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맡겨야 하는 것 (3)
플레이에 따라 사전에 옷을 미리 벗어두도록 당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주인에 대한 순종의 의미라며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눈앞에서 벗도록 하는 편이다.
아니 뭐,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는 분명 암컷으로서 자세를 갖추라고 했는데, 건방지지 않아?"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서 내려놓을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잘 보이거든.
특히나 서윤이 같은 경우엔 감추는 게 능숙하지 않다 보니 좀 더 적나라하다.
여자친구에서 암컷으로, 극적인 입장의 변화를 감수해야 할 때 그녀가 짓는 표정.
거부할 수 없는 요구에 대한 원망과 수치심, 어느 정도의 체념이 섞인 시선이 좋다.
"……지, 지금 여기서, 벗어야 돼요?"
"여기가 아니면? 바깥이 좋아?"
나는 창문을 가리켰다.
"서윤이가 좋다고 하면 장소 옮길게."
"아니에요, 주인님. 그냥 있을게요.
"그게 낫겠지?"
나는 간단히 그녀의 입을 다물린 뒤, 능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게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말만 안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일단 오빠에서 주인님으로 바꿔 부르는 이상, 나도 적당히 할 수는 없잖아.
슬슬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깨달았으면 좋겠는데.
"서윤이도 은근히 자기 무덤을 파는 성격이지?"
"살짝 후회 중……"
"그러게 조금만 참지 그랬어."
시작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주의를 주려고 했는데 삽질을 하더라고.
본능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너무 감정적인 노예도 다루기 힘든데.
가끔은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생각하면서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뭐하고 있어? 이미 서윤이 안에선 주인님이라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그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하냐."
"……죄송해요. 말을 안 들으려는 게 아니라."
"그럼 서윤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뭔데?"
"죄송해요. 아직 벗는 거……익숙하질 않아서 그래요."
"그렇겠지. 이번엔 주인님한테 해달라고도 못할 테니."
사귀기 시작한 기간에 비하면 비교적 자주 섹스를 하는 편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맨살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신경질적이다.
오랜 콤플렉스는 극복하기 어려운 거니까 이해는 하지만.
"게다가 아직 대낮……이고. 커튼도 열려 있어서."
"그래그래. 알았어. 닫아줄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긴 했지만……완전히 잊고 있었다.
마음이 급할 때마다 깜빡하는 실수는 고쳐야 하는데.
페이스가 흐트러지면 수습이 힘들다니까.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실내 온도도 좀 올리자."
몸을 일으킨 나는 착착 커튼을 닫은 뒤 냉방까지 조정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서윤이는 우물거리며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옷 벗기 싫으면 입은 채로 할래? 나는 그래도 괜찮은데."
"아, 안 돼요. 이거 빨래하기 힘든 옷이란 말이에요."
"……그래 보이긴 한다."
"드라이 클리닝 맡겨야 하는 거라서 더러워지면 안 돼요."
"알았으니까 그냥 좀 벗어. 인내심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잠시만 고개를 돌려달라는 부탁은……안 들어주시겠죠?"
"잘 알면서 뭘 물어보고 그러냐."
"혹시나 싶어서……"
"그런 부탁은 남자친구한테 가서 하세요."
서윤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긴 하지만 멍청하진 않다.
여기까지가 조를 수 있는 한계라는 걸 알았는지, 그녀는 천장을 향해 한숨 한 번.
그리곤 조심스러운 손길로 입고 있던……뭐더라 저거. 무슨 옷이었지.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를 하늘하늘한 연분홍색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으, 으으……"
벌써 며칠째 찌는 듯한 여름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당연히 서윤이 옷차림도 단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의 자락만 들어 올려도 맨살을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런 날씨에도 가드는 단단해서……제대로 아래엔 민소매를 받쳐 입고 있었다.
"고작 단추 세 개 풀어놓고 꾸물거리지 마라."
서윤이는 거의 훌쩍거리는 것처럼 "크응." 코를 울렸다.
그리곤 여전히 느릿한 동작으로 먼저 블라우스를, 그리고 나시를 벗기 시작했다.
어차피 벗은 옷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나는 건네받는 족족 잘 개서 치워두었다.
"소, 속옷도 전부 다 벗어야 돼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벗을게요."
"일단은 브래지어만 풀어."
"네? 그럼 아래는……아니에요. 죄송해요."
서윤이는 대답을 요구하는 대신, 순순히 치마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웬일로 치마를 입었나 싶었지만……어차피 아래쪽엔 타이즈다.
그것도 가볍게 150 데니아 정도는 될 것 같은 짙은 검정색.
아무리 다리를 드러내기 싫어한다곤 하지만……정말로 괜찮나?
한여름에 저런 걸 신고 다니면 안에 땀 찰 것 같은데.
혹시 그래서 절대 다가오지 말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던 건가?
"……이상하게 타이즈 벗는 여자는 이상하게 꼴리더라고."
"그, 그러지 마요 진짜.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짧게 몸서리친 그녀는 그대로 타이즈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피부를 감싸고 있던 검정이 아래로 내려가는 동시에, 서윤이도 조금씩 몸을 숙였다.
속옷 외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가슴이 앞으로 쏠리며 약간의 공간을 남겼다.
아무리 모아봤자 골짜기는커녕 고속도로 포트홀 정도의 깊이밖에 안 되는 가슴이지만,
"잘 보면 우리 강아지도 은근 꼴리는 몸이라니까."
그래도 내 여자라서인지 확 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자세라던지, 갈수록 요염해지는 것 같고."
"진짜로 하지 말아주세요오……"
"아니, 방금은 칭찬한 거야."
"아, 알았으니까 조금만 쉬잇, 해주세요 제발."
저게 과연 주인님한테 할 말인가 싶었지만……잠자코 있자.
다행히 서윤이는 더 이상 별다른 투정 없이 천천히 타이즈를 발목까지 끌어내렸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오히려 느릿한 행동 덕분에 좀 더 도발적인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서윤이는 그렇게 벗어낸 타이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 이건 안 돼요. 제가 정리할게요."
황급히 뒤로 숨겨버렸다.
"혹시라도……그게, 죄송해요."
"뭐 그러던가. 알아서 하면 좋지. 괜찮아."
아직도 냄새 페티시 의혹을 못 벗은 걸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힐끗거리던 그녀는 치마까지 벗은 뒤, 마지막으로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보루를 스스로 걷어내는 것처럼, 브래지어를 풀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주, 주인님, 여기요."
"다 벗은 거야?"
"아래쪽만 빼고 다 벗었어……요."
서윤이는 쓸데없는 저항이란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시선이 닿는 면적을 줄이고 싶은지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주인님. 이, 이, 이제 무릎 꿇어도 될까요?"
"아니, 잠깐만. 좀 더 보고 싶은데."
"프, 플레이, 설명……한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런데, 넌 어째 갈수록 꼴리는 몸이 되는 것 같다?"
서윤이는 반사적으로 보호하는 것처럼 가슴을 가렸다.
거기가 아니라고 가르쳐주고 싶었다.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왜 점점 색기가 도는 것 같지."
"……주인님이 맨날 야한 거, 가르쳐서 그래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요염해졌어."
"그렇게 말씀하셔도……저는 잘 모르겠는데."
"교태를 부리게 됐다고 해야 하나. 표정도 꼴리고."
물끄러미 날 바라보던 그녀는 푸욱 고개를 떨어트렸다.
불쌍하게 보이는 얼굴이……더 꼴리네 젠장.
"말을 말자."
시작도 하기 전에 기운 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앉으라며 손짓했다.
서윤이는 기다렸다는 듯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며 냉큼 무릎을 꿇었다.
"사실 뭐, 설명이라고 해봤자 서윤이도 다 알고 있는 얘기야."
"어떻게 진행할지, 같은 건 미리 설명해주셨잖아요."
"세이프 워드는 기억하고 있지?"
"……오렌지."
"오늘은 구속도 병행하니까 따로 수신호는 정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 대신."이라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곧장 보고할 것."
"……이상이라고 하셔도, 뭔지 잘 모르겠는데."
"뭐든 괜찮으니까 전부 말해. 알았어?"
서슬 퍼런 시선에 질렸는지, 서윤이는 "히끅!" 숨을 삼켰다.
"아, 알았어요. 전부 다 말할게요."
"약속할 수 있지?"
"……네에에. 약속할게요."
몇 번이나 같은 대답을 받아낸 뒤에야 만족한 나는 휴대폰을 집었다.
"플레이 타임은 정확히 50분이야. 당연히 알람을 맞춰놓을 거고."
"……그건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포함된 거예요?"
"마지막?"
"주인님이랑 사, 사랑……하는 거요."
"마지막까지 해도 되는지는 이따가 반응을 보고 결정할게."
서윤이는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명령을 잘 들어야 안아준다는 말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들리는 그대로 말한 거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서윤이가 얼마나 버틸지, 가늠이 안 되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서윤이가 기억해둘 게 있어."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오늘 하루, 묻는 말엔 정직하게 대답하기. 쉽지?"
"……나 주인님한테 거짓말한 적 없어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생각하는 걸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거야."
두 번째 플레이를 설계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그거다.
다시 그녀를 믿고 어떤 종류의 '역할'을 맡겨야 하는지.
하지만 역시나 회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연히 서윤이는 그런 식으로 배웠으니 노예나 암컷 등등.
잘도 말하고 있긴 하지만 제대로 실감하는 것 같진 않거든.
그러니까 우선은 조교의 기본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조교의 기본이 뭐냐고?
당연히 주인에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거지.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내가 없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것.
물론 SM에서 정신적인 부분을 도외시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솔직하게 몸으로 느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기왕 행동의 지배와 감각의 지배.
두 가지를 만족시켰으니 철저하게 놀아줘야지.
"앉아있으니까 다리 아프지? 일어나서 침대로 가자."
"……네에에, 주인님."
기운 없는 대답과 함께 몸을 일으킨 그녀는 비틀비틀 침대 위로 올라갔다.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괜찮아. 편하게 앉아도 돼."
내 말을 듣더니 다리를 옆으로 빼며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나는 손에 든 수갑을 조금 시끄럽다 싶을 정도로 짤랑거리며 물었다.
"우선, 수갑을 먼저 채울 건데. 지금 서윤이 상태는?"
"……긴장되고, 조금 무섭고, 심장이 콩닥콩닥해요."
"왜 그런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도 돼서요."
"서윤이는 주인님이랑 무슨 약속을 했지?"
"오, 오늘 하루,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어요."
나는 빙긋 웃었다.
"그거 말고. 플레이 준비하면서 약속한 거 있잖아."
"아, 아아, 네. 주인님이랑 약속했어요/."
"그게 뭐냐고 물어보는 거야."
"플레이 전까진……스킨십,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서윤이는 도저히 불만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그래서 사흘……동안, 안아주지도 않았구요. 키스도 안 해주셨고.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그리고 또……"
"그래그래. 알았어. 고작 사흘인데 되게 서운했나 보네."
"……그리고 일찍 집에 가라고 했어요."
"어젠 그래서 집까지 바래다줬잖아. 너무 아쉬워하니가."
"근데 버스 타고 갈 동안 소, 손도 한 번 안 잡아주고. 집에 도착해서도 안아주지도 않구."
스킨십도 중독이 된다는데, 이 정도면 중증 아닐까 싶다.
일주일 정도만 못 만나도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사흘만 참으면 된다고 약속했는데도 그게 그렇게 서운했어?"
"저도 이런 거 처음이라서 무슨 기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애태우는 것 정도는 항상 하는 것 같은데."
"야, 야한 느낌으로 초조한 거랑은……전혀 달라요."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보려던 나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애태워졌는데, 기분이 어때?"
"……으, 으으."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지?"
"빨리 주인님이랑……다, 닿고 싶어요."
"야한 걸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닿고 싶어?"
"자꾸 주인님이랑 멀어지는 것 같아서 쓸쓸하단 말이에요."
서윤이는 거의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올려다 보았다.
"플레이 준비란 거, 알고는 있는데……그래도 외로워요."
"그래도 지금까지 잘 참았잖아. 신경질을 좀 부리긴 했지만."
"그, 그러니까 빨리……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안아주세요. 네?"
안아달라는 게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긴 했지만,
말도 안 했는데 스스로 조르는 걸 보니 준비는 충분한 듯했다.
이 정도면 50분 정도는 충분히 모티베이션 유지가 가능하겠지.
"수갑 채워야 하니까 손 내밀자. 그래. 너무 모으진 말고."
나는 꼭 기도하는 것처럼 모은 손을 떼어놓은 뒤, 양쪽 손목에 수갑을 걸어놓았다.
어떻게 된 게 손목도 얇아서 프레임 사이에 공간이 제법 남긴 했지만,
"다행히 이 정도면 빠지진 않을 것 같네."
부서지지 않는 이상 괜찮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침대에 고정시키는 것도 아니니 크게 다칠 염려도 없을 테고.
"그럼 채운다?"
"네, 네에엣."
목이 멘 대답에 웃어버린 나는 찰칵, 하고 그녀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서윤이는 더 이상 손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처럼,
자꾸만 찰캉찰캉 소리를 내며 수갑을 양쪽으로 당겨보았다.
그리곤 "흐, 흐에." 약간이지만 겁을 먹은 것처럼 초조하게 입술을 물었다.
"긴장하고 있어?"
"조금……요."
"괜찮아. 아프진 않을 거야."
나는 일부러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서윤이가 반칙이라고 했던 그 목소리다.
솔직히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시각이 차단되면 다음으로 영향을 받는 건 당연히 청각이다.
평소랑 다른 분위기를 준다는 의미에서라도 나쁘진 않겠지 뭐.
"믿을 수 있지?"
"……믿을게요."
"그래그래. 착하다."
서윤이는 그 말에 매달리는 것처럼, 혹은 믿고 싶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수갑을 채워진 두 손은 불안함을 이겨내려는 것처럼 꼭 붙잡고 있었지만.
"열쇠는 내가 갖고 있으니까 풀어주기 전까지 서윤이는 못 움직이겠다. 그치?"
"……네에에. 주인님이 풀어주지 않으면 못 움직여요."
서윤이는 어린아이가 말을 흉내 내는 것처럼 어눌하게 따라 했다.
"그런데 서윤이는 눈을 가리잖아. 그럼 무심코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 움직이지 못하게……하려는 거예요?"
"너무 움직이면 주인님이 힘들잖아."
"……네에에. 조심하겠습니다."
"서윤이가 조심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어."
나는 그녀가 영문도 모른 채 심부름으로 사온 작은 방울을 수갑에 묶었다.
역시 블라인드 플레이는 청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니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지?"
"고양이가 다가올 때마다……소리, 나게 하려고."
"맞아. 이것도 비슷한 용도야. 목적은 조금 다르지만."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어 번 딸랑, 딸랑, 방울을 울렸다.
"이제 서윤이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날 거야. 한 번 움직여볼래?"
"……이, 이렇게요?"
서윤이가 수갑을 흔들자 마찬가지로 방울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별로 크진 않지만,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선 충분히 잘 들릴 거다.
"이걸로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하면 좀 더 조심할 수 있겠지?"
"움직이지 않는 건 살짝 히, 힘들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서윤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믿고 있어."
적당하게 대답한 나는 마지막으로 안대를 그녀의 앞에서 흔들었다.
"다음에 주인님 얼굴을 보는 건 50분 뒤가 되겠네?"
"그, 그건 좀 싫을……지도."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나는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그녀 대신 방해되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귀를 스치는 손길에 서윤이는 "읏!" 흠칫거리며 몸을 떨었다.
"옆에 있을 테니까 너무 불안해하진 말고. 알았지?"
"주, 주인님! 주인님! 잠시만. 잠시만요."
"왜? 갑자기 무서워졌어?"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를……기, 기다려주세요!"
나는 이제야 겁을 먹었는지, 주춤주춤 물러나는 그녀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안심하고 전부 다 나한테 맡기라는 의미를 담아서.
다만 안대가 씌워지기 직전이라 제대로 전해졌는지까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