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에 (1) (1/43)



〈 1화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에 (1)

등 뒤에서 한참이나 어깨 너머로 말없이 모니터를 기웃거리던 여자친구가,

아니, 정확히는

해외 성인용품 특집 페이지를 보고 있는  지켜보던 그녀가 말을 걸었다.




"오빠,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지금 좀 바쁜데."


"거짓말. 방금 하품했잖아요."


모처럼 단호한 태도를 취한 보람도 없이, 그녀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이런 건 그러니까, 거기에 넣는 거죠?"

대낮부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무슨 짓이냐.


여자친구를 놔두고 그런 게 눈에 들어오냐.


그보다 대놓고 성희롱이잖아, 임마.


……따위의 잔소리 공세를 예상하고 있던 나는 나직하게 혀를 찼다.

평소 그녀에겐 질문이나 부탁을 할  제대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나름대로 엄하게 교육했다고 생각했건만……그다지 성과가 있는 것 같진 않네.

벌써 수십 번은 지적한  같은데, 신경 쓰지 않으면 무심코 말투가 돌아가 버리니까.

"……"

하지만 플레이 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야 물론 여기서 지적하면 반성은 할 거다.

그런 성격이니까.


잘못했다고 사과도 하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약속도 하겠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그럼 그 이후엔?

반대로 시무룩 풀이 죽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무진장 고생해야  거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볼  하루 종일. 어쩌면 내일까지도.


자칫 잘못했다간 저녁밥도 못 얻어먹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쨌든, 플레이 외적으로 주인 노릇을 하는  계약 위반이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는데 1초.

고민하는 이유는 매번 다르지만, 결론만큼은 늘 한결같다.


평화 만세.

쓸데없이 여자친구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거 하나 없다.



"……뭐, 그렇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서윤이한테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주인의 위엄이란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을 지키기로 했다.



"관심이 있는 건 알겠는데, 이거  하드한 타입이거든? 좀 더 익숙해진 다음에 사줄게."


"아니, 사달라는 건 아닌데……오빠, 아까부터 계속 그런 것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녀가 말하는 '그런' 것이라는 건……그러니까,  까놓고 말해서 전동 바이브다.

건전지로 작동하고, 전원을 넣으면 덜덜 떨리는 그거 말이다.


그럼 어째서 그런 걸 여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구경하고 있느냐고 하면,




"꼭 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다양하게 갖추고 있으면 플레이 폭이 넓어지니까."



그야 뭐, 취미라고 하면 취미지만……기왕이면 실용적인 편이 좋잖아.



"겸사겸사 서윤이한테 선물할 만한  있나 구경도 하고."

여자친구에게 섹스 토이를 선물한다니, 평범하게 생각하면 큰일  일이지.

권태기가 올 만한 시기도 아니고……이제 간신히 50일하고도 열이틀 정도.

아직 눈에 씐 콩깍지가 채 떨어지지도 않았을 무렵이다.


그러니까 이게 만약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나 역시 "정떨어졌으면 곱게 헤어져!  맞지 말고!"라고 뜯어말렸겠지만




"오늘은 회초리……산다고 했잖아요. 낭비하면  돼요."




내 여자친구에 한해선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일축하는 것이 가능하다.


"구경만 하는 건데 뭐 어때서 그래. 당장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 장바구니에 넣어둔 거 모를 줄 알아요?"

"이따가 제대로 비울게. 그보다 이것 좀 봐봐. 재밌는 거 찾았다,"

나는 그녀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래도 남자친구 앞이라는 건지,




"다, 당기지 마아아……"


잠시 부질없는 저항이 있었지만,


"21cm래. 끝내주지 않냐. 실제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은 못 이기는 척, 완강히 거절하는  같은 동작으로  옆에 쪼그려 앉았다.


침대에 눕힌 다음엔 무슨 일이 있어도 불을 꺼야 하는 데다가,

알몸이 되는 게 싫어서 섹스할 땐 옷도 못 벗기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베개를 끌어안아 얼굴을 가리고,


창피하다면서 신음 소리도 꾹꾹 눌러 참는 여자친구지만,

"엄청 자학적인 사람들한테 필요할 것 같은 느낌……?"

SM에 관련해선 웬만한 여자들보다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쏠이였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왜 그렇게 봐요?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요?"

"아니,  그래 또. 쳐다보는 것도  되냐."

"눈빛이 징그러우니까 그렇죠."


"키스하기 좋은 눈높이란 생각을 하긴 했어."


"……안 돼요. 오빠 좀 전에 커피 마셨잖아요."

만약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럼 그게 귀여워서 일부러 짓궂은 장난을 치고, 결국 울기 직전이 돼서야 사과하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고작해야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로 많이 바뀐 셈이다.

이것도 전부 조교의 성과……라고 하면 괜히 이마가 간지러워지는 기분이지만 말이야.



"그럼 양치하고 오면 하게 해줄 거야?"

"키스로만 안 끝나니까 싫어요."



단호하게 보이고 싶었는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억지로 붙잡아서 말을 듣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뒷수습이 곤란해지니까 하지 말자.

"그나저나, 이건 어때? 뿔이 장난 아니다. 이름부터가 에일리언이네."


"……혹시라도 집에서 보이는 날엔 바로 분리수거할 거예요."

"실제로 사용할 것도 아니고, 분위기 띄우는 용도로도  돼?"

"그 전에 가격을 봐요, 쫌. 150달러인데. 이걸 어떻게 사려고 그래요."


그녀와 사귀기 시작하고부터 지갑을 꽉 묶인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취미라는  생활비를 쪼개서 즐기는 거라고 해봤자 안 통할 걸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까짓거 며칠 굶지 뭐."라는 마인드로 막 질렀는데 말이야.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분명 통장에 돈이 있는데 마음대로  수 없다니.

어째서 결혼한 양반들이 비상금에 목을 매는지, 조금 알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근데 이것도 25cm네. 생각보다 이런 사이즈 수요가 많은  같다?"

"……왜 이쪽 보고 말하는 거예요?"


"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지 뭐."




빼도 박도 못하는 성희롱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사이즈는 힘들  같은데……"



그리곤  크기를 가늠하는 것처럼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대충, 이 정도……?"




곧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예요?"


"그렇게 물어보면 나도 할 말 없지."



설마 팔리지도 않는 걸 상품이랍시고 펑펑 찍어내고 있겠어?

"게다가 이거 웅웅거리는 거잖아요. 왠지 이상한 것도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클리토리스도 동시에 자극하는 용도라서 그래. 너도 그거 좋아하잖……악!"


마지막 끝맺음이 외마디 비명처럼 들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낮부터 그런 얘기는 안 하면 안 돼요?"

"꼬집기 전에 말해주면 진~짜로 고마울 텐데 말이야."

나는 투덜거리며 선명하게 손톱자국이 남은 손등을 문질렀다.

"오빠가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그렇죠."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어때서 그래."


"그래도 싫단 말이에요."

대낮부터 성인용품 사이트를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사람이  말인가 싶긴 해도,



"나 참."



그녀가 거의 사흘에  번꼴로 집에 돌아가게 된 이후로는 언제나 이런 느낌이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어떻게든 부딪히게 되니까……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거지.


최소한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것만 참아도 커다란 싸움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물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서로 싸워봤자 득  게 없기도 하고,

일단 내가 언성을 높이면 겁을 먹은 그녀가 먼저 미안하다며 울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예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자……라는 게 처음의 방침이었지만,

"엊그제 서윤이가 손톱으로 긁어놓는 바람에 등에 상처 났던데."


"그러는 오빤……목덜미, 깨물었으면서."


"딱히 흉터가 남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서 그래."

"맨날 자국 남기려고 거기만 괴롭히는  모를 줄 알아요?"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구만.




"그리고 자국은 남아도 괜찮다고 허락한  아니었어?"

"그, 그렇다고 깨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이빨로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언제는 쇄골 부근에 남은 자국을 거울에 비쳐 보면서 히죽거렸던 주제에.

"게다가 가볍게 잘근잘근 깨물어주면 잘 느끼니까……아얏!"

찰싹, 손등을 때린 그녀는 "흥!"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휘우우."


다시 말하지만, 순간적으로 울컥 올라왔을 때 참아야 한다.

못 참고 폭발했다간……결국 그거 다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것도 내가 슬슬 잊어버렸을 즈음, 전부 뒤집어쓰는 형태로 말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완곡한 불만을 표시하는 게 고작이었다.




"우리 서윤이 때문에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정말."


"그럼 오빠도 내 몸에 상처 남기면 되잖아요. 어디든 좋으니까."


고작이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는  비극이라면 비극일까.



"오빠도 그런 거 좋아하죠? 몸에 남기는 흔적 같은 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어서요."라며 두 팔을 벌렸다.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몸도 마음도 전부 오빠……아니, 주인님 소유인데."



일단 강하게 나오면 내가 한 발자국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평소엔 소심하고, 순종적이고, 눈치나 보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웃사이더.

친구도 하나 없고, 금방 우울해지고,  금방 달라붙고, 어리광도 심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게 맡기고, 뒤를 따라다니는  좋다고 하는 주제에,

이럴 때만큼은 절대로 물러서질 않으니……내 여자친구지만 진짜 이상한 여자라니까.




"아픈 건 싫지만 서로 합의했으니까 괜찮죠? 딱히 문제 될 것도 없고."

"문제가  될 것 같냐. 괜찮긴 옘병……아니, 그래. 알았어. 잘못했어."

늘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이번에도 먼저 항복한 건 내 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섯 살 연하.

올해로 스무 살.


작년까지는 교복이  어울리던 고등학생.




그런 여자한테 손을 대 버린 내 책임이니……깍듯이 모시고 살아야지.




"그러니까 서윤이 너도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대답하기 곤란하게시리."

"……오빠가 곤란할 건 없잖아요. 좋아하는 거 알고 있는데."

"손가락 베였다고 훌쩍거리는 애를 보고 퍽이나 그런 생각이 들겠다."


"손바닥으로 엉덩이 때려서 빨갛게 부어올랐던 건 벌써 잊어버렸어요?"


"그, 그건 플레이였으니까! 나중에 찜질도 하고 연고도 꼼꼼히 발라줬잖아."

사실 말이 좋아 주인님이지, 플레이 끝나면 그냥 시중드는 하인이나 다름없단 말이지.

특히 파트너인 서브미시브의 몸에 영향. 상처나 데미지가 남는 플레이였다면 더더욱.

"아무튼 파트너 이전에 여자친구래도.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도 낮에는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뭐."

"그래그래. 알았어. 조심할게. 안 그러면 되잖아."

"참고로 사귀기 시작하고  다음부터 계속 말했던 거예요."

아무래도 교육의 성과가 없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물론 반박하려고 하면 못할 건 없지만……잠자코 있자.


여기서  이야기가 길어졌다간 결국 나만 손해일 테니까.



"므으윽……"



하지만 그녀는 그게 또 불만이었는지 입을 삐죽거렸지만……불만이면 뭐. 어쩔 건데.

"머리 쓰다듬어줄까?"


"……됐어요. 그럴 기분 아냐."



지금이야 답지 않게 쌀쌀맞은 척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걸?


일단 투정을 부린 것까진 좋은데, 그만둬야 할 타이밍을 계산하느라 정신없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서로 싸워봤자 손해인 건 피차 마찬가지다.


그냥 이쪽의 피해가  더 막심할 뿐이지. 저쪽이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니까.

"……"


이것 봐. 지금도 어떻게  해달라면서 슬그머니 눈치를 보고 있잖아.

나한테 미움받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니까.

어떡하면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사과를 받을  있을지.

지금쯤 그녀의 머릿속엔 십중팔구 온통 그런 생각뿐일 거다.

"……왜요. 뭐가 웃긴데요 또."

"아니, 그냥. 귀여워서."

"자꾸 그러면 나 진짜로 화낼 거예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여자친구는 놀리는 맛이 있어서 좋다니까.


하지만 그만둬야 할 타이밍을 잘 알아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여자친구를 진짜로 화나게 해봤자 좋을  없으니까.


화를 내면 차라리 낫지……서윤이는 울어버리거든.

과거에 몇 번이나 전적이 있던 나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항복. 오빠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그러니 여기선 잠자코 그녀의 체면을 살려주도록 하자.



"서윤이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배려가 부족했어."

"진짜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맞아요?"

"그야 뭐,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는 뭐에요. 또 그렇게 적당히 넘어가려고."




뭐, 아주 아니라곤 못 하겠지만……나라고 이런 분위기가 편할  없다.


물론 그녀는 "뭘 잘못했는지 몰라?"라고 물어보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 부분은 무척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담백하다.

잘못한 게 있다면 진심 어린 사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고.

"아니, 반성은 하고 있는데……진짜야. 오빠 성격 알잖아."


그러니까 살짝 저자세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일단 상대가 숙이고 들어온 이상, 절대로 모질어지지 못하는 성격이거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