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아는 그 현재 상황이 몹시도 의심스러웠다.
불안한 마음에 마중을 나왔다고? 파티원들이 큰 부상을 입고 뻗어있는 마당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아무리 이스터에그라고 해도 그래봤자 하급 미궁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녀가 아는 레온은 그런 실수를 저지를 정도로 어리숙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안 읽혀.’
그의 진심이 읽혀지지가 않았다.
그가 무효화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곤 하나 진실을 꿰뚫어보는 용사의 권능까지 무효화시키지는 못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그의 진심이 조금도 읽혀지지가 않았다.
마치 배덕자들처럼 말이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엘리시아의 눈동자에 어렴풋이 살기가 깃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레온은 면목 없다는 듯 뺨을 긁적이며 변명을 내뱉었다.
“죄송해요. 사실 모두가 다친 건 맞지만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의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에요.”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진실로 제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면 어쩌려고요.”
“그게...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흉터가 생길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레온학생의 파티는 당신과 당신의 연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죠.”
“제 룸메이트도 한 명 끼어 있어요! 그리고...그 애들과는 연인이 아니에요.”
“아직은, 이겠죠.”
엘리시아가 짧게 덧붙인 말을 레온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실컷 여지를 주고 있는 주제에 그리 말한다면 분명 경멸할 테니까.
이 세상 모두에게 경멸받는 다고해도 단 한 사람, 그녀에게 만큼은 경멸받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사소한 이유이군요. 벌점을 부여할 테니 각오하세요.”
“예.”
“그리고 충고하는데, 그렇게 여지만 주면서 애태우지 말고 조금 욕먹을 각오를 하고 모두 받아들이세요. 저희 달링처럼이요.”
우뚝!
속이 뒤집어지는 소리에 레온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빛이 나는 것만 같은 순백의 머리칼과 금빛 눈동자.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
맡겨진 고결한 직책과 대비되는 음란한 몸뚱이.
저 미치도록 욕심나는 것들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대단히 안타깝게도 그 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꽈악!
“무슨 이유로 그런 말씀 하시는 건가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주먹에 밀어 넣으며 레온은 물었다.
그에 엘리시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아끼는 ‘후배’에게 해주는 진심어린 충고예요. 솔직히 보기 좋지 않아요. 당신의 그 행동.”
“정말 그 이유뿐인가요? 제가 느끼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예, 당신의 말이 맞아요. 사실은 더 큰 이유가 있어요. 상처 입을까봐 돌려 말하려고 했는데 당신의 모습을 보니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는게 낫겠네요.”
뻐끔뻐끔
엘리시아의 어여쁜 연분홍빛 입술이 움직인다.
허나 어째선지 레온의 귓가에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들려왔지만 의식하지 않았다는게 옳은 말이겠지.
뚜벅! 뚜벅!
그러든지 말든지 엘리시아는 제 할 말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옆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레온은 저도 모르게 숨을 가득 들이켰다.
콧속 깊이 미치도록 달콤한 향기가 스며들어왔다.
‘절대로 포기 못해.’
레온은 속으로 읊조리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질척한 욕망이 가득했다.
왜 거기서 XX이야?
‘방금 그건 뭐지?’
준은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분명 내 생각에 동의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뒤 전기가 멋대로 일어나 코어를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코어의 출력이 몇 배로 상승되었다. 마치 상위의 무언가로 진화한 듯이.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울음소리의 주인, 심상 속 드래곤의 영향을 받고 한순간이나마 최고의 코어 중 하나인 드래곤하트가 된 게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25층에서 보스를 잡고 받았던 보상의 영향인가?’
전기뱀장어에게서 넘겨받은 드래곤의 격과 준이 자신에게 투영할 목적으로 상상해낸 드래곤의 형태가 융합되며 만들어진 심상 속 드래곤.
이제까지 녀석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깊이 잠든 채 보냈고, 준이 아무리 불러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능을 사용할 때만 간혹 깨어나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탰지 지금처럼 드래곤의 힘을 각성시켜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부로 안 해준 건 아닐 거야.’
목숨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고작 빅풋샤면의 반항에 언짢아하는 상황에 힘을 각성시켜준 것을 보면 안 해준 것이 아니라 못해준 것이라고 보는게 더 옳을 것이다.
이번이 가능했던 건 25층에서 보스를 잡고 받았던 보상이 영약-드래곤블러드를 마셨을 때 드래곤의 피를 더욱 짙게 깨우칠 수 있게끔 토대를 쌓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겠지.
드래곤의 피를 깨우치는데 드래곤의 격만큼 중요한 토대는 없을 테니, 분명 격이 성장하며 가진 힘도 덩달아 상승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다음 보스방의 보상으로는 드래곤의 형태를 한층 강화할 거라고 하셨지. 도대체 왜 상상 같은 걸 강화하시는 걸까? 그냥 영약을 강화하면 안 되나?’
준은 의아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의문을 털어냈다.
장모님께서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시는 것일 테니까.
‘그것보다 지금은 다른 걸 신경 쓸 때야.’
막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보던 중 준은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해냈다.
바로 자신이 샤먼의 반항을 지나치게 언짢아했던 것이다.
‘샤먼의 반항은 당연한 것이었어. 그런데 난 왜 그렇게 언짢아했던 거지?’
평소 같았으면 언짢아할 시간에 샤먼의 숨통을 끊었을 것이다.
천마군림보가 아닌 검이나 레일건, 제 3의 손 등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수를 사용해서.
그런데 그때의 자신은 달랐다.
너무나 당연한 반항에 언짢아하며 효율 따윈 내다버린 듯 마나를 미친 듯이 사용해 천마군림보의 위력을 높였다.
절대로 효율충인 자신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보인 이유는, 아마 높은 확률로 성장한 드래곤의 격 때문이겠지.
‘그러고 보니.’
-참고로 ‘외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복용하세요.
장모님께서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외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고. 반대로 말하면 내면에는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이대로 용인이 되어도 괜찮은가 모르겠네. 내면에 큰 변화가 있다면 장모님께서 권하시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찝찝해.’
벅! 벅!
갑작스레 치솟는 찝찝함에 준은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와 동시에,
움찔!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 말 않고 숨죽이고 있던 아내들이 몸을 떨었다.
“너희들 왜 그래? 뭐 했다고 상태가 그래?”
그제야 아내들에게 시선을 준 준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도 그럴게, 아내들의 상태는 척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양 볼은 새빨갛게 익어 있었고, 몸을 잠시도 쉬지 않고 꼬아댔으며, 자신과 좀처럼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야말로...
“발정나기 일보직전이잖아. 아침섹스하고 온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는 거야.”
너무 야한 거 아니냐고. 일상생활 가능하겠냐고.
준은 반쯤 장난삼아 그리 덧붙였다.
그러자,
“부웃! 주니, 나빠! 포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주니 탓인데!”
포르투나가 복어마냥 양 볼을 부풀리며 성질을 부렸다.
다른 아내들도 화가 나는 건 마찬가지인지 얼굴 가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 잘못이라고? 내가 뭐했다고?”
보스 방에 들어오고 나서 한 거라곤 짜증내기와 상념에 잠기기 밖에 없는 준으로선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해 보아도 아내들의 얼굴에서 못마땅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쯤 되자 준은 슬슬 자기 자신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그랬나? 제 3의 손을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건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제 3의 손이 생기고 난 뒤부터 준은 틈만 나면 그것을 이용해 아내들의 음란한 몸뚱이를 만져댔다.
그 때문에 거의 항시 발정상태에 들어가 있게 된 아내들은 그만 좀 하라고 불평을 쏟아냈지만, 준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더 옳겠지.
음탕한 몸을 가진 아내들과 감각이 이어진 투명 손이 갖추어졌는데 그러지 않을 남자가 어디에 있을까.
하나의 진리처럼 항거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래도 보스방에서 그러는 건 선을 넘었지.’
준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아내들에게 사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주니가. 주니가 잘못이야.”
“그런 오싹오싹한 모습 보여주시면 소첩은...”
“흥분해버리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주인님, 어서 흰둥이를 귀여워해주세요오♡”
아내들이 발정을 참지 못하고 몸을 던져왔다.
그런데 도화, 레베카. 방금 뭐라고 했니? 오싹오싹한 모습? 흥분?
“뭐야. 내가 제 3의 손으로 희롱한게 아니었어?”
“아니이♡ 주니가 갑자기 너무 멋져져서 그랬어♡”
“꼬장부리는게 뭐가 멋있다고.”
육탄공세를 받아들이며 그리 중얼거리자 아내들은 말했다.
오만한 모습이 정말 섹시했다고. 어째선지 지배당하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