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흰둥이 또한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그 뒤,
꽈악!
“아앙♡ 그대여어♡”
“주인님♡ 흰둥이 발정 났어요. 교미해 주세용♡”
검고 하얀 가죽슈트에 감싸여진 풍만한 엉덩이를 터트릴 듯 주무르며 말했다.
“보스방이 저기에 있네. 우리 검둥이, 흰둥이. 어서 가서 물어. 그 뒤에 무슨 상을 줄지는 말 안 해도 알지?”
후다닥!
검둥이와 흰둥이가 경쟁하듯 보스방을 향해 내달렸다.
“포르도!”
“소첩도 갑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뒤를 천사님과 신수님이 얼른 뒤따랐다.
아니, 너희들은 왜?
――――――
취이익! 취이이익!
“네 상대는 저기에 있잖아. 괜히 여기서 힘 빼지 말고 절로 가.”
준의 충고에도 25층의 보스몹, 오크전사는 준과 그의 옆에 있는 포르투나, 도화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허우적허우적
안타깝게도 세 사람의 주위에 쳐져있는 왜곡막에 의해 도끼는 세 사람을 건들이기는커녕 엉뚱한 곳으로 휘둘러졌다.
결국 오크전사는 숨을 헐떡일 정도로 신명나게 춤사위를 펼치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뭉게뭉게
새까만 독연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연기주제에 독성이 어찌나 강한건지 20층대의 보스답게 높은 독 저항력을 지닌 오크전사임에도 두 눈이 따끔거렸다.
크와악!
부웅!
자존심이 상한 오크전사가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오크 특유의 괴력과 도끼에 내장된 ‘스킬-강격’이 더해져 엄청난 풍압이 만들어졌다.
확 트이는 시야.
허나 그것도 잠깐,
흩어진 독연 속에서 얼핏 보이는 사람의 실루엣이 무언가를 던졌고,
툭 푸쉬이!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독연에 의해 다시금 시야가 차단되었다.
흐읍!
“그렇게는”
“안 돼♡”
오크전사는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둘러 독연을 몰아내려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먼저 집강아지의 탈을 벗어던진 두 사냥개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새까만 발톱이 도끼를 휘두르기 위해 상체를 트느라 훤히 드러난 옆구리를 길게 갈랐고,
새하얀 발톱은 중심축이 되기 위해 잔뜩 힘이 들어간 발의 아킬레스건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취이익!
너무나 찰나였던지라 오크전사는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자신이 공격받은 것을 깨달았다.
취이 취이
‘초능력-재생’을 발동시키며 오크전사는 자기 몸통만한 거대한 도끼를 꽉 끌어안았다.
적당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방어를 굳건히 하고 있을 셈이었다.
탕!
그런 녀석의 의도를 비웃으려는 듯 새까만 총탄 하나가 발사되었다.
총탄은 앞을 가로막는 도끼를 ‘무시’하고 통과한 뒤, 오크전사의 복부 안에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펑!
곧이어 터지는 폭발.
내장은 물론이고 몸을 지탱하는 척추까지 손상되어 오크전사는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오크전사의 눈동자에,
“어서 죽어라.”
“주인님께 상 받아야 돼.”
그제야 주인의 상을 바라는 암캐들의 모습이 제대로 비춰졌다.
흑백덮밥
“음. 나는 안 될 것 같군. 이 녀석의 그림자는 흰둥이 네가 일으켜 세워라.”
무언가를 확인하듯 아미를 찌푸리던 레베카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흰둥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말하지 않아도 아니까 일일이 명령하지 마.”
흰둥이는 툴툴거리면서도 곧바로 오크전사의 시체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갔다.
마음 같아선 여유를 부려 본체를 놀리고 싶었지만, 본체가 개화한 ‘특화-지배’ 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좋게좋게 생각하자. 어서 일 끝내고 주인님에게 상 받아야지.’
큥♡ 큥♡
상을 언급하는 순간 자궁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지고, 꽉 찬 G컵이던 젖가슴은 부풀어 올라 H컵이 되었다.
몸이 완전히 발정해버렸다.
정신까지도 발정해 한 마리의 암캐로 전락하기 전에 흰둥이는 서둘러 움직였다.
위이잉∼
오크전사의 밑에 짙게 깔려있는 녀석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마력코어를 회전시켰다.
꿈틀꿈틀
그림자가 마치 싫다는 듯 꿈틀거린다.
‘초능력-어둠’을 발동시켜 강제로 발버둥을 억눌렀다. 명색이 보스몹의 그림자여서 그런지 발버둥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오러로 사이킥 코어와 마력 코어에 힘을 보태자 결국 그림자는 체념한 사람마냥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킁!
붉은 눈동자에 전신의 체색이 모두 새까만 오크전사가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꼈다.
타인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불쾌감과 자조감이 계약의 끈을 통해 여실히 전해져왔다.
‘그 기분 나도 알아. 정말 기분 더럽지.’
흰둥이는 쓰게 웃으며 오크전사의 그림자를 역소환시켰다.
마력 코어의 상태를 보니 녀석 정도는 얼마든지 소환하고 있어도 문제없을 것 같았지만, 녀석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되도록이면 보고 싶지 않았다.
“자, 어떤 보상이 나왔는지 한 번 볼까?”
“찬성!”
그런 흰둥이의 심정은 눈치 챈 준과 그의 아내들은 평소 때보다 더욱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보상을 습득했다.
“이건 오크전사가 사용하던 도끼겠고. 이건...”
도끼를 도원향 안에 던져 넣은 준은 이어서 오크전사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보상을 들어올렸다.
정중앙에 육봉이 새겨진 벨트.
분명 처음 보는 물건일 턴데 준은 어째선지 벨트의 효과를 알 것만 같았다.
“주니, 이 벨트 그거랑 세트 같아. 레베카가 차고 있는 고추모양 목걸이. 그 목걸이 이름이 뭐더라? 고블린의, 고블린의...”
“고블린의 긍지. 하아∼. 이게 운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여기서 또 정력시리즈가 나오다니.”
정력시리즈.
몬스터의 정력을 가지게 해주는 것 외엔 아무런 효과도 없으면서 드롭확률은 터무니없이 낮고 그 값어치는 천문학적인 아이템들의 통칭.
16층을 모험할 당시, 여검사와 여신관을 겁탈하던 고블린들을 처치하며 얻었던 목걸이, 고블린의 긍지.
현재 레베카의 목에 걸려있는 육봉모양 목걸이 또한 그 시리즈에 속하는 아이템이었다.
“자, 여기.”
평범한 모험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차지하려 했을 그 아이템을 준은 이번에도 아무런 미련 없이 자신의 아내에게 건넸다.
“하. 하하하. 고마워요, 주인님.”
물건의 주인으로 채택된 건 당연 흰둥이였다.
애완견들에게 선물을 주려거든 누구 하나 삐지지 않도록 모두에게 선물을 주어야 하는 법이니까.
뭐, 그 선물을 받고 애완견이 기뻐할지는 일단 제쳐두고.
철컥!
흰둥이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준이 선물해준 벨트를 허리에 착용했다.
새하얀 가죽슈트 위로 덧씌워진 연붉은빛 가죽벨트는 이기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몸매를 강조해 은근히 어울렸다.
‘중앙에 있는 육봉문양만 없었더라면 더 어울렸을 텐데.’
“간닷!”
푸화악!
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포르투나가 25층의 보물상자를 열어젖혔다.
곧이어 찬란한 무지개빛이 끝없이 솟아났다.
둥둥
빛은 없어지지 않고 하나로 뭉쳐 거대한 구(球)를 형성했다.
준이 24층과 25층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인지 크기가 정말 엄청나게 컸다.
사아∼
거대한 빛의 구는 일부가 떨어져나가 물건의 형태를 취하는 일 없이 전부가 준과 레베카에게 흡수되었다.
걸출한 보상을 받은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장모님께서 이번은 물건이 아닌 성장에 투자할 때라고 판단하신 모양이었다.
“응? 우리 주니, 왜 변한게 없지? 설마 엄마가 삥땅을!”
“진정해, 포르. 나중에 드래곤블러드(영약)를 섭취했을 때, 드래곤의 피를 더욱 짙게 깨우치도록 토대를 쌓는데 사용했다고 하셨으니까.”
빛의 구 속에 서려있던 장모님의 메시지를 들려주며 서둘러 보스방 뒤쪽에 있는 브라이트신의 신상에 낙서를 하려는 포르투나를 말렸다.
아니, 도대체 무슨 낙서를 하려고 아랫배까지 기어 올라가는 거야?
“주인님! 흰둥이는 이번 보상으로 남색급이던 마력 코어가 파랑급으로 올랐어요!”
“말을 똑바로 해라. 네가 아니라 나겠지.”
“그거나 그거나.”
흰둥이와 검둥이가 또다시 개싸움을 시작하려 했다.
정말 툭 하면 싸우려고 하네. 이렇게 사이가 나쁜 얘들을 사이좋게 만들려면 역시 그 수밖에 없겠지?
“검둥이, 흰둥이 손.”
“뭐, 뭣!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멍! 흰둥이 손 여기에 있어요!”
“그걸 또 주면 어떡하냐! 너는 수치도 없냐!”
“없네요. 그야 흰둥이는 주인님의 암캐인 걸.”
“자자. 잔말 말고 따라와.”
손 하나가지고 또 싸우려드는 두 여인의 손을 붙잡고 26층으로 향하는 입구를 넘고, 그대로 도원향의 입구까지 넘어버렸다.
허나 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 그대여. 지금 어딜 가려는 것이냐.”
“지금 네가 떠올리고 있는 그곳.”
거대한 침대와 각종 꽃향기가 가득한 침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포르는 이번에 한게 없으니까 나중에 올게!”
“낭군님, 자고로 말 안 듣는 개한테는 몽둥이라 약이옵니다. 다시는 싸우지 않도록 부디 혼쭐을 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