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오늘따라 (3)
하지만 둘이서 함께 같은 것을 즐기고 싶다는 말에는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권태기가 문턱을 넘어서 고개를 드밀 정도로 오래 사귄 것도 아니고.
애초에 우리는 각자 그렇게까지 관심사가 잘 맞는 편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서윤이가 몰취미한 인간이라 어울려 주고 있는 거지.
좀만 깊게 들어가도 딱히 겹치는 취미나 화젯거리가 없는 편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할 수밖에.
물론 그렇다 해도 "오늘 뭐하지?"라는 난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
"오빠, 우리 지나온 길 근처에 오락실 있대요."
"상관은 없는데, 너 오락실 가본 적은 있어?"
"나 말구요. 오빠 게임 좋아하잖아요."
"……아니, 내가 하는 건 그거랑은 좀 다른데."
최소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재미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계획이란 건 점점 산으로 가는 법이다.
게다가 우리 둘 다 계획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하자 인생.
"그럼 실탄 사격장 어때요? 재밌어 보이는데."
"……불안한 미래밖에 안 보이니까 관두자."
언제부턴가 목적에서 이탈한 대화는 단순한 잡담이 된지 오래였다.
'추천 데이트 코스'라든지, '반드시 가야 할 명소 베스트 10' 등등.
구글링으로 나오는 검색 결과에 현실감각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 시시콜콜한 대화를 위한 장작이 되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새우 크림 파스타 나왔습니다."
하지만 한참이나 끝 모르고 이어질 것 같았던 알맹이 없는 대화도,
"파스타는 어느 분이……?"
'아, 이쪽에 놔주세요."
이윽고 하나둘씩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아니, 그보단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쪽이 정확할 거다.
"볼로네제 라자냐와 머쉬룸 샐러드 나왔습니다."
"그건……그냥 대충 적당한 곳에 놔주세요."
"감바스……"
"그게, 일단 거기 빈 곳에 좀. 네."
"맨하탄 스테이크……"
"죄송합니다. 접시 이리 주세요."
주문할 때는 배고프니 당연히 이 정도는 먹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하나씩 하나씩……나오는 음식을 보자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마르크 피자……죄송합니다. 자리 좀 만들어주시겠어요?"
결국 테이블의 절반 이상 채운 요리를 본 서윤이는 혀를 내둘렀다.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너무 많이 주문한다 싶었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말리지 그랬냐."
"엄청 배고픈 줄 알았죠."
"너도 엄청 배고프다고 그랬잖아."
"……난 몰라요. 이거 보기만 했는데도 벌써 배부른데."
아무리 그래도 남자랑 비교할 순 없겠지만,
서윤이 같은 경우엔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잘 먹는 편도 아니다.
입도 짧아서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며 수저를 놔버리기 일쑤고.
그런 주제에 가만히 놔두면 자꾸 뭔가 깨작깨작 입에 넣는다.
그래놓고 입맛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게……어린애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먹이는 보람이 없냐고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일단 먹고 생각할까?"
"……그게 낫겠죠?"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던 서윤이는 재빨리 접시를 당겨왔다.
이렇게 보여도 은근히 먹는 걸 좋아하니까 보고 있으면 흐뭇하거든.
물론 여자친구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예쁘다, 사랑스럽다 등등.
많고 많은 감정을 두고 흐뭇하다니……뭔가 어긋난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오빠 거."
서윤이는 굉장히 어정쩡한 동작으로 고기를 한 조각 크게 썰더니 내 접시에 덜었다.
"……기왕 썰어주는 거, 입에 넣어주면 안 돼?"
"가, 가게에서 그런 짓 하면 민폐잖아요."
"집에선 잘만 해주잖아."
"……오빠도 방금 나한테 빵 먹여줬으면서."
"그러니까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서윤이는 그것만큼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혹시라도 들켰다간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거라는 게 이유였다.
세상은 너한테 관심이 없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
"와인이라도 한 잔 먹이면 좀 대담해지려나."
"……우리 오빠 또 이상한 소리 한다."
샐쭉하니 핀잔을 준 그녀는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최소한 그런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었을 거란 의미다.
애인 앞에서 능숙하게 보이고 싶은 건 남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속이 뻔히 보이는 허세가 귀엽게만 보이는 것처럼,
내 눈에는 무언가의 흉내를 내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긴 뭐, 서윤이가 볼륨감만 빼면 유별나게 빠지는 편도 아니고.
입만 다물고 있으면 좋은 집의 아가씨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익……익!"
고기를 썰 때마다 자꾸만 나이프 방향으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누가 봐도 교양 넘치는 아가씨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뭐, 뭐에요 또. 칼질도 제대로 못한다고 놀릴 거예요?"
뭐, 이런 반응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겠지만.
"아니, 그냥. 서윤이랑 사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옆에서 관찰만 해도 재미있는 생물은 그리 흔한 게 아니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았다.
"……으, 으우으."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그녀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뻔한 수작이란 걸 알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게 여심이란 거겠지.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뭐.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렇게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아."
나는 몇 마디 더 비슷한 멘트를 꺼내는 것으로 가책을 지웠다.
아슬아슬하게 거짓말은 아니니까 제법 진심을 담을 수 있었다.
"오, 오빠 진짜아……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한다니까."
결국 눈도 못 마주칠 정도가 된 그녀는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나, 나도, 나도 오빠랑 그러니까."
"서윤아, 잠시만 움직이지 말아 봐."
"네, 네헤엣?"
다짜고짜 그녀에게 손을 뻗은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머리카락이 길면 가끔씩 자기도 모르게 음식이 묻곤 한다.
기껏 손질하고 나온 머리에 소스 따위가 묻으면 싫겠지.
나로선 불쾌한 일이 생기기 전에 배려해준 셈이지만,
"흐, 흐으으……"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그녀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잘 보일 만큼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사, 사람도 많은데……너무, 그러니까, 적극적이면 그게……"
"그래그래. 알았어. 앞으로 조심할게."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내버려둔 나는 빵을 툭 반으로 쪼갰다.
바보 짓을 하느라 음식이 식게 놔두는 것도 아까운 짓이고.
어프로치라고 오해한다면……오해한 채로 놔두지 뭐.
절대로 그럴 생각아 아니었다면서 변명하는 것도 웃기잖아.
"알았으니까 밥 먹자, 밥."
"……네에에."
서윤이는 흐리멍덩한 얼굴로 대답을 흘렸다.
착각은 자유지만, 유혹에 너무 약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새삼스럽지만……이런 성격이라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근사근하기까지 했으면 불안해서라도 옆에서 못 떠났지.
언제 어디서 나쁜 벌레가 날아들 줄 알고 자리를 비우겠어.
"……에헤, 에헤헤."
하지만 남자친구의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참이나 실없이 웃었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같이 좀 웃자."
"그, 그냥요."
"그냥 좋아?"
"……밥이 맛있잖아요."
마지못한 대답에, 나는 많이 먹으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이고 어디서든 먹을 수 있지만,
사실 이럴 땐 무엇이든 대부분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먹어."
서윤이는 맛이나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세를 탔는지 평소보단 제법 잘 먹고 있었다.
눈치 보느라 깨작거리는 것보단 팍팍 먹는 쪽이 보기 좋지.
"오, 오빠……저기, 오빠."
"응?"
그렇게 한참을 대화 없이 식기만 달그락 달그락.
멀리서 들리는 저가 레스토랑 특유의 잘 모를 재즈와 소음.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옆자리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
몽실몽실하던 분위기가 조금은 침착해졌을 무렵,
서윤이가 간신히 들릴 만큼 조그마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게, 그러니까……"
사람을 불러놓고 뭘 하는 건지,
서윤이는 초조한 시선으로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아무도 우리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다음,
"아, 아아……앙."
작게 잘라놓은 고기를 포크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빠, 빨리요. 누가 보기 전에."
"아깐 싫다고 하지 않았어?"
"지, 진짜로 싫은 게 아니란 것쯤은 알잖아요 정말!"
조금이라도 뜸을 들였다간 억지로라도 입에 쑤셔 넣을 기세였다.
지금도 누가 볼까 봐 무서운지 포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뾰족한 걸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럴 땐 나를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눈동자는 갈팡질팡.
혹시 발소리라도 들리면 흠칫흠칫 거리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알았어. 고맙게 먹을게."
아마 지금쯤 10초가 10분처럼 느껴지고 있겠지.
더 이상 괴롭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냉큼 입에 넣었다.
그제야 서윤이는 안심했다는 것처럼 화아악 얼굴에 꽃이 피었다.
"맛있다. 그치?"
"……네에에. 엄청 맛있어요."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자주 보게 되는 건 일상적인 여자친구니까.
긴장은 풀어지고, 이것저것 조금씩 느슨해지게 된다.
서윤이만 해도 최근엔 내 옷이 더 편하다고 할 정도니까.
하지만 역시나 낯선 분위기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있다.
"나, 나도……오빠랑 사귀길 잘했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내가 했던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기분은 비슷하겠지.
어쨌든 서윤이는 이후로도 애정이 퐁퐁 솟아오르는지,
"오빠, 여기……아앙."
아니면 가장 어려운 것은 처음뿐이란 걸 증명하려는지.
몰래 사람들 눈을 피해 나한테 음식을 먹여주곤 배시시 웃었다.
"빨리요. 누가 보기 전에."
왠지 점점 스릴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이상, 나는 매번 부끄러움을 삼켜야 했다.
게다가 서윤이는 주변의 눈을 잘 피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주변이 눈에 안 들어올 뿐이었다.
한두 번은 어떻게든 된다고 해도……안 보일 리가 없잖아.
방금 전에도 저 멀리서 점원이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라졌어.
"마, 맛있네."
"그쵸?"
여전히 한 번 시동이 걸리면 브레이크가 안 듣는 아가씨였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부끄럽다고 싫어하질 말던가……우읍.
결국 꽤나 장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나갈 즈음,
"……돈을 줘도 더는 못 먹겠다."
나는 혼자서 3인분에 가까운 음식을 먹어치운 상태였다.
접시를 싹싹 비운 건 아니지만……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고.
서윤이도 제법 분발한 덕분에 어떻게든 간신히 해낼 수 있었다.
"와아아, 오빠, 되게 잘 먹는다."
벌써 오랫동안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그녀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물론 가끔씩 음식을 먹기 좋게 자르거나, 소스를 뿌리는 등.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거의 대부분 내 입으로 들어갔다.
모르긴 몰라도, 서윤이 손은 내 입으로 더 많이 음식을 날랐을 걸.
그리고 내 입은 오른손보단 여자친구에게 더 많이 받아먹었을 테고.
"남자들은 이렇게나 많이 먹을 수 있구나. 신기하다. 몰랐어요."
서윤이는 빈 접시와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나 앞으로 오빠 밥은 좀 더 많이 만들까요?"
"……아니, 그러지 마. 제발 부탁이니까."
"왜요? 잘 먹으니까 되게 신기한데."
"됐으니까. 평소랑 같은 양으로도 충분해."
서윤이는 정도를 모르는 애라는 걸 방금 확인했으니까.
가뜩이나 사귀기 전보다 먹는 양이 늘었는데……절대로 안 되지.
"흐으응."
하지만 대체 뭘 생각하는 건지, 서윤이는 연신 방실방실거렸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해졌지만,
"왜요?"
"아니, 아무것도."
섣불리 추궁했다간 본전도 못 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 먹었으면 소화도 시킬 겸 나가서 좀 걸을까?"
"네엥."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무서워서 일부러 끝까지 안 열어봤는데……어쩔 수 없지 뭐.
차라리 코스 요리 2인분을 시키는 게 싸게 먹혔겠다 싶지만.
"계산하고 갈 테니까 먼저 밖에 나가있어."
"……저기, 오빠."
"응?"
"나도 여기, 절반……낼게요."
"됐어. 얼마 먹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나는 그녀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무리해서 시킨 거니까 괜히 신경 쓸 필요 없어."
"근데, 아까 보니까 돈, 엄청 나왔던데……요."
"……얼마나 나왔는데?"
"펴, 평소 우리 밥값의 3배……정도."
서윤이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녀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이었다.
나는 마구 빨라지는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괜찮아. 괜찮아. 그 정도 돈은 있으니까 먼저 나가있어."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요……?"
"그렇게 걱정되면 커피는 서윤이가 살래?"
"커, 커피랑 케이크에……쿠키까지 제가 살게요!"
아니, 남자는 위가 하나라서 그렇게는 못 먹어.
"그래 그럼 서윤이가 가서……는 무리일 테고, 같이 가자."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안색을 본 나는 급하게 말을 바꿨다.
아까보다 더 불어났을 인파를 생각하면 자살행위지.
물론 사람이 없더라도 무리한 소리인 건 마찬가지겠지만.
"바깥에서 좀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네에엥."
못 미더워하는 그녀를 잘 달래서 내보낸 나는 지갑을 꺼냈다.
여자친구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3개월이요."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건넸다.
잘 쓰지도 않지만……이것만큼은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싶었는데.
카드가 긁히는 것과 함께 내 가슴에도 스크래치가 남는 것 같았다.
"영수증 필요하세요?"
"……네. 주세요."
영수증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나는 가게를 나섰다.
모르긴 몰라도, 나 역시 서윤이만큼이나 들떠있었던 것 같았다.
평소였다면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시키는 바보 짓도,
아무리 여자친구라지만……주는 대로 받아먹지도 않았을 텐데.
"바보 짓 한번 거창하게 했다. 그치?"
나는 바깥에서 심심하게 기다리던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집에 갈 때 소화제 사갈까요?"
"누구 집에 갈 건데?"
"그야 당연히 오빠……집, 말한 건데."
서윤이는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말을 버벅거렸다.
데이트의 실감을 위해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더니,
무의식중에 마지막 코스를 상정하고 있었던 듯했다.
"뭐, 뭔가……되게 새삼스러운데 엄청 부끄럽다. 그쵸?"
아하하, 하고 그녀는 멋쩍게 뺨을 문질렀다.
"오빠 집에 가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닌데……뭘까 정말."
"서윤이 말처럼 따로따로 만난 게 효과가 있나 봐."
"……근데 오빠는 왜 이렇게 태연해요."
"나? 안 그래. 나도 생각보다 긴장 엄청 하고 있어."
안 그랬으면 한 끼 식사로 하루 예산을 날려버리는 짓도 안 했겠지.
"굳이 말을 안 하는 거지. 비슷한 기분일 걸?"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거 다행이네. 뻔히 보이긴 싫으니까."
나는 서윤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보다 사람 많아졌을 테니까 손 잡자."
"……어차피 골목엔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싫어?"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싫을……지도."
좀 전의 식사로 스위치가 들어갔는지, 오늘따라 어리광을 부려왔다.
그런 와중에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게 그녀답다 싶긴 하지만.
"서윤이랑 손 잡고 싶은데, 괜찮아?"
"시, 싫어요!"
"엥?"
"……팔짱, 낄래요."
어차피 이런 여자친구를 상대로 이길 방법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서윤이는 허락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멋대로 팔짱을 끼더니 묘하게 기대가 담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이, 이러면 우리도……사귀는 사이로 보이겠죠?"
어째 오늘따라 계속 평범이라든지, 일반적으로, 보통은……처럼.
평소와 달리 이상할 만큼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구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아닌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듯했다.
처음부터 앱노멀이란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을 테니까.
최소한 겉모습만이라도……란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글쎄, 여친이 아니라 여동생으로 보면 어떡하지?"
"누, 누가 여동생이랑 팔짱을 낀다고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윤이는 좀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는 기개가 대견했지만……역시 좀 덥네.
"그럼 제대로 커플처럼 보이는지 확인하러 가야겠다. 그치?"
"화, 확인하러 간다니……혹시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직 집에 가긴 이르잖아. 좀 더 놀아야지."
"오빠, 잠깐만……일단 우리 이, 이것 좀 놓고……오빠아아!"
어차피 손을 잡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혼자 힘으로 팔짱을 풀 수 없었던 그녀는, 산책을 싫어하는 강아지가 버티는 모양새로 질질 끌려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