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오늘따라 (2) (42/43)



〈 42화 〉오늘따라 (2)

얼마 전까지 서윤이에게도 입버릇처럼 하곤 했던 말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절대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세상만사 사람마다 모두 다른 법이니까.

하지만 가끔씩 피치 못하게 보통은, 대부분, 평범하게 등등.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표현들을 써야 할 때가 찾아오곤 한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싶은데, 땡기는 거라도 있어?"

"딱히……뭐든지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닭발에 소주  잔 꺾으러 가자."

"자, 잠깐만! 취소! 취소! 뭐든지 좋진 않아요!"

이를테면,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같은 상황 말이다.

이미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에 질린 그녀는  옷자락을 붙잡은 채,

신발 매장이나, 화장품 가게, 이상하게 생긴 조형물 등등.

"……흐에에, 뭔가 되게 엄청 반짝반짝한다."

연신 주변을 기웃기웃 둘러보며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평범하게  혼자 고생하게 되는 결말이었다.


"오빠, 오빠, 저거 봐요. 가게 안에 고양이 있어요."

"저거? 아마 고양이 카페일 걸."

"그럼 안에 들어가면 만질 수 있어요?"

"궁금하면 이따가  먹고 잠깐 들를까?"


하지만 서윤이는 벌써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가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공복에 고양이 털에 휩싸여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이따가! 이따가! 밥 먹고 와도  늦어."

나는 우선 고양이 앞에서 그녀를 끌어내기로 했다.

서윤이는 창문 안쪽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위협하고 있었다.

아니, 위협이라고 해야 하나……옆에서 보기엔 재롱 같은 느낌이었지만.


"가만히 있는 고양이를 괴롭혀서 어쩌자는 거야."

"괴, 괴롭힌 거 아니에요. 귀여워한 건데."

"고양이 앞에서 그렇게 하악질 하는  아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고양이가 시큰둥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서윤이 정도 레벨은 위협도 아니라는 걸까.

고양이한테도 업신여겨지는 여자친구라니.

"됐으니까 가자. 점원한테 혼나기 전에."

"……네에엥."

서윤이는 못내 아쉬운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평소엔 그렇게 야무지고 꼼꼼하고, 철저하다고 어필하더니.

어떻게든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데리고 다녀야지.

괜히 질질 끌려다녔다간 하루를 어영부영 날려버릴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눈에 보이는 모든  신기한지 번번이 걸음을 멈췄다.

"저기 누가 낙서해놨어요."

"대학교 앞이잖아."

"그림도 그려놨어요."

"대학교 앞이라서 그래."


겉으로는 여전히 주눅이  것처럼 보였지만……묘하게 들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종알종알 떠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덕분에 난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나온 강아지와의 산책.

잘 쳐줘야 미취학인 조카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어느 쪽이든 평범한 커플의 데이트라고 하기엔 꽤나 거리가 있었다.

"사람 많으니까 놓치지 않게  따라와."

"……진짜! 어린애 취급하지 마요."

"손이라도 잡아줄까?"

"미, 미아 같은 거 안 돼요!"

"괜히 혼자 따로 떨어졌다가 울지 말고."

북적북적한 인파의 틈바구니를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 것처럼,

서윤이는 "으아, 으아아." 뒤처지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뒤쫓아왔다.


"사, 사람 너무 많아아……"

"어떡하냐. 아직  더 걸어야 하는데."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밥 먹으러 가고 있잖아."

"어, 어디 생각해둔 곳이라도……오빠아!"


결국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요령 좋게 사람 사이를 빠져나가질 못하는 통에 자꾸만 치이고, 부딪히고.

발을 밟히지 않는 게 용하다 싶을 만큼 번번이 군중의 벽에 가로막혔다.

나란히 걷다가도 어느샌가 옆을 보면 사라져 있었으니……어쩔 수 없었다.


"……손 잡는 건 평범한 데이트 맞죠?"

"오늘은 미아 방지 대책."

"뭐야. 하나도 안 로맨틱해."

"길 잃어버리는 것보단 낫지 뭐."


하지만 슬슬 좁은 길로 접어드는 시점이 되자 서윤이도 불평하지 못했다.

아니, 도저히 불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오빠, 나 오늘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사인은?"

"아마 호흡 곤란일 것 같은데."

"헛소리 말고 이쪽으로 와. 벽으로 붙어."

나는 최대한 사람에 치이는 일이 없게끔 그녀를 가장자리로 몰았다.

서윤이는 허리를 감싸는 손길에 흠칫 놀랐지만 순순히 몸을 맡겼다.

그거 외엔 방법이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앞뒤로 짓눌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최소한 내가 인파를 막아준 덕분에 떠밀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빠, 오빠."


덕분에 어느 정도 숨을 돌렸는지, 그녀는 다시 주변을 기웃거렸다.


"저기 저 가게요. 사주랑 궁합 봐준대요."

"뭐 그렇겠지? 여기 그런 곳 엄청 많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나는 그녀의 의도를 깨닫고 피식 웃었다.


"아서라. 나쁜 소리는 안 듣겠지만 일부러 보러 갈 정도도 아냐."

"오빠는 안 궁금해요? 사귀는 사람이랑 궁합……이라든지."

"글쎄? 아직까진 궁금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네."

"……하긴. 오빤 그런 거에 그다지 흥미 없을  같긴 해요."

"그렇지 뭐. 흥미 없기도 하고. 어차피 별 볼일 없다는 걸 아니까."


나는 혹여나 어딘가에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 깊게 그녀를 인도했다.

"돈 받고 칭찬하는 일이라면 누구든 할  있을 거 아냐."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비뚤어진  아니에요?"

"어차피 서비스업인데 뭘 바라겠어."

"……혹시 궁합이  좋다고 하면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그럼 헤어지고 다른 남자랑 사귈 거야?"

서윤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칭찬밖에  해줘."

"……하긴. 나쁜 소리 들으면 좀 화날 것 같아요."

근데 진짜로 가끔씩……이지만, 있더라고.

애정운인지 뭔지, 돈까지 받아놓고서 나쁜 이야기를 하는 집이.

사주나 타로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서 얼씬도 하기 싫다.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이 어딨겠어. 서로 맞춰가면서 만나는 거지."

적당히 그럴듯한 말로 얼버무리자 서윤이도 대충 납득한 것 같았다.

 이상한 곳에 붙들릴까 무서웠던 나는 서둘러 길목을 빠져나왔다.

살짝 빨라진 걸음에 따라오느라 그녀는 약간 숨이 차는 듯했다.

"그,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말했잖아. 저녁 먹으러 간다니까?"

"메뉴는 비밀이에요?"

"아니, 별로 비밀은 아닌데. 궁금해?"

"……혹시 안 듣는 편이 낫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불안해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아까의 닭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서윤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쪽으로 가고."

"지, 지금은  먹어도 비슷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닭발은  돼요."


염두에 두고 있는 게 확실했다.

"아무튼 오빤 진짜. 평범한 데이트라고 했잖아요."

"평범하게 닭발 먹으러 갈 수도 있지 뭐."

"나, 나는 그거  먹는단 말이에요."

"알았어 그래. 알고 있으니까 떽떽거리지 마."


안 그런 여자가 있나 싶지만……서윤이도 분위기에 약한 편이다.

일단 좋은 분위기가 되면 굉장히 넘어오기 쉽다고 해야 하나.

빠듯한 것처럼 보여도 의외로 유혹에 약한 성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몸가짐이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아웃사이더에다 소심한 성격이 더해져 철벽을 치게 되는 거지.

실제로 알고 보면 꽤나 분위기도  타고, 쉽게 들떠서……남자친구로선 더럽게 불안한 타입이다.

하지만 뭐, 그런 만큼 방법만 제대로 알면 다루기 쉽다는 의미도 된다.

"이쪽으로."


언제 와도 정신없는 거리에서 방향을 틀자, 그녀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왜? 이상해?"

"아니, 그게……뭐랄까, 좀 낯설어서."

서윤이는 터벅터벅 뒤를 따라오면서도 불안한 눈치로 사방을 힐끗거렸다.

낙서로 가득한 벽은 덕지덕지 붙은 포스터와 떼어낸 흔적으로 지저분했다.

드문드문 전봇대 아래서 무리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나.

그 아래에 쌓여있는 쓰레기봉투의 산이라던가.

메뉴가 적혀 있는 입간판을 제외하면 식당인지 술집인지도 모를 가게까지.

"오, 오빠아……혹시 이상한 곳, 데려가려는 건 아니죠?"

"이상한 곳이 뭔데?"

"성인만 들어갈  있는 가게……같은 곳."

"아니, 너도 일단은 성인이잖아."

"그,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되지."

나는 말을 어려워하는 서윤이를 "빨리 와." 조금 강압적으로 잡아끌었다.

어차피 술집의 뒷골목이란 이런 법이고, 무서워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서윤이는 좀 다른지,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홱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마주치면 시비를 걸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작 당황스러워하는 건 눈을 마주친 쪽이었지만……재미있으니 놔두자.

"너무 그렇게 두리번거리면  위험하다?"

"지, 진짜요……?"

물론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다면 부추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행동해. 익숙한 것처럼."


결국 반강제로 자연스러움을 위장하게 된 그녀는 삐걱삐걱 걸음을 옮겼다.

마치 언제든지 사방에서 총구가 겨눠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대체 어느 나라의 갱스터 영화라고 생각하는 건지 원.

덕분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게 조금 앞장서서 걸어야 했다.

서윤이는 그런 와중에도 최대한 뒤쳐지지 않게 등 뒤에 달라붙었다.


"……오, 오빠, 아직 멀었어요?"

"다 왔어. 저기 보이잖아."

골목의 끝에는 작지만 꽤나 어엿하게 보이는 멀끔한 레스토랑이 서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명백하게 이질적인 하얀 외관을 보더니,

"……엥?"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의문을 짧게 드러냈다.

나는 설명하는 대신, 의아해하는 그녀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했으니 들어가자."

"네, 네에에."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공기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서윤이는 북적거리는 사람에 치이느라 더운 것도 잊고 있었는지,

"흐, 흐아아……"

찬바람을 폐에 가득 채우려는 것처럼 크게 들이마셨다.

"실례합니다. 7시에 두 자리 예약했는데요."

"네. 이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서윤이가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나는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만석이긴 했지만……그럭저럭 괜찮은 자릴 받을  있었다.

어차피 2층짜리 레스토랑이라 야경을 기대할  있는 것도 아니고.

구석진 곳에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이 그녀도 안심할 테니까.

"그럼 주문이 정해지면 불러주세요."


점원이 물러가자 서윤이는 지쳤는지, 허물어지는 것처럼 의자에 기댔다.

거리로 따지면 500m정도지만, 체감으론 훨씬 오래 걸렸으니 뭐.

서윤이의 비루한 체력으론 지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힘들다아아……"

"물 마실래?"

"마실래애애……"


잔에 물을 따라주자 서윤이는 조금씩 목을 축이는 것처럼 홀짝거렸다.

나는 빈 자리 없이 꽉꽉 들어찬 내부를 둘러보며 한숨처럼 말했다.

"예약하길 잘했네. 안 그랬으면  들어올 뻔했어."

"……여기, 예약까지 해야 될 정도에요?"

"싸고 맛있거든."

"별로 저렴해 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주변에선 가격이 괜찮은 편이야."

메뉴판을 펼쳐든 나는 의미 없는 질문이란 걸 알면서도 말을 건넸다.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오빠랑 같은 거요."

"그렇겠지."

"죄송해요. 지금 약간 진짜로 지쳐서 힘들어요."


약간 진짜로는 무슨 말일까 싶지만……서윤이는 기가 다 빨린 얼굴이었다.

아마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바깥에 나가잔 말은 꺼내지도 않겠지.

그것만으로도 꽤나 성공적인 데이트라고 할  있겠지만, 아직 멀었다.

"식욕은 있어?"

"으음, 조금 있으면 엄청 배고파질 것 같긴 해요."

"그럼 조금씩 이것저것 시키자. 남으면 내가 먹을 테니까."

가난한 복학생 주제에 언감생심 코스 메뉴는 꿈도  꾸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분위기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는 정도의 돈은 있다.

아니, 솔직히 며칠 전의 쇼핑 때문에 꽤 쪼들리긴 하지만.

서윤이한테 들켰다간  엄청나게 구박당할 테니……비밀로 하자.

"실례합니다. 식전 빵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주문은 정하셨나요?"

"새우 파스타랑……스테이크 단품은 몇 그램 정도 되나요?"

당연하지만, 메뉴를 질문하고 주문하는  온전히  몫이었다.

서윤이는 테이블에 점원이  순간부터 조각상이 되어,

"……"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침묵을 고수했다.

일견 자리에 없는 사람으로 여겨달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으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서윤이는 탄산보단 에이드가 좋지?"


묵묵한 끄덕끄덕.

"레몬 괜찮아?"

잠시 망설이는 끄덕끄덕.


"레모네이드로 두 잔,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스테이크 단품……"


서윤이는 점원과 나누는 대화도 듣는  마는 둥.

괜히 테이블을 비비적거리거나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심심하다기보단……신경 좀 써달라며 귀찮게 구는  같았다.

"왜? 필요한 거라도 있어?"

"……"

정작 물어보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서윤이가 다시 말문을 연 것은 점원이 떠나간 뒤였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오빠 좀 대단한 것 같아요."

"갑자기 뭐라는 거야."

"처음 보는 사람이랑 대화하잖아요."

"……방금 그걸 대화라고 생각하면 좀 서글픈데."

점원 분도 딱히 나랑 대화를 할 생각은 없었을 테고.

"서윤이도 주문 정도는 할 수 있게 돼야지."

"……무섭단 말이에요."

"글쎄, 오히려 직원이 널 무서워할 것 같은데."

뼈 있는 농담을 던진 나는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왔다.

"비싼 곳은 아니지만 뭐, 그래도 나름 분위기 괜찮지?"

"네에에. 처음엔 좀 놀랐지만……괜찮아졌어요."

"이 동네가 구석구석 잘 찾아보면 이런 곳이 꽤 많아."

작게 잘라진 빵을 집어  나는 그녀의 입에 물려주었다.

서윤이 성격에 이런 건 부끄럽다고 싫어할  같지만,

"……맛있다."

의외로 거절하지 않고 우물우물 잘도 받아먹었다.

"그래서 의외로 구경하고 다니는 맛이 있어."

"……빵이 검은색이에요. 신기하다."

"그렇지? 여기에 찍어 먹으면  맛있어."

나는 빵으로 양철 종지에 담긴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휘저었다.


"오늘은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밌게 노는 것만 생각하자."

"다른 사람들은 보통 어떤 식으로 재밌게 놀아요?"

"보통은 무슨. 좋아하는 거 하면서 놀지."

"그래도 자주 가는 가게라던가, 있을  아니에요."

"……글쎄, 그렇게 말하니까 별로 떠오르는  없네."

서윤이랑 비교하면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나도 그리 사회 친화적인 인간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사회생활은 가능하지만, 불필요하게 사람이랑 엮이고 싶은  아니라서.


"그러는 서윤이는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있어?"

"……으음.  모르겠어요. 생각이  나."

"밥만 먹고 돌아가긴 아쉽잖아."

"오빠는 오늘 뭐 하려고 했어요?"

"간만에 심야 영화나 볼까 생각했지 뭐."


입술에 톡톡 두드리던 그녀는 "으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새벽까지 돌아다니기만 해도 심심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새벽에 돌아다니는 건……좀 무섭지 않아요?"

"술 취한 여자 혼자서도 다니는데 뭐 어때."

"오빠는 시비 걸어오면 절대로 안 피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여자친구 앞에서 싸우고 그러겠냐."


생각해둔 일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일부러 대화를 유도했다.

리드당하는 것과 계획 없이 질질 끌려가기만 하는 건 다른 거니까.

둘이서 함께 하루를 만들어나간다는 실감이 좋은 거지.

어차피 식사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한가하기도 하고.

게다가 서윤이도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가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모처럼이니까……오빠랑 단둘이서 즐길 수 있는  좋아요."

물론 이젠 나도 서윤이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지만,

저런 말을 하면서도 자각이 없으니……앞으로 장래가 무척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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