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시작을 준비하는 태도 (8)
"아니면 역시 A부터 Z까지 일일이 설명하는 쪽이 좋겠어?"
"아, 아니에요 주인님. 설명하지 않으셔도 돼요."
"설명이 필요 없다니, 대단한 자신감인데?"
"어……"
"오랜만에 서윤이한테 기대 좀 해봐도 되나?"
"죄송해요. 열심히는 하겠지만……기대하시는 건 조금."
정말이지 한 치도 다르지 않을 만큼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어버린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렸다.
"알았으니까 이제 다시 무릎 꿇자."
"네? 네에에……죄송해요."
"죄송하긴 뭘."
"아까처럼 하면 되는 거죠?"
"그래그래. 주인님 앞에선 항상 그렇게 있도록 해."
서윤이는 주섬주섬 목줄을 다시 내게 건네준 다음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몸이란 게 적응하기 힘든지, 자꾸만 몸을 꿈지럭거렸다.
은근슬쩍 공손하게 손을 모으는 척하면서 다리 사이를 가리려거나,
초조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면서.
아예 노골적으로 "이쪽 보지 마."라고 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실소가 나왔다.
"사실 뭐, 긴장할 만큼 어려운 건 아냐."
목줄을 손목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던 나는 짐짓 가볍게 말했다.
당연한 거지만, 장난스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연출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엄격하면 필요 이상으로 지치기도 하고,
가뜩이나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이 될 것 같아서.
아니, 그 전에 일단 대체 뭘 했는데 지쳤냐고 따지고 싶긴 한데,
어쨌든 남들보다 훨씬 체력 안배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사실이다.
"서윤이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만 하면 되는 거야."
"만약 제대로 대답을 못 하면……벌 받아야 돼요?"
"기대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착각인가?"
"기, 기대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어쩐다?"
나는 턱을 매만졌다.
"딱히 벌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물어보니까 고민하게 되네."
"생각 없으시면 굳이 고민 안 해도 될 것 같은 되는데……요."
"그래도 역시 페널티가 있는 편이 스릴 있고 좋겠지?"
"……"
"어떡할래?"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그래 그럼. 제대로 대답 못하면 페널티를 받기로 하자."
서윤이는 자기 무덤을 팠다는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드러눕기엔 깊이가 좀 얕은 것 같았다.
언제 저 작은 손으로 삽을 잡아본 적이 있어야지.
그래서 좀 더 깊게 판 다음, 그 위에 흙까지 덮어주기로 했다.
"그럼 벌칙도 있겠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재미없겠지?"
"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펴, 평범한 자기소개……아니, 면접 아니었어요?"
"그럼 정말로 평범하게 묻는 말에 대답만 할 생각이었어?"
말문이 막힌 서윤이는 "어, 어어." 입만 벙긋거렸다.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했다지만, 자세가 안 되어 있네."
"그런 건 아니지만……재미, 라고 하시니까."
"너무 어려운 건 시키지 않을 테니 걱정 마."
빙긋 웃어 보인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지금부터 서윤이한테 같은 종류의 질문을 두 번 할 거야."
"같은 질문을……두 번이나?"
"맞아. 정확하게 들었어."
"……왜요?"
"짐작할 것 같은데 한 번 맞춰보면 어때?"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서로 다르게 대답해야 한다던가, 그런 거예요?"
"대단한데? 설마 진짜로 맞출 줄은 몰랐어."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지, 진짜요? 진짜로 그래야 돼요?!"
"……그게 그렇게 언성까지 높일 일이야?"
떨떠름한 표정을 본 서윤이는 뒤늦게 "하읍!"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해요. 절대로 대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괜찮아. 생각보다 반응이 격해서 좀 놀랐을 뿐이야."
"저도 설마 진짜일 거라곤 생각 못해서……놀랐어요."
"그래도 서윤이 눈치가 빨라져서 좀 기쁜데?"
그러자 당장 못마땅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 나는 하나도 안 기쁜데……요!"
"존댓말 똑바로 해야지?"
"……네에에."
"아슬아슬하게 덧붙이지 말고."
"일부러 반말을 하려던 건 아닌데."
나는 완전히 울상이 된 그녀의 머리를 툭툭 토닥였다.
"서윤이가 생각한 대로, 질문할 때마다 서로 다른 대답을 하면 돼."
"……일단 서로 다른 대답이란 게 어떤 건지부터 가르쳐주세요."
"설명보단 실제로 해보는 쪽이 빠를 걸?"
"지금부터요?"
"바쁜 일이라도 있어?"
그러자 서윤이는 정확히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굳이 해석하자면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좀 마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했다.
어째 점점 갈수록 지적할 수 없도록 불만을 표시하는 요령만 터득하고 있단 말이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마 서윤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지치고 힘들다고만 생각할 뿐.
간신히 터지기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을 거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주인인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있는지,
게다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얼마나 특별대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다른 섭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저런 불평도 못할 텐데.
"괜찮아. 방금 전처럼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이진 않을 테니까."
나는 잠시 고개를 치켜든 불만을 쫓아내 버린 뒤,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저렇게 보여도 서윤이 역시 방심 못할 여자라는 건 확실하게 알았으니까.
"게다가 힘들어하는 걸 몰라주는 것도 아니잖아."
"……네에엥."
다행히 서윤이는 완전히 안심한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납득하지 않더라도 나로선 강행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한 번 시작한 이상, 이제 와서 번복하는 건 주인의 신뢰 문제다.
일단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어떻게든 끌고 가서 결과를 내야 하는 게 주인의 역할이다.
나는 부디 그녀의 눈에는 가능한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며 말했다.
"그럼 일단 가장 대답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볼 건데, 괜찮지?"
"간단한 질문, 이라고 하셔도……잘 모르겠어요."
"프로필 말이야 프로필."
"이름……이나 뭐, 그런 것들이요?"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의 그녀 앞에서 가볍게 손뼉을 두드린 나는 경쾌하게 말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연습 삼아서 이름이랑 나이부터 물어볼까?"
"이름은, 성서윤……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무 살, 이에요."
"대학생이지? 지금 혼자 살고 있어?"
"네. 올해로 1학년……이고, 혼자 자취도 하고 있어요."
"서윤이는 최근에 푹 빠져 있는 취미 같은 게 있어?"
"딱히 취미 같은 건 없긴 한데……뭐에요 진짜. 어차피 다 아는 거잖아요."
당연히 인터뷰부터 차근차근 즐기는 맛을 알 리 없는 그녀에게서 당장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뭐, 예상한 일이었기에 나는 길어지려는 불평을 가로막은 뒤 천천히 설명했다.
"지금 그건 누가 물어보더라도 똑같이 대답했을 거야, 그렇지?"
"그거야 그렇지만……프로필 같은 건 다들 비슷하잖아요."
"평범한 자기소개라면 그렇겠지."
서윤이는 그제야 "아." 모호한 착상 같은 것을 붙잡은 듯했다.
하지만 정작 그걸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고,
결국 언제나처럼 내가 직접 말로 바꿔서 설명해야만 했다.
"주인님 앞에서는 좀 다른 소개가 필요하지 않겠어?"
잠시 좌우로 눈을 굴리던 서윤이는 좀 전보다 훨씬 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다르다는 게……암캐, 라는 의미로?"
"아니면 뭐겠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까 싶기도 했지만, 서윤이의 재치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이런 건 시간을 들이면 들이는 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슬슬 시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기다려줄 만한 여유가 없기도 하고.
"그럼 다시 한 번 물어볼게. 이름은?"
"서, 성서윤……입니다."
"나이는?"
"스무살……인데."
어디 한 번 해보라는 것처럼 잠시 기다리자,
"그, 그게……"
서윤이는 무척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주인님의 암컷, 애완동물……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고 간결한 표현이 있을 텐데?"
"주인님의 암캐……에요."
"암캐라는 게 뭘 말하는 거지?"
"……길들여지거나, 명령을 듣기도 하고."
우물거리면서 눈치를 보던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주, 주인님 전용으로 봉사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지금 서윤이 역할이라는 거야?"
"역할……이라기 보다는."
"그럼?"
"목표, 라고 해야 하나."
"암캐가 되는 게 목표야?"
"저, 정확히는 사랑받는 암캐……인데."
나는 팔짱을 낀 채 설명해보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초조함을 부추기기 위해 시큰둥한 시선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결국 내몰린 서윤이는 "아, 아으읏." 손짓까지 섞어가며 없는 말주변을 끌어모아야 했다.
"저, 저는 사람이랑 어울리는 게 서툴러서……말도 제대로 못하고, 항상 미움만 받는 성격이라."
"사람 대하는 게 서툴다는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뭐 그래. 계속해."
"그래서 사실 여전히 연애……라던가, 그런 것보단."
서윤이는 잠시 내 눈치를 보며 목줄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관계가 알기 쉬어서 좋아요."
"그거, 남자친구가 들으면 꽤 많이 상처받겠다."
"나, 남친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아……!!"
비웃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슬그머니 입가를 가렸다.
하지만 서윤이는 이미 "우으으."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이런 일로 미워하거나 하진 않을 텐데도.
이미 서윤이 안에서는 혼나는 게 기정사실이 된 모양이다.
계속해도 괜찮은 건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명령이라던가, 복종이라던가……저한테는 소유당하는 게 훨씬 익숙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서윤이는 누군가의 소유물로 지내는 쪽이 편하다는 거야?"
"……누군가가 아니라 주인님이 아니면 싫어요."
"아무튼 간에."
"그리고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길들여졌잖아요."
"그런 식, 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말해야지?"
"복종하는 방법이라던가, 예절교육처럼, 주인님으로 모시는 법이요."
"그럼 서윤이는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어?"
"말을 잘 들으면 칭찬도 받을 수 있고, 야한 거 하면 기뻐하시니까."
"뭐, 그게 전부라고는 말 못하지만 대충은 그렇지."
"……주인님 마음에 들면 나 같은 애도 사랑받을 수 있구나, 정도?"
나는 서윤이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참아야 했지만.
"결국 그거네? 서윤이는 주인님한테 사랑받고 싶은 거지?"
"……네에에. 가능한 오랫동안 많이많이 사랑받고 싶어요."
"글쎄,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까?"
"며, 명령을 듣거나, 시키는 일을 잘 해야 하고."
서윤이는 도와달라는 것처럼 애처로운 눈으로 날 보았다.
한 마디 거들어달라는 것 같았지만……어림도 없지.
"그리고 또?"
"야, 야한 것도 잘할 수 있어야 돼요."
"정확히 어떤 걸 잘해야 하는지 말해볼 생각은 없어?"
이제 간신히 아다를 뗀 수준인 그녀로선 막막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어디서 보고 들은 지식을 꿰어 맞춰 간신히 꺼낸 말이라곤,
"이, 입으로 봉사……하는 그런 거요."
요즘 세상엔 중학생도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럼 반대로, 명령을 듣지 않거나, 시키는 일도 못하고, 봉사도 못하는 서윤이는."
일부러 악센트를 둔 나는 한 호흡 간격을 두었다.
새삼 찔렸는지, 그녀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그런 서윤이는 주인님한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네?"
"여,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거부감은 없어?"
"거부감……이라뇨?"
"이제 막 성인이 된 주제에, 암컷이라고 자칭하면서 주인을 모시는데서 느껴지는 거부감 말이야."
"……나, 나이랑은 상관없잖아요, 그런 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이상하다는 것도 알고, 평범하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그래도 엄청 사랑하는 주인님, 이니까."
나는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내가 분명히 말은 끝까지 하라고 했을 텐데?"
"새, 생각하고 있었어요! 진짜에요!"
"알았으니까 빨리 끝내기나 해."
"……주인님이니까, 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려고 했어요."
"그래그래. 평생 주인님 전용 보지 노예로 사랑받으려면 노력을 해야지."
익숙하지 않은 표현에, 서윤이는 당황하며 몸을 숙였다.
"대답해야지 서윤아?"
"네, 네에엣."
"아니면 싫어?"
"……펴, 평생 주인님 전용, 보지 노예, 하겠습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항상 내 전용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되지. 안 그래?"
"저는 한참 전부터 늘 주인님 전용……이었어요."
"이런 걸로 부끄러워해서야 앞날이 깜깜하다."
"……노력하겠습니다."
"아직 좀 이른 감도 있지만, 슬슬 단어 교정도 시작해야겠네."
이것만큼은 교육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성과를 발휘하니까 말이야.
플레이에 쓰는 종류의 음어(淫語)는 입에 잘 붙지도 않고,
일단 저항감을 없애는 것부터가 상당한 난관이다.
당장 서윤이에게 강요해봤자 역효과가 날 게 뻔해서 미뤄둔 건데.
"천천히 가르쳐줄 테니까, 지금은 시키는 것만 잘 따라하면 돼."
"네, 네에에……"
"암컷이라고 하고 싶으면 천박한 표현도 쓸 수 있게 돼야지."
서윤이는 그 천박한 표현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감도 안 잡힌다는 얼굴이었다.
"뭐, 좋아. 그럼 다음으로……요즘 푹 빠진 체위가 있어?"
"아, 아까는 취미……아니었어요?"
"너 취미 없는 거 아는데 뭘."
기껏해야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 정도고.
가끔씩 내가 추천해준 음악을 듣는 정도?
하지만 그것도 취미라고 할 만큼 빠져 살진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었다지만, 그것도 그만둬야 했고.
"체, 체위라고 하시면……저기, 그게, 주인님하고 할 때, 말이죠?"
"……어디서 나 몰래 다른 남자한테 벌리고 다니냐?"
"아, 아냡!"
나는 잠시 그녀가 몸을 추스릴 수 있도록 "하아아아." 시간을 주었다.
꽤나 기세 좋게 씹어버렸으니 한동안 엄청나게 욱신거릴 거다.
"우, 우으으……아파요, 주인님."
"내가 이래서 너한테 펠라를 못 시키겠어."
남자에게 이빨 달린 구멍에 넣는다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괜찮냐?"
"조금요."
"괜찮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둘 다 조금씩……괜찮은데 아파요."
어쩌면 처음부터 말을 할 수 있도록 놔둔 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암캐답게 입을 막아놓고 몸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래도 뭐, 이번엔 내가 잘못한 거라고 치자."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쓸데없는 소리였지 그래."
"그리고 좋아하는 체, 체위라고 해도 잘 모르겠는데."
잠시 서윤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짧게 말했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지?"
"……평범하게 하는 거랑, 안아서 하는 거요."
"오히려 그거 말고 다른 자세를 한 적이 있었나?"
"주인님 얼굴이 안 보이면 불안해서……다른 건 싫어요."
평소에도 어리광쟁이가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안겨 있을 땐 정도가 심해진다.
"나만 봐줘."라는 압박이 굉장해서, 조금이라도 시선을 떼면 싫어하기도 하고.
"오늘은 그런 어리광이 안 통한다는 것 정도는 알지?"
"네 주인님. 원하시는 만큼 사용해주세요."
"사용되는 입장이란 건 이해하고 있어?"
"……머리로는 어떻게든."
"솔직해서 좋다 그래. 알고 있다는 것으로도 어디야."
슬슬 칭찬이 필요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나는 가볍게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서윤이는 느슨한 얼굴로 꼭 냄새를 맡으려는 것처럼 코끝으로 킁킁거렸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간질간질한 느낌에 묘한 장난기가 동한 나는,
"흐, 흐에에엑……"
그녀의 얼굴에 손바닥을 꾹 누른 채 빙글빙글 문질렀다.
이리저리 머리가 돌아가는 게 재미있었는지 그녀는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서윤이는 딱딱한 것보단 이런 분위기를 더 좋아하지?"
"주인님이랑 같이 노는 것 같아서……부끄럽긴 한데, 조금 재밌어요.'
사실 이렇게 잡담을 나눌 정도로 여유로운 플레이라는 게 나로서도 적응하기 쉬운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무섭고 엄격한 주인을 연기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늘 하던 것처럼 억지로 찍어누르고 짓밟아서 진심으로 꺾여버린 모습을 보게 된다면,
글쎄, 그건 그것대로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은 뭐, 익숙하지 않은 쪽의 페이스에 맞춰야 한다는 거겠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한테 뛰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뭐, 그래. 서윤이가 좋아하면 된 거지."
"쥬, 쥬인님……숨 마켜요."
장난스레 코를 쥐고 흔들어준 나는 장난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왠지 열 받으니까 이제부턴 좀 더 빡센 질문을 던져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