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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비안느의 생일파티 준비로 뷔농성이 분주해졌다. 레오나드의 선택에 의해 비비안느의 생일을 위한 파티장은 매년 분홍색 프릴과 레이스 등으로 치장되었었다. 그러나 비비안느가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될 무렵부터 그녀는 떼를 써서 모든 분홍색들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올해는 준비부터 비비안느가 총괄했다. 장식이며 꽃 하나도 모두 그녀가 정했다. 황금색과 하얀색으로 우아하게 꾸며진 파티장을 비비안느는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곤 했다.
“비비안느의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느냐?”
저택에서 가장 넓은 그레이트 홀로 레오나드가 로첼리아와 함께 들어섰다. 딸의 안목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레오나드였다. 오늘도 나름 칭찬의 말을 준비해 왔건만, 그레이트 홀은 분주히 움직이는 시녀와 시종들만 있을 뿐, 정작 그의 사랑스러운 첫째 딸은 보이지 않았다. 레오나드가 나타나자 얼른 시녀 중 하나가 다가왔다.
“저 공작님, 실은 비비안느 아가씨가 도련님들을 모시고 마구간에...”
“또, 그곳에 갔느냐?”
레오나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 말라는 짓은 꼭 하는 것이 꼭 누구를 너무도 닮았다.
“비비누나! 기다려!”
루벨은 얼른 동생 빈센트의 손을 잡고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비비안느를 따라갔다. 빈센트는 괜히 길바닥의 벌레를 보거나 오늘 새벽에 내린 비로 축축한 바닥을 콩콩 찍으며 가느라 뒤처지고 있었다. 비비안느는 매일 동생들을 이끌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화내시면, 어쩌려고!”
루벨은 뒤에서 외쳤다. 비비안느는 고개를 획 돌려 남동생을 바라보았다.
“너, 루벨. 누나가 하는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지?”
“그, 같이 안 놀아 준다고...”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비비안느는 동생의 대답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래, 그러니까 따라오고 싶으면 조용히 따라와. 알았지?”
“응, 알았어.”
루벨은 또 땅바닥에 주저앉아 장난을 치는 빈센트를 일으켜 세우고는 엉덩이를 털어준 다음 얼른 비비안느를 뒤따랐다.
“나 오늘은 꼭 성공을 해야겠어!”
“누나아~조심해!”
아이들은 뷔농성 뒤뜰 안쪽에 자리한 마구간에 도착했다. 카엔가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명마들만 모아놓은 마구간이었다. 최근에 먼 이국땅에서 온 흑마가 있었다.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어린 명마였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조금 난폭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비비안느는 이 명마에 한눈에 반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색 털과 큰 눈이 마음에 들었다. ‘르기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마구간에 들렀다.
“야, 너 내가 매번 다른 말에겐 주지도 않는 귀한 설탕도 주고 그러는데, 양심이 있으면 그리 매정하게 구는 거 아니다. 내가 르기니 너 뿐 아니라 이 집의 주인이 될 건데, 제대로 알아 모셔야 하는 거 아니니?”
르기니는 푸르륵 거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린 여자아이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정말, 나한테 이렇게 반항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너한테 고삐랑 안장만 채우면 내가 주인이 될 텐데 말이야.”
비비안느는 안달이 났다. 지금껏 그녀가 바라서 얻지 못한 것이 없었다. 무려 11살에 자신의 생일파티를 취향 껏 꾸미기까지 했다. 그런데 겨우 말 한 마리를 자기 걸로 하지 못해서 그녀는 속상했던 것이다.
“고삐랑 안장만 채운다고 주인이 되는 건 아니란다.”
“어머니!”
고삐를 들고 전전긍긍하는 비비안느의 뒤로 로첼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과 친해지려면 일단 교감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비비? 먹을 걸 준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교감이 생기는 건 아닐 것 같은데. 만일 필리프 왕세자가 네게 달콤한 들루멜 봉봉을 준다고 해서 네가 필리프랑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죠! 제가 왜 필리프랑 친하다고 할 수 있어요, 어머니? 그런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애랑!”
비비안느는 발끈했다. 1살 많은 필리프는 엘렌 왕세자비, 아니 이제는 왕비가 되어 로첼리아를 만나러 왔을 때 함께 몇 번 따라왔었다. 그러나 비비안느는 어릴 때부터 사촌관계인 필리프를 싫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필리프보다 자신이 더 똑똑했다. 필리프는 아직 못 읽은 <알렌사 국의 역사와 미래>도 자신은 이미 2번이나 읽었다면서 로첼리아에게 자랑하곤 했다. 로첼리아는 식식거리는 자신의 딸을 부드럽게 달랬다.
“그래, 네가 르기니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면 말이야, 진심으로 다가가렴. 르기니도 너의 마음을 알아 줄거야.”
“생일날 멋지게 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축 늘어진 딸아이의 어깨를 로첼리아가 다독였다.
“우리 비비는 언제나 멋있어. 엄마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사랑스러운걸. 나중에 꼭 보여주렴. 엄마가 기다리고 기대할게.”
아이의 이마에 키스해주자 그제야 마음이 좀 풀린 듯했다. 레오나드가 비비안느의 손을 잡았다.
“원래 오래 기다리고 참았을 때 얻는 열매가 달콤하단다. 좀 더 기다려보렴, 비비안느.”
“아빠가 엄마 곁을 맴돌았을 때 처럼요?”
비비안느가 아버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레오나드가 하하하 웃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비비.”
“어서 가서 준비하자꾸나, 아버지께서 예쁜 드레스들을 준비하셨단다. 이따 파티 때 가장 멋지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제발 이번엔 그 엄청난 크기의 리본 같은 게 안 달려있길 바라요. 아버지 취향은 정말 알 수 없단 말이야. 그리고 어차피 전 오늘 파티엔 제가 이미 고른 드레스를 입고 나갈 거라고요.”
비비안느는 툴툴 거렸다.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는 부모에게 불만이 많았다. 루벨과 빈센트도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성으로 향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넘치는 샴페인,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미로운 음악과 춤. 그리고 전체의 벽이 유리로 된 아름다운 홀. 페른의 왕실 그레이트홀보다도 더 크고 웅장하다는 뷔농성의 그레이트 홀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카엔 공작가의 첫째 딸인 비비안느는 겨우 11살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등에 업고 있는 가문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왕실의 반란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영지에서는 왕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지배한다는, 알렌사 국 최고의 공작인 아버지와 거의 버림받았다고는 하지만 알렌사 왕실의 공주인 어머니, 그리고 그 가문이 가진 엄청난 부까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비안느는 어릴 적부터 그녀가 가진 힘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사교계에서는 이미 그녀가 영특하다 소문이 났었다. 아직 정식 데뷔를 하지도 않은 어린 소녀에게 미리 인사를 하려고 여러 귀족들이 이번 생일에 참석했다. 특히 많은 귀족 자제들은 비비안느의 환심을 사려고 값비싼 선물이며 특이한 선물들을 들고 다가왔다.
“비비안느 아가씨, 이것 좀 보시지요. 저 먼 동양에서 들여온 향신료 자기입니다.”
“어머, 이건 쿠엔키르에서 가져오신 것인가요? 향신료 자기가 정말 예쁘죠?”
“예, 그렇습니다. 구하기가 무척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아가씨께 드리고 싶어서...”
“어머, 어쩐다. 전 이미 아버지에게 부탁드려서 저희 카엔가의 상단을 통해 이것을 몇 개 구했었는데 며칠 걸리지 않았었어요. 다음에 혹 기회가 된다면 저희 상단을 이용해 주세요, 란돌프. 분명 저희와 거래하시면 만족할만한 품질과 가격, 그리고 속도에 놀라실 거예요.”
비비안느는 자신에게 바쳐지는 선물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은근히 가문의 상단을 소개하기도 했다. 실로 알렌사 국에서 카엔 공작가의 상단만큼 대륙 전체를 연결한 상단도 없었다. 카엔 공작 자신은 영지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의 수족이 되는 가문 전체는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누비며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
가끔 남들과 다른 것을 선물하겠다며 꽃이며 동물들을 가져오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로첼리아의 영향으로 이미 뷔농성은 온갖 꽃과 나무들로 가득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루벨 덕분에 상상의 동물을 가져 오지 않는 이상 이젠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비비안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하품했다. 파티는 지루했다. 들어오는 선물들은 너무 빤했다. 뭔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것을 받고 싶었다. 아니면 그녀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 새로운 것, 신기한 것, 그녀만 가질 수 있는 것. 그런건 없어보였다. 그래서 비비안느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르기니와 어떻게 친해질 것인가-하는 생각뿐이었다.
“저,”
의자 팔걸이에 팔을 기대고 갸우뚱하게 앉아있는 비비안느 곁으로 한 소년이 다가왔다. 보브텡 지역의 매든 백작 자제였다.
‘분명 나보다 한 살 어린...’
어린 얼굴은 선하게 생겼지만 엄청 잘생긴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사촌인 필리프가 생기기는 더 잘 생겼다. 하지만 거짓을 모를 것 같은 눈동자와 부끄러워 붉어진 뺨이 어딘지 모르게 귀여웠다. 가끔 파티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눈을 마주쳤었던가? 자신을 보고 있었던가? 비비안느는 기억 깊숙한 곳에서 줄리안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끄집어내려 애썼다.
‘별로 존재감은 없었는데. 뭘까?’
비비안느가 빤히 쳐다보자, 소년은 당황해 했다. 분명 자신이 누군지 몰라서 그녀가 의심한다 생각하는 듯했다.
“그...절 잘 모르시겠지만 줄리안입니다, 줄리안 매든이라고 합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공녀님.”
“그렇군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비안느는 생긋 웃었다. 모두에게 의례적으로 보내는 미소였다. 그런데 그 미소에 줄리안은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우물거리는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독서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요, 부족하나마 준비했습니다. 가문에선 다른 선물도 마련했습니다만, 그, 공녀님께는 직접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줄리안은 등 뒤로 숨겨온 아주 작은 상자를 꺼냈다. 물론 혼자 허둥대다 한번 떨어뜨릴 뻔했던 걸, 겨우 공중에서 잡아들었다. 줄리안은 자신을 보며 웃는 비비안느 덕분에 얼굴이 더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비비안느는 이 허점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재미있었다. 내민 상자를 받으며 그녀는 감사인사를 했다. 줄리안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그녀가 ‘개인적’으로 내밀어진 ‘남자아이들’의 선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직접’ 받은 선물이었다.
상자 안을 열어보니 하얀 종이에 감싸여진 나무를 깎아 부분 부분을 금으로 입힌 책갈피였다. 나무 덩굴과 꽃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비비안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직접 만들었다고요?”
“아, 그...많이 부족하지요? 그, 그래도 꼭 드리고 싶었어요. 저, 그, 그럼 이만...”
줄리안은 말을 더듬다 못해 더 이상 말조차 할 수 없는 듯 도망가려 했다. 비비안느가 그의 옷깃을 잡았다.
“잠시만요.”
“네?”
줄리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비비안느는 생각보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숙련된 장인들이 만든 것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10살짜리 어린애가 만들었다고 보기 힘든 솜씨였다. 게다가 직접 만든 것이라니,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것, 그녀가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한 것, 그리고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으셨잖아요. 선물 고마워요, 줄리안. 소중히 잘 쓸게요.”
비비안느는 진심을 다해 웃어보였다. 주위에 꽃을 백 송이는 피게 만들 정도로 화사한 미소에 줄리안의 얼굴이 이제는 터질듯 빨갰다.
“그, 공녀님, 혹시 폐가 안 된다면 저, 저와!”
“누나! 선물!”
둘의 대화를 잘라먹은 것은 다름 아닌 막내 빈센트였다. 천사같은 외모의 다갈색 머리 아이는 평소 악마라 불리는 그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상자를 내밀었다.
“선물!”
“어, 그, 그래, 빈센트. 누나가 조금 바쁜데 이따가 받으면 안 될까?”
“안 돼! 지금!”
아이는 단호했다. 비비안느는 곤란했다. 줄리안을 언제까지고 저렇게 어정쩡하게 세워 놓을 수도 없었다. 비비안느는 빈센트가 내민 상자를 받아들었다. 얼른 내용만 확인하고 빈센트를 돌려보낼 예정이었다.
“꺅!”
개구리들이 쏟아져 나온 상자는 하늘로 치솟았고, 비비안느의 의자가 뒤로 넘어갈 뻔한 것을 줄리안이 얼른 잡았다. 물론 힘 약한 소년은 소녀와 함께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이 시점에서 좋아라 박수치는 것은 빈센트 한명 뿐이었다.
파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비비안느는 줄리안이 대신 받아준 덕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파티를 망친 빈센트에게 크게 화를 냈다. 빈센트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어린 아이들의 장난을 파티에 참석한 어른들이야 귀엽게 봐줄 수 있었지만, 로첼리아가 봤을 때는 큰일이었다. 비비안느 대신에 줄리안이 멍이 들고 조금 다쳤기 때문이었다. 카엔 공작이 나서서 매튼 백작가에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치료를 지원 하겠다 하였지만, 매튼 가문은 오히려 남자 아이는 그 정도 다치면서 크는 것이라며 공녀가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였다.
비비안느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울고 말았다. 소중한 생일파티를 동생이 망쳐버린 것이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로첼리아도 달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어른인 척 하려 해도 비비안느도 결국 아이였다. 엄마가 한참을 도닥여주자, 결국 눈물 가득한 눈을 하고는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것을 살피고 나서 로첼리아는 문을 나섰다. 레오나드 또한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발길은 침실이 아니라 오늘 파티가 있었던 그레이트 홀의 거울의 복도를 지나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비비안느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왁자지껄했던 홀은 이미 깨끗이 치워졌고 고요했다.
“우리 비비안느가 어느덧 11살이라니...세월이 참 빨라요. 이곳을 자신만의 색과 감각으로 채울 줄도 알고...정말 다 컸죠, 우리 비비.”
“예, 그리고 공주님과 함께 살아온 시간도 어느덧 11년이나 흘렀습니다. 전 아직도 꿈 속을 거니는 기분입니다.”
눈이 휘어지게 웃던 로첼리아가 먼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거울의 방이 있는 쪽이었다. 근사한 실크블라우스에 긴 검은 망토를 걸친 레오나드가 공주가 사라진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 파티에서 기분이 좋았는지 로첼리아는 술을 좀 많이 마셨다. 그래봤자 보통 사람들의 주량에 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공주의 눈이 느리게 깜박이며 미소를 짓는 걸 발견한 레오나드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로첼리아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취하면 때때로 나오는 돌발적이고 귀여운 행동들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할까봐 걱정되어서 였다.
술에 살짝 취한 그녀가 말없이 씨익 웃기만 한다는 것은 이제 난 사라져 볼 터이니 잘 찾아보라는 나름의 귀여운 장난이었다. 처음엔 이것이 장난인 줄도 모르고 심각한 표정으로 공주에게 달려가 손목을 확 잡아채 놀라게 만들었다. 그를 떠나는 줄로만 알고 말이다. 그때 로첼리아는 빽 소리쳤었다. ‘날 찾는 게임을 할거란 말예요! 바보 레오나드, 바보!’ 그래서 이제는 이런 장난에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공작이었다.
거울의 방 벽면에는 작은 촛불들이 은은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로첼리아는 그중 큰 거울을 가리는 빨간 커튼 안에 숨어있었다. 작은 여인을 감싸고 있는 커튼 앞으로 걸어간 레오나드는 커튼 채 그녀를 끌어안았다.
“오늘은 너무 쉬운 데 숨으신 것 아닙니까. 일부러 이렇게 찾아달라는 뜻이시지요?”
공주가 웃으며 갈라진 커튼 틈 사이로 하얀 얼굴을 빠끔히 내밀었다. 도톰한 윗입술을 물고 혀로 치열을 훑자 공주의 혀가 자연스레 다가온다. 알싸함이 입안으로 퍼지고 서로의 호흡이 섞인다.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물리며, 계속해서 몸을 부딪쳤다. 연한 살덩이는 달달한 푸딩 같다. 부드럽게 시작했다가 몰아치는 키스에 로첼리아의 입 주위는 타액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한참을 물고 빨다 로첼리아가 힘에 부친 듯 켈록거리자 아쉬움을 토해내며 간신히 놓아준다. 그는 대신 달콤한 키스를 그녀의 이마며 코, 뺨과 입술 끝에 쏟았다. 로첼리아는 그에게 기댄 채 그가 주는 애정을 모두 받았다.
“레오나드는...시간이 흘러도...늘 처음처럼 날 아껴주네요.”
“당연합니다, 공주님.”
“나중에...내가 나이가 들어도...지금 이 모습이 아니어도...지금처럼...날 사랑해줄까...그런 생각을 해요.”
“공주님.”
“후후, 내가 좀 많이 취했나...별 소리를 다 하죠. 아까 비비안느가 매튼 백작가의 자제랑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발그레 달아오른 두 볼을 감싼 공주를 내려다 보던 레오나드는 커튼을 걷어내고 거울 앞에 그녀의 몸을 돌려 세웠다. 공주는 거울속의 레오나드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로첼리아의 어깨와 곧은 쇄골을 보고 있었다.
“가끔 제 욕심으로 공주님을 너무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은 있습니다. 보체가 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힘들게 하고 있죠, 송구합니다.”
“...”
“처음 열여섯의 공주님을 뵌 날,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태에 전 잠을 이룰 수조차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공주님이 보고 싶어서 몸이 달았죠.”
레오나드는 공주의 말아 올린 머리를 풀어내 어깨 앞으로 늘어 뜨려주었다. 그 손길이 뜨거워 로첼리아는 가만히 숨만 들이쉬었다.
“공주님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은 제게는 목숨처럼 소중합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영원히 보관할 수만 있다면 제 전 재산과 권력을 이용해 그리 했을 겁니다.”
레오나드는 동그란 로첼리아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쥐었다가 곧은 쇄골을 어루만졌다.
“저와 혼인을 하였던 그 열여덟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꿈만 같았죠. 처음으로 여신님께 감사했습니다. 당신을 내게 보내주셔서 행복하다고.”
레오나드의 단단한 팔이 가냘픈 로첼리아를 안았다. 그녀의 등 뒤로 단단한 사내의 가슴이 느껴졌다. 취기가 돈 상태에서 달리기를 해서인지 공주는 주변이 더워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레오나드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해있었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공주님이 나타나셨던 그 순간, 저는 광명이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아, 이 분이 나의 여신, 나의 주인이라고요.”
레오나드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공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입술이 목에 닿자 공주가 움찔 몸을 떨었다.
“공주님의 그 작은 몸에 더 작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그 순간은 너무도 성스럽고 고결해 눈물이 핑 돌 뻔 했습니다.”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묻던 그는 혀로 그 목을 핥았다. 그가 들려주는 음성은 달콤한데 레오나드의 축축한 혀가 목에 닿을 때마다 오싹오싹해졌다. 로첼리아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밀자 이번엔 그 손을 잡아채 핥기 시작했다. 공주의 손가락을 입속에 넣고 혀로 굴렸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를수록 공주님을 향한 제 마음은 더 깊고, 더 넓어집니다. 저는 공주님의 것이니...공주님께서 절 놓지 않는 이상은...제가 감히 공주님에 대한 마음을 다르게 품을 리가 없지요. 당신은 제 품에서 언제고 이렇게 아름다울 테니까요.”
“아...”
공주는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 사이로 그의 큰손이 들어오는 걸 느꼈다. 빠져나가려 몸을 돌리려했지만 그 뜨거운 두 손은 공주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두근 두근 두근. 공주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코르셋을 착용해 더 부풀어 오른 가슴을 크게 주물러 애무하기 시작했다. 레오나드는 그녀의 작은 등을 여미고 있던 드레스 뒷면을 양갈래로 뜯어내고 코르셋 리본을 풀어냈다. 옴폭 길게 패인 등줄기를 혀로 주욱 그렸다. 옥죄고 있었을 코르셋 끈에 가냘픈 등에 자국이 남았다. 그 자국들에 입 맞추고 혀로 핥았다.
“하으윽!”
“자국이 남으니 코르셋 같은 거…하지 마세요. 이 예쁜 피부가 눌리다니, 속상합니다.”
“으응…알았…하아…알았어요.”
레오나드는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고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갖다 대고는 속삭였다. 귀 뒤를 핥고 귓불을 입에 담았다. 레오나드는 공주의 팔에서 드레스를 벗겨냈다. 그녀의 허리 아래로 드레스가 떨어지자 얇은 네글리제가 나타났다. 온몸을 애무하는 레오나드의 손길에 정신이 없는 로첼리아는 그대로 그의 품에 기대어 달뜬 신음만 내뱉었다. 창 밖 까만 밤하늘은 환한 달과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했다.
“누, 누가…...지나가다 보면…아음…”
“누가 감히 공작부부가 있는 곳을 보겠습니까, 밤하늘의 여신도 볼 수 없을 겁니다. 만일 사람이라면 눈이 멀게 되는 저주를 내릴 겁니다.”
레오나드는 공주가 네글리제만 입고 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피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얇은 네글리제의 로첼리아는 신화 속의 여신의 자태와도 같았다. 품 안의 작은 여신을 다시 마주했다. 가슴을 덮고 있는 얇은 네글리제 위를 그대로 입 속으로 넣고 혀로 쓸고 빨아올렸다. 천속의 공주의 유두선이 고스라니 드러났다. 레오나드가 그 위를 손가락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톡 튀어나온 정점으로 인해 가슴선이 뾰족해졌다. 공작이 또 다시 그대로 입으로 머금었다.
“아응, 레, 레오나드!”
로첼리아는 간지러운 느낌에 몸을 틀었다. 맨 몸 위를 핥는 것과 젖은 천 아래 농락당하는 것은 좀 달랐다. 입으로 삼킬 적에는 덥고 축축함이 전신을 뒤덮었다가 레오나드가 입을 떼어내면 차가운 공기가 와 닿아 소름이 돋았다.
“아흐응…”
몸을 섞은 지 10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부끄러워하는 로첼리아가 직접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그가 느끼기에 공주는 가슴을 핥아주는 걸 좋아했다. 그때 내는 소리가 가장 연약하면서도 색스러웠다.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가슴에 공들일수록 로첼리아는 빠르고 뜨겁게 반응했다. 로첼리아의 양 볼이 붉어졌다. 공주의 표정을 내려다보던 레오나드는 다시 그녀의 허리를 잡아 돌려세웠다.
“하, 하아, 하아, 으응.”
미약한 신음을 뱉어내며 로첼리아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했다. 레오나드가 입으로 물었던 가슴 양쪽이 젖어 진한 유두색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등 뒤가 벌어져 있어 레오나드가 그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었다. 옷 아래 가슴이 공작의 손에 의해 짓눌러 뭉개지고 있었다. 그 뿐일까, 그녀의 표정은, 그녀 자신도 모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쾌락에 들뜬 표정과 반쯤 벌어진 입술, 울 것만 같은 촉촉한 눈. 그녀는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그와 하나가 될 때 그녀의 온몸이, 감정이 다 변해버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레오나드의 한 손이 공주의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아, 보세요, 공주님. 저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공주님을 두고 감히 제가 마음이 달라진다고요?”
“아, 알았어요. 하아...아...보, 보기 민망해요. 그러니 제, 아읏.”
공주의 귀와 목덜미를 입술로 희롱하며 더 우악스럽게 가슴을 애무하였다. 로첼리아의 호흡이 가빠지며 머리를 뒤로 젖혀 공작의 어깨에 기댔다. 위태롭게 서있던 그녀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레오나드가 공주의 두 손을 잡아 거울을 짚도록 했다. 무게가 앞쪽으로 쏠리자 공주가 거울 앞으로 얼굴을 바짝 기댔다. 이마를 대자 차가운 거울의 냉기가 열을 식혀주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뜨거운 입김이 거울을 뿌옇게 만들었다, 마치 지금 그녀의 눈앞처럼.
그녀의 밑이 충분히 젖어오자 레오나드는 드레스를 허리위에 걸쳐 올리고는 자신의 남성을 그대로 밀어 넣었다.
“아윽!”
허벅지 안쪽이 미끌미끌한 정도로 흠뻑 젖어서 감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꿰뚫려지는 고통에 허리가 저도 모르게 튀었다. 긴장한 공주의 몸이 힘을 주자 그게 조여졌는지 공작이 굵은 신음을 터트렸다.
“응, 응, 응!!”
차박차박차박 거대한 불기둥이 제 아래서부터 연한 살을 뚫고 들어오자 몸이 두 갈래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흡, 으…흐으윽!”
턱 밑까지 찔러오는 통각에 공주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허나 레오나드는 제 손에 잡힌 여인을 놔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래서부터 치받아오는 몸짓에 바닥을 딛고 있던 발이 점점 들려지더니 종국에는 발끝으로 간신히 버텨 제 몸을 지탱해야만 했다.
“아악, 아, 아, 레, 레오나!!”
제 허리를 부여잡고 계속 부딪혀오는 그의 몸짓에 가슴이 계속 거울에 쓸리자 로첼리아의 입에서 기어이 비명이 터졌다. 공작은 쉬지 않고 계속, 계속, 그 여린 허리를 눌러 잡고 흔들었다. 거울에 제 입김이 부딪혀 되돌아오는 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하악-하악! 흐응! 아윽…아-레오…”
정신없이 밀리던 공주가 팔을 뻗으며 잠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겨우 반쯤 떠진 눈에는 아까보다 더한 흥분의 열기가 가득했다. 엉망이 된 머리와 부풀어 오른 입술, 흔들리는 두 가슴과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로첼리아는 자신의 뒤에서 달아오르는 그의 표정도 찬찬히 뜯어보았다. 살짝 눈을 감고 목덜미며 귀 부분을 지분거리는 그의 입술,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투박하고 단단한 손의 움직임. 그 손아래에서 꿈틀대는 자신의 몸. 그녀의 입김으로 인해 거울 한쪽이 또다시 부옇게 흐려지며 그녀의 모습을 가린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데 공작의 큰 손이 공주의 턱을 잡았다. 힘을 준건 아니었지만 쉬이 돌릴 수 없도록 했다.
“으응-하, 지마요…”
“저 모습, 싫으십니까? 저게는…지금 이 순간 공주님이…하-가장 사랑스러워 보이는데요.”
“하앙…이상…이상해요… 표정이 너무…으읏!”
“어떻게…이상한데요? 말씀해보세요.”
공주를 잡고 두 걸음 정도 물러난 레오나드는 로첼리아의 네글리제 앞섶을 잡아 뜯었다. 공주의 하얀 가슴은 울긋불긋한 손자국들이 나 있었다. 공작의 두터운 손이 무지막지하게 여인의 가슴을 움켜잡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슴이 타인의 손에 의해 이지러지고 표정이 변해가는 걸 본 로첼리아는 입술을 물었다. 신음을 내지 않으려 했지만 기어이 터져 나왔다. 저 거울 맞은편에서 얼굴이 붉어진 채 갖은 비음을 흘리고 있는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정신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육체는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꿈틀거린다.
“보시기 힘드시다면…저를 보세요.”
“하악-하아...”
“나를 봐...로첼리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의 아래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흡.”
레오나드가 기어이 숨을 들이켰다. 그녀를 ‘공주’가 아닌 ‘로첼리아’라고 부를 때 그녀는 가장 격하게 반응했다.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공주가 이렇게 조여 댈 때면 자신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힘이 빠진 공주의 허리를 얼른 잡아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그리고 로첼리아의 다리 한쪽을 잡아 제 허리쯤에 걸치고 밑에서부터 맹렬히 들어왔다. 공주가 애처로운 몸짓으로 레오나드에게 매달렸다.
“아응! 읏-악, 아아아-”
공주의 두 다리 모두 제 허벅지에 걸쳐 안고 흔들기 시작했다. 로첼리아는 공작의 목에 매달려 소리치기 시작했다. 좁은 길을 들락날락 거리는 거대한 불길에 공주는 뱃속부터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손으로 레오나드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이 꿰뚫리는 고통은 익숙해질 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속을 헤집고 들어와 모든 것을 젖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원초적인 비명만 내지르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녀가 먼저 항복했다. 공주는 레오나드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숨을 가다듬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 그의 것을 삼킨 채 있었다. 공작이 두 걸음 앞으로 나가 공주의 등이 거울에 맞닿게 하였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로첼리아를 안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녀의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와 그녀를 안고 있는 두 팔에 근육이 가득 섰다.
로첼리아는 허리 아래가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짐승처럼 헉헉거리는 레오나드의 모습에 전설 속 괴물에게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사방이 거울이었다.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들이 잡혔다. 레오나드의 몸에 매달린 채 흔들려지는 자신의 모습에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졌다. 공주의 신음이 달라진 걸 감지한 공작이 더 격렬하게 헤집기 시작했다. 이 넓은 방에서 그녀를 몇 번이고 안고 가졌다. 드높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더니 곧 희뿌연 열기가 방안을 메웠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blaustern 입니다~오늘도 좀 늦었습니다 허헛...
노블에도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다 주었는데 레오나드가 뭐가 불쌍합니까(당당 뻔뻔)
그리고 르기니는 사실 람보르기니에서 따왔습니다. 명품차=명마 후후훗!
선추코 감사합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