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9화 (349/430)

“...미친 년.”

그런 행운의 천사의 부름에 화답하듯 근처 풀숲에서 다크엘프 한 명이 튀어 나왔다.

만면 가득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그녀에게선 화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누가 학살마의 동생, 폭탄마 아니랄까봐 그녀 또한 폭탄으로 수많은 오크와 그들이 살고 있던 부락을 몽땅 터트려버리고 오는 길이었다.

한 발 늦게 풀숲에서 튀어나온 엘프가 그런 다크엘프를 미친 년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럼 이번 의뢰도 완료네요.”

“으그그! 어서 돌아가서 쉬자, 언니들. 곧 있으면 또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마지막으로 합류한 세계관 최강의 트러블메이커 콤비, 용사와 성녀가 하루 일과를 끝마친 사람마냥 장비를 정돈하고 기지개를 쭉 켰다.

참고로 그녀들은 얼떨결에 이제까지 각자도생하던 오크들이 연합을 이루어 엘랑스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증거를 확보한 상태였다.

그저 원정 중에 우연히 들린 시골마을에서 용병에게 맡기기도 그렇다고 군대에 부탁하기도 어정쩡한 골칫거리를 대신 해결하던 것뿐인데 마치 짠 것처럼 그런 증거를 확보하게 되다니.

과연 세계관 최강의 트러블메이커 콤비다웠다.

“엑! 그럼 내일부터 주구장창 오크들을 잡고 다녀야 하는 거야? 싫은데. 귀찮은데.”

“너무 걱정하지 마, 포르언니. 우리는 그저 엘랑스의 군대가 준비될 때까지 연합에 합류하는 중소규모의 오크들을 정리하면 될 테니까.”

미약하게 떠도는 불운을 감지하고 질색하는 포르투나.

그녀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산을 내려가던 아이리스가 다정하게 그녀를 달랜다.

그야말로 조금 안타까운 언니와 의젓한 동생의 모습.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이리스를 언니로 보지 않을까?

비록 키와 젖가슴은 포르투나의 쪽이 더 컸지만 말이다.

“흑! 주니 보고 싶어.”

“누가 보면 며칠은 못 본 줄 알겠다. 아까 점심 먹을 때 봤고, 이따가 저녁에도 볼 거잖아, 언니. 조금만 참아.”

포르투나와 레베카, 엘리시아, 아이리스가 여론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원정을 다니기 시작한지 어느덧 한 달째.

기간이 기간이니만큼 엘랑스연합국의 수도와 제법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녀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느 때라도 자신들의 사랑스러운 연인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가능케 해준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줄어들 때마다 자궁 속에 한가득 채워주는 정액이었다.

준이 반신의 격에 오르게 되면서 덩달아 격이 높아진 정액은 그저 품고 있어도 호문쿨루스처럼 그의 이능을 미약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힘으로 준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녀들은 도원향의 입구를 열어 그를 만났다.

사실상 떨어져 있어도 준과 그녀들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브라이트신이 건 제약으로 인해 원래는 준과 멀리 떨어질 수 없는 포르투나가 지금처럼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점 덕분이었다.

“싫어싫어. 한 시도 주니랑 떨어져 있기 싫단 말이야.”

뭐처럼 자유를 되찾았지만, 포르투나는 그 자유가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그 자유로 인해 이렇게 사랑하는 님과 떨어지게 되었으니까.

예전에는 그가 제발 좀 떨어져 있으라고 해도 제약을 들먹이며 무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영영 그것이 불가능했다.

“하아∼. 도대체 언제까지 원정을 다녀야 하는 거야? 포르 이제 원정 싫어.”

“처음엔 여행 다니는 것 같다며 좋아했으면서.”

“싸지 않아도 될 짐가방까지 싸셨죠.”

계속되는 포르투나의 칭얼거림에 살짝 짜증이 났는지 아이리스와 흰둥이가 포르투나의 지난 행동을 언급했다.

“힝! 너무해. 포르 삐졌어. 주니한테 갈 거야! 가서 이제 원정 싫다고 말할 거야!”

“그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봐라, 포르언니.”

“맞아요, 포르언니.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동생들의 반란에 양 볼을 부풀리는 포르투나.

그대로 준에게 가려는 그녀를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레베카와 엘리시아가 멈춰 세웠다.

“안 그래도 이 원정은...”

“오늘로서 끝이 날 테니까요.”

왠지 모르게 부산스러운 숲을 둘러보면서.

“...아항”

곧 그 이유를 알아차린 포르투나는 야릇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자신의 애병을 손에 쥐었다.

학살마란 이명에 또 하나의 산제물이 추가될 시간이었다.

――――――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알렉스는 제 뺨을 꼬집어보았다.

알싸한 통증이 뺨을 타고 전해져왔다.

그 뜻은 이곳이 꿈속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라는 뜻이었고, 다시 말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우랴아아!!!”

“꺄아악!”

“살려줘!”

무자비하고 참혹한 학살극 또한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사악한 악룡에게서 미녀(신수)를 빼앗고 더 나아가 완전히 토벌하기 위해서 알렉스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그렇게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새싹수호대를 이끌고 단련시켜야 할 단장답게 알렉스 본인은 주황급의 실력자였고, 다른 동지들도 오랜 시간을 사는 엘프답게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정면에서 악룡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악룡을 볼 때면 자연스레 온 몸을 지배하는 공포.

연무장에서 볼 수 있었던 악룡의 경지를 뛰어넘는 힘.

그 두 가지를 고려해봤을 때 정면에서 싸워 이기는 건 아무래도 자신들이 아닌 악룡 쪽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시간을 들여 고심했고, 그렇게 해서 떠올린 작전이 바로 ‘미녀납치작전’이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동지들 중 유일하게 알렉스와 같은 주황급에 오른 동지 한 명과 노랑급에 오른 동지 몇 명을 미끼로 내놓고,

악룡이 그 미끼에 정신이 팔린 틈에 원정을 나가있는 악룡의 미녀들(용사파티)을 납치한다.

그 뒤 악룡에게 납치한 미녀들과 곁에 있는 미녀(신수)를 교환하자는 식으로 시간을 끌다가 악룡이 빈틈을 보이는 순간 재빨리 목을 친다.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 작전이라면 악룡의 목을 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야기 속의 악룡들은 대부분 미녀에게 집착하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으니까.

보물 대신 미녀에게 집착하는 반푼이 악룡은 더욱 그러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확신과 함께 시작한 작전은 초장부터 알렉스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알렉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3가지 요소 때문이었다.

“언니들, 시아! 버프 다 걸었으니까 나는 들어가 있을게!”

“예! 아, 예지로 위험한 공격을 사전에 알려주는 거 잊지 마세요!”

첫 번째는 성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동지들이 용사파티를 습격하는 것과 동시에 성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갑작스레 허공에 나타난 균열 속으로 냅다 몸을 던졌다.

원래 알렉스는 서포트 능력은 좋지만 실제 전투력은 가장 뒤떨어지는 성녀를 최우선적으로 붙잡고, 그녀를 인질로 삼아 다른 여인들을 쉽게쉽게 붙잡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균열 속으로 몸을 던지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골치 아픈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용사를 비롯한 다른 여인들에게 위험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성녀는 미친 듯한 타이밍에 균열을 열어 다른 여인들을 서포트했다.

그녀의 활약으로 다른 여인들은 전투가 시작되고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쌩쌩한 반면 자신과 동지들은 빠르게 상처입고 지쳐갔다.

펑! 퍼퍼펑!

“하하하! 흰둥이들아, 폭탄 맛 좀 봐라! 맛있지 않느냐!”

“야 이 미친년아! 나한테까지 던지지 말라고!”

두 번째는 웬 미친 다크엘프의 등장이었다.

알렉스가 알기로 용사파티의 구성은 용사, 성녀, 요정수녀, 그리고 엘프답지 않은 엘프레인저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습격하고 보니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엘랑스연합국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다크엘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 다크엘프는 은밀하고 음흉한 다크엘프답지 않게 무척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굉장히 위험했다.

그녀가 미친 듯이 웃으며 흩뿌리는 폭탄은 내구력이 약한 엘프와 정령에게 있어 천적이나 다름이 없었고, 시시 때때로 일어나는 어둠은 그녀를 숨기거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등 무척이나 성가셨다.

“야! 어딜 넋 놓고 있는 거야!”

쿵!

“커헉!”

앞선 두 가지 요소는 비록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허용범위 안이었다.

두 요소만 있었다면 그래도 계획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요소.

그 하나가 계획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지?’

그냥 우연한 계기로 브라이트신을 믿게 된, 조금 별난 요정인 줄 알았다.

그녀가 요정의 태를 벗어던지고 인간의 형태를 취할 때까지도 조금 특별한 마법을 익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장 위협적이지 않다고 여겼던 그 요정은 사실 한 순간만 긴장을 끈을 놓아도 대번에 이쪽의 머리를 산산조각 낼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징벌

“으랴아아!!!”

퍽!

아차 하는 순간 또 한명의 동지가 괴물에게 당했다.

방패를 들어 방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지는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방패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그 끔찍하기 그지없는 광경에 다른 동지들의 눈에 두려움이 맺혔다.

알렉스는 서둘러 동지들을 다독이려고 했지만,

“젠장! 나는 죽기 싫어!”

“이건 자살행위야!”

그보다 먼저 몇몇 동지들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저 개자식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그렇게 줄행랑을 친 이들은 모두 알렉스의 지시에 불만을 표했던 불평분자들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남아있던 동지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조용!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

욕을 하고 싶은 건 알렉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남아있는 동지들을 진정시켰다.

이제부터는 없는 정신력을 짜내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불평분자들이 도망치면서 가까스로 괴물을 옭아매고 있던 포위망이 느슨해지고 말았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자신과 동지들은 저 괴물의 먹잇감이 되어버리고 말겠지.

“아, 안돼에!”

“살려줘 제발!‘

퍽! 퍽!

맹수가 등을 보이는 상대를 가장 먼저 공격하듯 괴물이 도주하던 불평분자들에게 망치를 휘둘렀다.

그 틈에 알렉스와 나머지 동지들은 포위망을 정비했고, 덕분에 느슨해진 포위망을 조금이나마 견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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