 준.”

자신들이 돕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두 여인은 준을 걱정하면서도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도화, 레베카. 저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게 도와줄래?”

“너무 당연한 것을 묻지 마시옵소서. 낭군님께서 하고픈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소첩은 전심전력으로 도울 것이옵니다.”

“나 역시 도화언니와 같다. 그리고 그대가 돕지 말라고 해도 도울 것이다. 긍지 높은 다크엘프는 절대로 빚지고는 못산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무기를 빼들며 준의 옆에 나란히 서는 도화와 레베카.

든든하기 그지없는 두 아내들의 가세에 준은 피식 웃으며 성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곤 정실부인에게 물었다.

‘정실부인, 첩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거 아니지?’

-당연하지! 포르의 진심은 지금부터야!

준의 등 뒤로 새하얀 수레바퀴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포르투나가 매일매일 틈이 날 때마다 알뜰하게 만들어두었던 행운을 아낌없이 해방시켰다.

수레바퀴가 회전을 시작하고,

곧이어 찬란한 빛가루가 수레바퀴에서 뿜어져 나와 준과 도화, 레베카에게 깃들었다.

끼르륵!

왠지 모르게 불길함을 느낀 바포메트가 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퍽! 께에엑!

그때, 눈먼 화살 하나가 날아와 녀석의 눈동자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황금률? 과연 그게 행운 앞에서 얼마만큼 힘을 발휘할지 한 번 시험해 보자고.”

드러나다

-내 황금률을 시험해 보겠다고? 고작 행운 따위로? 운 좋게 천운이 일어났다고 해서 기고만장하지 마라!

그리 말하며 바포메트는 눈알에 꽂힌 화살을 뽑아냈다.

말이 화살이지 크기가 웬만한 단창만 했고, 그게 아주 깊숙이 꽂혀있었기에 눈알까지 덩달아 뽑혀져 나왔다.

-신체는 비싸지. 악마의 신체는 특히나.

콰득!

뭐 때문에 그런 말을 하나 의아해하는 순간 바포메트가 눈알을 통째로 입속에 털어 넣었다.

곧 쩝쩝하고 눈알을 씹어 먹는 소리가 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니, 네가 무슨 하후돈이냐고.’

의도하고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솔직히 압도되었다.

도화와 레베카도 마찬가진지 차마 녀석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뭐! 고작 행운 따위! 우씨! 준! 얼른 저 녀석한테 행운의 위력을 보여줘!

허나, 수많은 전투에 참가해 못 볼꼴이란 못 볼꼴은 다 본 포르투나는 그까짓 일에 얼어붙지 않았다.

그저 행운을 관장하는 천사로서 감히 행운의 힘을 무시하는 악마에게 분노할 뿐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마눌님들아, 가자.”

“저 아둔한 것에게 행운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사옵니다.”

“후훗. 전투가 어떻게 돌아갈지 기대되는군.”

포르투나의 재촉에 평정심을 되찾은 준은 도화, 레베카와 함께 바포메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때마침 불어온 한줄기 바람이 그들의 등을 살포시 밀어주었다.

-저리 꺼져라!

스읍 컥! 커헉! 퐈학!

그런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바포메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던 중 풀잎 몇 개가 공기와 함께 콧속으로 들어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길목 중간을 막았다.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기침.

애써 참으며 억지로 저주를 뿜어내 보았으나, 그때는 이미 적들이 그에게 접근한 뒤였다.

탁!

-어딜!

준이 바포메트의 품속을 향해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그에 바포메트는 얼른 주먹을 내질렀으나 손에서는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술-번개 가르기

촤악!

메에엥∼

전면으로 파고드는 척 페이크를 주고 곧바로 공간을 뛰어넘어 바포메트의 등으로 향했던 준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성검을 휘둘러 바포메트의 한쪽 날개를 베어냈다.

악마하면 더러운 재생력인 만큼 기술을 사용해 날개라는 개념자체를 없애버렸다.

존재자체가 떨어져나가는 고통에 바포메트는 적들을 견제할 생각도 못하고 꼴사납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한껏 벌려진 입 사이로 어디선가 날아온 화구가 쏙 하고 들어갔다.

켁! 케헥!

“겨우 그것가지고 뜨거워해서 되겠사옵니까? 소첩이 더욱 뜨겁게 해드리겠사옵니다.”

목을 부여잡은 채 켁켁 거리는 바포메트를 차갑게 노려보던 도화가 가냘프고 고운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켰다.

그에 따라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수많은 분홍새들이 녀석에게 날아가 각종 속성을 퍼부었다.

메에! 메에에!

바포메트는 겁먹은 개새끼마냥 울부짖으며 양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 엉성한 움직임에 도화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분홍새들이 당할 리가 없었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분홍새들의 속성공격은 녀석에게 아주 조금의 데미지 밖에 입히지 못했다.

주황빛과 붉은빛 오드아이를 한 악마의 육체는 너무나 강력했다. 하필 그 속에 싸움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상인이 들어있다는게 문제지.

‘힘만 생기만 자기가 다 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던 건가? 범생이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네.’

바포메트, 아니 데이빗의 추태에 준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데이빗은 씩씩거리며 분홍새들을 잡는데 열중했다.

그러다보니 보지 못했다.

아주 질 좋은 장검 하나가 땅에 박혀 있는 것을. 그것도 하필이면 검날이 아닌 손잡이가 땅에 파묻힌 상태로.

푸욱!

끼에엑!

“...저건 좀 많이 아프겠네.”

-그, 그러게.

날카로운 검날이 발굽과 살 틈 사이를 정말 절묘하게 쑤시고 들어갔다.

인간으로 치면 손톱과 살 사이로 쇠붙이가 들어간 격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프기는 날개 쪽에 난 상처가 더 아플 텐데도 왠지 모르게 그쪽이 훨씬 아파보였다.

포르투나조차도 그 장면에는 진저리를 쳤다.

이후로도 데이빗의 재난은 계속되었다.

저주가 바포메트의 권능임에도 불구하고 발동에 실패해 적을 저주하는게 아닌 자신을 저주하는가 하면, 뛰어난 육체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대지를 박찰 때마다 진흙을 밝고 거하게 넘어졌다.

뭐를 하려고 해도 다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데이빗은 연거푸 사업에 실패한 사업가마냥 모든 의욕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뭔가 하고픈 말이 굉장히 많은 눈치였으나 본인이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는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폭탄재료를 모두 네 사비로 샀다고 했지? 이제는 필요 없으니 돌려주지.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그런 녀석에게 레베카가 그림자 속에서 폭탄을 한 무더기 꺼내 머리 위로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유탄발사기를 꺼내 특제폭발유탄을 발사했다.

퐁! 펑!!!

유탄이 발사되는 자그만 소리, 그 뒤를 이어 엄청난 폭발소리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만큼 폭발력도 엄청나서 그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준이 황급히 배리어를 펼쳐야 했다.

“레베카, 이만한 폭발력을 지닌 폭탄을 가지고 있었어? 그럼 진즉에 좀 쓰지 그랬어.”

“어? 그, 그게 아무리 특제라고 해도 이만한 폭발력을 낼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여러 폭발력이 합해지며 만들어진 우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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