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9화 (239/430)

스릉!

허나 준은 셋 중 그 무엇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피르무스의 끝을 길드장을 향해 겨눴다.

준이 그녀와 대련을 시작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새롭게 얻은 드래곤의 권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일뿐.

겸사겸사 지난날의 설욕을 갚고자 하는 의도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는 시험욕구가 더 컸다.

그러니 기왕 코어가 과열된 거 다른 이능은 배제하고 오로지 드래곤의 육체, 드래곤바디의 성능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참고로 드래곤하트의 성능은 이번 대련에서 시험해볼 생각이 없었다.

딱 한 번뿐이지만 사용해본 적이 있기도 하고, 그 권능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비수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전체 실력의 7할은 내보이고 3할은 숨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지.’

마땅한 대우를 받기 위해 7할을 내보이고, 언젠가 나타날 적을 대비하기 위해 3할을 숨겨라.

적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배덕자와 미궁이라는 뚜렷한 적이 있는 준으로선 필히 그것을 지켜야 했다.

마침 그림도 좋았다.

무리를 한 거 아니냐는 길드장의 물음을 부정하지 않고 검을 들었으니 이제 그의 적들은 그가 지구력이 약하다고 생각할 터였다.

“어쭈. 이능이 안 되니까 몸으로 해보려고? 아서라. 네 신체능력이 오크보다도 뛰어나고 무술실력도 웬만한 베테랑 못지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직 이 누나는 감당 못해.”

길드장은 평생을 모험가로 살았고 일선에서 물러선 지금도 모험가로써 자신을 갈고 닦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모험가가 된지 고작 1년, 무기를 손에 쉰지는 고작 6년 밖에 되지 않는 준이 원래라면 감당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죠. 뭐, 저는...”

꾸욱!

“대보지 않고도 짧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하지만요.”

허나 준은 확신했다.

피르무스에 담긴 거력과 비록 짧지만 농밀하고 효율적으로 쌓은 경험이 어우러진다면 충분히 그녀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후우∼”

탓!

준은 자신을 믿으며 길드장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곤 길드장이 자신에게 첫 인사로 주었던 기술을 그녀에게 되돌려 주었다.

물론,

카피개량-드래곤 클로우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이 괴물새끼가!”

날아오는 다섯 개의 발톱.

그 앞에 선 길드장은 헛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신의 발톱에 비해 수가 부족했지만, 애송이의 발톱은 그 차이를 충분히 덮고도 남을 정도로 크고 강맹하고 날카로웠다.

거기다 애송이가 펼친 기술은 고대제국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라이윈저가의 대표기술.

그런 기술을 고작 눈으로 본 것만으로 훔치고 개량까지 한다고?

너무 터무니가 없어서 웃음이 멈추지가 않았다.

“하하하! 좋아. 그 정도는 해줘야 이 누나가 만족하지!”

라이윈저가 비전-라이언 클로우

발톱에 발톱으로 응수하는 길드장.

곧이어 다섯 개의 용의 발톱과 여섯 개의 사자의 발톱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채채채채챙!

결과는 공멸.

용의 발톱 다섯 개가 사자의 발톱 다섯 개를 깨트리고 살아남는데 성공했지만, 마지막 남은 사자의 발톱이 그렇게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해오는 바람에 결국 각자의 적에게 닿은 발톱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공격은 한 번 날리고 끝이 아니라고!”

길드장이 날렸던 주먹을 회수하는 동시에 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그 즉시,

쿵!

줄리아 오리지널-붕권

진각을 밟으며 그의 복부에 일격을 날렸다.

무게이동, 무게의 집중, 속도, 타격 위치를 모두 조화시켜 내지르는 빠르면서도 강하며 빈틈이 없는 일권.

나무랄 데가 조금도 없는, 일평생 무투에 매진해온 권사만이 내지를 수 있는 일권에 준은 대련 중이라는 것도 잊고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허나 그의 냉철한 이성은 그 와중에도 레이더를 통해 파악한 정보들과 뛰어난 신체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쿵!

붕권의 정면에 정확하게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다.

경로만이 정확할 뿐 아무 기술도 없이 힘만 무식하게 불어넣은 투박한 주먹질.

부르르

허나 그 주먹은 기어코 권사의 정수나 마찬가지인 주먹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중간에서 부딪힌 두 주먹은 어느 한쪽이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비등비등했다.

“야. 이제 좀 말해봐. 도대체 뭘 처먹었길래 힘도 이따구로 무식해졌냐? 응?”

길드장은 이를 꽉 깨문 채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힘을 풀어도 밀릴 것 같은데,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이 일권은 오우거도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만든 적도 있다고!

“드래곤블러드라고, 아시려나 모르겠네요.”

“미 친! 그거 전설상의 영약이잖아!”

너무 궁금해 해서 준은 특별히 답을 들려주었다.

당연하게도 길드장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걸 대체 어디서 주서 먹은 거야!”

‘이렇게 였던가? 아니, 이렇게 였던 것 같기도.’

길드장이 추가로 질문해왔다.

허나 생각에 빠져있던 준은 그녀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

“이!”

그게 눈에 보여 길드장은 화를 내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아, 이렇게구나.”

카피-붕권

주먹 간의 힘싸움이 단숨에 준의 우세로 기울어졌다.

탓!

결국 뒤로 밀려난 길드장.

그녀는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팡! 팡!

“음, 좋네요.”

자신이 평생에 걸쳐 얻어낸 정수를 자기 것인 것 마냥 품평하는 준이 있었다.

“좀 더 보여 달라고요. 그런 거.”

“...꿀꺽.”

이내 탐욕으로 빛나는 준의 눈이 길드장에게로 향했다.

무언가에 잡아먹힐 것 같은 불길함에 길드장은 오랜 만에 마른 침을 삼켰다.

――――――

-안 해!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한다고!

준에게 밑천을 거의 대부분 빼앗기게 된 길드장에 의해 대련은 뚜렷한 승패 없이 흐지부지하게 끝나게 되었다.

얼핏 준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도 보였으나 대련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반은 준이 코어의 과열 때문에 이능을 배제한 육탄전을 시작할 때, 길드장은 충분히 미래시를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를 끊고 똑같이 육탄전을 벌였던 것을 이유로 들며 길드장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오랜만에 수준 높은 대련을 봐 기분이 무척 고무된 모험가들의 손에 이끌려 중앙광장에서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던 준.

그런 그에게 대련을 구경했던 랭커 중 한명이자 미국출신 환생자인 제임스가 어깨동무를 하며 질문했다.

일순 주위에 있는 모험가들의 시선이 쏠렸으나 준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대답을 얼버무렸다.

솔직히 끝가지 갔다면 자신의 승리라고 확신했지만, 그를 주변에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를 말해버리면, 실력지상주의인 모험가 사회에 길드장교체설이 나돌 테니까.

‘그래선 안 되지. 그녀만한 인물이 없는데.’

가끔 현 길드장과 같은 전 랭커출신 모험가가 자신이야말로 길드장에 어울린다고 떠들 때가 있는데, 준이 볼 땐 현 길드장만큼 잘 할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다.

대부분이 딱 봐도 뒷돈을 노리는 티가 났고, 몇 몇 괜찮은 사람들도 뒤에 특정 세력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길드장을 맡게 되면 분명 귀찮아질게 뻔했다.

그러니...

‘승패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꽁꽁 감춰두고, 혹시라도 이번 일로 교체설이 나돈다면 패배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실력적인 면에서 길드장에게 아직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뭐 어떠랴.

외야가 뭐라고 떠들든 우리 마눌님들만 제대로 알아주면 충분했다.

“응응! 우리 주니가 최고야!”

과자를 먹고 있던 포르투나가 포르르 날아와 인정욕구를 채워주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아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준의 자존심을 올려주었다.

허나 2프로 부족함을 느끼는 준.

그를 채우기 위해 그는 오늘 밤 저 멀리 있는 두 아내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로 했다.

“준님! 용사님께서!”

허나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뛰어온 캐롤에 의해 바뀌게 되었다.

곧이어 시작된 그녀의 설명에 의해,

“왜 거기서 지랄이야?”

준의 수도행이 결정되었다.

내가 누구냐고?

“3일이나 지났다고요?”

제국아카데미가 현장실습으로 애용하는 하급미궁.

그것이 원인 모를 이유로 무너지며 그 속에 있던 엘리시아가 차원의 미아가 된지도 벌써 3일째라고 한다.

“...그걸 왜 이제야 알았죠?”

준은 따지듯 물었다.

캐롤에게 화를 내봤자 분풀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도저히 화를 완전히 억누를 수 없었다.

역정을 내지 않은 것만 해도 자신의 최선이었다.

그도 그럴게,

‘하필이면 차원의 미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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