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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오늘따라 (1) (41/43)



〈 41화 〉오늘따라 (1)

이제 와선 새삼스러운 이야기겠지만, 내 여자친구는 중증의 아웃사이더다.

날 만나고 조금 나아졌다곤 하지만……그 성격이 어딜 가는 건 아니라서.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선 약간의 두통과 소화 불량을 호소하는데다,

모르는 누군가 말이라도 걸면 기절할 것처럼 놀라곤 한다.

식당이라도 가면 점원에게 말도 못 걸고 우물쭈물하기 일쑤에,

주문전화는 물론이고, 택배를 받아달라는 부탁에도 난색을 표할 정도다.

"오, 오빠……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어떡해. 속이 울렁거려요."

"알았으니까 똑바로 좀 서봐. 자꾸 넘어지려고 하지 말고."

그런 여자친구를 금요일 오후의 번화가에 던져놓게 된다면 당연히 이렇게 되겠지.

장소를 잘못 정했나 싶기도 하지만, 평범한 데이트를 바랐던  다름 아닌 그녀다.

"괜찮으니까 심호흡 해, 심호흡."

"스으으……흐읍! 콜록! 콜록!"

"가지가지 한다 정말."

"사, 사레 들렀……콜록!"


한숨을 푹 내쉰 나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팡팡 두드려주었다.

"편의점에서 물이라도 사다 줄까?"

"아뇨. 괜찮……콜록! 콜록!"

서윤이는 마치 생전 처음 땅에 발을 디뎌본 사람처럼 내게 매달린 채로 다리를 후들거렸다.

어딜 보나 팔짱을 낀 연인이라기보단……차라리 물에 빠진 사람을 부축하는 꼴에 가까웠다.

그러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번씩 힐끗거리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누구라도 걸음마를 연습하는  같은 여자가 있다면 못 본  지나치기 어려웠을 거다.

물론 그런 시선들이 서윤이에게 더한 부담으로 돌아왔다는  역시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집에 갈까?"

"아, 안 돼요! 모처럼 데이트인데!"

"모처럼이고 자시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중에  토해버리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싶은데."

"……안 그래요. 어린애도 아니고."

"애들보다 더한 꼴을 보이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물론 나 역시 서윤이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예쁘게 보이도록 밤새도록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공들여 화장을 한다.

거기에 얼마만큼의 노력과 수고가 드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여자가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지도.

물론 알고 있다는 것과 이해할  있다는 건 다른 문제지만 뭐.

내 여자친구라고 해서 딱히 예외는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서윤이가 오늘을 위해 얼마나 기합을 넣었는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평상시에도 일어난 즉시 준비를 시작하면 아침 시간은 증발해버린다고  정도고.

그런데 막상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집에 가자고 하면 당연히 싫겠지.

"이럴  알았으면 평소처럼  근처에서 만날 걸 그랬네."

난감해진 나는 뺨을 긁적였다.

애초에 이렇게  원인을 따지고 보면 결국 내가 확실하게 거절하지 못한 탓이 크다.

물론 서로의 일정은 손바닥 보듯 훤한 사이에 거절했다간 어떻게 되는 건가 싶지만.

어쨌든 오늘의 저녁 약속은 얼마 전, 그녀가 베갯머리에서 속살거린  발단이었다.

"오빠, 우리도 가끔은 평범하게 나가서 데이트하면 안 돼요?"라고.

안 그래도  번째 플레이를 꽤나 성공적으로 끝마친 직후.

서윤이를 위해서 기분전환이 될 만한 것을 찾던 내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원래 플레이라는 건 주인과 노예 모두에게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느끼게 만든다.

아무리 난이도가 낮고, 관리를 잘해준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는 거다.

플레이와 일상이 충분히 구분되지 못하면……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프렌지 같은 상태.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무언가에 과하게 몰두했을  나타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특히나 SM은 감정선의 낙차가 큰 만큼 일상과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게 좋은 주인의 자질이다.

그런데도 간신히 진정될 만큼의 여유만 두고 연달아 해버렸으니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즐겁고, 일상적이며, 안심할 수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데이트!

그렇다. 오히려 데이트를 제외하면 달리 뭐가 있는지 떠올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굳이 연인이 아니라도 섭의 기분전환을 위해 드라이브를 하거나, 함께 식사하는 일은 제법 흔하니까.

 그래도 맛있는 걸 먹여주기 위해 유명한 맛집 같은 걸 찾아보고 있던 내겐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나야 좋지. 그럼 금요일 저녁에 같이 나갈까?"

"에엥, 그럼 이틀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언제는 평범한 게 좋다며."

"굳이 기다려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도 주말이 있는 편이 밤새 놀기 좋지."

"……그럼 다들 금요일 밤엔 야한 거 하겠다."

이젠 제법 사고방식이 그런 쪽으로 돌아가게  서윤이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금세 납득했다.

나한테 말은  했지만, 불금의 데이트처럼 연인다운 일을 동경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은 데이트라고 해봤자 집에서 놀거나, 동네를 산책하는 정도에 그쳤으니까.

가끔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데이트 스팟이라던가, 정석인 코스를 따라가는 것도 괜찮겠지.


"아니면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그런 거 잘 모르는 거 알잖아요."

"역시 그렇지?"

"이번에도 오빠만 졸졸 따라다닐래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아낸 나는 차라리 안심했다.

꿈과 로망이 가득 담긴 데이트만큼 피곤한 것도 없으니까.

어차피 이런 식의 데이트는 옛날에도 많이……아니.

그러니까, 여기저기에 참고할 자료가 많았다는 의미다.

물론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냄새를 지워야 했지만.


"그럼 있잖아요 오빠, 평범한 데이트답게, 우리도 약속 장소에서 만날래요?"

게다가 서윤이가 배시시 웃는 얼굴로 꺼낸 제안은 정말로 그럴듯하게 들렸다.

원래 데이트라는 건 만나러 가는 시간의 설렘까지 포함하는 법이 아니던가.

나는 정말로 훌륭한 생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좋은 스트레스 해소가 될 거란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거겠지.

당연히 칭찬에 들뜬 그녀 역시 리스크 같은  생각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안 그래도 번화가로 유명한 거리인데다 심지어 금요일 오후.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릴지에 대한 고려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거다.

아니, 고려하지 않았다기보단……간과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거기서 평범한 커플이 겪게  문제라고 해봤자,

점원에게 "죄송합니다. 자리가 없어서."란 대답을 듣는 정도일 테니까.

하지만 내 여친은 주변의 인구밀도에 비례해 데미지를 입는 타입이었다.


"……맞다. 퇴근 시간."

처음으로 "아, 이거 안 되겠는데."라고 느낀  만원의 2호선을  직후,

뒤이어 카톡으로 다급함마저 느껴지는 서윤이의 구조요청을 받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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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대답할 말이 궁했던 나는 "힘내."라고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좀  기운을 북돋아주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엄청난 인파와 함께-혹은 떠밀려 지상으로 표류해온 그녀는 만신창이였다.

안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애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오, 오빠……오빠아아……"


 발견한 즉시 울먹거리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있었다.

사람에 치이고,  떠밀리고, 부딪히고, 넘어질 뻔한 위기를 넘기며.

간신히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지하철에 사, 사람……너무, 그러니까, 꼼짝도 못  정도로……"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일단 진정하자. 숨도 쉬고."

"계단에서……사람이 우, 움직이지도 않고."

서윤이는 여전히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역을 가리켰다.

"게다가 엄청 시끄럽고……소리 지르고, 욕하고."

"누가 서윤이한테 소리 질렀어?"

"으으응. 그게 아니라……주변에서 그랬어요."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무서웠어?"

손수건을 꺼낸 나는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미안해. 같이 왔어야 했는데 오빠가 생각이 짧았어."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잠깐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서 숨 좀 돌릴래?"

그러자 서윤이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아마도. 참아볼게요."


만약 지나가던 사람이 지금의 말을 들었다면 의아해할 거다.

대체 참아야 하는 데이트란 게 뭔지 나도 살짝 궁금하거든.


"모처럼 오빠가 제대로 된 데이트, 데려와줬잖아요."

"……어째 말에 뼈가 담긴 것 같은데. 아니지?"


지금까지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을  데려가  것 같잖아.

"그래도 뭐, 오랜만이긴 하다. 서윤이랑 멀리까지 나온 건."

나로선 거의 서울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셈이기도 하고.

서윤이가 말한 것처럼 '모처럼'의 외출 데이트다.

그동안은 덥기도 하고, 거의 대부분 집에서  나갔으니까.

오늘처럼 바깥에서 만나는 일 자체가 우리에겐 드문 일이다.


"게다가 봐요. 주변에 전부 다 사귀는 사람들밖에 없어요."

"저것들을 전부 불태워야 세상이  살만해질 텐데."

"……그거 우리도 포함이에요?"

"우린 저렇게 달라붙어서 팔짱을 끼고 다니진 않잖아."


그 말을 들은 서윤이는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팔짱을 꼈다.

"그럼 지금은요?"

약속 장소로 오는 내내 시달린 탓에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고 다리는 후들후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꾹꾹 눌러서 감추려 해도 언젠가는 넘치게 될 걸 알기에 숨길 수도 없는.

서윤이는 그런 종류의 감정과 함께 쓰러지는 것처럼 몸을 기댔다.


"오빠도 나랑 사귀는 사이니까……앞으론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물론 나는 여자친구가 바라는 것을 몰라줄 만큼 눈치 없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서윤이 역시 이젠 제법 분위기가 나는 행동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어쩔  몰라 하며 안달했을 텐데.

주변에서 깨소금을 흩뿌리고 다니는 커플들한테 자극을 받았는지.

아니면 데이트라는 상황과 분위기가 여자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은 나는 작게 속삭였다.

"다리에 힘이 풀렸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해."

"그래도 방금 엄청 로맨틱하지 않았어요?"

"너는 어째 점점 날 닮아가냐."

"알았으니까 잠시만……이렇게 있어줘요."


로맨틱은 무슨……투덜거리던 나는 서윤이의 지친 목소리에 말을 삼켰다.

엄살이나 꾀병 같은 게 아니란 것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건장한 남자도 진이 빠지는 만원 전철인데 오죽 고생했겠냐만.

"힘들면 집에 갈래?"란 말에는 타협의 여지 없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오빠 말대로……다, 다리도, 이렇게 드러냈는데……절대로 집엔  가요."

서윤이는 새삼스럽게 스커트를 당기려는 듯한 몸짓을 취하며 불평했다.

노출을 싫어하는 그녀로선 맨다리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한계인 듯했다.

물론 서윤이가 평소에 치마를 싫어하거나 입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땐 언제나 타이즈나 스타킹을 덧입어서 다리를 감췄다.

"보고 싶다고 해서 입긴 했지만……너무 짧아서 진정이 안 된단 말이에요."

만약 다리에 있는 흉터를 가리고 싶은 거라면 이해했겠지만,

목이 타는 날씨에도 꽁꽁 싸매고 다니는 모습은 도저히 못 봐주겠더라고.

결국 "계절에 맞는 옷차림으로 입으면 훨씬 예쁠 것 같은데?" 라며.

6시간 정도 끈질기게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겨우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계단, 오르면서도……스커트 안쪽, 엄청나게 신경 쓰였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부당한 노출을 강요했다는  절대로 아니다.

지금 서윤이가 입고 있는 건 무릎 위로 올라가는 평범한 스커트.

요즘 중학생들도 저것보단 짧게 입고 다닐 정도의 길이였다.

당연히 다리 사이가 아슬아슬하게 보이거나, 골반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윤이는 맨다리에 닿는 공기가 어색한지 자꾸만 몸을 배배 꼬았다.

"걱정하지 마. 괜찮다니까? 다들  정도는 입고 있잖아."

"……그치만 다리 내놓는 거, 창피하단 말이에요."

"오빠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서윤이는 다리가 예쁘다고."

실제로 서윤이는 허리가 얇아서 다리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보기 좋은 편이다.

골반이 그렇게 크진 않지만……그래도 벗겨놓으면 의외로 스타일이 괜찮다.

물론 의외로 괜찮다는 말은 '생각보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 내면은 꽉 차있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옷을 벗길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더니 이젠 거의 세뇌가 끝난 상태다.

덕분에 오히려 "그럼 나 오빠 말곤 보여주지 않을래요."라며, 약간 역효과가 나긴 했지만.

"게다가 오늘은 평소랑 다른 느낌이라서 엄청 귀여워."


이런 식으로 점차 노출에 대한 저항감을 줄여나가야 나도 앞으로 좀 편해지지 않겠는가.

노출 플레이라는  며칠 전에 미리 준비할  있는 것도 아니고……일단은  걸음씩.

차근차근 범위와 빈도를 늘리는 것으로 조금씩 심리적 거부감을 깎아내려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노출 플레이를 계획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기왕 디엣을 시작했으니 시간과 기회가 될 때마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겠지.

일단 오늘은 이런 날씨에 타이즈를 입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는  솔직한 심정이다.

"이렇게 귀여운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면 나도  설렐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평소엔  귀여웠다는 것 같잖아요."

"평소엔 글쎄, 사랑스럽지. 침대 위에선……으읍!"

"그만! 그만! 사람들 다 듣는데 뭐라는 거예요, 진짜아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녀는 내 입을 틀어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지나가던 누군가가 들었으면 어떡할지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화와 욕설, 호객행위와 자동차 클락션 등등.

거리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소음이 모이고 있었고,

바쁘게 지나갈 뿐인 사람들은 우리의 대화에 어떤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거 참, 사람들은 우리한테 관심이 없다니까 그러네."

"아무리 그래도 바깥이잖아요. 조심 좀 해요 정말."

"칭찬 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그런 건데."

서윤이는  이상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말라는 것처럼 날 향해 샐쭉하니 눈을 흘겼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하는 거예요, 평범하게."

"서윤이가 생각하는 평범의 기준을 먼저 알려줘."

"으으음, 그러니까……남들처럼!"

"그러니까 그게 누굴 말하는 거냐고."

"그냥, 평범하게……저기 있는 사람들처럼?"


서윤이는 역에서 빠져나와 중심 거리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역시나 대부분은 배배 꼬인 심기를 아니꼽게 만드는 커플들이었다.


"오, 오빠랑……데이트, 니까. 가끔은 평범해도 되잖아요."

"서윤이가 생각하기엔 저런 게 평범한 거야?"

"……그럼 아니에요?"

"아니 뭐, 어떤 의미로는 평범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마 서윤이 머릿속엔 커플이란 이래야 한다는 스탠더드가 있는 거겠지.

우리 사이가 앱노멀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동경도 강할 테고.

하지만 그중 대부분이 새벽도 되기 전에 모텔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따가 기회를 봐서 은근슬쩍 모텔 거리로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았다


"그럼 오늘은 서윤이 말처럼 평범하게 하자, 평범하게."

"야, 약속한 거예요……?"

"그래그래. 오늘은 노멀하게 갈게."

노멀이든 앱노멀이든 어차피 남녀의 관계고, 생각처럼 나이브한 건 아니지만.

오늘은 그녀를 위한 날이니만큼 나이프든 와인이든 원하는 대로 해주지 뭐.

우리 사이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건 이미 사귀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일단 혼자 서는 것부터 시작해볼래?"

"조, 조금만 더……아직 놓으면 안 돼요."

"그러게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서 쉬자니까."

그리고 그중에 가장 높은 산은 내게 매달린  필사적으로 다리를 추슬렀다.

평범한 데이트를 위한 첫 걸음이 말 그대로라니, 농담이라도 재미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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