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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 (4) (8/43)



〈 8화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 (4)

"혹시 나 몰래 잘못한 거라도 있어요?"

"……그게 지금 할 소리냐."

"평소엔 그런 말 절대로 안 하잖아요."


잠시 미심쩍다는 눈으로 빤히 이쪽을 쳐다보던 그녀는,



"하긴. 오빠 이상한 소리……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혼자서 뭔가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친구가 점점 날 닮아가고 있어서 큰일이었다.




"아니, 야. 평소에 자주 안 해준다고 해서 그게 꼭……"


"오빠, 여기 오타."


"어? 진짜?"


"서로를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합이를 진행해야 한다고 쓰여 있어요."

"……그러게. 다른 것도 아니고 뭐 이런  틀리고 그러냐. 쪽팔리게."

"나 보여주기 전에 맞춤법 검사라도 돌려보지 그랬어요."

"어제 새벽에 저장하고 곧장 잠들어서……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어."




서윤이는 짧게 한숨을  다음, 달각달각 오타를 수정했다.



"여기도. 그리고 여기도."

"……미안. 수정해줘."

"쓰면서 졸았어요? 되게 많네."

이후로도 몇 개인가 오타를 지적받은 나는 갑자기 묻고 싶어졌다.


"……근데 서윤아, 그거 계약서다. 과제 같은 게 아니라."

"알아요. 그게 왜요."


"아니, 알면 됐어. 혹시나 깜빡했을까봐."

그러니까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텐션의 낙차가 말이지.

계약서를 보자마자 덜덜 떨면서 진짜냐고 묻던 주제에,


기분 다잡는 거 빠르지 않아?

언제부터 그렇게 쿨한 성격이었다고 그래.


지금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거야?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괜찮냐?"

"뭐가요?"

"아니, 여러 가지로."


그녀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별로 중요한 거 아니면 나중에 들어도 돼요?"

"……그래. 쓸데없이 말 걸어서 미안."


딱 잘라서 "방해에요."라고 들은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여기도 또 틀렸어. 권리와 책임을 바꿔놓으면 어떡해요."

"그래그래. 부탁해. 이따가 저녁으로 맛있는  먹지."

"맛있는 거?"


"서윤이가 좋아하는 거 사줄게. 고생했으니까."


"……오빠는 정말 나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랬어요."

짧게 핀잔을  그녀는 곧장 '상호 동의와 합의'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가버렸다.

뭐랄까, 여전히 귀찮은 과제의 자료조사를 부탁받은 것처럼 사무적인 태도였다.


거기에 적힌 내용과는 별개로 단순한 서류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쩌면 지금도 칠칠맞은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없는 건 아닐까?

물론 서윤이가 그렇게까지 바보도 아니고, 자신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나이 차이를 실감했던 직후라 그런지는 몰라도, 좀처럼 그런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



하지만 고민은 거기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한창 수정작업에 열중하던 그녀가 어마어마한 분량에 완전히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있잖아요 오빠, 계약……이라는  원래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이런 식이란  무슨 말이야. 이상한 내용이라도 있어?"

"아니, 그게……뭐랄까."


"뭐야. 틀렸으면 말을 해. 고쳐야 하니까."


"틀린 건 아니고……합의해야 할  생각보다 많아서."



잠시 눈을 깜빡이던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부분을 읽어보았다.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 각자의 권리 책임과 역할에 대한 규정이었다.


"어차피 주인님은 오빠잖아요. 그리고……그게, 길들여지는 건 저고."

"뭐, 지금으로선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근데 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까지 적어놔야 돼요?"


설명할 말이 궁했던 나는 입속에서 혀를 굴렸다.


D/S. 디엣이란 어디까지나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역할극이다.


당사자들의 입장이나 사정, 감정이 어떻든 간에 형태는 그래야 한다는 거다.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노예를 거느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인 이상, 유사 체험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지 뭐.

물론 우리는 내 취향이 확고한데다, 서윤이 역시 비교적 알기 쉬운 섭 성향이라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글쎄."



하지만……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SM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실감이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해도, 자신의 입장과 역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의외로 적다.


막상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당연한 불안이나 파트너에 대한 불신이 발목을 잡아채기 때문이다.

물론 계약을 끝마친 후에도 자존심을 꺾는 무척이나 지루한 작업이 필요하지만……이건 또 다른 얘기고.


어쨌든 그런 이유로, 디엣 계약서라는 건 안전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더 실용적인 목적.

흔히들 SM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어렴풋한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쓰이곤 한다.

계약당사자인 섭에게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은 물론,

할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규칙과 그에 다른 처벌.

그리고 명문화된 주인과의 관계를 알아두는 것으로 역할에 몰입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지적한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있는 일이었지만,



"뭐, 사실 그렇게 큰 의미는 없으니까 그냥 구색 맞추기라고 생각하면 돼."

설명해봤자 소용없다는  알고 있던 나로선 시원찮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계약이라는 건 말 그대로 준비에 불과하다.

제품의 사용 설명서를 읽는 것만으로 기능 전부를 이해하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지금 당장 그녀에게 역할이니 권리니, 규칙이니 떠들어도 한순간일 뿐이다.

거기서 무엇을 느끼는지는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달린 문제기도 하고.

어차피 본격적인 조교는 플레이를 시작한 후에나 가능할 테니……칼로리 낭비야.




"갑과 을로 시작하지 않는 계약서는 심심하잖아."


"……알았어요. 그런 걸로 해요 그럼."


그녀는 알맹이 없는 대답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귀찮은 대답을 회피하는 남자친구에 대한 배려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즉시 "그리고!"라며 키보드를 탕탕 두드렸으니까.

오히려 본론을 꺼내기 위해 사소한 의문을 버리는 융통성을 발휘했다고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이거 봐요. 뭐에요 이거. 네? 뭐냐구요. 특정하지 않은 제3자의 개입에 대한 합의?"

"일단 진정해, 진정. 그런 내용 아니니까."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다른 여자랑 놀아날 생각?"


"서윤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읽어봐. 제발."

나는 으르릉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착하지. 응?" 비위를 맞췄다.



"여기 잘 봐봐. 상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3자와 성적인 행위는 금지한다고 적어놨잖아."

"……또한 오해를 받을 경우, 상대방이 요구하는 모든 사실과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잠깐 스톱.  지금 뭐하고 있냐."

"카톡이나 통화기록, 메신저 등 모든 내용을 숨김 없이……지, 지우지 마아아!"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어. 게다가 이거 너한테만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잖아."

애인한테 카톡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헤어지겠다고 말할 사람은 의외로 많을 걸.




"최, 최소한 오해를 받을 만한 일은 없어야죠!"

"날 믿어. 반드시 다른 오해를 낳을 거야."


"여자친구한테 카톡 정도는 보여주면 어때서!"

"그야 그렇겠지. 넌 보여줘서 문제될 게 없을 테니까."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어쨌든 이건 디엣이랑은 관계 없는 내용이니 안 돼.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어."


"……쫌생이."


"서윤이도 은근히 매를 버는 성격이지?"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건 관계 있어서 넣은 거예요 그럼?"

"물론 사족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뭐든 확실하게 해둬서 나쁠 건 없잖아."




그녀의 불만스러운 얼굴을 본 나는 가볍게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어떤 규칙이든 실제로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생기는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확언. 약속에 가깝다.


어차피 지금은 여자친구 외에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게다가 봐봐. 여기 아래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것도 같이 써놨지?"

"……합의하지 않은 촬영, 그리고 유출이나 복제, 유포 금지."


"아무래도 영상이나 사진을 많이 찍게 되잖아."

"전부 다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 굳이 필요한가 싶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명시해두는 게 중요한 거야. 일종의 약속이니까."



그러자 그녀는 영 마뜩찮은 표정으로 다음 내용을 가리켰다.

"그럼 이 비밀 유지와 사생활 보호에 대한 합의라는 건요?"


"말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않겠다고."

"사생활을 비밀로 하겠다는  아니에요?"

"……애인 사이라도 사생활은 기본적으로 지켜줘야지."


물론 넌 사생활이라고 할 만한 게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보면 오빠는 서윤이 요구에 꽤 많이 맞춰주고 있는 건데?"

"……어차피 맨날 집에만 있으면서."


"집이야말로 사생활의 보고란 생각은 안 드니."



아직 자취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 자각이 없나?

하지만 단순한 투정이었는지, 그녀는 조금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많이 불편해요? 제가 매일 찾아오는 거."


"처음엔  그랬지만, 이젠 뭐 어떠냐 싶어. 오히려 없으면 심심할 것 같고."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평할 만큼 멍청이는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컨트롤은 필요하고, 지금까지는 뭐 그럭저럭?


게다가 그녀가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내게 어떤 관계를 바라는지 알고 있는 만큼……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 같아서요. 좀 더 거리를 둔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고백했을 때부터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 안 쓰기로 했어."



나는 나대로 마이 웨이인 인간인데다, 서윤이도 의외로 마이페이스니까 말이야.


세상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가 즐겁지 않다면  이유가 없다.

반대로, 우리가 즐거울 수 있다면 세간의 인식이 어떻든 간에 그걸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 눈치 보면서 살면 밥을 주냐, 돈을 주냐."

물론 밥과 돈을 주는 사람의 눈치는 봐야겠지만.




"넌 그냥 내 눈치나 보면 돼."

"……오빠는  눈치 보고?"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만."



서윤이는 히죽 웃었다.



"게다가 지금 이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엄청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그래요?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서윤이는 일단 SM이 앱노말이란 인식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

남자친구를 갖기도 전에 주인님을 모시게 된다면 이렇게 되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것 참 양심을 쿡쿡 찌르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아니, 전적으로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고.

"게다가 전체적으로 너무 길어요. 뻔한 내용밖에 없으면서……오빠?"

"응? 아아,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방금 되게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아. 별 거 아냐. 잠깐 딴생각을 좀……그보다 뻔한 내용밖에 없다는  왜?"


"너무 당연한 내용이고, 다 알고 있는데 굳이 명시해야 하나 싶어서요."

"그래? 좀 의외네. 서윤이는 확실하게 해두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야 보통은 그렇긴 한데……이건 너무 빡빡하니까 그렇죠"


"오히려 알기 쉬워서 좋지 않아?"

"……여기 이 부분만 3페이지 정도 되는데요?"


"그야 규칙이니까 어쩔  없지. 규칙은 정확한 편이 심플하잖아."

기본적으로 디엣에서 S. 즉 서브미시브에겐 주인에 대한 복종과 봉사의 의무가 주어진다.

물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는 조건이 붙긴 해도,

일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주인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예외적인 상황에도 미리 명시해둔 경우가 아니라면 임의의 처벌이 뒤따르지만,

"게다가 우리는 플레이 목적인 관계가 아니니까. 그런 쪽으로는 좀 더 까다로워야 돼."

"그래도 너무 뻔한 얘기밖에 없어요. 부상이나 리스크……이걸 누가 모른다고."

"혹시 뭔가 굉장히 강제적이고 억지스러운 규칙을 기대하고 있었어?"

예를 들면, 주인의 앞에선 늘 알몸인 상태로 정좌한 채로 대기해야 한다던가.

식사를  때는 바닥에 엎드려서 손을 쓰지 않고 먹어야 하거나,


명령이 떨어진 즉시 그녀의 몸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등등.


"……그런  아니에요."

힐끗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상상-최소한 비슷한 내용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런  아니지만, 되게 상식적인 내용밖에 없으니까 살짝 김이 새버렸어요."

꼭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말투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한참이나 기다려서 들어갔던 식당의 음식이 기대에  미치는 퀄리티였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기대에 못 미쳐서 미안하지만, 오빠는 당연한 얘기야말로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좀  노예에 대한……역할이나, 의무라든지, 그런 내용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지?"


"죄다 이것도 하면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게다가 전부 주인님만."

"그야 뭐, 내가 까딱 실수라도 했다간 사람이 다치니까 이래저래 조심해야지."


아무리 역할극이나 놀이 감각이라고 해도 플레이 중에 그녀를 책임지는 건 나니까.


안전이나 리스크에 대한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손해를  리가 없는 법이다.


"……그래도."

하지만 서윤이가 불만을 느낀 부분은 거기가 아닌 듯 했다.



"여자친구가 아니라 파트너를 대하는  같아서……조금 싫은 느낌."

"여자친구니까 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냐?"


"……너무 사무적이니까 그렇죠. 규칙만 지키면 다 된다는 것처럼."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 건 내가 여심을 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얘가 여자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는 인간이라 그런 걸까.



"……그러니까아! 매, 매뉴얼을 만드는  같아서 싫단 말이에요!"

"점점  모르겠다고 하면 화낼 거야?"

"그, 그게……뭐라고 해야 되지."

아무래도 모자란 말빨로 설명을 하려니 말문이 막히는 듯 했다.

"오빠가 저를? 저한테? 아니, 이게 아니라……"


"그래그래. 천천히 말해."


우리 애가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좀 그래요.


여자 이전에 사람으로서 하자가 있다고 할까,

성격에 문제가 있는  확실하거든.


지켜보고 있으면 안쓰럽기 그지없는 친구인데

"이렇게 규칙으로 정해두지 말고, 좀  나를 봐줬으면 해서……"




그래도 가끔 이렇게 귀여운 소릴  줄 알아서 큰일이란 말이지.



"오, 오빠? 왜 점점 가까워지는……잠깐만, 스톱! 스, 스톱!"

"여기서 참으라는 것도 좀 너무하지 않아?"


"……오빠, 지금 눈에 핏발 선 거 알아요? 진정 좀 해요."



결국 나는 이번에도 별다른 소득 없이 젠장, 물러나야 했다.


그야 뭐, 순진한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자각 없는 순진함은 폭력이라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었다.

아니면 이런 식으로 쥐락펴락하며 길들이는 걸지도 모르고.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네? 아, 아아, 그게……무슨 말이냐면."

그녀는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규칙이 아니라……실제로 그게, 해보면서 해주셨으면……"

"실전에서 조율하고 싶다는 거야?"


"네, 네에에……대충 그런 느낌."


"글쎄, 그럴 필요가 있나? 되도록 상식적인 내용만 골라서 적었던 것 같은데."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남길 수 있는 플레이.


사생활 및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플레이.

사전에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플레이.

현행법에 저촉되는 명령의 금지……등등.

실제로는  더 자세하지만 규칙이라고 해봐야 결국 이 정도다.




"서윤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게 마지노선이라고 봐."

"물론 저도……그게, 필요 없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럼 뭐가 문제란 거야."

그러자 그녀는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축 늘어져 있었을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이대로는 공평하지 않은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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