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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서로 속닥이며 파티의 시작을 기다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평생을 신전에서 살다 갑자기 나타난 막내공주였다, 초대를 받은 수많은 귀족들이 모두 참석해 그레이트 홀 안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요즘 살롱이든 파티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베르트 왕세자 결혼식 때야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공주와 레오나드가 가까워진 이후부터 슬금슬금 귀부인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로 떠올랐다. 허나 어릴 적부터 신전에서만 살아온 터라 막내공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애정을 쏟아내는 카엔공작의 이야기를 하며 공주에게는 부러움과 질투를 쏟아낼 따름이었다.
"들으셨어요? 오늘 파티를 위해서 카엔 공작이 무려 100만 카렛도 넘게 썼다던데요."
"세에상에! 100만 카렛이요? 경치 좋은 여름별장 하나를 살 수 있는 정도잖아요!"
“나도 들었어요. 글쎄 드레스는 무슈 봉브르, 보석은 카엔 공작가 직속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공수해온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모자부터 부채의 깃털까지 다 카엔 공작의 상단을 통해 직접 구해 온 것이라고 들었어요. 무슈 봉브르는 카엔 공작이 요구한 10벌의 드레스를 만드느라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2주 내내 드레스만 만들었다던데요. 덕분에 저는 새 드레스를 주문 할 수가 없었어요.”
“듣기로, 무슈 봉브르는 공주님을 직접 만나 뵙지도 못한 채 드레스를 가봉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시녀들이 흘린 말에 의하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여성들이 대신 치수를 재어 가서 드레스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설마, 공주를 다른 이들이 못 보게 하려는 그런 배려 같은 건 아니겠죠.”
“어머나, 카엔 공작의 애정이 그 정도까지인가요?”
엘가 후작부인은 눈에 띌 정도로 꽉 조인 코르셋과 그 위로 솟은 가슴을 일부러 더 내밀며 눈살을 찌푸렸다. 갈비뼈가 닿아 으스러질 정도였지만, 오늘만큼은 어쩐지 코르셋을 최대한 조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서였다.
"아니, 무슨 매력이 있어서 카엔 공작이 그렇게 쫓아다니는 걸까요?"
한 귀족 부인이 부채를 살랑이며 곁에 선 후작부인에게 물었다.
"토너먼트에서 봤을 때 성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자아이 수준이었어요. 화장도 잘 안했더라고요. 망측하게도."
"분을 칠하지 않고 민낯으로 햇살을 맞다니 심히 상식적이지 못하군요."
“촌구석에서 신전 생활이나 하고 왔으니 얼마나 촌스럽겠어요. 최근 유행하는 게 뭔지도 제대로 모를 텐데.”
“왕께서 공주에게 왕실예법을 교육시키려 여럿 선생들도 붙였다고 들었어요.”
인정할 수 없었다. 공주란 지위 외에 그녀가 자신들보다 나은 게 뭐란 말인가. 꾸밀 줄도 모르고 종일 온실에서 흙장난이나 한다는데.
"뭘 걱정해요, 이상하게 입고 나오면 실컷 비웃어줄 수 있고 얼마나 좋아요. 눈치 볼 것도 없잖아요? 호호호호."
“불쌍해라, 카엔 공작은 어떻게 그런 공주에게 빠진 걸까요. 그를 누군가 구원해 주어야 할텐데.”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 보았자 분명 곧 깊은 물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어요? 만족이 되어야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은 내가 차지할 거야’는 속내는 가린 채, 펄럭이는 부채사이로 온갖 입술과 말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있는 카엔 공작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레오나드의 아름다운 금발은 가볍게 쓸어 넘겨져 있었다. 목에는 화려한 레이스로 된 크라바트를 맸다. 금실 자수로 황금 사자의 모습을 새긴 화려한 코트 안에 옅은 크림색의 바탕에 금실로 수를 놓은 조끼를 받쳐 입어 그의 미모를 더욱 빛나게 했다. 공주를 만난 이후로 가장 화려하게 차려 입은 것이었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계단 위를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카엔 공작의 옆선에 모두들 매료되었다. 오직 한곳만을 바라보는 모습에 여인들은 차마 다가가 말을 걸 엄두도 내지 못하고 부채 뒤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의 푸른 바다색 눈동자는 그 누구도 담지 않을 의지가 충만했다.
모두의 관심이 그와 소문의 공주에게 쏟아지는 것은 그에게 좋으면서도 불쾌했다. 그녀가 자신의 것임을 인지하는 숙덕임이야 언제든 환영이었지만, 그녀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씩 기록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보여주리라, 그녀는 자신이 반하고 또 반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려주리라, 자신의 애정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 같이 얕고 낮은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 더 큰 돈을 쓰지 못한 자신의 옹졸함(그러나 그것은 이미 일반 귀족들의 한도를 넘어서고도 남는다는 것을 그는 애써 받아들이지 않았다)에 속으로 화를 냈다. 아직도 부족했다.
그 때 팡파레가 울리고, 작은 여인의 모습이 중앙 계단참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레오나드는 숨을 크게 들이 삼켰다.
연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로첼리아가 약간은 굳은 미소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어깨나 가슴 부위를 훤히 드러내지 않고 다이아와 크리스탈이 달린 리본 레이스로 가려 공주다운 품위를 나타냈다. 구불거리는 다갈색 머리카락은 한데 모아 위로 올려 동그란 이마를 그대로 드러냈고, 레오나드가 직접 맞추어 만들도록 지시한 티아라가 그녀의 머리 위에 아름답게 장식되어 별처럼 빛났다. 비록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뽀얀 피부와 하늘빛 눈동자, 그리고 사랑스럽게 붉어진 입술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 주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며 주변이 조용해졌다. 로첼리아는 배운 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무릎을 구부리며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레오나드는 유혹에 걸린 사람마냥 넋을 놓고 계단위로 올랐다. 계단 위 천장 그림이 아기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있는 현상이라 마치 그녀가 천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천상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사를 마친 로첼리아의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안면도 모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오직 자신만을 올려다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아무리 사교계를 모르는 그녀라도 그 시선들 중 대부분은 그녀에게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 시선들이 칼날처럼 그녀의 온몸을 찔러왔다. 눈길 둘 곳을 몰라 어깨를 움츠리며 무의식적으로 작은 주먹으로 가슴을 꽉 눌렀다. 아무리 노출이 없다 하더라도 역시나 이런 드레스는 어색했고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뒤돌아서서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도 오지 않을 온실에서 고요한 침묵 속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었다.
그때였다. 계단 아래에서 한줄기 빛이 올라왔다. 그녀와 맞추어 하얀색의 예복을 차려입은 레오나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곁에 다가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로첼리아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어 그녀를 의아하게 했다.
"…어딘가 이상한가요, 나?"
그가 원하는 대로 드레스를 입고 보석으로 장식했으며 티아라까지 썼다. 물론 레오나드가 골라온 것들이 놀라울 정도로 모두 자신의 취향과 정확히 일치해 바꿀 필요조차 없었다. 로잘린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보면서 아무 말 하지 않는 레오나드에 역시나 자신에겐 이런 드레스는 안 어울리는 걸까 싶었다. 불안해진 눈빛이 계단 아래의 레오나드를 내려다보자, 레오나드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웃어보였다.
"공주께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머지 그만 말을 잃었습니다. 공주님께 취하여 침묵하는 바람에 그 마음을 어지럽힌 저를 부디 용서하십시오."
작은 손 위로 긴 키스가 내려앉았고, 이윽고 레오나드의 큰 손 위에 얹어졌다.
"꿈에서 공주님의 데뷔 모습을 수십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크림색의 드레스부터 화려한 푸른 비단 드레스까지. 그 모습들도 다 아름다웠지만, 역시 지금의 공주님은 제가 감히 상상해 온 것보다 더 고혹적이고 아름다워서, 제가 드린 선물들이 혹시나 공주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방해하면 어떡할까 걱정한 제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카엔 공. 공도 정말 멋진걸요. 옷이 참 잘 어울려요."
로첼리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붉게 칠해진 입술과 얹어진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레오나드가 낮게 물었다.
"무서우신가요."
"정말 떨려요.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는 처음이라서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레오나드가 꽉 잡아주는 온기가 있어 그나마 나아졌지만, 로첼리아는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장갑 아래의 맨살로부터 찬기가 전해지는 것 같아, 그는 천천히 공주를 계단 아래로 인도하며 말을 걸었다.
"저도 무척 떨립니다. 처음이라서요."
"예?"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사실, 데뷔하는 여성을 에스코트 하는 건 이번이 제 평생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의 놀라운 고백에 동그래진 눈으로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향해 레오나드는 생긋 웃어보였다.
"믿기 어려우신 것은 이해가 가지만, 정말로 공주님이 제 처음이자 마지막 데뷔 에스코트 상대란 뜻입니다."
붉어진 그녀의 볼을 내려다보며 레오나드는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은 많은 이들이 제게 부탁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이에 응하고픈 마음이 없어 항상 거절해 왔습니다. 여인의 사교계 데뷔를 돕는 일이야 말로 남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기쁨 중 하나일 터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여신께서 공주님을 위하여 제 모든 처음을 바치게 하고자 이전부터 이렇게 계획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리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다행입니다. 저의 첫 에스코트를 이렇게 공주님께 바칠 수 있어서 말입니다."
"나야말로 그런 귀한 경험을 받게 되어 영광이에요, 카엔 공."
옅게 미소 짓는 로첼리아에게 그는 다시 속삭였다.
"자, 당당하게 어깨를 펴십시오, 공주님. 이 무도회는 오직 공주께서 주인공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카엔 공작이 곁에 있으니, 두려워하실 것 전혀 없습니다."
그 말에 로첼리아의 허리가 다시 곧게 펴졌다. 그가 지켜보는 것에서 힘을 얻은 그녀의 입가에 온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도대체 저 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휴 조용히 해요 좀, 안 들리잖아요."
"하도 어린애라 길래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아름다운 레이디, 그 자체예요."
계단 아래서는 난리가 났다. 둘이 서로를 마주보며 웃자 여인들의 마음에 질투의 불을 피워 올린 것이었다. 한 공작부인은 넋을 놓고 공주를 올려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자신의 남편을 부채 끝으로 쿡 찍어버리기까지 했다. 몇몇의 젊은 귀족 자제들은 두근대는 심장을 가리지 못한 채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생각보다 공작과 꽤…."
어울린다, 어리숙하고 애 같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허나 진심을 입 밖으로 털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들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제껏 같은 궁 안에 있던 로첼리아의 형제자매들마저 자신들이 보아온 동생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있나 신기해했다.
공주는 카엔 공작의 가슴 정도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키였지만, 오히려 그 차이가 그녀를 요정처럼 사랑스럽게 보이게 했다. 자칫 과도하게 화려할 수도 있는 옷과 장신구를 잘 소화해 내면서 오히려 그 기품 있는 미모를 활짝 펼쳐보였다.
게다가 카엔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공주를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꿀처럼 달아 보일 정도였고, 그녀에게 거의 기울어져 보호하는 듯한 태도에 지켜보던 여인들 모두가 녹아내릴 정도였다. 카엔 공작에게 전혀 눌리지 않는 어여쁜 외모에 카엔 공작과 원래부터 연인인 것처럼 어울리는 공주를, 그녀를 어떻게든 책잡으려던 사람들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레오나드의 에스코트를 받아 왕의 앞에 도달한 로첼리아는 홀로 섰다. 레오나드는 한발자국 뒤에 물러서서 그녀와 함께 예를 올렸다. 로첼리아의 연푸른 드레스에 달린 진주들은 천여 개의 촛불과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에서 별 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왕은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단을 내려와 로첼리아 앞에 섰다. 공주는 배운 대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몸을 숙였다.
"나의 사랑하는 공주 로첼리아 에스텔 드 알렌사. 사교계 데뷔를 축하하노라."
"로첼리아 공주의 행복을 위해."
"위하여."
연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공주를 위해 박수를 쳤다. 이렇게 오래도록 주목받는 일은 처음인지라 긴장한 채로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 두려움을 눈치 챈 레오나드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공주님. 저를 믿으세요."
"네. 후우."
"자신 있게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하십시오. 모든 건 제가 맞춰 드릴 겁니다."
홀 중앙에 두 사람이 서자 음악이 시작되고, 로첼리아와 레오나드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습 내내 잘 따라와 준 공주였으나, 극도의 긴장상태에서는 예기치 못한 실수가 나올 수도 있기에 그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만일 공주가 연습한 것과 다르게 스텝을 밟거나 팔을 뻗을 경우, 곧바로 그녀에 맞추어 춤을 출 예정이었다. 겉으로는 평소의 여유로움을 가장했다. 자신이 긴장하는 내색이 비쳐지면 공주도 덩달아 두려워 할 수 있었다.
"오늘 저의 역할은 바로 공주님 당신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더라도 제 실수인 냥 당신을 끌어안을 겁니다."
“카엔 공.”
“레오나드,입니다.”
“그래도 여긴 공식적인 자리인걸요.”
“그들에겐 들리지 않습니다. 춤출 땐 레오나드라 불러주십시오..”
레오나드는 따스한 미소를 그녀에게 지어보였다.
손이 마주 닿았다가 멀어졌다. 여인은 완만한 원을 그리고,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공작이 한 바퀴 돌아 공주에게 다가갔다. 양 손이 맞닿고 둘의 시선이 부딪쳤다. 다음 스텝이 뭐였더라, 머릿속이 하얘졌을 때 긴장한 얼굴에 레오나드가 생긋 웃어 보이며 손을 오른쪽으로 뻗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잘 하고 있습니다, 공주님.’ 그 모습에 로첼리아는 용기를 되찾았다. 그녀의 손이 따라 레오나드의 손 위에 얹어졌다. 생각보다 잘 해나가자 기쁜지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보였다.
음악이 마무리되고 로첼리아와 레오나드는 마주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름다운 춤이 끝나자 모두는 박수를 치며 환호하며 로첼리아 공주의 사교계에서의 첫 춤이 성공적이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곧이어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모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잘하셨습니다, 공주님."
"이상하지 않았죠? 나 실수 안했지요?"
"물론입니다. 제가 본 그 어느 데뷔보다도 완벽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주님."
"하아. 나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자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 있죠."
첫 춤이 끝나자,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재잘재잘 말하기 시작했다. 춤을 잘 마무리한 데 긴장이 풀린 것도 한몫했다.
박자가 빨라지자 레오나드는 자연스럽게 공주의 허리에 팔을 부드럽게 감아 안았다. 품안의 공주가 움찔 놀라는 것이 그의 손까지 전해졌다. 감정을 가리거나 숨길 줄 모르는 순진한 공주가 때때로 보이는 이 반응이 그를 안달 나게 했지만 그는 짐짓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익숙한 왈츠지 않습니까. 함께 연습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는…"
"공주님."
작지만 힘 있게 그녀를 부르자 또다시 꽂히는 시선들에 당황하던 눈동자가 레오나드를 응시한다.
"저만 보십시오. 괜찮습니다."
허리를 감싼 손에 로첼리아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이내 그는 그저 자신을 도와주고자 최선을 다하는데, 사람이 있다고 해서 부끄럼이나 타는 자신이 오히려 민망했다. 자신이 춤을 추는 내내 그는 로첼리아의 박자에 맞추어 주었고 때때로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 그녀의 긴장을 풀게 했다. 그렇게 배려하고 달래주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런 그의 수고와 노력을 배신할 수도, 실수함으로써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폐는 절대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로첼리아는 그가 한 말을 바로 따랐다.
다른 사람은 보지도 않으려고 자신의 요청대로 오직 자신만 빤히 응시하며 추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그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가 자신의 것임을 드러내는 것은 지금까지의 춤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체력이 허락하는 한 끊임없이 함께하고 싶었다. 저 작고 붉은 입술을 머금고 오직 자신만의 여인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음악이 끝나갈 때쯤, 그는 마지막으로 공주의 허리를 양손으로 가볍게 안아 들어 한 바퀴 돌았다. 풍성한 드레스가 확 퍼지며 홀 안에 푸른색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음악이 멈추고 모두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카엔가 공작이 오늘 갓 사교계에 데뷔한 공주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고 입술에 짧게 키스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blaustern입니다.
데뷔장면을 꼭 그리고 싶었습니다. 분명 둘의 춤은 아름다웠을 거예요. 흑흑.
이미지로는,
레오나드의 왈츠 이미지는 Dmitri Shostakovich - Waltz No. 2
로첼리아는 Tchaikovsky – Waltz of Flowers 또는 Strauss - Rosen aus dem Süden op. 388 Rose del sud 입니다.
더 좋은 곡도 추천받습니다^0^
선추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