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시작을 준비하는 태도 (12)
"그렇게 이것저것 생각이 많으면서 왜 아까는 대답을 못했을까. 그치?"
"……그, 그게, 정말로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대답 안 하면 혼날 걸 아는데 어떻게 그래요."
"아니, 그럼 좀 더 생각하게 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어차피 주인님, 제가 잘못하기만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의외로 날카로운 곳을 찔러오는 지적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확실히, 아닌 것 같아도 전부 다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든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겠지.
"솔직히 벼르고 있었잖아요. 꼬리 밟히면 혼내줄 생각으로."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티를 냈나?"
"아뇨. 딱히 티가 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주인님 성격에, 어떻게든 꼬투리 잡으려고 기다릴 것 같아서."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도 문제였다.
"한 번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걸고 넘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페널티 얘기가 나온 순간부터 아차 싶었겠네."
"그쵸. 근데 변명 같은 게 통하겠어요? 더 혼날 게 뻔한데."
"그렇다고 뻔히 벌 받을 걸 알면서 기다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이제부터 혼난다고 생각하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됐단 말이에요."
나는 팔짱을 낀 채 "흐으음." 마뜩잖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그리고! 주인님이 막 엄청 웃으면서……욕을 하니까."
"막상 서윤이 입으로 들으니까 좀 사이코 같긴 하네."
"저보고 중고……라고 막."
"그래그래."
"주인님밖에 모르는데……그렇게 말씀하시면."
"알았다니까. 플레이 중에 한 소리에 의미 부여하지 마."
주인이 할 만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제 와서 뭘.
한 번 깨진 쪽박을 다시 이어붙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서윤이도 기분이 싱숭생숭 한지, 아까만큼 눈치를 보진 않았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봐서 엄청 놀랐단 말이에요."
"알았어 그래. 오래오래 잘 써주면 될 거 아냐."
"오래오래 말고 평생은 안 돼요?"
"내 그릇이 작아서 차마 거기까진 장담을 못하겠다."
예정과는 다르지만, 오늘은 이대로 쉬엄쉬엄 놀아주는 것도 좋겠지.
좀 이르긴 해도 어차피 애프터 케어 시간도 필요했으니 겸사겸사.
다행히 서윤이도 발정이 나서 더 해달라고 조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강아지가 놀아달라는 것처럼.
아직 목줄을 벗기엔 아쉽다고 느끼는 것뿐이니까 괜찮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나 혼자만 긴장의 끈을 풀지 않는 것도 웃긴 일이고.
"글구 제가 생각했던 거랑 전혀 다른 걸 물어봐서 당황했어요."
"그럼 서윤이는 대체 무슨 질문을 예상한 건데?"
"장점……이라든가, 주인님이 생각해 보라고 했던 거요."
"장단점 같은 것보단 호불호 쪽이 훨씬 대답하기 쉽지 않나?"
어차피 "장점 같은 건 없어요." 같은 맥 빠지는 소리나 했을 텐데.
네거티브한 성격을 고려해서 배려해준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
"열심히 대답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걸 물어보시잖아요."
"무슨 플레이를 좋아하냐는 게 그렇게 이상한 질문이야?"
"조,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시니까 그렇죠!"
"장점을 물어보면 대답할 순 있고?"
"……그게 문제에요."
"괜히 분위기 가라앉을 까봐 일부러 안 물어본 건데."
"그래서 제가 조금, 암캐……답게 생각한 게 있는데요."
또 무슨 소릴 하려고.
"아까도 말했지만……저 별로 그렇게 자랑할 게 없거든요."
"일단 뭐, 대답은 보류해둘 테니 계속 말해봐."
"가슴……도 많이 모자라고."
"가슴이 뭐가 중요하다고."
"거짓말."
"……아냐. 난 만족해. 진짜로."
"주인님도 솔직히 불만 있잖아요."
"불만 같은 거 없어.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뭘."
"다 아는데 뭘. 거짓말 하지 말구요. 빨리 솔직하게 말해봐요."
하지만 이미 반쯤 타성적으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던 나는 끝까지 부정했다.
서윤이도 그것을 느끼고 있으니 저렇게 다그치는 것처럼 질문해오는 거고.
말로만 주인님이지, 이젠 사실상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다 알면서 사귀는 건데 불만 같은 게 있겠냐."
"……정말 하나도 불만 없어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지."
"정말 정말로?"
"거 참 끈질기네 진짜."
나는 성가시다는 것처럼 휙휙 손을 내저었다.
"믿어라 좀. 불만 같은 거 없다니까."
"별로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구."
"그럼 왜 자꾸 물어보는데."
"에헤헤."
하지만 이마저도 깔아놓은 포석 중 하나였는지,
서윤이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미소를 지었다.
꼭 "어떠냐!"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주인님은 그렇게 대답할 것 같았거든요."
"……"
"맞췄죠? 그쵸?"
"그래 뭐, 정답이긴 해."
서윤이는 엄청나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사실 당연한 거 아냐?
평균도 안 되는 사이즈의 여친 앞에서 솔직할 수도 없는 거잖아.
괜히 쓸데없는 소릴 했다간 앞으로 내내 시달릴 텐데.
서윤이도 다 알고 있으면서 떠볼 생각으로 물어보는 거고.
애초에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질문을 예상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저 연예인 예쁘지 않아?"라는 여친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
"난 서윤이한테 충분히 만족하고, 가슴 같은 건 중요한 문제도 아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다니까."
"나는 안 그런데."
이 년이?
"주, 주인님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라……나 자신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봐. 아직 주인님이란 걸 잊지 말고."
"제가 좀만 더 키가 컸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면?"
"까치발 들고 키스하기, 라던가?"
하긴. 지금은 까치발은커녕 상자를 밟고 올라가야 가능한 수준이니.
"게다가 키가 크면 옷이나 신발도 예쁜 거 많이 고를 수 있고."
"서윤이는 지금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고 생각해."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못할 때마다 좀 슬퍼요."
"그래그래. 나도 알아. 이해해.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슬프지."
12/0/8 스코어로 캐리하다가 서렌 나오면 멘탈 터지지. 그래.
"못하는 게 이렇게 많은데 장점이라니, 솔직히 안 떠오르더라구요."
가슴이 커야 할 수 있는 행동은 일부러 스킵해버린 걸까.
"그렇다고 서윤이가 장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주인님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힘들어서."
"목소리 좀 키워라. 안 들린다."
"저는 당연히, 장점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그렇게 목소리 기어들어가면 아까처럼 일어서게 한다."
그러자 서윤이는 목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토해내는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저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어, 어어. 그래."
좀 전까지만 해도 "뭐야. 큰 소리 낼 수 있잖아."라고 말해주려던 것도 잊은 채,
예상 밖의 성량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창피함 때문인지, 아니면 악에 받쳤기 때문인지.
서윤이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옆에 있던 베개를 퍽퍽 때렸다.
"성격도 어둡고, 말도 잘 못하고……친구도 하나 없고, 금방 우울해지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좀 고쳐볼 생각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바닥을 치니……달래주는 사람 생각도 좀 해주지.
하지만 서윤이는 자기 비하를 할 목적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샌드백 삼아 두들기던 베개를 끌어안은 그녀는,
"그, 근데 있잖아요."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주인님이 그래도 좋다고 했잖아요. 좋아한다고. 엄청 사랑한다고."
아무래도 처음부터 그 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으니까 더 많이 사랑해줘야 한다고."
"그래그래. 알았어. 근데 둘이서 했던 얘긴 좀 묻어두자."
"좀만 더 일찍 태어나지 그랬냐고."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서윤아? 서윤아?"
"우리 강아지랑 같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제발! 알았으니까 잠시 진정 좀 하면 안 될까. 응?"
"왜 이렇게 볼 때마다 사랑스러운지 엄청 짜증 난다고."
분위기에 취해서 별 생각 없이 입에 담았던 잠자리 멘트를 다른 사람.
그것도 여자친구의 입에서 다시 듣게 된다는 건 차라리 고문이었다.
더구나 한쪽이 목줄을 차고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있을 때는 더욱.
물론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그래서 더더욱 듣기 힘들었다.
게다가 마지막의 그건 "한 번만! 오빠, 한 번만 제발!"이라고 졸라서 해준 거잖아.
"솔직히, 저는 아직도 제 장점 같은 건 하나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서윤이는 우거지상이 된 내 얼굴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사랑 받고 있으니까, 그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주인님?"
"미안. 잘 들었으니까 잠시만 가만히 좀 내버려둬."
"암캐로서 이 정도면 합격 아니에요?"
"합격……그래 뭐, 알았어. 잘했어."
쉽지 않네 진짜.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듣기 전에 잠시만 쉬게 해주면 안 될까 제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주인님을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도."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보이길 바라며 이마를 감쌌다.
너무 눈이 부셔서 차마 똑바로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젊네. 진짜로.
아니, 농담이 아니라.
평소의 서윤이 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고.
오히려 약간 술에 취한 것처럼 묘하게 들뜬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섹스 후의 "오빠 좋아." 상태가 겹쳐 보였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전혀 분위기를 타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 뭐……아니, 뭐라고 해야 되냐.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논리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명쾌하게 들리는 것 같긴 했다.
원했던 대답이냐고 한다면 "NO."겠지만……뭐, 괜찮지 않아?
최소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는 거니까.
혹은 필사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던가. 둘 중 하나겠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주인님한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아?"
"……여러 모로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아니지. 그래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지."
아무래도 후자였던 모양이다.
서윤이는 조심스럽게 "그래도 돼요?"라는 시선을 보냈다.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나는 "어서." 그녀를 재촉했다.
"이, 이런 저라도……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인님."
"나도 서윤이한테 이렇게 많이 사랑받을 수 있어서 행복해."
"정말……로?"
"거짓말이겠냐 그럼."
"정말로 저 때문에 행복해요?"
서윤이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말 잘 듣는 강아지가 생겨서 정말로 행복하지 그럼."
"저, 저도 주인님 때문에……요즘 엄청 행복해요!"
"고맙기도 하고."
"저도!"
"사랑스럽기도 하고."
"저도! 저도 그런 것 같아요!"
하나도 지지 않으려고 팔짝팔짝 뛰는 그녀를 보며,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난 그녀 앞에서 엄격한 주인을 연기하는 건 절대로 무리일 듯했다.
"만점……이라곤 못하겠지만,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라고 할까?"
"죄송해요.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인간이라."
"뭐,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걸로."
"그래도 면접인데 괜찮은 거예요?"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그건 그것대로 좀 충격."
"그래도 사랑받는다는 게 장점이란 거 아니었어?"
"뉘앙스가 다르잖아요. 그럼 제 장점이 주인님이란 건데……꺄아!"
침대 위로 올라간 나는 베개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그녀를 덮쳤다.
베개와 함께 쓰러진 그녀는 놀란 기색도 없이 웃음을 흘렸다.
"암캐 주제에, 주인님 잘 만난 게 장점일 수도 있지. 안 그래?"
서윤이는 안고 있던 베개를 방패 삼아 내 얼굴에 꾹꾹 눌렀다.
"언제는 면접만 빨리 마무리하고 끝내자고 하더니."
"글쎄, 이제부턴 실기……라고 하면 안 되나?"
"몸으로? 주인님 변태."
"얼마나 꽉꽉 잘 조이는지 확인해야지."
그러자 그녀는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싼 뒤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솔직히 말해봐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죠?"
"여기까지 와서 참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아깐 무리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이만큼 떠들 기운이 있으면 괜찮을 거야."
쪽, 가볍게 입을 맞추자 서윤이는 간질간질한 것처럼 웃었다.
"그럼 전 아직 주인님 암캐인 거예요?"
"목줄을 차고 있는 동안은 그래야지."
"그럼 평생 벗지 말아야겠다."
농담을 가장한 유혹에 넘어간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이번엔 서윤이도 열정적으로 내 목을 끌어안으며 어울렸다.
츗, 츄우, 츄,
처음엔 단순히 입술과 입술이 닿을 뿐.
하지만 점점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타액이 사이를 적셨다.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만큼 섞이며 질척질척한 소릴 만들었다.
"혀 넣을 거니까 깨물지 마라."
"버, 벌써……?"
"싫어?"
"좀만 더 이렇게……읏!"
"시끄러. 말하지 마. 위험해."
다소 강압적으로 윽박지른 나는 천천히 미끄러트리는 것처럼 혀를 넣었다.
아직 혀를 사용하는 법이 서툰 그녀는 자꾸만 피하려는 것처럼 도망쳤다.
가끔씩 닿기라도 하면 "흐으응!" 이상야릇한 소리와 함께 몸을 떨었다.
하지만 천천히, 절대로 조급하지 않게.
"숨 쉬어. 그렇지. 들이마시고?"
"내, 내쉬고……후으으."
"들이마시고?"
"내쉬고."
"긴장 풀어. 그래. 괜찮으니까."
좀 더 숨이 가빠졌지만, 호흡을 맞추자 그녀의 얼굴이 한결 느슨해졌다.
나는 그녀의 가슴이 부푸는 것과 함께 숨을 내쉬었고,
내가 들이마시면 서윤이는 천천히 내뱉었다.
그 이후로는 단순히 그 행위에 재미가 들린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했다.
"주인님 때문에……키스, 엄청 좋아하게 돼버렸잖아요."
"이젠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내 탓이라고 하네."
"항상 이렇게 키스만, 그것도 엄청 길게 하니까……으응."
불평만 하는 입을 막아버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혀를 얽어왔다.
소극적이고, 가끔씩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몸을 들썩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아하게 됐다는 건 사실인지 거부하진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입술 가장자리를 핥거나, 혀를 감싸며 조금씩 애를 태웠다.
"후으으……키스,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요."
"가끔은 너도 좀 적극적이면 어때?"
"이렇게?"
"좋아. 깨물어버릴 테니까 그대로 있어."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가자 베에에, 날름거리던 그녀는 혀를 쏙 집어넣었다.
나는 배실배실 웃고 있는 입술에 묻은 침을 닦아주며 농담처럼 말했다.
"이젠 주인이 주인으로 안 보이나 봐?"
"버릇없는 암캐, 혼내주실 거예요?"
"……널 진짜 어떡하면 좋냐."
"죄송해요. 왠지 기분이 좀 이상해서."
죄송한 것치곤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요염함이 감돌고 있었다.
평소의 소심하고 소극적인 모습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응석을 부리며 남자를 휘두르는 종류의 요염함.
가끔이지만, 여자친구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다.
좀 더 경험을 쌓고 나면 오히려 내가 끌려다닐 것 같아서.
"누가 암컷 아니랄까 봐 유혹이나 하고 말이야. 응?"
"어차피 뭘 하든 재롱으로밖에 안 보인다면서요."
"평소에도 이 정도로 적극적이면 좀 좋아?"
"……플레이가 아닐 땐 부끄러워서 안 돼요."
오히려 반대 아닐까 싶지만……본인이 그렇다면 뭐, 할 말 없지.
짧게 혀를 찬 나는 목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서윤이는 "윽!" 목이 졸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끌려왔다.
"뻔한 도발을 하려면 심한 짓을 당할 각오 정도는 해야겠지?"
"주, 주인님? 왠지 눈이 진심……같은데."
"여기서 확실하게 안 잡아두면 앞으로 피곤해질 것 같아."
툭하면 혼내달라면서 주인에게 장난 치는 년으로 키울 순 없지.
"기왕 시작한 거, 아예 처음부터 철저하게 버릇을 들여야겠어."
"아, 아하하, 살살 해주세요, 주인님."
나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꼼질꼼질거리는 그녀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됐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엎드려. 개처럼 뒤에서 박아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