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공성 메이드-93화 (93/109)

(EP.93)암운 (1)

제국의 서부는 넓고 방대하다.

너른 평지와 강을 끼고 발달한 황금빛 곡창지대는 서부의 돈줄이자, 그들의 자랑이다.

단, 광물이 풍부한 동부와 강건한 기사들이 배출되는 북부와는 달리 강력한 무력을 지닌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힘들었다.

그 대신 곡창지대 특유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인구수는 제국의 어느 부분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만약 제국의 서부가 통째로 사라진다면 제국을 수호하는 14개의 군단 중 절반은 병사의 수급에 허덕이게 되리라.

서부는 외세의 위협을 자주 받는다.

북서쪽에 국경을 맞댄 브리시움 왕국, 그 아래 엘랑슈와 왕국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소국이 호시탐탐 제국의 끝자락을 갉아먹는다.

그렇기에 14개의 군단 중 6개의 군단이 제국의 서부 국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의 지휘권은 서부 대공과 황제에게 양분되어 있다.

즉, 제국의 서부에는 상당히 많은 군단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런 군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인구가 많다.

만일 서부가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천명한다면 제국은 크게 휘청이리라.

그리고, 서부 대공 아나스토리아 인빅투스는 제국의 미래가 걸린 그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갑작스레 일어난 습격.

서부 대공에게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자 놀람이었다.

마차의 옆부분 큼지막하게 새겨진 대공의 인장을 보면 어중간한 산적 따위는 감히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늘.

설령 산적 따위가 마차를 습격한다고 해도 숙련된 기사들의 손에 의해 쪼개진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흩뿌려질 것이 뻔했다.

빨리 정리를 끝내고 다시 출발할 생각을 하며 마차 안에서 잠시 대기하던 그는 이내 이상함을 깨닫는다.

밖이 너무나 조용하다.

고함이나 함성, 칼붙이가 맞부딪히는 소리 따위가 나지 않았다.

서부 대공은 마차의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순간 우악스러운 손이 다가와 그의 목깃을 부여잡더니 냅다 밖으로 끌어냈다.

서부 대공은 그 강력한 힘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었다.

그는 감히 자신을 욕보인 인물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제 눈앞의 인물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인물이었으니.

“흠. 좋은 눈이다. 네가 서부 대공인가?”

“당신은...?”

“아직 알 필요는 없다. 네게는 이쪽이 더 친숙하겠지.”

에르베스코 황가의 황족처럼 붉은 머리를 사자의 갈기처럼 사납게 기른 사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대검을 바닥에 박아넣고,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것은 서부 대공이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루시우스...황자?”

“그래. 내가 루시우스다. 황자, 루시우스.”

루시우스는 서부 대공의 코앞까지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그는 과거에 봤을 때보다 수척해 보였고, 핏기가 없어 창백해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너는 이해할 수 없다. 이분이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루시우스는 시선을 땅바닥에 처박고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제국에 반기를 들거나, 아니면, 죽어라.”

서부 대공은 대뜸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이지선다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는 빠르게 눈을 굴려 정보를 얻어냈다.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고 반역자가 되어 전국에 수배된 루시우스.

그리고 그의 옆에서 따분한 듯 대검을 움직이며 흙을 파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사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서부 대공의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아들과 아버지로 보였다.

비슷한 얼굴, 붉은 머리, 금빛 눈동자.

몸집만 보면 어린아이와 기사를 놓고 비교하는 정도로 굉장한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설마 숨겨둔 아버지가 있었나.

하지만, 서부 대공이 알기로 그런 존재는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선황 루데우스 에르베스코는 죽었다. 그리고 그분은 저렇게 체격이 좋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루시우스와 비슷했다.

서부 대공이 입을 다물고 있자, 루시우스가 큭큭 웃으며 그의 귓가에 머리를 들이밀고 속삭였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 심지어 나조차도... 그분은 성격이 급하다. 선택하라. 빨리.”

루시우스의 말마따나, 거체의 사내는 이 상황이 지루한 듯 보였다.

게다가 그의 발밑에 깔린 반으로 쪼개진 기사들의 시체는 그의 실력을 어느 정도 반증하는 듯싶었다.

만약 서부 대공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기사들과 함께 땅속의 양분이 되겠지.

제국에 반기를 든다, 라.

마침 귀족들의 권세를 꺾으려는 황제 루나미아의 정책들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사적인 감상 때문에 제국을 반으로 쪼개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수많은 제국의 시민을 불필요한 전란으로 몰아넣어 무의미하게 죽이는 것은, 아무리 서부 대공이라고 해도 큰 반감이 들었다.

“죽여라. 루시우스. 네놈의 말을 듣고 제국을 내전으로 고통받게 하느니, 기꺼이 내 목을 내놓겠다.”

서부 대공의 각오에 찬 눈.

그 눈과 마주한 루시우스는 숨을 들이켜고는 꺽꺽대며 웃어댔다.

“네가 선택한 거다. 후회하지 마라.”

쪼그려있던 루시우스가 일어나 검을 뽑았다.

“커억…”

서부 대공의 심장을 꿰뚫는 날카로운 고통과 함께 의식이 사라졌다.

이내 서부 대공의 눈앞이 점멸하듯 번쩍거리며 의식이 깨어났다.

물에 빠졌다가 살아 나온 사람처럼 켁켁거렸다.

분명 루시우스의 검이 제 심장을 찔러 들어왔건만 저승이 아니었고, 그의 눈에 비치는 광경도 검에 찔리기 전 그대로였다.

“이게...무슨...”

무심코 가슴을 더듬거린 서부 대공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심장을 꿰뚫은 검은 그곳이 제 검집인 양 꽂혀 있었다.

검날에 몸의 절반을 넘게 잃은 심장은 이미 멈춰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살아있었다.

“그러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해할 수 없다고.”

루시우스는 이죽거리며 그리 말했다.

“어서 와라, 노예가 된 것을 축하한다. 서부 대공.”

***

“크흑...내 어디가 부족한 거야...”

엘븐하임에서 출발해 삼일 밤낮을 달려 도착한 동부 대공의 영지 파르코리움은 강철도시라는 이명다웠다.

도시를 메운 대장간의 뿌연 연기들.

도로에 모루를 놓고 망치를 후려치며 깡깡- 거리는 소음을 내며 호객을 하는 드워프들.

화려한 갑옷을 마치 옷가게의 상품처럼 걸어놓고 판매하는 가게들.

강철과 땀, 화염이 아지랑이를 피워내는 도시.

루나미아가 동부 대공의 영지를 기피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도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저 시계탑이겠지.

도시 한가운데 떡하니 박혀있는 거대한 직사각형 건축물은 사면에 달린 시계로 도시를 내려다본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약속을 잡고 대장장이들은 화로에 불을 올린다.

마법과 과학이 섞인 시계태엽의 강철 거인.

솔직히 말해 멋있다.

“전하...듣고계신겁니까...?”

“어, 어. 듣고 있어요.”

“솔직히 저 정도면 나름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어...그렇지...”

나는 동부 대공의 한탄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이세계의 맥주는 도수가 높다. 아니면, 드워프가 만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뭐가 부족했을까요. 권력? 재력? 군사력? 아니면 외모? 그래요. 엘프들은 모두 잘생기고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눈에 제 외모는 그저 추하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부족한 게 뭡니까! 저는 동부 대공으로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여인의 추파를 받았습니다...”

왁자지껄한 주점의 소음에도 동부 대공의 술주정은 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나는 말없이 도수가 가장 강한 맥주를 주문해 그의 앞에 내밀었다.

동부 대공은 고개를 까딱거리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만날 운명적인 만남을 위하여... 아아, 그 아름다운 옥빛 머릿결! 순백의 피부! 그 이름도 고귀한...”

쿵-

내가 내려친 맥주잔이 큰소리를 냈다.

맥주가 출렁거리며 테이블에 노란 흔적을 남겼다.

남정네의 한탄 따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루나미아를 따라 도망쳤어야 했나, 잠시 후회했다.

어쩌면 루나미아는 이런 미래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게 저런 것은 버리고 동네 구경이나 하자며 제안했으리라.

그리고 그 제안을 걷어찬 것은 나다.

동부 대공은 알딸딸하게 취했는지, 멍한 눈으로 맥주잔을 내려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요. 갑자기 선을 넘지 말라고.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으면서 천천히 물들여가야 한다고.”

“…”

나는 황궁 메이드 시절, 동료 메이드들에게 들었던 연애 철칙을 떠올리며 그대로 전했다.

특히 선임 메이드 애니가 묻지도 않았는데 마구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다들 잘 지내고 있나 모르겠네.

“갑자기 확 밀면 안 돼요. 천천히 미는 것처럼 하다가 당기기도 하고 그래야지. 이번에는 동부 대공의 실수였어요.”

“…동의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하아, 한탄은 그만하고, 한잔 마셔요.”

“…예, 전하…”

동부 대공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마시는 듯, 마시지 않았다.

그가 맥주잔을 내려놓는 타이밍에 적당히 내려놓고, 운을 띄웠다.

“그래서, 저번에 말한 건 어떻게 생각해요?”

“저번…? 아, 화력 말씀이십니까?”

엘프 반란군과 싸웠던 그때, 나는 처음으로 휠락 피스톨을 사용했다.

드워프제 플레이트 갑옷과 비슷할 정도로 단단했던 아칼루아의 비늘을 단숨에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화력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만약 화력이 부족한 공성 메이드들에게 총기를 들려준다면 기사를 잡아낼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며 루나미아에게 총을 사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루나미아는 몇 가지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가장 큰 사유는 초석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동부 대공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동부 대공과 사이가 틀어지면 비싼 총들은 모두 쇳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이유였다.

그 대신, 황후로서 외교 법도 배울 겸, 숙제를 내줬다.

동부 대공과 직접 거래를 해 초안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깐깐하게 튕기면서도 결국 내 말을 들어주는 루나미아다웠다.

그렇기에 동부 대공에게 넌지시 그 뜻을 밝혔는데, 그는 내 뜻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케찰코아틀과의 연애에 정신이 팔렸는지 한동안 답을 해주지 않았다.

케찰코아틀과 동부 대공의 연애가 파탄 난 지금. 지금이 적기였다.

“총기의 유통이 가능한가요? 대충…100정 정도.”

“100정이라…꽤 많군요…그래도 못할 건 없습니다.”

“겸사겸사 초석이랑 총알이랑...”

“그러면...드워프 장인을 파견하지요. 그들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동부 대공은 머리에 취기가 오르는지 말끝을 질질 늘였다.

슬슬 갈 때가 되었나.

마지막으로 맥주를 시켜 그에게 권했다.

동부 대공은 이번에도 원샷을 때리더니, 그대로 코를 박고 기절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복으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을 불러 동부 대공을 처리했다.

땀내나는 남자와 살을 부대끼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동부 대공과의 언약은 나눴으니, 내일 상세한 사항을 조정하리라.

숙제도 끝났겠다, 루나미아에게 보고하러 가야겠다.

칭찬해 주려나?

***

엘랑슈와 왕국의 제국의 국경지대와 인접한 영지 뤼지냥.

지도를 앞에 둔 아리엘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탁자를 딱딱거리며 두들겼다.

지도 위에 놓인 말 사이에 자를 놓고 그들의 예상 경로를 그으려다가 멈췄다.

어제부터 국경지대의 제국 군단이 이동했다.

자기들 딴에는 남들 모르게 이동시킨다고 노력했으리라.

초소에 놓인 병사는 바꾸지 않고 초소와 수풀 뒤에 숨겨진 본대만을 움직였으니까.

하지만 군단 하나도 아니고 몇 개의 군단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식사시간 즈음이면 수프를 만들 때 나는 연기 굴뚝의 수가 확연하게 줄었다.

실제로 첩보에 따르면, 극소수의 병력만을 국경에 남겨둔 채 제국 서부에 배치된 군단 대부분을 동쪽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제국은 무슨 생각이지.

설마,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지나간다.

“아미나.”

“예. 아리엘 님.”

“설마 설마 하지만, 제국에서 내전이 날 확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아미나가 미간을 좁히고 답했다.

“서부 대공이 내전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오래가지는 않겠지요.”

“그 이유는?”

“명분이 없습니다. 물론, 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명분으로 내전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갓 황좌에 앉은 황제가 귀족의 권력을 깎아내는 것은 어느 국가든 종종 벌어지는 일이고, 서부 대공은 고작 그런 일로 내전을 일으킬 만큼 어리석은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면 만약...”

아리엘은 저 자신도 믿고 싶지 않다는 양, 뜸을 들였다.

“만약...명분이 있다면?”

“그렇다면...서부 대공이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가 반기를 든다면 제국은 반으로 쪼개지겠지요. 제국 서부는 그만큼 풍요롭고 강대한 대지니까요. 그래도 제국의 귀족들은 어중간한 명분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왕위 계승자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아미나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어째서 아리엘이 이 주제를 꺼냈을까.

그러면서도 감히 스스로 말하기가 두려워 타인의 입을 빌려 말하게 할까.

설마.

아미나의 머릿속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처단해야 할 제국의 어둠.

그리고 제국 최초의 황제.

루시우스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그들에게는 상관없었다.

그저 언데드로 되살려내고 꼭두각시로 만들면 되니까.

“아리엘 님. 그들이 움직이는 걸까요?”

“내 생각에는 그래. 카를이 깨어났고, 모종의 수단을 써서 서부 대공을 제 손안에 넣었겠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루시우스를 손에 넣어 그를 통해 황위를 주장한다면, 명분은 충분해.”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안돼. 카를의 힘은 너무 위험해.”

제국의 첫 황제 카를 에르베스코의 특성, 절대지배.

그와 눈동자를 마주하고 그의 마력이 몸에 침투하는 순간, 몸의 제어를 잃게 되는 압도적인 특성.

그 마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혹은, 자신처럼 동등한 격의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리고 아리엘이 보기에 아미나는 카를의 절대지배에 저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루시우스를? 그를 황제로 만든다고 해도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카를은 황좌에 관심이 없어. 그저...모으고 싶은 거야.”

사람의 생명이 지닌 순수한 힘을.

아마도, 리아 에르베스코. 나의 부활을 위해서.

아리엘은 그리 중얼거리고, 더이상 지도를 부여잡고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군단의 이동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고,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적당한 추론 정도의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만으로는 제국에 맞설 수 없어. 브리시움 왕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북쪽의 브리시움 왕국과 남쪽의 엘랑슈와 왕국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앙숙인 국가다.

장궁병을 위시한 강력한 맨앳암즈를 보유한 브리시움 왕국.

넓은 평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말을 바탕으로 한 기사의 국가 엘랑슈와 왕국.

그리고 같은 신화에서 파생된, 반월의 기사들.

만약 브리시움 왕국과 엘랑슈와 왕국이 힘을 합친다면 강력한 궁병과 강력한 기병, 그리고 반월의 기사를 통합하여 신화에나 나왔던 원탁의 기사를 창설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두 국가의 은원관계는 깊고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아리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두 국가에는 구심점이 필요해. 그러려면...”

용사.

악의 제국을 타도하기 위한 용사가 필요하다.

국가를 초월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이.

아리엘에게는 운이 좋게도 성 내부의 서재에서 관련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신화에 관련된 모호한 이야기였지만, 그녀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신들이 존재했던 신화의 시대부터 살아온 그녀였으니.

“움직이자. 카를이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도 늦지 않도록.”

아리엘은 지도를 돌돌 말아 서가에 넣어두고, 다른 책을 뽑았다.

원탁의 기사와 영원의 백룡과 용사의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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