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시작을 준비하는 태도 (6) (16/43)



〈 16화 〉시작을 준비하는 태도 (6)

"그래서? 결국 서윤이는 심한 짓을 당하면서 느낀다는 것밖에 더 돼?"

"저도 주인님 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선 절대로 안 그래요."

"당연한 소릴 하면서 그 '엣헴'하는 표정   지으면  되냐?"



나는 가볍게 손목을 휘둘러 채찍처럼 목줄을 허공에 내리쳤다.


진짜 채찍에 비하면 당연히 위력도 뭣도 없었지만, 느슨해진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길 정도는 되었다.


"개가 주인 앞에서만 꼬리 치는  그렇게 칭찬 받을 행동이야?"

"……아니에요. 주인님 앞에서만 꼬리 흔드는 거, 당연한 거고."


"서윤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다른 사람한테 꼬리 치면 혼나야 돼요."


"그래그래. 그것만 확실하게 알고 있으면 됐어."

칭찬의 의미로 부드럽게 뺨을 토닥여준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기르는 개라고 하기엔 좀 그런가? 목줄이 익숙한  같지도 않고."


"……조금 익숙해지려고 할 때마다 주인님이 계속 잡아당겨서 그래요."

"어쨌든 간에. 잡아당길 때마다 발정하면 산책도 못 나가잖아."

"그, 그런 거 안 했어요……!"


"아니, 좀 전에 서윤이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냥 꾸욱, 한다고만 했지. 그런 식으론 말한 적은 없잖아요."

나는 목줄을 툭툭 잡아당겼다.

"그게 그거지 뭐. 어쨌든 이런 짓을 당하면서 느꼈다는  아냐."

"간신히 주인님한테 사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뻐서……읏!"




다시 한 번 목줄을 강하게 잡아당기자 그녀는 기어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기쁜 것도 좋지만, 주인님을 잊어버리면  되지."

"네, 네에엣."


"혼자서 멋대로 행복해지면 되겠어?"


"멋대로 굴어서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당황한 기색을 난폭한 미소로 지워버린 나는 우선 서윤이를 일으켜 세웠다.

맨바닥에 넘어졌다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먼젓번에 비하면 그렇게 우왁스러운 것도 아니었는데.


저항할 힘이 없는 건지, 아니면 워낙 순식간이라 그럴 틈이 없었던 건지,

아무래도 다음에 목줄을 잡아당길 땐 먼저 주의를 촉구하는 편이 좋을  같았다.




"어디 좀 봐봐. 넘어지면서 부딪히진 않았어?"


"괘, 괜찮은 것 같아요."


"확실하게 말해."


"정말이에요. 하나도 안 아파요……흐엑!"


멀쩡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이마를 튕겨주었다.

"……왜, 왜에에??"

당연히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이마를 감싸쥔 그대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동동 띄웠다.


"간신히, 라고 하면 내가 그동안 사랑해준 적이 없는 것처럼 들리잖아."


"그, 그게 아니라 주인님한테 받는  특별하니까 그런 건데."

"뭐가 어떤 식으로 특별한데?"


"평소보다 훨씬 고압적으로 대해주는 거……?"


딱히 남의 취향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한결같아도 너무 한결같았다.


"게다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함부로 해주시는  마음이 놓인단 말이에요."


"그럼 그동안 쭉 이렇게 되는 걸 기다렸다는 거야?"

"그, 그런 것 같아요."


"어울리지도 않는 여자친구 노릇 하느라 고생했다고 해야 하나?"



서윤이는 "어……" 조그맣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릿속 트래픽이 폭주 중일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머리의 출력장치가 고장  상태다.

두뇌회전은 비상하지만, 소심한 성격이 말문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수문을 닫아버린 댐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그런 주제에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

소위 주제 파악을 못할 정도로 눈치가 둔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말을 고르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곤 한다.

지금도 한창 '주인님'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대답을 찾느라 바쁘겠지.



"하긴. 이렇게 개처럼 다뤄야 기뻐하는 년인데, 그동안 너무 다정했지?"

가만히 놔두면 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조금 거들어주기로 했다.



"가볍게 목줄 몇 번 당겼을 뿐인데 멋대로 발정 나서 조르기나 하고 말이야."

"주, 주인님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그런 건데."


"내가 심한 짓을 당하면 기뻐하라고 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응? 서윤아. 말해봐.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어."

"……지, 직접 가르치진 않았어도 주인님 때문인 건 맞잖아요."



서윤이는 '감히' 볼이 부어선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투덜투덜거렸다.

물론 아차 싶었는지 그 즉시 다소 뻔뻔하게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분명 주인으로선 화를 내야 하는  맞는데도……거 참.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면 나도 중증인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원.




"이제 그만 이해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으, 으긋……"



목줄을 손목에 둘둘 감아 바투 잡은 나는 강제로 그녀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금 서윤이가 핑계를 댈 입장이야?"

"아, 아니에요오……"


서윤이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물고기처럼 빠르게 헐떡거렸다.




"암캐 주제에 이렇게 사람 말로 떠들  있는 게 누구 덕분이지?"

"……주, 주인님께서 허락해주신 덕분, 이에요."

"그럼 만약 내가 짖으라고 명령하면?"

"지, 짖어야 돼요. 멍멍 하고."

"옷을 벗으라고 하면?"


"……벗어야 돼요. 명령하신 대로."


"왜 그래야 하는지까지 물어봐야 하나?"

"저는, 주인님이 목줄을 채워서 기르는 개니까……요."

"근데 아직은 머리로 알고 있는 만큼 실감하진 못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눈앞에서 목줄을 흔들어 보였다.



"이걸 차고 있는 동안은 자기가 사람이 아니란 걸 슬슬 이해하지 그러냐."


"빨리 주인님한테 사랑 받고 싶어서……기다리기 힘들어서 그랬어요."

"거 참,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스위치 들어가는 게 빠르네."


"……일주일이나 기다렸잖아요. 빠른 것도 아니에요."


"딱히 예정엔 없었지만, 충분히 애태운 것 같아서 만족스럽네."

"주인님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저는 엄청나게 힘들었단 말이에요."


"왜? 암캐답게 주인님 앞에서 무릎 꿇고 봉사해야 하는데 기다려야 해서?"

목줄을 툭툭 당기자,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내내 그것만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다고 하면 이상해요?"


"그다지? 아까도 말했잖아. 그만큼 기대해준 것 같아서 솔직히 좀 기쁘다고."

"빨리……명령 받고, 열심히 노력해서, 주인님께 많이 칭찬 받고 싶어요."

"글쎄,  전에 서윤이는 일단 '기다려'부터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지금도 엄청나게 많이 기다린 것 같은데……여기서 더?"


"잘 참는 것 같더니 왜 그래. 이제 정말로 더 못 기다리겠어?"


"이러고 있으니까……정말로 개가 된 것 같아서, 오싹오싹하단 말이에요."

서윤이는 가만히 있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자꾸만 어깨며 허리를 들썩였다.


그마저도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만약 무릎을 꿇고 있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았겠지만,

지금은 허벅지를 꽉 닫은 채 무언가를 참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찬 듯했다.


"그래서?"

물론 참으려는 노력은 가상하고,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꼴을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도 주인의 역할이다.

 결국 헛된 발버둥이  노력을 즐겁게 지켜보며 심술궂게 물었다.




"내가 '기다려'가  되는 강아지를 어떻게 다룰지 알고 있잖아."


"……네. 주인님. 뭐든 명령해주세요."

"이럴 때 보면 눈치는 참 빠른데 말이야."

"주인님이 항상 주제 파악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아무리 언질을 줬다지만, 서윤이는 정확하게 의도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기특하다며 칭찬해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바짝 긴장한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럼 오래간만에 주인님 앞에서 자기소개  번 해볼까?"


"저기, 주인님. 그러니까, 자기소개……라고 하시면."

"말은 끝까지, 그리고 똑바로 하라고 했지?"

"……아니에요. 주인님이 설명해주시는 걸 들을게요."

서윤이는 뭔가 이상한 기색을 느낀 건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무래도 방금 꾸중을 들었던 게 생각보다 영향이 있는 듯했다.

딱히 혼낼 생각 같은 건 없었지만 뭐.


귀여워서 한 번 웃은 나는 기특하다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설명이 다 끝난 다음에 물어보는 걸로 하자?"

"안 그래도 괜히 도중에 방해하는 것 같아서……죄송해요."


"괜찮아. 모르면 배우면 되지. 죄송할 건 아냐."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 건 잘못이지만 말이야.



"앞으로 조심하면 됐지. 안 그래?"


"네에에. 조심할게요."

"그래그래. 말 잘 들어서 예뻐."




그러자 서윤이는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칭찬은 인색하지 않는 게 좋다.


특히 그녀처럼 칭찬이 모티베이션으로 직결되는 경우엔 더더욱 말이다.

"그래도 뭐, 자기소개라는 말로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충분하다고 하셔도, 어차피 평범한 자기소개는 아닐 거잖아요."


"뭐야. 생각보다 눈치 채는 게 빠르네?"

"이런 건 모르는 쪽이 바보인데."


"뭘 새삼스럽게. 서윤이 바보 아니었어?"

"……주인님은 바보 같은 암캐가 더 좋아요?"




꽤나 날카로운 반격이었다.


"자기가 암캐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바보라도 상관없어."


"……네."

하지만 날카롭기만  뿐이었다.


나뭇가지가 아무리 날카로워봤자지.

콱 밟아서 꺾으면 그대로 부러지는 것을.


"아무튼 대충 짐작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야기가 빠르겠네."



간단하게 격추시켜버린 나는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위로 까닥거렸다.


유치원생이라도 알아 들을 만큼 알기 쉬운 손짓이었다.


서윤이는 잠시 의아해하긴 했지만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괜히 머뭇거리다 불똥이 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일단은 뭐, 그래. 옷부터 벗을까?"



하지만 이어진 명령에는 아무리 그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몸을 일으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저기 주인님, 벗으라뇨……?"


"말 그대로인데?"


"갑자기?"


"그럼 계속 입고 있을 생각이었어?"


반대로 질문을 돌려주자 서윤이는 어쩔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옷도 입고 있고, 사람 말도 하고 있으면서 목줄만 찼다고 암캐야?"


"그, 그런 건 아닌데……너무 갑작스러워서."


"지금까지 기다려준 걸로는 모자라?"


"기다려주신 거예요?"


"아니면 처음부터 벗겨놓는 쪽이 좋았을까?"


서윤이는 머리카락이 팔락거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휘둘렀다.


"근데 주인님이 가, 갈아입으라고 하셔서……오늘은 괜찮을  알았어요."

"계산하면서 서윤이한테 줄 선물도 겸하는 거라고 말했을 텐데?"

"우, 움직이기 편한 옷이 필요하다고도 하셨고."

코웃음친 나는 그녀가 오늘 입고 왔던 옷을 가리켰다,




"너 저런 옷으로 무릎 꿇고 앉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다리가 많이 아플 것 같아요."


"충분히 배려해준 거지?"


"그, 그렇……죠?"


"게다가 마음의 준비가  때까지 일주일이나 시간을 줬고."

서윤이는 일주일은 너무 길다며 칭얼거리던 자신을 쥐어박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기다려준데다, 배려까지 해줬지."


"네, 네에엣."


"그럼 지금 억지를 부리는 건 누구일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대답 대신 물었다.

"……소, 속옷까지 전부 벗어야 돼요?"

한가롭게 왼손을 무릎 위로 가져간 나는 그것으로 턱을 받쳤다.


"서윤이가 생각하기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저, 전부 다 벗어야 할  같아요."

"그렇지?"


"주인님께 보여드리는 거니까……아마도."

"앞으로 특별한 명령이 없는 이상 알몸이 전제야."

역시 서윤이한테는 조금 억지로 밀어붙이는 편이 잘 먹히는 걸까.


 더 밀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다소 싱겁게 얻어낸 소득이긴 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빠르게 기분을 정리한 나는 즐겁게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기로 했다.



"우, 우으으……"




꽤나 느릿한 동작으로 상의 자락을 붙잡은 그녀는 천천히 옷을 들어 올렸다.

미리 목줄을 둘둘 묶어서 건네줬기에 상의를 벗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계속 머뭇거리게 만드는  경험한 적 없는 수치심이었다.


그동안 섹스할 때도 내가 직접 옷을 벗겨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저히 못 참고 덮쳐버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애초에 옷을 벗는 걸 질색하는 편이기도 하고.


꼭 벗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엔 속옷이나 하의 정도만.


그것도 일체의 조명이 없는 상태에서 그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 일쑤였다.

빈약한 몸이 콤플렉스라고 하니 이해는 하겠다만……서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꾸 그렇게 손으로 가리려고 하지 마라."

그래서인지는 몰라도──아니, 아마 틀림없이 그것 때문이겠지만, 나는 괜히 짓궂어지고 싶은 충동을 참으려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하며 몸을 뒤로 뺄 때마다 지적하고, 윽박지르며 억지로라도 눈앞에 내보이게 했다.

서윤이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끊임없이 "햐으윽." 약한 신음을 흘렸다.



"벗은 건 이리 줘."


"시, 싫어요."


"……싫다고?"



서윤이는 반쯤 넋이 나간 채, 벗은 옷을  끌어안고 절대 놓으려 하질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어르고 달래서 반강제로 상의를 넘겨받은  던져버렸다.

어차피 벗어놓은 옷가지는 단순한 천조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것보단  이상 물러날 구석이 없어진 서윤이를 보는 게 훨씬 즐거웠다.

"흐으, 흐으읏……"



완전히 시선에 노출된 그녀는 양손으로 가슴을 끌어안은 채, 주저앉으려는 것처럼 이도저도 못하는 자세를 취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툭 건드리면 왈칵 쏟아질 얼굴은 한 그녀는 사방을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씩 피부에 와닿는 시선이 간지럽다는 것처럼 몸을 들썩거리면서.


부끄러워하는 섭의 수치심을 부추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한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말을 붙일 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라는 것쯤은 보통의 관찰력으로도 쉽게 알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손가락 틈으로 보이는 연보라색 브래지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슬그머니 틈을 메우는 것처럼 시선이 닿는 곳을 가려버린 서윤이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 속옷은……마지막에 벗어도 될까요?"


"역시 서윤이가   아네."

"……알다뇨?"


"하이라이트는 마지막까지 남겨둬야 보는 맛이 있다는 거지?"

"그, 그런  아니에요!"


"아직 소리 지를 기운은 남아있어?"

"……죄송해요. 근데 진짜로 그런 거 아니에요."



서윤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기까지는 그게 뭐랄까, 아, 아직 좀 많이 부끄러워서 그래요!"

나중으로 미루면 부끄러움이 반감되는 건가 싶었지만 뭐.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서윤이는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는 것처럼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곤 나무늘보와의 좋은 승부가 가능할  같은 속도로 레깅스를 벗기 시작했다.


만약 관객을 위한 약간의 서비스 정신이라도 발휘했다면 좀 더 즐거웠겠지만,


조금 전부터 제정신이 아니던 그녀에게 요구하기엔 너무 가혹한 바람이겠지.

덕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옷을 벗을 때 느껴지는 감정 이상의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가지, 수확이랄 게 있었다면 앞으로 속옷은 세트로 선물해야겠다는  정도?


"저, 저기 주인님, 주인니임……"


"응?"



내심 궁금해하던 것이 사실로 확인된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찰나였지만, 서윤이에게 원망 어린 시선을 받기엔 충분했다.

나는 두 팔로 열심히 속옷을 가리느라 꽤나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 그녀를 보며 피식거렸다.

"우리 서윤이, 여기저기 가리느라 손이 바쁘네."

"……그, 그런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그래. 알았어."

"왜 맨날 그런 식으로……"

"알았다니까. 잔소리는 됐으니까  불렀지나 말해."

귀찮다는 듯 휙휙 손을 내젓자 그녀는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 불만을 표시한 뒤, 자신의 등을 가리켰다.




"이거, 주인님이 대신 해주시면 안 될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