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맡겨야 하는 것 (9)
벌써 40분 넘게 끊임없이 자극을 쌓아올렸으니 못 버티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서윤이는 절정 직전이면 늘 엄습하는 오싹오싹한 느낌에 황홀해하면서도,
"주, 주인님……무서워. 무서워어……"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게 될 것을 직감한 것처럼 몸을 떨며 매달려왔다.
평소엔 손을 잡거나, 서로 끌어안는 것으로 어떻게든 되지만……이래선 힘들겠지.
결국 달리 방법이 없었던 나는 그녀를 세게 끌어안은 뒤, 순순히 목을 내주었다.
서윤이는 거듭거듭 겹쳐서 오는 절정에 견디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깨를 깨물었다.
"갈 것 같아?"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고개만 조금 끄덕였고, 덕분에 이빨이 쓸려서 꽤 아팠다.
나는 그런 서윤이를 어떻게든 안심시키기 위해 토닥거리며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아. 같이 있잖아. 그렇지?"
"으, 으우으……!"
"그래그래. 착하다."
동시에 나는 그녀의 안이 익숙한 느낌으로 강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슬슬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 나는 짧게 말했다.
"조금 자극이 강할지도 모르겠지만……참을 수 있지?"
"으, 으으읏……!"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을 이빨 자국을 남겨놓은 그녀는 입을 떼어냈다.
이미 침으로 범벅이 된 어깨에서 얇은 실 같은 게 주욱, 묻어 나왔다.
"키, 키스……주인님이랑, 키스……하면서, 갈래애."
"그래그래. 알았어. 안 잊어버렸어."
"읏……!"
혹시 깨물릴 것을 대비해 혀는 넣지 않는 대신, 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냉방에도 불구하고 땀투성이인 몸에선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대 때문에 무리였지만,
눈동자에 비치는 것까지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으응, 츄우우……"
그녀가 키스에 몰두한 것을 확인한 나는 강하게 허리를 찔러 넣었다.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감각에 서윤이는 안긴 채로 몸을 웅크렸다.
입술을 떼어낸 그녀는 나를 밀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윽……우윽, 흑. 흐윽."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흐느끼는 것뿐이었다.
나는 안고 있는 서윤이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후, 휴이ㄴ……히윽, 흑! 쥬인님……우으으!"
"그래그래. 알았어. 어디에도 안 가. 여기 있어."
서윤이는 좀 더 밀착하고 싶은지 다리로 날 감싼 뒤 끌어당겼다.
그 와중에도 날 찾는 걸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지만,
따지고 보면 오늘만 벌써 두 번째 절정이었다.
"지, 지금은……움직이면 안 돼애애……"
"안 움직여. 진정될 때까지 이렇게 안아주기만 할게."
게다가 평소와 비교하면 몸의 감도는 비교도 할 수 없었을 테고.
뭐, 고작 오르가즘 정도로 별일이야 있겠냐 싶긴 하지만,
떨림이 그치지 않는 몸을 안고 있으려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데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흐, 흐으으……쥬인님."
"서윤아?"
"아파아아……"
"어디가 아픈데?"
"그냥 몸이 아파아……"
자꾸만 발음이 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슬슬 정리해야 할성싶었다.
수갑이랑 안대도 풀어서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하지만 그녀의 안에서 뽑아내려는 순간,
"으, 으으응. 싫어. 빼지 마아아……"
서윤이가 필사적으로 거부하며 도리질 쳤다.
아무래도 또다시 강한 자극이 찾아오는 것을 걱정한 것 같았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럼 서윤이가 조금 진정된 다음에 뽑을까?"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주, 주인님……아직, 이잖아요."
"아직이라니, 뭐가?"
"제대로, 안에 싸주세요."
서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빼지 못하게 다리로 허리를 감싸 안았다.
"호, 혼자만 가버리는 거……싫어어."
"……서윤이가 많이 힘들 텐데?"
"괜찮아요. 마지막까지, 같이……네?"
여기선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가뜩이나 그녀가 다리로 휘감고 있는 바람에 자세가 제한된 탓에,
"흐윽……! 윽! 주인님, 깊어엇……!"
서윤이 입장에선 안쪽까지 쿡쿡 찔리는 느낌에 괴로워해야 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찌를 때마다 가버리는 것처럼 몸이 들썩였다.
빨리 끝내기 위해 다소 거칠어진 게 오히려 절정을 앞당긴 것 같았다.
"몇 번이나 갔는지 셀 수 있겠어?"
"두, 두 번……아니, 세 번……몰라! 몰라요오!"
끌어안은 허리는 이미 크게 휘어서 침대에 닿지도 않는 상태였다.
서윤이는 어깨를 깨물고 어떻게든 절정을 견디기 위해 노력했고,
아래쪽에선 끊임없이 질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었다.
슬슬 사정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 나는 그녀의 요구에 충실했다.
"서윤이가 바란 대로 안에 쌀 테니까 제대로 받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이미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덧칠하는 것처럼 겹쳐서 오는 절정의 파도에 이미 녹초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말을 듣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그녀의 안에 사정했다.
"후우우……"
전신의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 같은 탈력감과 함께, 순식간에 무기력이 몰려왔다.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차마 서윤이를 깔아뭉갤 순 없었다.
우선 콘돔이 흘러내리기 전에 그녀의 안에서 뽑아내자,
"흐, 흐아앙……!"
아직 절정에 여운에 잠겨 있던 서윤이가 괴로운 신음과 함께 몸을 웅크렸다.
이미 파도에 잠기다 못해 침몰해버린 그녀는 실 끊어진 인형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수 커버 사길 잘했네."
며칠 전, 서윤이의 강력한 요구로 침대에 까는 방수 시트를 장만한 적이 있었다.
일일이 섹스할 때마다 다리 사이에 타월을 가져다 두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어, 어떻게 그걸 오빠한테 어떻게 손빨래를 시켜요!"라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를 성화를 부리니까 일단 허락은 해줬는데.
솔직히 닿는 감촉도 익숙하지 않고……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나니, 역시 여자친구의 말은 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그래. 미안. 금방 풀어줄게."
어딘가에서 몽롱한 시선을 느낀 나는 곧장 열쇠를 집어 들었다.
시종일관 끌어안고 있어서 그런지, 다행히 망가지거나 하진 않았다.
프레임 같은 곳에 묶어둬서 격렬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고.
"묶여있느라 고생했어, 우리 강아지."
열쇠를 넣고 돌리자 찰칵,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수갑이 열렸다.
다른 쪽도 마저 풀어주자 서윤이의 손이 힘없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엔 안대 벗겨줄 테니까 눈 감고 있어. 알았지?"
아무래도 고개를 끄덕일 힘도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한 나는 손으로 얼굴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곤 혹시라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안대를 벗겼다.
축축해진 안대 아래로는 눈물자국으로 엉망이 된 서윤이의 얼굴이 있었다.
"……울었어?"
감고 있던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려던 그녀는 다시금 눈을 감아버렸다.
플레이 타임 내내 어둠 속에 있었으니, 눈이 부실 법도 하지.
시간을 확인해보니 알람을 설정해둔 시간까지 2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정말로 50분을 꽉꽉 채워서 할 생각은 없었는데.
"서윤아, 손목은 좀 괜찮아?"
"……아파."
"그래그래. 아플 거야."
"안아줘요."
"일단 몸이 식기 전에 땀부터 닦자. 알았지?"
미리 준비해둔 타월을 집어 든 나는 시중드는 기분으로 그녀의 몸을 닦아주었다.
부드럽고 자극이 적은 수건이라고 해서 서윤이 전용으로 샀는데……글쎄.
"아팟……!"
"아팠어? 미안해. 조심할게."
약간이라도 힘이 들어가면 곧장 통증을 호소하며 팔을 뿌리쳤다.
가뜩이나 절정 직후라서 예민해진 상태라 훨씬 더 신경이 곤두선 것 같았다.
그래도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꼼꼼하게 등이며 어깨, 허리를 훔쳤다.
"너무 그렇게 빤히 보진 마요."
"살짝 부은 것 같은데."
"……보지 말라니깐 정말."
마지막으로 물티슈로 다리 사이까지 잘 닦아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목 마르지 않아? 물 마실래?"
"안아줘요."
"아니, 그래도 수분을."
"……싫어. 안아줘요. 빨리"
기운이 없는 건지, 퉁명스러운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윤이는 그렇게 말했다.
거부할 수 없는 주종 관계의 역전을 직감한 나는 조용히 따르기로 했다.
"샤워는 자고 일어나서 할까 그럼?"
"……또 같이 하자고 할 거예요?"
"혼자 들어갔다가 쓰러지면 어떡해."
그러자 서윤이는 팔을 들어 올리려다 침대에 툭, 떨어트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요."
"……그러게 왜 무리를 하고 그래."
그에 비해 어느 정도 여력이 있었던 나는 담요를 덮어주었다.
땀을 잔뜩 흘려서 체온이 내려가기 쉽기 때문이다.
원래 모든 일은 뒷수습이 더 어려운 것처럼,
플레이를 잘 끝낸 다음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잖아.
"가뜩이나 몸도 약한 주제에 오기나 부리고."
"……오기 같은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주인님이랑 같이, 라고 했잖아요."
서윤이는 표정을 만드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것처럼 힘없이 웃었다.
"……제대로 안에 사정, 했어요?"
"으음. 뭐, 그렇지."
"다행이다."
"엄청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
담요 위로 배를 토닥거리는 손길에, 그녀는 졸린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오늘 나 끝까지 잘했죠?"
"잘했지 그럼. 말도 잘 들었고."
"혼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서윤이한테 상도 줬잖아."
"주인님이랑 하는 키스……에헤헤."
몸을 뒤척인 그녀는 내게 매달리는 것처럼 끌어안겼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움직일 수도 없어서 무서웠어요."
"그래도 은근히 잘 견디는 것 같던데?"
"그야……주인님이 옆에 있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 것치곤 잠시 자릴 비웠을 때 엄청 불안해하던데.
"모르겠어요. 그냥……주인님을 믿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서윤이는 장황한 설명 없이도 목적을 잘 이해해서 좋아."
"오늘은 그거였어요? 주인님을 믿는 거?"
"설명 안 했나?"
"모르겠어요. 기억 안 나요."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불안한데도 믿어야 한다는 게 엄청 힘들었어요."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넘긴 뒤, 이마에 입을 맞췄다.
"힘들었을 텐데도 믿어줘서 고마워."
"……으으응."
"뭐야. 응석 부리는 거야?"
"기, 기분 좋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서윤이는 자존심이나 부끄러움, 거부, 긴장감 등등.
온갖 감정이 거르고 걸러져서 애정만이 남은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왠지 처음으로 주인님이랑 끝까지 같이 있었던 느낌."
"마지막까지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건 처음이긴 하지."
"오빠도 계획대로 하고 싶은 거 전부 다 했어요?"
"……아로마 잊어버렸어."
"아로마? 맞다. 그거 사왔었는데."
"원래 손끝에 살짝 묻혀서 분위기를 돋우려고 했는데."
말꼬리를 흐렸지만, 서윤이는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런 것보다 오빠 냄새가 더 좋은데요 뭘."
"……그래서 쓰는 걸 잊어버렸어."
"나중에 평범하게 할 때 쓸까요 그럼?"
"글쎄, 놔두면 어딘가 쓰긴 할 텐데……잘 때 써볼까?"
그러자 서윤이는 대답 대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싫어요. 나한테는 오빠 냄새가 가장 마음이 놓인단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냄새 페티시는 서윤이 같은데."
"좋아하는 사람, 냄새는……안심되잖아요."
슬슬 졸린지 스으, 스으……그녀의 숨소리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있잖아요, 오빠."
"응?"
"나 지금 엄청 행복해요."
"마지막까지 할 수 있어서?"
"그냥……이것저것. 여러 가지로요."
서윤이는 꼭 안는 베개처럼 내 허벅지를 다리 사이에 끼웠다.
"이유도 없이 행복하면 이상해요?"
"이유가 없는 것 같진 않은데."
"……맞춰봐요 그럼."
"키스하면서 절정할 수 있어서 행복해?"
그러자 그녀는 옷자락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정답은, 오빠가 끝난 후에도 이렇게 안아줘서……입니다."
"내가 뭐 담배를 태우는 것도 아닌데, 행복해?"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게다가, 플레이가 끝나고 나면 엄청나게 잘해주니까아."
서윤이는 작게 하품하느라 목소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원래 하품이라는 건 전염성이 강한 법이라서,
그녀를 토닥거리고 있던 나도 늘어지게 하품했다.
일단 피로를 자각하고 나자 졸음이 덮쳐온 건 순식간이었다.
"내일은, 데이트……할래요? 같이 영화도 보고."
"……서윤이가 아프지 않으면 그렇게 하자."
"걷기도 힘들 정도로……항상 너무 격렬해요 진짜."
"어쩔 수 없잖아. 우리 강아지, 만족은 시켜야지."
"너무 가버려서 바보 될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럼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이랑은 못 사귀겠네."
그러자 서윤이는 아앙, 어깨랑 가슴 사이의 어딘가를 깨물었다.
"안에다 싸달라는 소리까지 하게 만들었으면서……책임져요."
"……안전하게 다른 콘돔 썼으니까 걱정하지 마."
"여친한테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잖아요."
"말로는 뭐든 못하겠어."
"진짜로 고민했단 말이에요. 오빠가 원하면 어떡할지."
"글쎄,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한참 나중 일이 될 텐데."
일단은 내가 취직부터 해야 하고.
서윤이도 졸업은 해야 하고.
양가 부모님한테 인사도……흐아아암.
"서윤이 아버님한테는……나 진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는데."
아마 나 역시 졸음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게 분명했다.
"따님이랑 사귀기 전부터……이런 짓이나 저런 짓도 했다고 어떻게 말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사랑한다고만 해도 만족할 걸요."
"……우리 어떻게 만났는지를 설명하면, 기절할 것 같은데."
"항상 난 오빠 소유라고 말했으니까 약속 지킬 거죠?"
"……글쎄에, 그렇게 되면 그래야겠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요 빨리."
"헤어지면……서윤이가,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나른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절대 책임지지 못할 대화가 오갔지만,
이미 뇌의 반 정도만 깨어 있던 나로선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서윤이랑 헤어지면……평생 독신으로 살게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여자친구한테 잘해야겠죠?"
"잘해야지……그럼. 그래."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고."
"사랑하지. 당연히. 엄청 사랑하지."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흘려넘겼을 테지만, 잠에 취한 머리로는 그녀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오늘은 혼자 깨어있지 말고 오빠도 같이 자요."
"안 그래도……지금 엄청 졸리다. 눈이 감겨."
"평소엔 절대 이 시간에 안 자잖아요."
"근데 오늘은, 서윤이가 너무 귀여워서……졸려."
"아핫, 귀여워서 졸리다니, 뭐에요 그게. 처음 들어."
몽롱한 정신 사이로 파고드는 웃음소리에, 나는 마주 웃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케이크 있어."
"케이크?"
"힘들었으니 당분 보충."
"무슨 맛인데요?"
"……몰라. 이따가 확인하고, 그만 자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 잠들 것 같더니 왜 이래.
"그럼 데이트는……일어나서 하는 걸로."
"일어나면, 새벽일 걸."
"새벽 데이트……좋잖아요."
"나쁘지 않지. 조용하고……시원하고."
그렇게 깜빡깜빡하는 정신을 붙잡고 조용히 몇 마디를 더 나누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들었다.
비록 저릿저릿한 느낌에 잠에서 깬 내가 팔베개를 치우려다, 곤히 잠든 그녀를 보고 그만두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부스스 잠에서 깬 서윤이가 다시 내 위에 엎드려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잠결에 너무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난데없이 호흡곤란을 호소한 그녀가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고,
서윤이가 춥다며 내게 달라붙어선 담요까지 덮어주는 바람에 땀투성이가 된 채로 일어나야 했지만.
막상 둘 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인, 사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