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모르거나 부족하거나 (5)
세상은 워낙 넓으니까 야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윤이는 평소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해서 행실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의외로 야한 것에 흥미진진하다고 해야 하나.
간혹 깜짝 놀라게 될 만큼 대담하게 나올 때가 있거든.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럴 때마다 "오빠 때문에 공부했어요."라는 대답을 하곤 하는데,
이 세상에서 나밖에 모르는 얼굴이라고 하면 괜히 뿌듯해지기도 한다.
"……흐에에."
그리고 지금 막 흥미진진한 얼굴을 한 그녀는 화면에 넋을 잃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조금 저항하는 듯 하다가,
눈을 가리며 못 보겠다고 내숭을 떠는 것도 잠시.
이젠 얼마 전에 보러 갔던 초대형 블록버스터보다 더 집중하는 듯했다.
그리고 벌써 세 번째 영상을 재생하고 있는 지금은 완전히 들뜬 상태였다.
"오, 오빠, 저것 봐요. 마스크에요, 마스크."
"……라텍스 마스크라는 거야."
"저런 걸 얼굴에 쓰고 어떻게 숨을 쉬지?"
"화면에선 안 보이지만 숨구멍이 뚫려 있어."
서윤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처럼 "헤에." 감탄사를 흘렸다.
"엄청 답답할 텐데. 그쵸?"
"……글쎄, 나한테 물어봐도 잘 모르겠네."
"고무가 닿으면 피부에도 안 좋잖아요."
"오랫동안 착용하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야."
"하긴. 오빠도 플레이 타임은 철저하게 지키니까."
혼자 납득해버린 그녀는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내게 등을 기댔다.
왠지 모르게 팝콘이라도 하나 대령해야 할 것 같은 편안함이었다.
15분 전까지만 해도 제정신이냐면서 펄쩍펄쩍 뛰더니.
지금은 완전히 몰입해서 채찍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으아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 나는 저런 거 못해요. 매달려서 막, 채찍……으로 맞고."
"서윤이한테 그런 레벨까진 기대도 안 하니까 걱정 마."
"저런 식으로 묶여 있으면 허리 다 망가질 텐데."
"……아직 이 회사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은 못 들었어."
문제는, 서윤이가 정말로 신기한 것.
그러니까 서커스를 보는 기분으로 영상을 즐기고 있었다는 거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까 기분 묘하네.
지금 보고 있는 건 딱히 블라인드 플레이 영상도 아니고.
처음의 목적은 상실한지 오래라서, 약간의 변화가 필요할 듯했다.
"……누가 만져도 된다고 했어요?"
서윤이는 은근슬쩍 가슴을 쓰다듬는 손을 찰싹, 때리며 쏘아붙였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보려던 나는 입맛을 다셨다.
"좋은 분위기는 오빠가 다 망쳤으니까 꿈도 꾸지 마요."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좀 너무한데."
하지만 내 불평을 못 들은 체한 그녀는 다시금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싫어하진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생각이랑 다르니까 좀 찝찝하네.
기껏 깔아놓은 돗자리 위에서 다른 사람이 춤을 추는 기분이랄까.
원래 여자들은 이런 느낌으로 야동을 감상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여자친구가 이상한 건지,
보편 상식의 이름 아래 후자였으면 좋겠지만.
설마 남자친구가 돼서 포르노에게 우선순위가 밀릴 줄 누가 알았겠어.
"……이럴 바엔 차라리 하드 SM을 보여주는 게 나았을지도."
하지만 궁시렁거리던 것도 잠시,
팔꿈치로 쿡쿡 찌르는 서윤이에 의해 강제로 현실에 돌아와야 했다.
"오빠, 오빠."
"……응?"
"저런 옷은 얼마나 해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영상 속의 새카만 본디지 기어였다.
"왜? 자꾸 보다 보니까 갑자기 흥미가 생겼어?"
"다들 당연하다는 것처럼 입고 나오잖아요."
"퀄리티랑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 뭐."
"지금 저 사람이 입고 있는 건요?"
"글쎄, 바디 슈트 가격은 잘 모르겠네. 찾아볼까?"
잠시 영상의 재생을 멈춘 나는 곧바로 쇼핑몰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어디 보자. 슈트, 슈트. 바디 슈트."
"아, 거기! 거기 있잖아요."
"어디? 안 보이는데."
"왼쪽! 좀 더 왼쪽으로!"
서윤이가 답답하다며 가슴을 두드리는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원하던 상품-최소한 흡사하게 보이는 녀석을 찾아내긴 했다.
사실 본디지라는 게 거의 대부분 비슷비슷한 디자인이기도 하고.
용도만 비슷하다면 무엇을 골라도 구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서윤이도 딱히 불만을 제기하진 않았다.
다만 미처 가격까진 고려하진 못한 탓에 잠시 말을 잃었을 뿐이다.
"……400달러면 얼마죠?"
"글쎄, 지금 환율로는 45만원 정도 될 걸."
"심지어 그게 제일 비싼 것도 아니에요."
"아무래도 풀 바디는 비싸지. 게다가 가죽이잖아."
이런 건 브랜드도 브랜드지만, 퀄리티를 더 보게 되니까 말이야.
딱히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 제품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핸드 메이드라고 해서 품질이 보장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보장된 제품을 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끔 정말로 못 봐줄 물건도 나오거든. 비닐 재질이라던가."
"그런 건 얼마나 하는데요?"
"싸구려는 10만원도 안 하는 경우도 많아."
"그 정도면 오빠랑 나랑 돈 모아서 살 수 있겠다 그쵸?"
서윤이는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얼굴에선 약간의 호기심 같은 것이 묻어났다.
"글쎄, 비지떡 같은 물건에 돈을 쓰고 싶진 않은데."
"그,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비싸면."
"서윤이가 본디지에 관심이 있었던가?"
"……관심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관심도 없는데 궁금해하는 거야? 란 질문은 접어둬야겠지.
무조건 들쑤신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니까.
"그래도 본격적인 본디지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저도 지금 당장……이란 게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
"좀 더 나중엔 입어볼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도 지금보단 이것저것 할 수 있게 될 텐데요 뭘."
꼭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말투에, 나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래도 주인 입장에선 가능한 비싸고 좋은 걸 주고 싶지."
"뭐 어때서 그래요. 지갑 사정에 맞춰서 사는 거지."
"그래도 소중한 사람한테 선물하는 거잖아."
나는 부드럽게 서윤이의 배를 토닥거렸다.
"손질해가면서 오래 써야 하는데, 괜찮은 걸 사야지."
"오빠한테 받으면 뭐든 좋으니까……딱히 신경 안 쓰는데."
"안 돼. 퀄리티에 문제가 있으면 착용감이 나빠서 힘들 거야."
가뜩이나 피부도 약한데, 살갗에 닿는 건 특히 더 조심해야지.
"그럼 오빠는 돈 엄청 많이 벌어야겠다. 여기 되게 비싸잖아요."
"……뭐, 그렇지. 취미생활이란 게 사실 돈이 엄청 드는 거야."
게다가 뭐랄까, SM 용품이란 건……재활용하기가 힘들거든.
만약 파트너가 바뀌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단 말이지.
이전 파트너의 사이즈에 맞춰서 산 수갑이나 재갈 등.
하다 못해 로터나 바이브 같은 것들도.
다른 사람이 쓰던 거라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니까 비싼 가격의 제품들은 구매가 망설여지는 거고.
물론 입이 찢어져도 서윤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조용히 함구했다.
"아쉽다. 오빠랑 이런 거, 같이 모으면 재밌을 것 같았는데."
"서윤이한테는 장난감 같은 느낌이야?"
"그, 그렇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어울리는 게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어."
내 손가락을 따라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입을 벌렸다.
"이건 뭐에요? 수갑 같은 건가? 색깔이 되게 예쁘다."
"……가장 먼저 예쁘다는 감상이 나올 줄은 몰랐네."
"오빤 싫어요? 되게 고급스러워서 좋은데."
"솔직히 애나맬 광택만 아니면 뭐든 나쁘지 않아."
"이렇게 보니 갈색이 훨씬 더 예쁘다. 진짜 가죽이란 느낌?"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서윤이는 연신 "예쁘다."를 연발하면서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서윤이가 갖고 있는 털 달린 수갑이랑은 좀 다르지?"
"가, 갖고 있다고 하니까 좀 이상한데."
"사실이잖아. 아니면 벌써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
"……제대로 갖고 있어요. 일단은. 서랍 속에 있지만."
언젠가 서윤이에게 선물했던 수갑은 털 달린 수갑.
흔히 Furry HandCuffs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사실 뭐,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장난감 같은 거고.
강도도 약해서 오랫동안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가죽으로 만든 커프스는 착용감도 좋거든."
안감이 덧대어져 있어서 쉽게 상처를 남기지도 않고.
"……근데 오빠."
"응?"
"블라인드랑 구속은 다른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그건 왜? 아까 설명해줬잖아."
"아니, 그게……영상에서 본 거랑 조금 비슷해서."
서윤이는 뭔가 켕기는 표정으로 손목을 쓰다듬었다.
"거기서도 항상 안대랑 수갑을 같이 채웠잖아요."
"다르긴 한데……굳이 따지면 상호보완적인 거라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간단한 예를 들었다.
"서윤이가 꽁꽁 묶인 상태에서 매를 맞는 경우를 생각해봐."
"……아."
"카테고리로 따지면 본디지랑 스팽킹이겠지?"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원래 플레이는 메인과 서브가 나뉘어져 있는 거야."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조합으로 플레이 순서를 짜 맞추는 게 주인의 실력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게 상당히 많지만……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뭐, 상당히 재미있다.
어떤 플레이를 메인으로 삼을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보조해야 추가 효과가 붙을지.
또 어떤 템트리를 타야 엔딩까지 가는 길이 좀 더 수월한지.
진행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 속을 긁어서 멘탈을 터트릴지 방법을 궁리하기도 하고.
물론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들켰다간 엄청나게 혼날 거다.
서윤이는 플레이를 준비하는데 심한 스트레스가 뒤따른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야.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중요한 건 이게 내 취미생활이라는 거지.
"블라인드와 속박도 비슷한 건데. 잠시만 눈 감아볼래?"
"소, 속삭이는 거 금지! 금지라고 했어요 분명!"
"……어쩌라는 거야 그럼."
"평범하게. 제발 평범하게 해줘요."
"그럼 재미도 뭣도 없잖아."
"구, 굳이 재미있지 않아도 되니까아!"
나는 한사코 거절하는 서윤이에게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뇌는 불안이나 초조, 긴장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착각한다.
특히나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된 상태에선 본인과 무관한 의사.
심근이 수축하거나, 맥박이 빨라지는 등의 반응이 일어난다.
당연하지만,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선 그런 반응이 빠르게 찾아온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속박을 통해 좀 더 심리적 불안감을 이끌어낸다면?
"결국은 뭐, 그거야. 서윤이가 좀 더 느낄 수 있게 돕는 거지."
"……진짜로 재미없다."
"너 그러다 진짜 한 대 맞는다."
"오빠한테 너무 익숙해졌나 봐요. 어떡하지. 큰일 났다."
"여자친구만 아니었어도 벌써 쌍욕을 박았을 텐데."
"몰입이 안 되니까 뭐라고 하는지 머릿속에 안 들어와요."
실없이 웃는 그녀의 뒤통수에 꿍, 하고 머리를 박고 싶었지만……참자.
"아무튼, 그래서 우리가 했던 도그 플레이는 야매라고 생각하면 돼."
"야매라고 해도, 저는 엄청 힘들었는데……요."
"물론 그렇겠지.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사, 산책……같은 건 절대로 무리고."
"말했지. 서윤이한테 그 정도의 레벨을 바리진 않는다고."
꼬리라도 달아주려고 했다간 당장 싫다며 몸부림 칠 텐데 뭘.
"보통은 스팽킹이나 노출 같은 걸 병행하기 마련이거든."
"다, 다음엔 진짜로 각오……해야겠네요."
"지금은 익숙해지는 단계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각오라는 게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줘야지.
평소에도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인데,
각오가 부족했다고 몰아세우면 학대나 다름없는 짓이지 뭐.
"필요한 건 내가 사전에 준비시킬 테니까 미리 걱정하지 마. 그러다가 지쳐버리면 오히려 본말전도야."
"가끔 좀 신기해요. 오빠가 느긋한 성격은 절대로 아닌데."
"막상 주인님이 되면 엄청나게 참을성이 많아지지?"
"제가 봐도 답답한데, 정작 주인님은 뭐라고 하지도 않고."
"서윤이가 노력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가만히 기다리는 거지 뭐."
나도 사람인지라 무한정 참고 기다릴 수는 없지만 말이야.
"내가 서윤이한테 바라는 건 노력하는 모습이랑, 약간의 성과 정도?"
"……노,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됐어. 서윤이랑 금방 헤어질 것도 아니고. 길게 보고 가야지."
금방 헤어지지 않기는커녕, 이별의 구도가 전혀 안 그려지지만.
그거야 뭐, 연애 초반엔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지.
평생 보고 살 줄 알았던 친구도 순식간에 남남이 되는데 뭘.
서윤이는 정말 좋아하지만, 그래서 더욱 쉽게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한동안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익숙해지도록 할 거야."
"단계를 밟는다는 게, 난이도적인 의미……에요?"
"굳이 따지자면 심리적인 난이도에 가깝지."
"심리적……?"
"말했잖아. 서윤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플레이를 고려한다고."
사실 심리적인 장벽은 실제 플레이 난이도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
개인 취향부터 시작해서 트라우마, 생리적인 거부감 등등.
따라서 플레이를 준비할 땐 온갖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서윤이를 불러앉힌 이유기도 하고.
"당장 서윤이를 묶게 해달라고 졸라봤자 거부감만 들 거 아냐."
"그럼 오빠는요?"
"내가 뭘."
"오빠도……그러니까, 구속 말이에요. 해보고 싶어요?"
물어보는 의도는 뻔했지만, 어차피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서윤이가 동의한다면."
"……또 그거야."
"그게 제일 중요한 거라니까?"
"뭐에요 진짜아! 어차피 노리고 그런 영상만 잔뜩 보여줬으면서!"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그냥 그런 영상이 리스트에 많았던 건데."
BDSM 태그를 단 AV치고 본디지가 안 나오는 영상을 찾는 게 더 힘들 걸.
오히려 하드코어한 장르를 걸러내느라 알게 모르게 얼마나 애를 썼는데.
"게, 게다가 구속……이라고 하면 보통 이런 걸 상상하잖아요!"
서윤이는 스스로 설명하는 수고를 부담하는 대신 쇼핑몰에 떠넘겼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가리킨 건 전신 라텍스 슈트나 서스펜션.
벨트를 몸에 두르는 식으로 만들어진 하네스 슈트 등.
주로 가죽이나 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본디지 기어 관련 상품이었다.
대부분 본디지나 SM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가장 흔한 이미지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구속……당하고 꽁꽁 묶이게 될 줄 알았단 말이에요!"
"혹시 상상하던 게 아니라서 실망했어?"
"……시, 실망 같은 거 안 했어요."
"다행이다. 만약 기대했으면 어떡하나 싶었거든."
서윤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날 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도구까지 사용하는 본격적인 구속은 아직 시기상조다.
구속 플레이에선 주인의 역량만큼이나 중요한 게 파트너의 호응이니까.
제대로 합도 못 맞추는 상태에서 시도할 만큼 만만한 플레이가 아니다.
"게다가 너, 그런 몸으로 묶였다간 관절 다 나간다."
유연성이 제로에 수렴할 만큼 뻣뻣한 몸으로는……아무래도 힘들지. 응.
"서윤이는 아직 구속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었나?"
"오, 오빠가 사준 수갑으로……한 번 정도."
"그땐 발목을 묶었지, 아마?"
"네에에. 손을 묶으면 타이핑을 못 했으니까요."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그때도 꽤나 고생했던 것 같은데.
플레이가 끝난 후에도 수갑을 못 풀어서 화장실에 못 갔었던가.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다는 것만큼은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그래도 일단 해보고 싶긴 한 거지?"
당연하지만, 서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려나.
그래야 나도 좀 편해질 텐데 말이야.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달래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번에는 가볍게 손목만 묶어보는 거야."
"……손목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수, 수갑도 갖고 있고……그 정도는, 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러니까 블라인드에 더해서 가벼운 본디지도 경험해보는 걸로.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